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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왕’ 한대화 감독

꼴찌라도 박수 받는 야구 한다

글·권이지 사진·조영철 기자, 한화 이글스 제공

입력 2011.10.18 10:35:00

프로야구가 출범 30년을 자축이라도 하듯 사상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승부가 생명인 프로의 세계에서 잘하는 팀이 주목받는 것은 당연한 일.
하지만 한화 이글스와 한대화 감독을 보면 성적과 인기가 꼭 비례하는 것은 아닌 듯하다.
성적은 꼴찌에서 1~2위를 다투는데도 쿨한 어록과 재미있는 야구로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야왕’ 한대화 감독


“어이구, 많이도 왔네!”
한화 이글스의 한대화 감독(51)을 만난 9월13일은 마침 프로야구가 한 시즌 사상 최고인 6백만 관중을 돌파한 날이었다. 한 감독은 경기에 앞서 관중석을 둘러보며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올해는 웬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들 야구장에 온겨?”
능청스러운 충청도 사투리에 정감이 넘친다. 사실 한 감독은 올해 프로야구 관중 증가의 일등 공신 중 한 명. 그가 이끄는 한화는 작년과 비교해 16%의 관중 증가율을 보여 올 시즌 최초로 40만 관중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 한화는 올해까지 포함해 세 시즌 내내 하위권을 맴돌았으니 수치상으로는 분명히 ‘야구 못하는 팀’. 관중이 이렇게 늘어난 데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한 감독의 개인적 인기도 크게 작용했다는 평가다. 그렇다면 한 감독의 인기 비결은 무엇일까?

선수 시절 해결사였지만 감독은 아직…
그가 2009년 시즌을 마친 후 한화 감독으로 부임했을 당시 팀은 엉망이었다. WBC 이후 일본에서 눈독 들이던 김태균과 이범호 등 주축 선수들이 해외로 빠져나갔지만 그에 따른 전력 보강이 전혀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
“어떻게 팀을 꾸려나가야 할지 걱정부터 앞섰죠. 이 팀 저 팀에다 선수를 좀 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그런데 얼마나 선수진이 빈약했던지 다른 팀과 교환할 수 있는 선수가 없더라고요.”
체질 개선을 위해 이 약 저 약 처방해봤지만 부임 첫해 성적은 2009년과 마찬가지로 최하위. 국가대표 에이스인 류현진 홀로 팀의 자존심을 지켰다. 술이 늘고 흰머리가 많아졌다. 마음 편한 적이 하루도 없었다. 성적이 모든 것을 말하는 프로 스포츠에서 부임 첫해 최하위를 했다는 것은 부담 그 자체였다. 올 시즌도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아 선수들도 패배에 익숙해지고 무기력해졌다. 3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할 것이라는 불안감이 팀 전반에 드리웠다.
한 감독뿐 아니라 아내 윤향수씨(50)도 지난해에 이어 올해 초 성적이 부진하자 집 밖으로 나가지 못할 정도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한창 성적이 나쁠 때는 만나는 사람들마다 아내에게 괜찮냐고 물어본다 하더라고요. 그게 부담스러웠던지 아내가 바깥 출입도 못했어요. 그나마 요즘은 조금 나아졌어요.”
아내에 대한 미안함이 말끝에 묻어났다. 1년 차 초보 감독에게 팀의 재건이라는 임무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수 시절 한 감독은 전설을 썼다. 프로야구 30주년을 맞아 진행된 레전드 올스타 투표 3루수 부문에서 73.4%의 지지율을 얻어 현역 1군 감독으로는 유일하게 ‘레전드 올스타’의 자리에 올랐으니 말 그대로 역대 최고의 3루수.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고 정확한 수비와 찬스에 유난히 강한 방망이를 인정받아 야구인 최다 득표를 얻어냈다. 1983년 OB 베어스에 입단해 프로 생활을 시작한 한 감독은 86년 해태로 이적한 뒤 해태-기아 타이거즈의 총 11회 한국시리즈 우승 중에서 6회의 우승에 일조했고, LG 트윈스로 이적한 뒤에는 신바람 야구의 한 축을 맡아 94년 LG 트윈스 창단 두 번째 우승의 주역이 됐다. 개인 통산 총 7회 우승에 역대 최다 골든글러브 수상(8회, 양준혁과 타이 기록)까지 전성기 시절 그는 말 그대로 ‘우승 제조기’였다. 그런 한 감독의 별명은 ‘해결사’. 중요한 찬스 때마다 터지는 그의 불방망이에 상대팀 투수들은 울상을 지었다.
‘야왕’ 한대화 감독

