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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태백 장성광업소 ‘막장’을 가다

“막장인생이라뇨?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글 김수정 기자 | 사진 장승윤 기자 || ■ 취재협조 대한석탄공사

입력 2009.04.21 17:15:00

죽음의 공포를 떨쳐야 한다. 숨 막히는 고통을 이겨내야 한다. 오랜 씨름 끝에 막장을 뚫고 쏟아져나오는 거무튀튀한 ‘보석’들…. 광부들이 공포와 고통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건 보람과 희망, 마지막 산업전사라는 자부심 때문이다.
광부들은 한때 ‘산업전사’로 불렸다. 강원도 태백 광산촌에는 “만원짜리를 물고 다니는 강아지가 있다”는 말이 돌았다. 풍요로웠다. 자부심이 넘쳤다. 광부의 아들과 딸은 대를 이어 광부가 됐고 광부의 아내가 됐다. 그러는 동안 폐는 검게 타들어갔고 귀와 눈이 멀었다. 아버지를 잃고 남편도, 자식도 잃었다. “굴 속에 하루 안 들어가면 쇠고기 몇 근 먹는 것보다 낫다”는 말이 돌았다. 사람들은 차츰 광산을 떠났다.
강원도 태백에 위치한 장성광업소는 1천5백여 명 ‘마지막 산업전사’의 생업 터전이다. 광부들의 평균연령은 48세. 생산량에 따라 월급봉투가 달라지지만 “굴 속에선 부모 형제보다 가까운 게 막장동료”라는 말처럼 막장의 삶은 야박하지 않다. 하루 8시간씩 캐는 8톤의 탄은 가족을 지켜준 든든한 힘. 대폿집에서 그들은 밤새는 줄 모르고 ‘태백아라레이’를 부른다.

“연탄불로 구운 고기맛이 제일 아닙니까”
오전 8시부터 오후 4시까지 일하는 ‘갑’반 광부들을 만나기 위해 작업복을 입고 안전모와 장화를 착용했다. 해발 600m에 위치한 장성탄광 입구에서 터널을 따라 2km 정도 진입, 엘리베이터를 타고 900m를 수직으로 내려갔다. 다시 비좁은 갱도를 따라 걸어 들어갔다. 바닥이 질척거린다. 숨은 가빠진다. 가파른 계단을 타고 지하 375m 지점에 이르러서야 막장이 보였다. 장성광업소는 우리나라 최대 광산. 지하갱도의 총연장은 280km에 이른다.
“발파!” 탈의실에서 “팬티까지 벗고 작업복으로 갈아입는 게 좋을 텐데…”라는 말을 왜 했는지 알 것 같다. 탄가루가 한 치 앞이 보이지 않게 흩날렸다. 스프링클러를 통해 통기가 잘 되는 곳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곳에서는 호흡마저 어려울 정도다.
“막장에 다다를수록 지열이 높아져 기온이 34℃를 넘어서요. 지하수 때문에 습하고요. 예전에는 덥고 답답하다고 마스크를 잘 쓰지 않았는데 요새는 건강 생각해서 꼭 써요. 건강검진도 매년 받고.”
막장에서 만난 K씨의 표정이 해맑다. 올해로 채탄작업 17년째. 이 일로 딸 셋을 거뜬히 키웠다는 그는 “귀가 어두워지는 게 걱정이지만 아직 건강에 큰 무리는 없다”며 허리를 폈다.
“‘굴 속에서는 숨 쉬는 것도 노동’이라는 말이 있죠. 좋은 직업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 일을 하면서 자리 잡았고 형편도 폈으니까요. 막장국회, 막장드라마… 요새는 툭하면 막장이래. 막장에서 일한다고 막 사나요. 서글픕니다. 그래도 막장에서 캔 연탄불로 구운 고기맛이 제일 아닙니까(웃음).”
강원도 태백 장성광업소  ‘막장’을 가다


