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대학생이 된 아들이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안내장을 받아온 적이 있다. 과학시간에 성교육을 시킬 예정인데 이에 동의하면 동봉한 서류에 찬성 표시를 해서 보내라는 것이었다. 부모가 성교육을 원치 않는 아이는 그 시간에 도서관에서 책을 읽게 한다고 했다. 수업 내용을 자세히 알고 싶다면, 학교를 방문해 설명을 들으라는 문구도 덧붙여 있었다. 당시 아들에게 물어보니 성교육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해서 ‘아니오’로 답을 해 보냈지만 미국에서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성교육을 시작한다는 사실에 조금 놀랐다.
최근 필자가 재직 중인 학교의 성교육 교재를 우연히 보게 됐다. 그중 ‘임신 예방법’은 내용이 아주 구체적이었다. 먼저 학생들의 흥미를 유발하고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통계 자료를 소개한다. 전 세계에서 매일 91만 명이 성병에 감염되고, 55만 명이 임신을 하며, 36만 명의 아이가 태어나고, 14만 건의 낙태가 이루어진다고 설명한다. 또한 섹스로 에이즈에 감염되는 사람이 1만5천 명에 이르며, 7천7백 명이 사망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피임약과 콘돔의 가격, 사용법까지 그림과 함께 상세하게 소개돼 있었다. 물론 수업 시간에 실습도 한다. 그래서 가끔 학교 복도에 콘돔이 버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남학생들이 인형을 갖고 직접 아이 돌보는 실습을 하고 있다.
성에 관해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아주는 ‘신화와 진실’이라는 단원도 있다. 예를 들어 ‘질외 사정법은 피임 효과가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 뒤 이에 관해 자세히 설명하는 식이다. 이 질문의 정답은 물론 ‘대단히 위험한 방법’이라는 것. 그 이유는 ‘삽입 초기에 나오는 윤활유에도 정자가 섞여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교재는 교육적이면서도 실용적이다. 이 교재를 보며 성인인 필자의 성 지식이 웬만한 고등학생만도 못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처럼 미국의 성교육은 무조건 성관계를 억제하기보다 “책임감을 갖고 성을 대할 것”을 강조한다. 뉴욕과 같은 일부 도시의 공립학교에서는 학생들에게 임신과 성병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무료로 콘돔을 나눠준다. 종교계와 일부 학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하는 학생들은 양호실에서 무료 콘돔을 집어갈 수 있다. 또한 학생들은 신생아와 비슷한 아기 인형을 일주일간 데리고 살며 부모 체험을 하는 실습도 한다. 시간에 맞춰 ‘밥줘’ ‘놀아줘’라며 울도록 프로그래밍된 인형을 돌보며 학생들은 부모가 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경험한다.
적극적 성교육으로 미혼모 줄고, 성 문화 개선돼
1 학교에 비치된 성교육 관련 책자를 살펴보고 있는 여학생. 2 여학생들은 ‘임신슈트’를 통해 엄마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체험한다.
그런가 하면 미국은 일단 임신을 하면 출산을 장려하는 분위기여서 미성년자도 임신을 하면 출산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을 위해 공립학교에는 지역별로 아이를 데리고 등교할 수 있는 특별반을 설치하고 미성년 부모가 학업을 중단하지 않고도 육아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 학교에서는 따로 준비된 육아실에 전문 보육사와 간호사를 배치한다. 학생이 수업을 듣는 동안 이들이 아이를 보살펴주는 것이다. 심지어 학생 엄마는 모유 수유를 위해 수업시간 도중에 교실에서 나갈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받는다.
이런 일련의 조치와 적극적인 성교육에 대해 콘돔 배포 반대론자들은 두 가지 문제를 지적한다. 하나는 비용 문제, 다른 하나는 성교육의 방향성 문제다. 매년 콘돔 배포에만 1백만 달러(한화 약 11억원)가 들고, 또 미성년 엄마들을 위한 지원 비용에 비하면 졸업률이 낮아 실효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적극적인 성교육과 무료 콘돔 배포가 미성년 학생들의 성행위를 심리적으로 당연시하게 만들고 미성년자들의 성행위를 부추긴다는 것이다.
그러나 적극적인 성교육 지지자들은 이런 적극적인 성교육과 무료 콘돔 배포 같은 대책의 영향으로 미성년자 임신율과 성병 감염률이 줄어들고 있다는 통계를 제시한다. 특히 고등학생의 성적 경험이 60% 내외로 비슷한 뉴욕과 시카고 두 도시를 비교하면 확실한 효과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콘돔을 무료로 배포하는 뉴욕이 콘돔을 주지 않는 시카고에 비해 성병감염자와 임신율이 현저히 낮은 반면, 성행위의 증가는 별로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성교육과 콘돔 무료 배포의 효과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런 적극적인 조치의 효과는 미 연방정부의 통계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2007년 발표된 ‘학생 건강에 관한 연방 아동 보건 포럼 통계’에 따르면 미국 고교생 47%가 성 경험이 있다고 한다. 이는 1991년의 54%에 비해 7%나 하락한 수치다. 성관계를 가진 적이 있다고 답한 학생 중 63%는 콘돔 등 보호 장치를 사용한다고 답했다. 1991년 조사에서는 46%에 불과했다. 청소년 출산에 관한 통계도 희망적이다. 1991년 1천 명당 39명이던 10대 미혼모 수가 2005년엔 21명으로 줄었다. 적극적인 교육 덕분에 미국 청소년들의 성 문화는 조금씩이나마 개선되고 있다.
김숭운 씨는…
뉴욕 시 공립 고등학교 교사이자 Pace University 겸임교수. 원래 우주공학 연구원이었으나, 아이들을 가르치는 게 좋아서 전직했다. ‘미국에서도 고3은 힘들다’와 ‘미국교사를 보면 미국교육이 보인다’ 두 권의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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