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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반가운 얼굴

‘오스카 엄마’ 연극배우 김지숙 연기 인생을 말하다

“나이 오십 넘어 새삼 드라마에 욕심나는 요즘, 화려했던 전성기 잊고 ‘내려오는 법’ 배웠어요”

글·김유림 기자 사진·조영철 기자

2011. 02. 16

최근 인기리에 종영한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는 반가운 얼굴이 있다. 극중 재벌 사모님을 연기한 김지숙이 그 주인공. 유명 연극배우 출신으로 80~90년대 전성기를 누린 그이지만, 드라마가 방영되자 그를 알아보는 이는 많지 않았다. 심지어 드라마 인터넷 게시판에는 “오스카 엄마, 신인인가요?”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화려했던 시절을 지나 정상에서 내려오는 법을 배우고 있다는 김지숙의 요즘 사는 이야기.

‘오스카 엄마’ 연극배우 김지숙 연기 인생을 말하다


‘시크릿 가든’ 종영을 2주 앞두고 ‘오스카 엄마’ 김지숙(55)에게 인터뷰 요청 차 전화를 걸었다. 휴대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통화연결음은 ‘시크릿 가든’의 주제곡 ‘그 여자’. “얼마나 얼마나 더 너를…” 잠시 백지영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감상하려는 순간, “여보세요~”하는 코 맹맹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야말로 재벌 사모님 문연홍 여사다. 그에게 “어쩜 연기할 때와 목소리가 똑같냐”고 하자 김지숙은 “작품을 하는 동안에는 캐릭터에 빠져서 연기와 실생활을 구분하지 못한다”며 까르르 웃었다.
솔직히 그가 이번 드라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다. 인터뷰를 시작하고 그가 가장 먼저 꺼낸 얘기도 그러했다. 조연이라는 말 자체가 낯선 데다 방영되는 분량마저 적어 처음에는 많이 아쉽고 답답했다는 것. 그도 그럴 것이 김지숙은 77년 현대극단 입단 이후 30년 넘게 주연 자리를 지켜온 베테랑 연기자다. 대표작으로는 모노드라마 ‘로젤’ ‘버자이너 모놀로그’ ‘두 여자’ 등이 있고, 인기여배우 계보로 따져도 윤석화 이전 1세대.
“처음에는 현빈 엄마인 줄 알았어요(웃음). 연출진과의 첫 미팅 때 오스카 엄마란 걸 알고 분홍(박준금) 역으로 바꿔달라고 떼도 써봤는데 잘 안 돼서 좋은 감독, 좋은 작가와 인연을 맺는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드라마가 방영되면서부터는 ‘시크릿 가든’ 광팬이 돼 매주 설레는 마음으로 드라마를 봤고요. 마치 제가 길라임이 된 듯 착각에 빠지면서요(웃음). 매력적인 작품에 이름을 올렸다는 것만으로도 기쁘게 생각해요.”

‘오스카 엄마’ 연극배우 김지숙 연기 인생을 말하다


비중 작아 서운했지만 화제의 드라마 함께한 것에 만족

물론 이러한 마음의 여유는 하루아침에 생긴 게 아니다. 높은 곳에 있던 그가 밑으로 내려오기까지 꽤나 오랜 갈등의 시간이 필요했다. 2007년 과감한 노출로 눈길을 끌었던 연극 ‘졸업’을 끝낸 뒤 ‘어떻게 내려올 것인가’를 고민하기 시작한 김지숙은 여행을 통해 마음을 정리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영원한 건 없다’는 삶의 진리를 인정하게 되면서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세상과 다시 마주할 수 있게 됐다고.
“등산도 마찬가지인데 올라가는 것보다 내려오는 게 더 힘들어요. 화려했던 과거에 집착하면 현재 자신의 위치는 인정하고 싶지 않거든요. 4년 가까이 쉬면서 작품 섭외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에요. 다만 제가 생각하는 것과 대우가 다르니까 망설이게 되더라고요. 개런티는 물론이고, 들어오는 역할도…. 지금 가장 후회되는 건 이승기씨와 하는 냉장고 CF를 거절한 거예요(웃음).”
김지숙은 이번 드라마 출연을 계기로 드라마에 대한 욕심이 더욱 커졌다고 한다. 영상매체의 파워를 새삼 실감하면서 새롭게 도전하고픈 욕심이 생겼다는 것. 연기 준비도 여느 주인공 못지않게 철저하게 했다. 특히 ‘재벌 사모님’의 화려하면서도 우아한 이미지를 연출하려 애썼는데, 그가 입고 나온 의상과 보석 대부분은 지인을 통해 직접 협찬 받은 것이라고 한다. 극중 연홍·분홍 자매가 스파에서 각자 착용하고 있던 보석을 빼며 묘한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오스카 엄마’ 연극배우 김지숙 연기 인생을 말하다