1 터널을 따라 갱도로 들어가는 길. 담배와 성냥, 라이터를 소지하면 안 된다.
2 막장 이동을 돕는 인차. 사람뿐 아니라 곡괭이 같은 장비도 싣는다.
3 철암저탄장의 풍경. 철암은 채탄현장과 광부숙소 등 석탄산업의 유물·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낮에는 탄 캐고 밤에는 자격증 취득 위해 공부하고~
얼마 전 각 언론사에 보낸 조관일 대한석탄공사 사장의 메시지는 광부들에게 큰 위안이 됐다. 조 사장은 “막장이란 단어의 ‘막’은 ‘마지막’, 즉 ‘맏의 막’이란 뜻으로 ‘맏’은 맏이처럼 ‘첫째, 최고’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어떤 분야에서 최고의 경지에 오른 사람에게 사용되는 용어”라며 “드라마든 국회든 간에 희망과 최고의 경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한 함부로 그 말을 사용하지 말라”고 부탁했다. 광부들의 평균연봉은 4천만원. 탄을 많이 캐면 상도 받는다.
“돈 잃고 가족 잃고 어떻게 살지 막막한 게 막장인생 아닌가요. 그런데 실제 막장에서는 길 잃고 헤맬 일이 없어요. 길을 잃으면 물길대로 따라 걸으면 됩니다. 물이 흐르는 방향대로 갱도가 이어져 있으니까요.”
길 안내를 돕던 Y씨는 78년 채탄원으로 입사한 뒤 광산보안기능사 자격증을 따 현재 안전관리를 담당하고 있다. “좋긴 뭐가 좋아…” 하면서 말끝을 흐렸지만 일반사원에서 반장, 계장을 거치면서 일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졌다. 광산이 그에게 새로운 기회를 준 셈. 서울에서 공부시킨 아들, 딸은 장성해 금융업에 종사하고 있다.
“대학교에 다니던 아들이 난데없이 재수하겠다고 말하더군요. 학과는 마음에 드는데 학교가 싫다고. 그래서 아들을 무조건 막장으로 데려왔어요. 애비가 광부질 해서 어렵게 자식 뒷바라지한다는 걸 보여주려고요. 쾅쾅… 발파 소리에 하늘이 내려앉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엉엉 울면서 열심히 하겠다고, 불평해서 죄송하다고 하는데 저도 눈물이 나더군요.”
그의 모친도, 동생도 광산에서 일했다. 하지만 자신의 아이들에게 만큼은 이 일을 대물림하고 싶지 않았다.
“마땅히 먹고살 길 없어서 찾은 게 광부의 길 아닙니까. 탄가루를 30년 이상 마셨더니 이젠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 뒤돌아보면 걱정과 근심으로 마음 편한 날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 광부의 속을 누가 알겠습니까….”

강원도 태백 장성광업소  ‘막장’을 가다

1 캐낸 탄을 긁어 모아 컨베이어벨트에 싣는 광부. 안전모와 마스크는 필수다.
2 세탁실. 광부들은 하루 2벌의 안전복을 입는다.
3 “힘들지만 막장을 지켜야죠.” 해맑은 미소로 기자를 맞이한 채탄원.
4 점점 빨라지는 광산의 인차. 작은 롤러코스터를 떠올리게 한다.



