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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배우로 직진, 유인촌의 My Way

글·진혜린l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4.02.17 17:22:00

“이렇게 연극 이야기를 많이 한 건 처음이네. 다른 이야기는 안 해도 정말 괜찮겠어요?” 인생에 관한 모든 이야기를 나눈 것 같은데 무슨 말인가 했더니, 유인촌 전 장관은 ‘다른 기자들은 정치 이야기만 묻더라’고 했다. “나랏일, 다시 할 거냐고? 난 여지를 남기지 않아. 그냥 ‘No’야.” 그렇다면 이제 배우 유인촌을 다시 말해도 될까?
배우 유인촌으로 돌아오다

이제 다시 배우로 직진, 유인촌의 My Way
손때 묻은 낡은 가방, 기동성 뛰어난 신발, 두툼한 장갑, 보온 효과만을 위해 두른 목도리까지. 올 블랙으로 ‘깔 맞춤’ 한 유인촌(63)은 ‘전원일기’의 수남이 아빠만큼 친근했다.

2004년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에 임명된 후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 물러나기까지, ‘나랏일’에 쏟아 부은 시간만 8년이다. 그만큼 일상생활 깊숙이 ‘공무원 냄새’가 진하게 배었다. 그리고 3년, 그는 공무원 유인촌에서 배우 유인촌으로 얼마나 걸어왔을까.

“공무원 냄새를 지우는 게 쉽지 않아요. 일부러 넥타이도 안 매고, 양복도 잘 안 입어요. 자유롭게 지내는 게 좋겠더라고. 다시 배우를 하려면 그만큼 충분한 워밍업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다시 활동하기 위해 숙성시키는 과정이랄까.”

따지고 보면 하루아침에 실업자 신세가 된 셈이지만, 그는 본업으로의 복귀를 서두르지 않았다. 넥타이와 양복은 벗고 1971년 ‘오델로’로 첫 연극무대를 밟던 그때처럼 2012년 12월 연극 ‘파우스트-괴테와 구노의 만남’을 시작으로 무대에 다시 섰다.



“장관 그만두자마자 돈 버는 일 하는 게 좀 그렇더라고요. 연극도 좀 더 시간이 지난 다음에 해야 하나 했어요. 그래도 예전에 함께 살 부대끼며 연극하던 친구 중에 날 기다리던 이들도 많고 연극도 힘든 일이니까 그건 괜찮겠다 싶더라고. 막연하게 이번 정부 임기까지는 상업적인 건 안하는 게 맞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어요.”

지난해 그는 ‘파우스트-괴테와 구노의 만남’을 들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2014년 2월 28일 ‘홀스또메르’를 무대에 올린다. 다시 배우 유인촌으로 돌아가기 위한 그 첫 걸음이 아닐까.

▼ 지금은 아예 나랏일과는 담을 쌓았나?

전직 장관이 참석해야 할 공식적인 자리가 있어서 그렇게는 안 되더라. 또 봉사 차원에서 하는 몇 가지 일들도 있다. 5월에도 소아암환자를 위해 자전거로 부산에서 서울까지 횡단하는 행사가 있다. 그런 걸 빼면 거의 연극만 한다고 보면 된다.

▼ 3년이 지난 지금 장관시절을 되돌아보면 어떤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일 자체로는 후회 없이, 속 시원하게 하고 싶은 건 다 한 것 같다.

▼ 어느 인터뷰에서 “공직생활에 후회는 없지만 배우로서는 많은 것을 잃었다”고 말했더라. 배우로서 잃은 건 뭔가?

8년의 공백기가 배우로서 잃은 것 중 하나다. 굳이 꼽자면, 예전에는 안티가 없었다는 거다. 정말 많은 분들이 나를 좋아했다. 그런데 발을 이쪽으로 딛는 순간, 나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모두 안티가 되더라. 그런 건 굉장한 손해다. 이제 다시 배우로 돌아온 상황에서 대중과의 소통이 얼마큼 잘 될지 모르겠다. 반면 공직 생활을 한 ‘경험’은 연기를 더욱 풍족하게 해줄 거라 생각한다. 그만큼 속앓이를 많이 했으니까(웃음). 아픈 만큼 성숙했을 것으로 믿는다.