“착용하고 나온 것 중에 10억원에 가까운 보석도 있어요. 매니저, 코디네이터 없이 제가 직접 협찬을 받으러 다녔는데 촬영이 지연되기라도 하면 잃어버릴까봐 얼마나 전전긍긍했는지 몰라요. 반납했다가 다음날 다시 빌리러 간 적도 있다니까요(웃음). 의상이나 보석뿐 아니라 재벌 사모님이라는 신분 자체가 여성들에게는 판타지를 안겨주는 것 같아요. 드라마 초반에 얼굴에 미스트를 뿌리는 장면이 있었는데, 방송이 나간 뒤 브랜드가 뭐냐고 물어온 사람이 많았다고 하더라고요. 이번 작품은 연기자로서도, 여자로서도 재미있는 경험이었어요.”
‘시크릿 가든’은 그에게 사랑에 대한 로망을 새삼 일깨워주기도 했다. 인스턴트 사랑이 아닌, 가슴을 울리는 진정한 사랑이 옛날 사랑방식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 아직 미혼인 그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지 묻자 그는 노코멘트라면서도 “마음속에서 사랑은 언제나 현재진행형 아니겠냐”며 살짝 미소만 지었다.
“요즘 젊은이들은 사랑이 너무 쉬운 것 같아요. 찔러봐서 ‘아니면 말고’라는 식이랄까. 까탈을 부리면서도 끊임없이 자신에게 되묻는 사랑이 진짜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주원과 라임처럼요. 저도 쉽게 사랑에 빠지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그래도 불 지피기가 힘들어서 그렇지 한번 불이 붙으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활활 타오르는 사랑을 하죠(웃음).”
5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매력적인 외모를 지닌 그는 꾸준한 운동을 젊음을 유지하는 비법으로 꼽았다. 마라톤, 경보, 수영 등 운동이라면 뭐든 좋아한다는 그는 최근에는 클라이밍을 시작했다며 굳은살 박힌 손바닥을 보여줬다. 김지숙은 “흔히들 체력보다 정신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체력이 강인해야만 정신적으로 흔들릴 때도 자신을 지킬 수 있다”며 운동예찬론을 펼쳤다.

연극배우, 사회활동가로 쉼 없이 달려온 지난 30년
또한 그에게는 열정이란 가장 큰 무기가 있다. 대학 졸업 후 연극에 빠져들고부터 그는 “단 하루도 열정적이지 않은 순간이 없었다”고 자신한다. 93년 극단 ‘전설’을 세우고 그가 직접 무대에 작품을 올릴 때는 일에 대한 의욕이 넘치다 못해 스스로 생각해도 ‘악마’와 다름없었다고 한다.
“40명이 넘는 단원을 먹이고, 가르치고, 무대에 올리고 하면서 모든 걸 제 뜻대로 움직이려 했어요.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죠. 당시 조명실이 3층에 있었는데, 리허설 때 조명을 제대로 안 넣기에 ‘가만히 있지 말고 네 몸이라도 던져’하고 벼락같이 소리를 지르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깔깔거리며 웃고요. 지금 생각하면 한마디로 미쳐있던 거지(웃음). 그때 저와 같이 미쳤던 친구들은 지금도 대표님, 대표님 하면서 연락하고, 아닌 친구들은 여전히 저를 ‘악마’로 기억할 거예요.”
그는 91년 모노드라마 ‘로젤’과 만나면서 사회활동에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상처받고 고통받는 여성을 연기하면서 처음으로 ‘찾아가는 연극’을 시도해 1백여 곳의 학교에서 무료 공연을 연 것. 그 외에도 성폭력 상담소·참여연대 기금마련 공연, 영세민 어린이공부방 모금 공연 등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쳤다. 2006년부터는 아프리카 지원단체 ‘피스프렌드’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가난하고 병든 아프리카인들을 돕는 데 앞장서고 있다.
“연극을 하면서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바뀌었어요. 남들보다 혹독한 사춘기를 보내면서 자폐증 가까운 증상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연극을 하면서 비로소 제대로 된 인생을 살게 됐거든요. 또한 누군가의 불행이 존재하는 한 나의 행복도 온전하지 않다는 주의예요. 어린 시절, 동네 아이들과 고무줄놀이를 해도 항상 ‘깍두기’를 하고, 전쟁놀이를 해도 이중스파이 노릇을 했어요. 누군가와 싸워 이기는 것보다 ‘너도 좋고 나도 좋은’ 평화적인 노선을 택했던 거죠(웃음).”

