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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영광의 주인공

안현수 선수 성공 뒷얘기 & 가족 인터뷰

기획·이남희 기자 / 글·양종구‘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 사진ㆍ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06.03.15 11:09:00

‘빙판 위의 꽃미남’ 안현수 선수가 2006토리노동계올림픽에서 한국선수단에 첫 금메달을 안겼다. 그의 금메달은 2002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에서의 아픔과 대표팀의 내부 갈등을 모두 극복해 얻은 성과이기에 더욱 값지다. 이제 명실공히 ‘대한민국의 남자’가 된 안현수 선수 성공스토리.
안현수 선수 성공 뒷얘기 & 가족 인터뷰

지난 2월13일 새벽 2006토리노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금메달을 딴 ‘빙판위의 꽃미남’ 안현수(21·한국체대)는 곧바로 호텔로 달려가 어머니 전미정씨(41)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한참을 울었다. 그동안의 마음고생과 기쁨이 교차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아들의 흐느끼는 목소리를 전화선을 통해 들은 어머니 전씨도 하염없이 울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이번 금메달은 안현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안현수는 고 2때 출전한 2002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에서 큰 불운을 겪었다. 남자 1000m 결승에서 1위로 달리다 마지막 바퀴에서 중국의 리자준, 미국의 아폴로 안논 오노, 캐나다의 매튜 투르코 등과 엉켜 넘어지면서 4위에 그쳤던 것. 하지만 안현수는 그 실패를 오히려 재도약의 기회로 삼았다. 당시 한국의 간판 김동성이 오노의 ‘할리우드 액션’으로 금메달을 빼앗기는 등 부진을 겪은 뒤 올림픽 이후 하향세를 걸을 때 안현수는 올림픽 실패를 거울삼아 더욱 스케이트에 정진해 월드스타로 발돋움한 것이다.
평소 말없이 훈련하기로 유명한 안현수는 지난 한 해를 고민 속에서 보내기도 했다. 아버지 안기원씨(49)는 “성실하게 훈련하던 현수가 ‘운동이 너무 힘들다’며 울기까지 했다. 10년 넘게 운동하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고 회상한다. 아버지에 따르면 발목이 부은 상태에서 훈련을 강행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정신적으로 무척 힘들어했다는 것.
안현수는 대표팀의 ‘미묘한 내부 갈등’ 때문에 이탈리아와 네덜란드에서 열린 월드컵 3, 4차 대회를 마친 뒤인 지난해 11월부터 여자대표팀 박세우 감독 밑으로 들어가 여자 선수들과 함께 훈련했다. 남자 대표팀에서 마음고생이 심했기 때문이다.
사실 안현수는 지난해 4월 대표선수 전원이 대표팀 코칭스태프 선발에 항의하며 선수촌 입촌을 거부할 때도 혼자서 태릉을 지키는 등 훈련에만 전념했다. 여자선수 2명이 송재근 남자대표팀 감독에게 와서 훈련하는 등 사태가 악화됐을 때도 묵묵히 남자대표팀을 지켰다. 하지만 월드컵 4차 대회가 끝난 뒤엔 정신적 고통이 심해 “이러다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못 딸 것 같다”며 박세우 여자대표팀 코치에게서 훈련을 받은 것이다.
남자대표팀에서 남자 선수 4명과 여자선수 2명이, 여자대표팀에서 안현수가 여자 선수 3명과 훈련을 하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바람에 일부에선 ‘따로 국밥 훈련’이라고 말도 많았다. 하지만 안현수로서는 외적인 것을 모두 잊고 훈련에만 전념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었던 것. 안현수가 1위로 결승선을 통과한 뒤 곧바로 박세우 코치에게 달려가 껴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린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1년에 10개월을 대표팀에서 생활하며 훈련에 몰두
안현수 선수 성공 뒷얘기 & 가족 인터뷰

2월19일 안현수 선수와 이호석 선수(왼쪽부터)가 미국의 안톤 오노를 집중 견제하며 쇼트트 랙 남자 1000m 결승 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이날 안 선수는 두 번째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안현수는 쇼트트랙을 위해 태어난 남자로 불릴 정도로 쇼트트랙을 좋아했고 잘 했다. 서울 명지초등학교 1학년 때 특별활동으로 시작한 스케이트. 그는 얼음 위를 물 찬 제비처럼 지칠 수 있는 스케이트가 너무 재미있어 부모를 졸라 2학년 때부터 개인 레슨을 받았다. 시작부터 쇼트트랙이었다. 긴 트랙(400m)을 도는 스피드스케이팅보다 짧은 트랙(111.12m)에서 여러 선수들을 제치며 질주하는 쇼트트랙이 그의 마음을 사로잡았기 때문. 시작부터 발군이었다. 3학년 때부터 대회에 출전, 4학년 때 출전한 동계체전에서 우승한 것을 시작으로 5, 6학년 땐 전국대회를 모두 휩쓸었다.
하지만 대표선수로 성장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없진 않았다. 명지중학교 2학년 때 성장통 때문에 무릎이 아파 슬럼프에 빠져 방황도 많이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이 기회에 스케이트 그만두고 공부나 해라”고 했을 때 “전 쇼트트랙에 제 인생을 걸겠습니다”며 꿋꿋이 버텼고 3학년 때부터 다시 상승세를 타 신목고등학교 1학년 때 드디어 태극마크를 달았다.

