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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궁금한 이 남자

‘스케치북’ 100회 쓴 유희열의 치명적 매력

글·이혜민 기자 사진제공·KBS

2011. 07. 18

뛰어난 음악성, 변태 감성, 멸치 같은 외모… 전혀 어울리지 않는 3종 세트의 소유자 유희열. 가수로 출발해 작곡가, 라디오 DJ, 음악 프로그램 진행자로 전성기를 누리고 있는 이 남자가 궁금하다.

‘스케치북’ 100회 쓴 유희열의 치명적 매력


그는 언뜻 보면 연기자 차인표가 아플 때 얼굴과 비슷하다고 해서 ‘병든 차인표’로 불린다. 솔직히 말해 그의 외모는 ‘빈상’이다. 마른 몸매 때문에 “멸치 같다”는 말도 듣는다. 패션 스타일은 웬만한 홍대 오빠들 수준인데, 잇몸을 드러내며 씩 웃는 모습은 비호감이다. 이 남자, ‘카라’와 ‘아이유’ 같은 아이돌 앞에서 그렇게 웃는다. 그럼에도 “얼굴이 인형 같아서 토이(toy)라는 그룹으로 활동 중이다” “얼굴이 잘생겨서 ‘스케치북’에 캐스팅됐다”라는 낯간지러운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하지만 그가 만든 노래 ‘좋은 사람’을 들으면 그에 대한 생각이 달라진다. 잔잔한 멜로디에 얹혀진 ‘나는 혼자여도 괜찮아 널 볼 수만 있다면/늘 너의 뒤에서 늘 널 바라보는/그게 내가 가진 몫인 것만 같아’란 가사 덕에 여자들은 ‘내 곁에 유희열처럼 해바라기 같은 남자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이것이 그의 첫 번째 치명적 매력이다.
유희열(40)은 서울대 작곡과 출신으로 ‘유재하가요제’에서 입상하며 94년 그룹 ‘토이’로 데뷔했고, 97년 평소 그의 ‘입심’을 눈여겨본 고교 선배인 개그맨 신동엽의 권유로 라디오에 입문했다. MBC 라디오 FM ‘음악도시’‘올 댓 뮤직’에 이어 2008년부터 지금까지 KBS 2FM ‘라디오 천국’을 진행하고 있으며, 2010년에는 KBS 연예대상 베스트 라디오 DJ상을 수상했다. 현재 ‘라디오 천국’과 함께 2009년부터 해온 KBS ‘유희열의 스케치북(이하 스케치북)’ MC를 병행하고 있다.

노래 못하면 어때? 객원보컬 영입
100회 기념 ‘스케치북’ 기자간담회에 유희열이 평소와 달리 검정색 정장 차림으로 나타났다. 100회 기념 공연은 ‘더 뮤지션’이라는 타이틀로 국내 최고 연주자인 기타리스트 함춘호, 베이시스트 신현권, 드러머 배수연 등이 주인공인 무대. 유희열은 이 무대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또 기자들을 웃겼다.
“세션을 주인공으로 한 공연은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 같아요. 무대에서 없어서는 안 될 이분들이 현실에서는 조명을 받지 못하니까요. 오늘 무대에 서는 분들이 검정 양복을 입고 나오신다기에 저도 한 사람의 연주자로서 같은 옷을 입었어요. 여러분이 저를 가수로 인정해주지 않으시기도 하고(웃음) 스스로도 세션이란 생각이 들거든요.”
‘가수로 인정받지 못하는 가수’라고 넉살 좋게 말하지만 그는 분명 6집 앨범을 낸 가수다. 불황이라던 2007년에도 앨범을 10만 장 이상 판매했고,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올해의 음악인’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고음 ‘삑사리’도 개의치 않으며, 누가 봐도 가창력과는 거리가 먼 까닭에 그는 자신이 만든 곡들을 직접 부르는 대신 김연우, 김형중, 이지형 등 객원보컬을 영입해 주옥같은 앨범들을 탄생시켰다.
유희열은 100회까지 ‘스케치북’ 지켜왔다는 데 대한 자부심을 숨기지 않았다. ‘스케치북’은 ‘노영심의 작은 음악회’ ‘이문세 쇼’ ‘이소라의 프로포즈’ ‘윤도현의 러브레터’ ‘이하나의 페퍼민트’로 이어지는 KBS 정통 음악 프로그램의 계보를 잇는다. 게다가 SBS ‘김정은의 초콜릿’과 MBC ‘음악여행 라라라’ 같은 경쟁 프로그램들이 잇따라 폐지된 지금 음악 팬들에게 ‘스케치북’의 존재는 그만큼 소중하다. 매주 토요일 새벽 1시20분 ‘스케치북’은 올빼미족의 쉼터로 그 책임을 다했다.
“앞서 이 프로그램을 만든 분들이 이끌어온 걸 잘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징검다리’ 노릇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었죠. 다만 ‘100회 전에는 제발 잘리지 말자’고 다짐했어요.”
‘잘리지 않은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초기에는 녹화 전 게스트에 대한 정보를 찾아보고 준비를 많이 했는데 그게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 같아서 지금은 그냥 시청자의 눈높이에서 게스트를 대하려 한다”고 답한다.