다시 열리는 폐광산, 다시 모여드는 사람들
다행인 건 광부들의 처우가 예전보다 좋아졌다는 점. 채탄작업은 여전히 사람의 힘을 빌리지만 펌프·운반 등은 오래전 자동화·기계화됐다. 무거운 배터리를 허리에 차야 들어왔던 안전모 전등도 몇 해 전 가벼운 것으로 바뀌었다. 광부에게는 매월 연탄 0.5톤씩 지원해준다. 주 5일 근무에, 자녀가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자금도 지원한다. 정년은 59세. 이 때문인지 최근 경기가 어려워지면서 막장으로 들어오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중·고등학교 학력을 가진 자가 대부분이던 예전과 달리 대학 졸업자가 수두룩하다.
인차(人車)를 기다리던 P씨는 “89년 석탄산업합리화 정책이 시작되면서 3백~4백 개 되던 탄광이 5개로 줄어들었는데 최근 다시 열리는 폐광산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폐광이 열리기까지는 3~4년이 꼬박 걸린다. 지하수를 퍼 올리고 레일도 다시 깔아야 한다.
“올해로 30년 됐습니다. 청춘을 다 바쳤지. 호황기였던 때를 생각하면 장성도 폐광되진 않을까 두려워져요. 지원자는 많다고 하나, 막상 누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을 하려고 하겠습니까. 힘들고 몸 망가지고…. 젊은 사람들은 고생스러운 일 피하려 하고, 30~40대는 요즘 갈 데가 없다고 하고, 50~60대는 죽기살기로 붙어 있으려 하잖아요.”
그는 퇴갱 후 어떻게 스트레스를 푸냐는 질문에 “동료들과 어울려 소주를 마시거나 운동을 한다”고 대답했다. 혹시 탄광촌 인근 카지노에 가지 않을까 궁금했는데, 태백 사람들은 강원랜드 입장이 제한돼 있다고 한다.

해마다 단오 때 순직자 위한 위령제 지내
점심시간. 막장에 있던 광부들이 갱내 제법 널찍한 휴식공간으로 나온다. 쥐가 파먹지 못하게 천장에 매단 검은 비닐봉지에는 도시락이 들어있다. 그나마 탄가루가 덜 날리는 그곳에서 밥을 먹고 옷도 갈아입는다.
“갱내에서는 절대 휘파람을 불면 안 돼요. 낙반 직전 들리는 바람소리가 휘파람 소리와 비슷해서 재수없다고 여기거든요.”
이 밖에도 탄광촌에는 출근할 때 여자가 앞에 가로질러 가면 출근하지 않는다, 도시락에 밥을 네 주걱 담지 않는다, 남편이 출근하면 신발을 방 안쪽으로 향하게 놓는다 등의 전해져 내려오는 생활수칙이 있다. 사고가 만든 결과물이다. 27년 차 광부 L씨는 “내 친구는 광부가 된 지 3년 만에 순직했다”며 가슴 아픈 기억을 꺼냈다.
“지금은 1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하지만 예전에는 사고가 잦았어요. 1주일에 한 번 이상 발생한 것 같아요. 좀 전까지 함께 도시락을 먹던 친구가 저 세상 사람이 된다… 남의 일 같지가 않아요. 태백 인근에서만 10만여 명의 산업전사가 순직했습니다. 해마다 단오 때 인근 사찰에 유가족, 직원 등이 모여 위령제를 지내요.”
채탄부에는 여성 광부가 없지만 석탄과 돌, 나뭇조각 등을 분리하는 선탄부는 탄광사고로 남편을 잃은 아내를 우선적으로 채용한다.
장화 속에 땀이 고인다. 하얀 것은 눈과 치아뿐이다. 퇴갱했다. 햇빛과 바람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일일체험에 불과하지만 땀과 탄가루로 범벅된 몸을 씻어내면서 격정에 잠겼다.
해가 떨어진 후 대폿집에서 만난 그들은 동료들과 어깨를 맞대고 ‘태백아라레이’를 부르며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을 기대했다. 누군가는 “석탄은 2억년이 지나야 만들어지는 연료다. 광부들은 2억년의 시간을 캐는 사람들”이라고 표현했다. 한 세대가 지나고 한 세대가 들어서고, 황금기를 지나 침체기에 접어들었지만 막장으로 가는 그들의 걸음은 좀처럼 멈추지 않을 것 같다.
강원도 태백 장성광업소  ‘막장’을 가다


1 광부들의 땀과 열정으로 활기찬 갱내와 달리 외부는 한산하다.
2 채굴한 석탄은 장성에서 출하돼 연탄으로 만들어진다.
3 막장에 들어가기 위해 인차를 기다리는 광부. 카메라를 들이밀자 쑥스러운지 웃는다.
4 휴게실. 옷은 벤치에 놓여 있고 천장에는 도시락이 매달려 있다.

여성동아 2009년 4월 54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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