▼ 말한 대로 배우 유인촌의 이미지는 정말 좋았다. 당시의 유인촌은 어떤 배우였던 것 같나.

고지식하다고 할까. 연기를 재능 있는 사람이 쉽게 재주를 익혀서 할 수 있는 생활의 도구로 생각하진 않았던 것 같다. 자꾸 무대에 매달렸던 것도 자연 그대로의 내가 아닌 많은 시간과 노력을 통해 새롭게 재창조돼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나를 찾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사실은 나도 나를 모르기 때문에 ‘나를 완성해 가는 것’이 배우의 길이다. 맡은 역할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고.

▼ 굳이 가장 힘든 연극으로 돌아온 것도 고지식하다고 볼 수 있겠다. 좀 쉬고 싶지는 않던가.

나는 아직도 마음이 급하다. 현실적인 나이 때문에 계획을 세우다 보면 이걸 언제 다하나 싶다. 하루하루가 아깝다. 난 이게 특이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또 슬슬 즐기면서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러려면 연극을 하지 못한다. 연극 하는 것 자체가 고통이니까. 연극은 즉각적으로 평가 받기 때문에 어느 정도 위치에 올라간 사람일수록 연극으로 돌아오기가 힘들다. 그 평가가 무서워서. 그러면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다.

▼ 다시 연극을 하니 뭐가 가장 어렵던가?

무대에 배우가 서서 한 걸음 옮기고 ‘여기가 천국’이라고 하더니 다시 한 걸음 옮겨 ‘여기는 지옥’이라고 한다. 한 걸음으로 천국과 지옥을 보여줘야 하는 거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마어마한 거리를 한 걸음으로 표현하는 것은 평생을 거쳐 풀어야 할 숙제다. 모든 예술가의 행위는 결핍을 채워나가는 행위다. 1%를 채워나가기 위해 창조의 고통을 맞이하고, 그 고통을 즐기는 거다.

▼ 지난 ‘파우스트’도 그렇지만 이번 ‘홀스또메르’ 또한 쉬운 작품이 아니다.

내가 연출한 ‘파우스트’는 오페라와 연극, 무용까지 다 넣어서 아주 복잡하게 만든 공연인데, 지방 공연할 때 기립 박수를 받았다. 공연 기획할 때, 그쪽 공무원들이 ‘여기는 트로트나 해야 사람들이 몰린다. 이런 거 하면 공연 중에 사람들이 떠들고 돌아다닌다’고 걱정했는데, 그게 아니라서 나도 놀랐다. 그만큼 지역이 (문화적 혜택에서) 소외돼 왔다는 말도 된다.

▼ 소외된 지역을 일부터 찾아다닌 건가.

강원도 봉평에 폐교를 구입해 거기에 야외무대도 짓고, 교실에 작은 소극장도 만들어 놨다. 그걸 확대해 ‘예술타운’을 만드는 게 계획이다. 5년이 걸릴지 더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 봉평에서 하는 일은 뭔가.

처음에 그곳에 갔을 때 농사짓는 광대가 되자고 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어렵더라. 애초에 농사일이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더라. 자기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농사다. 그래서 생각을 바꿨다. 현지에서 생산된 농작물에 브랜드를 붙여서 판매해 보자고 했다. 우리가 좋은 문화 공간을 만들고 정직한 농산물을 코디네이션하는 거다. 그 지역을 문화적으로 포장한다고 해야 할까.

▼ 연극 사업이 자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건가.

국가에서 아무리 돈을 줘도 해결이 안 되더라. 돈을 주면 준대로 부작용이 생긴다. 원래가 국가차원의 지원은 스스로 펌프질을 할 수 있도록 마중물이 돼 주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지원은 마중물 차원도 안 된다는 게 문제다. 그래서 기업과 독지가들의 후원이 중요하다. 하지만 실제 그런 돈은 현장에 거름처럼 뿌려지지 않는다. 그렇다고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기에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방법을 찾고 있다.