안현수 선수 성공 뒷얘기 & 가족 인터뷰

2월13일 열린 2006토리노동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1500m 결승에서 금메달을 딴 안현수 선수(왼쪽)가 태극기를 들고 세리머니를 펼쳤다. 오른쪽은 이호석 선수.


아버지 안기원씨는 “쇼트트랙과 집밖에 모를 정도로 훈련만 한다. 대표가 되면서부터는 1년에 10개월을 대표팀에서 생활하고 있어 어쩔 땐 안쓰러울 정도다”고 말한다. 안현수의 금메달이 결코 거저 얻어진 게 아니란 이야기다. 2003아오모리동계아시아경기대회 때 안현수를 지도했던 김기훈 전 대표팀 코치는 “각종 체력훈련을 제외하고 하루 6시간 이상 스케이트를 타야만 세계무대에서 통한다”고 말한다.
안현수의 등장엔 2002솔트레이크시티올림픽 때 쇼트트랙 감독이었던 전명규 한국체대 교수(43)의 역할도 컸다. 전 교수는 당시 주위의 비난을 무릅쓰고 당시 주니어대표였던 안현수를 무릎부상 중인 이재경 대신 대표팀에 합류시켰다. “너무 어리고 국제 경험이 없는 무명 선수를 합류시켰다”는 주위의 반발이 심했지만 대표팀에 합류시켜 경험을 쌓게 했던 것이다. 전 교수의 바람대로 그는 솔트레이크 이후 고속성장을 거듭하면서 2003아오모리동계아시아경기대회에서 3관왕에 오르는 등 각종 대회를 휩쓸며 한국 최고의 간판으로 우뚝 섰다.
토리노 현지로 날아가 안현수를 측면에서 지원해주고 있는 전 교수는 국제통화에서 “안현수는 외유내강(外柔內剛) 형이다. 겉으론 앳되고 약해보이지만 속은 강하다. 지난해 훈련 외적인 요소 때문에 정신적인 고민이 심했지만 꿋꿋이 참고 이겨냈다. 정말 장하다. 이번 금메달은 다른 금메달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고 말했다.
안현수가 첫 금메달을 딴 후 그의 여자친구 신단비씨(21)도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지난해 안현수가 언론을 통해 여자친구와의 교제 사실을 공개했기 때문. 그는 경기 직후 여자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의 금메달 소식을 전했다고 한다.
한국체대 같은 학번인 이들은 2004년 입학하면서 사귀기 시작했다. 필드하키 체육특기자인 신씨는 남자 친구에 대해 “평소에는 장난꾸러기 같다가도 대회만 다가오면 ‘임시 절교’를 선언해버려 야속했다. 하지만 현수의 강한 결단력에서 더 큰 매력을 느낀다”고 말했다. 여느 신세대 커플과 다름이 없는 이들은 함께 영화를 보고, 패밀리레스토랑에서 데이트를 즐기며 2년 넘게 사랑을 키워가고 있다.
안현수는 ‘꽃처럼 예쁜 남자’란 뜻의 꽃미남으로 불린다. 앳되면서도 잘 생긴 외모에 뛰어난 스케이팅 실력까지 겸비해 뭇 여성들을 사로잡고 있다. 안현수가 스타로 뜬 것은 2002솔트레이크시티동계올림픽 이후 각종 대회에서 우승하면서부터. 국내에서 쇼트트랙 경기가 열릴 때면 10대 여학생 오빠부대가 스탠드를 채워 ‘현수 오빠’를 목청껏 외친다. 인터넷에는 ‘쇼트트랙의 스몰원더 안현수’란 팬 카페(http://cafe. daum.net/victoryhyunsoo)가 결성돼 안현수의 경기속보와 각종 신문보도, 사진들을 거의 실시간으로 올리고 있다.
이번 올림픽 금메달로 이제 안현수는 ‘대한민국의 남자’가 됐다.

여성동아 2006년 3월 50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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