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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애틋한 그리움

우리가 몰랐던 박완서를 추억하다

글·김유림 기자 사진&자료제공·‘나의 박완서, 우리의 박완서’(문학동네)

입력 2011.06.16 09:58:00

문학계의 거목, 박완서 선생이 우리 곁을 떠난 지 4개월.
그러나 그의 문학을 사랑하는 많은 이들에게 여전히 든든한 정신적 지주로 남아 있다.
최근에는 41년 전 박 선생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여성동아 문우회’ 회원들이 박완서 선생의 진솔했던 삶을 추억하는 내용을 담아 책으로 펴냈다.
어머니의 품처럼 따뜻하고, 소녀처럼 해맑았던 고인의 모습이 책 곳곳에 묘사돼 있다.
우리가 몰랐던 박완서를 추억하다


박완서 선생은 지난해 가을 병상에서 팔순 생일상을 받았다. 하지만 해마다 그의 생일을 따로 챙겨오던 ‘여성동아 문우회(‘여성동아’ 장편소설 공모 당선자 모임)’ 회원들의 생일상은 받지 못했다. “간단한 수술을 받고 온 뒤 모이자”는 박 선생의 제안 때문이었다. 하지만 약속을 지키지 못한 채 그해가 저물었고 회원들은 눈이 많이 내리던 1월 중순, 황망하게도 선생의 타계 소식을 접해야 했다. 여든 번째 생일상을 끝내 차리지 못하고 고인을 떠나보내야 했던 문우회 회원들은 그가 떠난 지 1백 일이 되던 날, 맛깔스런 음식 대신 그리움을 켜켜이 담아 박완서 선생의 팔순상을 차렸다. 그와 오랜 세월 알고 지내면서 겪은 비밀스런 추억을 책으로 엮어 펴낸 것.
노란 담벼락에 기댄 박완서 선생의 사진(오른쪽)을 표지로 내세운 책 ‘나의 박완서, 우리의 박완서’는 한 시대를 풍미하며 각별한 사랑을 받았던 선생을 대신해 독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문우회 회원들의 마음이기도 하다. 집필에 참여한 작가는 총 스물네 명으로 이들은 박완서 선생과의 특별한 인연을 각자의 ‘보물상자’에서 꺼내 종이 위에 풀어놓았다.

‘발리에서 생긴 일’ 조인성 팬이었던 ‘귀요미’ 할머니

우리가 몰랐던 박완서를 추억하다

박완서 선생을 주축으로 만들어진 ‘여성동아 문우회’ 작가들.