감독은 경기가 끝날 때까지 어느 한 가지도 소홀할 수 없다. 시작 전에는 선수들의 훈련상황을 보며 선발 출전할 선수를 정하고, 경기가 마무리되면 선수에 대한 평가를 내린다.



그는 이런 해결사 능력을 더그아웃에서도 발휘했다. 전반적으로 침체된 팀의 분위기를 반전시킬 계기를 찾던 중 5월12일 LG전에서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당시 심판이 계속 상대 팀에 유리한 판정을 한다고 여겨 격분한 한 감독은 경기 종료 직후 심판에게 다가가 “예끼”라는 욕설을 날렸다. 약팀으로 취급받는 것도 모자라 불리한 판정을 당하는 것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던 것. 어떻게 보면 논란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당시 한화 분위기가 워낙 무기력했기 때문에 한 감독의 ‘호기로운’ 행동이 오히려 약이 됐다. 분위기가 갑자기 1백80도 달라지기 시작한 것. 침체됐던 4월과는 달리 5월 한 달 승률이 5할을 넘어섰다. 갑작스런 선전의 이유를 묻자 한 감독이 말했다.
“우리가 약팀이다 보니, 4월에는 우리를 얕보고 상대 팀에서 쉽게 승을 가져가려고 강한 투수들을 내보냈어요. 그래서 4월에 많이 졌어요. 그런데 그렇게 두들겨 맞고 나니 5월에는 선수들도 적응을 하기 시작했어요. 한 경기 한 경기 이기기 시작하니 타자들부터 투수가 누가 나와도 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 거죠.”
SK를 4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진출시키고 세 번의 우승을 이끈 김성근 전 SK 감독은 ‘야신’, 즉 ‘야구의 신’이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야구 팬들은 꼴찌에서 하나 둘 승리를 이뤄가는 한 감독에게 ‘야구의 왕’, 즉 ‘야왕’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다.