▼ 청담동에 유시어터를 짓고,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을 지내고, 예술타운을 만드는 것. 배우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꼭 배우가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자기 공간을 갖는 건 모든 배우의 꿈이다. 마음 놓고 자신이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는 공간을 만들고 싶은 거다. ‘극단 유’도, 유시어터도 그래서 만들었다. 그런데 유시어터 적자가 엄청나다. 표만 팔아서는 배우 개런티에 무대장치 등을 감당할 수 없다. 그래서 예전에는 광고 찍어서 (적자를) 막았다. 개인이 혼자 할 수 없으니 (공직에) 나가는 거다. 내가 당장 도움을 받진 못해도 후배들에게 어떻게든 마당을 잘 깔아 주고 싶었다. 이제는 그 꿈이 더 확대된 셈이다.

바이크 타는 남편, 퍼주는 아내

어느 한 지역에 ‘예술타운’을 건설한다는 것. 배우 한 개인의 포부라고 하기에는 거창하게 들렸다. 현실적으로 바라보면 무모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그가 여전히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여전히 그가 젊다는 건 아직도 바이크를 타기 위해 꽃피는 봄을 기다린다는 것도 포함된다. 그를 만난 곳도 유시어터 건너편의 바이크 매장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김상중과 정찬 등 몇몇 지인들과 만나 바이크를 즐기곤 하다.

“지금 여기 창고에 제 바이크가 분해돼서 잠들어 있어요. 봄이 되면 꺼내 타야죠. 일부러 타러 나가기도 하지만 보통은 이동수단으로 사용합니다. 가까운 거리에 바이크만큼 좋은 것도 없죠. 장관 시절에도 종종 스쿠터를 타고 출퇴근을 했거든요.”

▼ 3년간 실업자 신세다. 아내가 눈치를 주지는 않나.

처음에는 그런 게 없었는데, 아내가 내색을 안 해도 최근에는 신경이 쓰이더라. 지금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을 했을 테지만 ‘조금 길어지네?’ 하고 생각할 것 같다. 벌어 오는 돈은 없고 쓰는 것만 많아서 미안해지더라. 요즘 들어 내가 먼저 밖에서 사먹자고 하게 되고. 그래도 ‘방금 밥 올렸다’며 밥을 차려준다. 내가 어쩔 땐 즉흥적이고 충동적일 때가 있어서, 여행을 가도 갑자기 ‘자, 가자’하는 스타일이다. 그래서 아내는 늘 자신이 바쁘다고 하더라. 5분 대기조 같다고. 그래도 불평불만 없이, 늘 쓸고 닦고 하는 걸 보면 고맙다.

이제 다시 배우로 직진, 유인촌의 My Way

취미삼아 바이크를 즐긴다는 그는 바이크 옆에서 포즈를 취하며 “여기 있는 건 전문가들을 위한 고가 바이크다. 난 일반적인 바이크를 탄다”며 웃는다.

▼ 재산공개를 할 당시 1백40억원 쯤 됐다. 먹고살 걱정은 없지 않나.

저 극장(유시어터) 시세만 1백억원이다. 그걸 살 때만 해도 형편없는 가격이었다. 그게 올라서 그렇게 된 거지, 내가 번 돈을 모은 건 아니다. 아마 여기다 극장 안 짓고 세를 줬으면 그보다 더 많이 벌었을 거다. 이제는 세 주기도 어렵다. 극장 짓는다고 마음먹고 만들어 놓지 않았으면 그마저도 없었을 거다. 서울문화재단에 있을 때도 연극 이론 공부하는 사람들 지원해 준다고 3억원, 국립 암센터에 1억원, 그리고 동아연극대상에 2억8천만원을 냈다. 그게 우리나라 유일의 연극상인데 예산 부족으로 없어질지 모른대서 그건 절대 안 된다고 했다.

▼ 그렇게 막 퍼주면 아내에게 혼나지 않나.