책이 나오기까지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한 조양희 작가는 책을 펴낸 이유에 대해 “선생님을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선생님을 다시 한 번 추억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하는 박완서 선생님의 따뜻하고 인간적인 면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한다.
“처음 그분을 만난 사람은 조금 냉정하고 쌀쌀맞다고 생각하기도 해요. 하지만 선생님은 말씀이 많지 않은 대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분이셨어요. 저희(문우회 회원)가 해마다 꽃놀이를 가는데 매번 어디로 갈지 우왕좌왕하면 가만히 듣고 계시다가 마지막에 몇 마디로 싹 정리를 해주셨죠(웃음). 문우회 회원 중 상을 당한 사람이 있으면 문상을 가서 조용히 계시다가 두둑한 봉투를 내고 홀연히 돌아오시곤 했어요. 와인을 즐겨 드셨는데, 책이 발간된 날 책 두 권과 와인을 들고 선생님 묘소를 찾았답니다.”
유춘강 작가는 박완서 선생의 의외의 모습을 재미있게 묘사했다. 연예인은 관심조차 없을 것 같은 박완서 선생이 알고 봤더니 ‘조인성의 팬’이었다는 내용이다. 유 작가는 이렇게 적었다.
꽃잎이 분분히 날리는 오후의 햇살 아래서 차를 한잔 마시다가 자연스럽게 화제는 ‘발리에서 생긴 일’로 옮겨갔다. 심오한 문학의 세계가 아닌. “아유, 요즘 그거 재밌더라, ‘발리에서 생긴 일’. 주인공 조인성이가 나는 좋던데.” “에? 선생님도 ‘발리에서 생긴 일’ 보세요?”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재미있어서 봐. 연기 참 잘해.” “내가 조인성이가 좋다고 하니까, (아는 사람이) 조인성이랑 점심 먹을 자리를 마련해주겠다고 하더라고…” “정말요? 드시지요. 사인도 받고.” “아유, 그렇게까지는… 호호.” “어머, 선생님, 조인성이 요즘은 대세예요.시트콤에선 박경림이랑 연인으로 나왔잖아요.” “어머머. 상상이 안 가네, 나는.” 선생님은 그날 살짝 흥분하시며 ‘가당키나’ 하냐고 하셨다.
박완서 선생은 유 작가에게 또 다른 감동을 선사했다. 늦둥이로 셋째 딸을 낳은 유 작가에게 “셋째인데도 태아 성별 검사도 안 하고 그냥 낳았다고? 정말 고마워” 하며 셋째 딸이라는 이유로 집안에서 존재감이 미미한 아이에게 덕담도 해줬다고 한다. “섭섭해하는 사람들 보란 듯이 서울대학교 들어가라. 그러면 다 해결되는 거야”라고. 유 작가는 훗날 아이에게 “너를 꽃이라 불렀던 박완서 할머니가 계셨다”는 말을 전해주겠노라고 책에 써놓았다.
자신의 장례식에서 가난한 문인들에게 절대로 부조금을 받지 말라고 당부했던 박완서 선생은 늘 후배들에게 넉넉하게 베풀었다. 최순희 작가는 이번 책을 통해 자신의 딸 혼사 때 축의금을 두둑하게 챙겨준 박완서 선생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있다.
선배님이 이태 전, 내 딸아이 혼사 때 남모르게 생각지도 않은 축의금을 듬뿍 챙겨주시는 바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멀리 외국에서 올리는 결혼식이라 청첩도 하지 않았는데…. 언젠가 딱 한 번 “동시에 양쪽 총무 일 하느라 애쓰시네요” 하시더니 그 무심한 듯 따뜻한 마음을 그런 식으로 표현하신 것이었을까. 나는 박완서 선배님께 축의금씩이나 듬뿍 받은 신부의 엄마가 됐다.



우리가 몰랐던 박완서를 추억하다

‘여성동아’ 장편소설 당선자들로 구성된 ‘문우회’ 회원들은 하나같이 박완서 선생을 따뜻하고 인간적인 그러면서 의외로 위트가 넘치는 분이라 평한다.



자신이 직접 키운 자두를 박완서 선생의 집 우편함에 수줍게 두고 왔던 추억담을 들려주고 있는 한수경 작가는 박 선생의 첫 인상에 대해 ‘친정엄마처럼 푸근하다’고 표현한다. 그러면서 그는 “글쓰기에서만큼은 기대고 투정하고 드러내놓고 글몸살을 앓아도 위로해줄 만큼 그 품이 크고 아늑하게 느껴졌다”고 말한다.
봄이 되어 살구꽃이 흐드러지게 필 때면 아치울 선생님 댁 마당에서 고기를 구워 먹었고, 자주 댁에 들러 차를 얻어 마셨습니다. 가까이서 선생님을 뵙고 느낀 경험은 글을 통하는 것과는 다른 새로운 가르침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작가로서 성장하는 지난한 과정을, 어떤 경우에도 쓰는 것을 멈추지 않는 성실함을, 피하지 않고 인생과 대면하는 치열함을 자신의 삶을 통해 후배 작가들에게 몸소 보여주신 셈입니다.