야왕 신드롬에 별명 딴 아이스크림도 등장



‘야왕’ 한대화 감독

웃음이 많은 한대화 감독. 그러나 경기가 시작되면 그의 눈에는 해결사의 냉철함이 비친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꼴찌의 반란은 ‘야왕 신드롬’을 탄생시켰다. 영화 ‘왕의 남자’ 포스터와 헨리 8세, 세종대왕과 합성한 사진에서부터 ‘야왕지’ ‘야왕실록’까지 다양한 패러디물이 생겼다. 심지어 야신이 이끄는 SK를 상대로 6연패 뒤 기가 막힌 역전승(SK 상대 시즌 첫 승)을 거두자 교황이 왕에게 굴복한 역사적 사건을 빗대 ‘아비뇽 유수’라고 했고, 팬들은 한 게임 한 게임마다 의미를 부여했다. 한 빙과업체는 ‘야신바’ ‘야왕바’라는 아이스크림까지 내놓았고 그의 재치 있고 직설적인 입담을 모은 어록도 등장했다.
본인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냐는 물음에 한 감독은 “전성기 때는 사인해달라는 사람이 무척 많았는데 은퇴하고 나니 확 줄었다. 그런데 야왕 신드롬 이후에는 사인해달라는 사람이 다시 늘었다. 그런 걸 보면 인기가 있긴 있는 모양”이라며 웃었다.
아들로부터 팬들이 자신을 야왕이라고 부른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그거 비꼬는 거 아니야’라는 생각도 했다는데 지금은 별명이 싫지 않은 눈치였다.
“요즘 반찬 투정을 하면 아내가 야왕답게 행동하라고 핀잔을 주더라고요(웃음).”
패러디와 입담으로 시작된 야왕 신드롬은 야구 열풍의 촉매가 됐다. 야왕이 이끄는 한화의 선전에 상하위권의 격차가 점점 줄어들었고, 역전에 역전을 거듭하는 극적인 경기가 거듭되자 더 많은 사람들이 한화의 야구를 보기 위해 야구장을 찾았다. 심지어 구단주인 한화 김승연 회장도 선수들에게 보약을 지어 보낸 데 이어 8월7일에는 LG전이 열리는 서울 잠실구장을 직접 방문, 선수단을 격려하고 금일봉을 안겼다.
야구와 관련된 명언 중 최고로 손꼽히는 뉴욕 양키스 전 감독 요기 베라의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는 바로 이번 시즌 한화를 잘 설명하는 문장. 큰 점수 차로 지고 있던 팀이 끝까지 승리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고 역전하는 일이 부지기수인 바람에 팬들도 덩달아 경기가 끝날 때까지 긴장을 풀지 못했다.
한 감독은 선수들에게 “누구나 경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주문한다. 주전이건 대타건 상관없이 경기에 집중하고 이기려고 노력하면 결국 그 경기를 이끄는 승리의 주역이 된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동안 기회가 왔을 때 약한 모습을 많이 보였어요. 야구에서는 이길 기회가 세 번밖에 오지 않는데, 그걸 잡지 못하면 이길 수가 없어요. 자신의 앞에 기회가 오면 오히려 부담스러우니까 겁을 먹고 벗어나려고 해요. 달아나지 말고 그걸 살려야 이길 수 있어요. 자신감이 없어 정면승부를 피하니 이기질 못한 거죠.”
찬스 때마다 해결사 출신 감독답게 특별한 주문이 들어갔다. 그렇게 한 경기 두 경기 이기면서 선수들도 감독을 믿었다.

“타자들의 변화가 바로 눈에 띄었어요. 타석에서 찬스가 왔을 때 자기가 뭔가 해보겠다고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한 거죠. 선수들에게 누구나 경기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말하니까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했지만 하나 둘 주목받지 못했던 선수들이 선전하고, 또 그로 인해 이기니 선수들도 깨닫기 시작한 것 같아요.”
시즌 초 최고의 불안 요소는 투수진이었다. 2010년에 고군분투하던 에이스 류현진은 2011년 들어 피로 누적으로 전년도에 비해 부진한 모습을 보였고 결국 8월에는 휴식 및 치료 때문에 경기에 나올 수 없었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에이스의 부재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 팀은 다른 팀에 비해 어린 투수들이 무척 많아요. 경험이 부족한 어린 선수들은 상대 타자에게 홈런이나 안타를 맞을까 봐 겁을 먹고 도망가는 피칭을 해요. 맞지 않으려고 자꾸 피하다 보면 정면승부를 하는 법을 모르게 되잖아요? 피하지 말고 홈런을 맞아도 당당히 맞서라고 부탁했어요.”