‘오스카 엄마’ 연극배우 김지숙 연기 인생을 말하다

김지숙은 15년 간 모노드라마 ‘로젤’무대 위에서 한 여성의 짓밟힌 꿈과 사랑을 연기했다.



타고난 떠돌이, 앞으로 ‘싱글 특권’ 더욱 누리며 살 터
김지숙은 영화 ‘조용한 가족’ ‘달콤한 인생’ 등을 연출한 김지운 감독의 누나로도 유명하다. 두 사람은 김 감독이 이름을 알리기 전까지 7년 동안 한 집에 살면서 형제애를 뛰어넘는 동료애를 쌓았다고 한다. 김 감독은 누나가 대표로 있는 극단에서 3년간 연출을 맡기도 했지만 “누나 밑에서 더 있다간 숨 막혀 죽을 것 같다”는 이유로 뛰쳐나와 결국 꿈을 이뤘다. 막내 동생의 성공을 지켜보는 누나의 마음은 뿌듯함과 기쁨 그 자체였다고 한다.
“군대 제대하고 7년 동안 백수로 지내던 동생이 드디어 빛을 보게 되니까 신통하고 기뻤죠. 지운이는 중3 때부터 영화에 도가 튼 아이였어요. 사춘기 때 쓴 영화노트가 10권이 넘어요. 제가 데리고 살 때도 보면 하루 종일 꼼짝도 않고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날이 많았어요. 그런 면에서 김지운의 성공은 하루아침에 이뤄진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김지숙은 ‘시크릿 가든’을 마치는 대로 이사를 할 예정이라고 했다. “태생이 떠돌이”라고 말하는 그는 한 곳에 정착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 2년에 한 번 꼴로 이사를 하곤 했다. 현재 살고 있는 곳은 아침마다 동네 주민들이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러 나오는 한적한 성북동. 때문에 이번에 이사 가려는 곳은 사람들로 북적대는 이태원이라고 한다. 그는 “어디든 옮겨 다닐 수 있다는 게 싱글의 특권 아니겠냐”며 웃었다. 그는 앞으로도 결혼할 생각은 없다고 한다. 이러한 생각은 해가 거듭될수록 더욱 확고해진다고.
“한때는 ‘혼자 오래 살았으니까 둘이서도 살아봐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는데, 요즘은 ‘혼자 사는 게 둘이 사는 것보다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결혼한 사람들은 엄두도 못내는 나만의 열린 공간이 있거든요. ‘이 좋은 걸 어떻게 포기해’ 하면서 혼자 킥킥대며 웃을 때도 많아요(웃음).”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아이를 낳지 못한 것이라고 한다. 이는 배우로서도 가장 큰 약점이라 생각한다고. 여자라면 모성을 직접 경험해 봐야할 것 같다고 말하는 그는 “결혼생활 잘 하는 친구들을 봐도 아이 낳아서 키울 때, 아이들에게 시달려 초주검이 되더라도 그때가 가장 예뻤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에게는 어딘가 모를 확고한 신념이 느껴진다. 30년 넘게 배우로 산다는 것, 여배우로 산다는 것이 어떤 고통을 감내해야하는지 세인들도 조금은 짐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역시 “나이가 들수록 짊어져야 할 연륜의 무게가 무겁다. 내면의 고통을 즐기느냐, 아니면 조금씩 밀려서 결국 낭떠러지로 떨어질 것인가는 여배우 자신에게 달려있다”고 말한다. 길라임의 액션에서 ‘라벤더 향’이 난다면 그의 연기에서는 그보다 진한 장미향이 날 것 같다.

장소협찬·충정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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