후배들에게 한없이 따뜻하고 든든했던 선배
기자 출신인 이근미 작가는 마흔의 나이에 작가에 대한 꿈을 펼치고자 고민하던 중 박완서 선생으로부터 인생의 흐름을 바꿔놓을 만한 큰 위로를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책에서 그는 “단아하고 조용한 박 선생님을 실제로 뵈었을 때 어딘가 저 멀리서 활자로만 신호를 보내던 외계인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이었다”고 말한다.
2004년 초, 서양화가 김점선 선생과의 친분으로 박완서 선생의 집에 처음 방문한 이근미 작가는 평소 벼르기라도 한 듯 박 선생에게 “선생님, 제가 등단하고 10년째 글을 안 쓰고 있는데 기를 불어넣어주세요” 하고 강요했고, 그것도 모자라 “소설 잘 쓰라는 격문 하나만 써주세요”라며 종이를 들이밀었다고 한다. 그러자 박 선생은 “아이, 뭘 그렇게 해”라며 멋쩍어 하시다 기어이 ‘李根美님 소설 잘 쓰기를 바라며 朴婉緖 2004 이른 봄’이라고 써줬다고. 또 그가 자신의 나이가 마흔이 넘었다는 사실을 낙담한 목소리로 말하자 박 선생은 “아유, 그때 마흔은 요즘 예순이야”라며 유쾌하게 그를 다독거렸다는 내용이다.
박완서 선생의 위트 있는 말솜씨는 또 다른 에피소드를 통해서도 소개된다. 책에서 이혜숙 작가는 박 선생이 자신이 겪은 일을 문우회 회원들에게 들려줄 때 모습을 묘사하며 ‘귀여운 할머니’를 떠올리게 한다고 써놓았다.
어느 날 모임 자리에 들어서시며 전철에서 당한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노약자석에 앉아서 오는데, 바로 옆에 한 서너 살이나 먹었을까, 한 사내아이가 앉고 그 바로 앞에 그애 엄마겠지? 젊은 여자가 서 있었어. 근데 아이가 내 손에 낀 반지를 뚫어져라 들여다보는 거야. 이거 뭐 비싼 보석도 아니고 그냥 예뻐서 낀 건데 알이 크고 반짝이니까 신기했나봐. 호기심 어린 눈으로 보는 게 귀여워서 내가 반지알을 만져보라고 대주면서 장난으로 ‘갖고 싶니? 너 줄까? 줄까?’ 그랬더니, 아이 엄마가 그애를 확 잡아채듯이 끌어안고 내리면서 ‘할머니, 애가 달라면 진짜 주실 거예요? 진짜 주실 것도 아니면서 왜 아이를 놀려요?’하고 쏘아붙이는 거야. 남의 애 귀여워하다가 된통 당했어.”
이혜숙 작가는 또 다른 일화를 통해 박완서 선생의 짓궂은 장난을 소개한다.
선생님은 한번은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내가 며칠 전에 일산 쪽에 갈 일이 있어서 전철을 타고 가는데, 옆자리에 앉은 남자가 뭐라고 하는 것 같아. 그래서 돌아보면서 ‘네?’ 그러니까 그 남자가 ‘이 차, 마두동 가지요?’라고 묻는데 그 사람 얼굴이 거무튀튀하면서 길쭉한 것이 그야말로 말상인 거야. 순간적으로 말이 마두동 가냐고 묻네,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막 터져서… 아이고 민망해서 죽을 뻔했어.” 지하철 안에서 말상의 남자와 박 선생님이 연출했을 촌극을 떠올리면 지금도 웃음이 나온다.

우리가 몰랐던 박완서를 추억하다

1 2 2008년 ‘여성동아 문우회’ 회원들과 봄맞이 모임을 갖고 즐거운 한때를 보내고 있는 박완서 선생. 3 유춘강 작가의 막내딸을 보며 흐뭇해하는 박완서 선생.