퇴출 직전 선수들의 화려한 부활
한 감독 부임 이후 한화에는 유난히 극적인 부활을 해낸 선수들이 많다. 감독이 그들을 믿고 기용해 지속적인 믿음을 주었기 때문이다.
폐쇄성혈전혈관염, 일명 ‘버거씨병’에 걸려 2008년 선수 생활을 접은 투수 송창식은 모교에서 후배들을 가르치며 재활에 성공했고, 갓 부임한 한 감독으로부터 기회를 얻었다. 그리고 8월21일, 잠실에서 열린 두산과의 경기에서 7년 만에 기적 같은 선발승을 거뒀다. 한화의 마운드를 든든히 지키고 있는 투수 박정진 역시 2009년 한 감독이 부임 당시 퇴출선수 명단에까지 올라 있던 것을 보고 다시 중용했다.
“명단에서 이름을 봤을 때 신인 시절 던진 공이 상당히 좋았다는 기억이 나더라고요. 서른셋이라는 나이가 적지 않지만 분명히 재기할 수 있는 선수라고 생각해 기회를 줬어요. 그랬더니 그때부터 펄펄 날더라고요.”
안정적인 수비 능력을 가지고 있음에도 번번이 약한 체력 때문에 주전 한번 제대로 해본 적 없던 이대수. 그는 이 팀 저 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다 한대화 감독의 손에 이끌려 독수리 둥지에 자리를 잡았고 지독한 훈련 끝에 1년 만에 팀과 감독의 믿음에 보답하며 결국 자신의 기존 기록을 모두 뛰어넘었다.
인터뷰가 있던 날, 대전구장에서는 기아 타이거즈와의 경기가 펼쳐졌다. 초반부터 기아 타선이 무섭게 불을 뿜으며 방망이를 휘둘러 패색이 짙어져버린 상황. 하지만 한화는 이날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상대의 방망이를 막아내며 끈질기게 쫓아갔다. 8회까지 따라붙은 점수는 석 점 차. 9회 말 투 아웃에서 두 점을 더 쫓아갔지만 아쉽게도 한화는 한 점 차이로 지고 말았다. 그러나 경기 끝까지 발휘한 투혼은 이번 시즌 한대화 감독과 그가 이끄는 팀 그 자체였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성적 좋은 팀이 인기를 얻고, 이겨야만 명경기가 된다. 하지만 야왕 신드롬으로 시작된 한화의 선전은 단순히 이기는 경기 이상의 의미를 팬들에게 선사했다. 팬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정면승부를 하는 그들의 투지를 통해 스포츠만의 감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내년 시즌 독수리 군단의 비상을 기대하는 팬들에게 한 감독이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번 시즌 많은 팬 여러분이 응원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올해보다 내년에 더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서는 팬 여러분의 많은 응원이 필요합니다. 남은 경기뿐 아니라 내년에도 야구장을 많이 찾아주셔서 선수들을 응원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년 차 초보 감독은 선수들과 함께 웅크렸던 날개를 펴고 높이 날아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년 시즌의 선전으로 야왕 한대화 감독이 진정한 의미의 ‘야구의 왕’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대화 감독의 말 말 말
‘야왕’ 한대화 감독

한대화 감독과 김성근 감독의 별명을 딴 야왕바와 야신바.

4월27일 나나 위로해줘. (26일 넥센전에서 역투하고도 패배한 선발 류현진을 위로해줬냐는 질문에)
5월25일 왜 축하 안 해줘요? (전날 1위 SK를 잡았다며)
6월1일 7위 하는데 이러면 행여 4강에라도 들면 뭐라고 할겨? (야왕 신드롬에 대해 묻자)
6월2일 나 정도 성격되니까 버틴 거지~. (부진했던 4월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며)
7월21일 가위바위보로 결정하라고 해야겠다. (전반기 수훈 선수를 꼽아달라는 말에 김혁민과 양훈의 우열을 가릴 수 없다며)
7월31일 어이 류현진! 야왕바 먹어봤어? (자신의 별명을 딴 야왕바를 처음 먹던 중 더그아웃을 지나가는 류현진에게)
8월3일 걔들은 손가락이 비틀어진 것 같아. (2군에서 던지고 있는 허유강, 정재원 등 사이드암 투수들을 1군에 올리기 위해 지켜봤지만 성적이 영 시원치 않은 모습을 보인다고 혀를 끌끌 차며)
8월28일 야 심광호, 치사하게 그걸 일러바치냐. 너 때문에 우리 상훈이 마음 상해서 안타 하나도 못 쳤잖아. (전날 가르시아가 선물해 한상훈이 들고 나온 배트에 한국야구위원회 공식 인증마크가 없다는 것을 지적한 LG 심광호에게)
9월7일 선발로 나가면 설사해. (대타 요원으로 뛰고 있는 이양기가 선발로 출전할 때면 대타로 뛸 때만큼 타격감을 보이지 못하고 타율을 설사하듯 까먹는 경우가 많다며)


여성동아 2011년 10월 5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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