그러니까 부부가 맞아야 산다고 하는 것 같다. 한창 활동하고 돈도 많이 벌 때, 극장 짓는다고 하니, 그걸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나. 그것 말고도 연극한다고 말아 먹은 돈이 얼만데. 강원도 봉평에 여름 한철 공연을 올리면 1억원 쓰는 것은 금방이다. 또 유시어터도 적자니까. 예술가로서 서로 의견이 만나는 지점이 있는 것 같다(부인 강혜경 씨는 성악가다). 그 사람은 자신이 말려도 어차피 내가 안 듣는다는 걸 아는 것 같다.

▼ 아내 유학 보내고 멋진 남편 소리도 많이 들었다.

그것 때문에 여자들 사이에서 아주 인기가 많았다. 엄마로도 아내로도 좋은데, 그것보다 같이 예술 하는 입장에서 동지 같은 느낌도 있다. 작은 아이 두 세 살 쯤, 큰 아이가 막 초등학교 들어갈 때였고. 그런 상황에서도 늦지 않았으니까 가려면 빨리 가야 한다고 보냈다. 한 3년을 공부하고 와서 오페라도 하고 그랬다.

▼ 84년에 결혼한 아내, 어떤 사람인가?

어떤 부분에서는 성격적으로 나보다 과감한 부분이 있다. 판단과 결정이 더 확실하다. 내가 공직으로 나설 때 아내도 교수직함 등 자신의 자리를 다 내놓고 물러났다.공직생활 하면서 사람들이 나에 대해 안 좋은 말을 해도 ‘남자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분명히 해야 한다’고 힘을 실어줬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한 번도 남의 손에 집안 살림을 맡긴 적도 없고 내게 집안일을 시킨 적도 없다.

▼ 큰 아들이 연기자로 활동한다 들었다.

아들이 둘인데, 지금 군대에 있는 작은 아이는 전혀 생각이 없다고 하더라. 큰 아이도 원래는 미디어 아트를 전공했는데 뒤늦게 대학원을 연극과로 진학했다. 대학도 대학원도 UCLA를 다녔는데, 연극과는 어느 나라나 발음 때문에 현지인이 아니면 입학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나는 ‘안 될 거다’고 했는데 합격을 했더라.

▼ 전문가 관점으로 재능은 있어 보이나.

재능은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너무 늦게 시작한 게 걱정이다. 나도 그랬지만 엄마도 만날 오페라를 했으니 어릴 때부터 보고 자란 게 있어서 분명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극장이 그 아이 놀이터였으니까. 국제무대에서 활동하고 싶은 꿈이 있는 것 같더라. 이제 시작하는 단계고 꿈을 가지고 있는 거니까 지켜보고 있다. 2월 14일부터 연극 ‘로미오 줄리엣’으로 무대에 오르는데, 아들 녀석이 줄리엣이라고 하더라.

▼ 복귀를 한다면 어떤 작품으로 하고 싶나. ‘불륜남’ 같은 통속적인 역할도 할 수 있겠나.

드라마는 드라마다. 그런 걸 못하면 안 된다. 어떤 역이든 유연성을 가지고 있어야 하지 경직되면 예술도 안 된다. 드라마도 적당한 시기가 되면 하고 싶지만 참고 있을 뿐이다. 아직은 장관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더 많아서 때가 아닌 것 같다. 예전에는 역사드라마도 많이 하고 사극도 좋아했다. MBC ‘일출봉’ 처럼 기억에 남는 작품들 중에 사극이 많다. 물론 현대물도 나쁘지 않다. MBC 첫 번째 미니시리즈 ‘불새’도 내가 했다. 나쁜 남자 역이었다. 다시 시작한다면 드라마틱한 작품도 해보고 싶다.

▼ 다시 나랏일을 해볼 생각은 정말 없나?

나는 충분히 했다. 무엇을 더 할 수 있겠나. 이제는 나와 함께 고생했던 사람들(연극 관련)을 더 돌아봐야 한다. 보통은 이런 질문 받으면 사람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에둘러 표현하더라. 근데 난 아니다. 난 지금 마이웨이를 가고 있으니까.

여성동아 2014년 2월 6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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