문학 이면에 자리하고 있던 애잔한 슬픔

우리가 몰랐던 박완서를 추억하다


책에는 그동안 대중에게는 쉽사리 들키지 않았던 박완서 선생의 ‘슬픔’이 애절하게 녹아 있다. 이는 1988년 남편과 막내아들을 차례로 떠나보내야 했던 박 선생의 아픔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후배 작가들의 소회이기도 하다. 당시 박완서 선생은 남편을 폐암으로 잃은 뒤 석 달이 채 안 돼 서울대 의대 레지던트 과정에 있던 막내 외아들을 교통사고로 잃었다.
김경해 작가는 “선생님께서 천주교를 믿기 시작하신 게 죽음에 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알고 있었다. 또 아드님의 죽음에 신자이면서도 십자가를 패대기쳤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 가슴 쓰라림이 어떤 건지, 얼마나 많은 눈물과 기막힘을 견뎌낸 것인지 헤아려졌다”라고 말하고 있다. 조양희 작가는 박완서 선생의 문학을 걷어내고 그 저변에 고여 있는 상흔의 고름을 짜주고 싶은 심정으로 남편과 아들의 죽음을 동시에 거론했음을 밝히고 있다.
박 선생님은 남편을 땅에 묻은 지 채 석 달이 안 됐을 무렵, 해 지는 저녁이면 가스레인지에 찌개를 올려두고 조그만 부엌 창으로 내다보곤 했는데, 이것이 큰 위로가 되었다고 후일 간간이 말씀하셨다. 남편 대신 아들이 같은 길로 오고 있는 모습을 내다보는 것이 호사였다고 하시면서. 하지만 그날, 다른 날과 달리 현태씨(박완서의 막내아들)는 부엌 창 속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나는 사고를 접할 당시부터 선생님의 아픔을 보았는데, 현태씨의 장례식 때 뵌 선생님의 모습은 차마 볼 수 없을 정도로 탈진 상태였다. 폐암 말기 남편 때와는 전혀 달랐다. 나는 이 책에서 아들 현태씨의 죽음을 위로해드리지 않는다면 박완서의 생애에 마치 사분사분 분 화장을 하지 않고서 만찬의 예복을 차려입은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외부적으로 드러나는 선생님의 따뜻한 손길보다 아무도 모르고 있던, 선생님까지도 두려워했던 비애를 털어드리고 싶다.
사랑은 떠나고 없을 때 더욱 간절하게 다가온다. 오랜 세월 박완서 선생을 든든한 버팀목으로 삼아온 문우회 작가들 또한 그의 빈자리를 영원한 사랑으로 채우고 싶은 듯하다. 아니나 다를까. 유덕희 작가는 책에서 이렇게 말한다. “박완서 선생님이 먼 길을 떠나시고서야 나는 새삼 깨달았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커다란 나무 가까이에 있었는지를. 또한 그 커다란 나무 아래 아늑한 그늘을 내가 얼마나 좋아했는지를….”

박완서 선생 떠나보내고 처음 탄생한 문우회 정기 동인지
‘거기 아내가 있었다’

우리가 몰랐던 박완서를 추억하다
문우회 작가들이 일 년에 한 번씩 펴내는 작품집이 올해도 어김없이 나왔다. 박재희, 우애령, 이경숙 등 여성 작가 11인의 작품을 모은 ‘거기 아내가 있었다’(예감)는 가족의 소중함과 그 의미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준다. 류지용의 ‘사강의 편지’, 우애령의 ‘자살 연구’, 이근미의 ‘리사의 방문’, 장정옥의 ‘쥐덫’, 김설원의 ‘아이 버리기 실습’ 권혜수의 ‘거기 아내가 있었다’ 등 다양한 단편을 통해 폭넓은 문학세계를 체험할 수 있다. 권혜수 작가는 책 서두에 그동안 해마다 동인지를 낼 수 있었던 원동력은 박완서 선생이라고 쓰며 “우리 동인들에게는 박완서 선생님 없이 맞이하는 첫 봄이다. 부디 하늘에서 선생님의 문재(文才)를 우리 후배들에게 넉넉히 나누어주시기를…” 하고 기원하고 있다.


여성동아 2011년 6월 5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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