가장 저질이면서 가장 고급스러운 사람

‘스케치북’ 100회 쓴 유희열의 치명적 매력

‘유희열의 스케치북’ 100회 출연자들과 함께한 유희열.





하지만 그는 결코 만만한 MC가 아니다. 영화평론가 이동진씨는 유희열에 대해 “가장 저질이면서 동시에 가장 고급스러운 사람”이라고 했다. 이런 극단적인 모습이 유희열의 두 번째 매력이다. 그는 ‘음악은 좋게, 방송은 재밌게’를 모토로 적절한 타이밍에 ‘섹드립(야한 농담)’을 하고 때로는 스스로 망가지는 모습을 보여줘 프로그램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방송 중 “리듬 속에 그 춤을, 아 (김)완선 누님 콧소리, 노래 들을 때마다 요실금이다”라는 말도 유희열이 하면 저질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드라마 ‘아내의 유혹’ OST를 소개하면서 드라마 주인공 민소희를 흉내 내 얼굴에 점을 찍고 나타나 객석을 웃음바다로 만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스케치북’이 ‘개그콘서트’가 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정색하며 음악 얘기만 하는 것보다 유희열식 적절한 애드리브 덕분에 음악에 대한 흡인력은 더 커진다.
‘스케치북’은 아이돌부터 인디 가수까지 다양하게 포용하는 프로그램이다. 특히 대중과 만날 기회가 적은 인디 뮤지션들에게 자주 무대를 내준다. 문제는 시청자들의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것. 이때 유희열은 특유의 ‘입심’으로 뮤지션과 시청자를 잇는 징검다리 노릇을 한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하는 친구들이 많아요. 그런데 막상 이 친구들이 무대에 나오면 시청자들이 낯설어 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들이 이들의 음악에 더 귀 기울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는 거죠. 음악 스태프로 일했기 때문에 가수들의 사정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빈틈이 많아서인지 사람들이 저를 편하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끝으로 지금까지 자신에게 음악적 자극을 준 출연자를 꼽아달라고 하자 이때를 놓칠세라 유희열의 ‘입심’이 작렬했다.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의 친구들을 보며 ‘음악을 저렇게 유쾌하게 할 수도 있구나’ 하고 느꼈어요. 가수 이적의 성대도 무척 부러웠습니다. 그러나 외모가 부러웠던 건 절대 아니란 말은 꼭 써주세요.”
애초 목표대로 ‘스케치북’에서 100회 전에 잘리지 않는 데 성공했으니 다음 바람은 무엇이냐고 묻자 유희열은 “대한민국 가요사에 이름을 남긴 조용필, 나훈아, 이미자, 서태지를 무대에 초대하고 싶다”며 MC로서 포부를 전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건강’을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지금까지 계획 잡고 살아본 적이 없거든요. 다만 건강은 좀 챙기려고요. 나이가 드니 하루하루가 다르네요. 매일 아침 제 자신에게 실망합니다.”
그는 끝까지 우리를 웃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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