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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단독 인터뷰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부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초대형 교회 목사의 아내, 세 아들 엄마로 내가 겪은 애환”

■ 글·최호열 기자 ■ 사진·조영철 기자

입력 2003.11.10 13:21:00

세계 최대의 신도를 가진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일군 일등 공신, 국내 첫 예술인 출신 대학총장, 원로 피아니스트, 신학자…. 이런 화려한 이력과 달리 직접 만난 김성혜 한세대 총장은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편안한 인상이었다.
그가 언론에 처음으로 털어놓은 목사 남편 내조 40년 생활과 세 아들과의 숨은 가족 이야기 & 자기계발을 포기하지 않고 당당한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하기까지 남모르는 애환.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부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지난 58년 교인 5명의 작은 천막교회로 시작해 지금은 등록 교인만 70만명에 이르는 여의도 순복음교회를 일궈낸 조용기 목사(67). 그 조용기 목사의 성공 뒤에는 숨은 공로자가 있다. 부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61)이다. 하지만 김총장을 이야기할 때 ‘조용기 목사의 아내’는 수많은 수식어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인 출신 대학총장이자 신학박사, 피아니스트, 복음성가 작곡가다.
화려한 이력 때문이었을까, 다소 차가운 커리어우먼의 이미지일 거라는 기자의 예상과 달리 김총장은 이웃집 아주머니 같은 편안한 인상이었다. 그는 개척교회를 초대형 교회로 키우기까지 목사의 아내로서 겪은 애환과 세 아들을 키우며 겪은 어려움과 교육철학, 자기계발을 포기하지 않고 당당한 커리어우먼으로 성공하기까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삶을 진솔하게 들려주었다.
김총장은 어머니 최자실 목사(89년 작고)와 함께 오늘의 순복음교회를 일군 ‘일등 공신’으로 꼽힌다. 그가 조용기 목사를 처음 만난 건 중학교 3학년 때인 57년, 조목사와 순복음신학교 동기인 어머니를 통해서였다. 당시 조목사는 학생회장, 최목사는 전도부장이었는데, 서울 탑골공원 등에서 거리전도를 하면서 친해진 두 사람은 이듬해인 58년 신학교를 졸업하면서 함께 불광동에서 교회를 개척했다.
당시 김총장은 서울예고에 다니며 아르바이트로 피아노 레슨을 해 받은 2만원을 선뜻 내놓는 등 교회 살림의 큰몫을 담당했다. 신도들 대부분이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피난민이라 헌금을 낼 돈이 있을 리 없었다. 당시 교회 수입이라곤 조목사가 선교회 통역과 번역을 해 벌어오는 2만7천원이 전부였으니 그 돈이 교회 재정에 큰 보탬이 되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더구나 어머니 최목사도 교회 일에 전념했기 때문에 김총장은 집안의 재정을 책임지는 이른바 소녀가장이었던 셈이다.


고1 때부터 아르바이트해서 집안살림 책임진 소녀가장
“고등학교 1학년 때 등록금을 못내 교무실에 불려갔다가 눈물을 흘리며 뛰쳐나왔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해요. 다음날부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죠. 나중에 어머니가 저에게 야단을 치신 적이 있었는데, 제가 ‘난 고1 때부터 자립을 한 사람이니 그런 말씀하시지 마라’고 했어요. 그러자 ‘네 말이 맞다’며 미안해하시더라고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왜 그런 말을 해서 마음 상하게 했을까’ 후회했어요. 하지만 그땐 정말 너무 힘들었거든요. 방과후 학교에서 피아노 연습을 한 후 가정교사로 매일 밤마다 학생을 가르치고 집에 돌아올 때면 무서웠어요. 밤 12시 가로등도 없는 버스정류장에서 집에까지 30분을 걸어오는데 너무 두려웠어요. 학생을 가르치고 나오다가 개에게 물리기도 했지만 믿음으로 극복했어요.”
조목사와 최목사의 열정, 김총장의 내조로 교회는 급속히 성장했다. 불광동에서 서대문으로, 다시 여의도로 교회를 옮기면서 교인은 수천명, 수십만명으로 불어났다. 어머니 최자실 목사가 교회에서 실무적인 일을 도왔다면 그는 조목사를 세계에 알리는 토대를 만들었다. 조목사의 설교를 묶어 책으로 만들고, 이를 번역해 세계로 보급하는 일을 한 것. 이런 노력으로 조목사의 이름이 영국과 프랑스 등 선진국은 물론 러시아, 중국, 아프리카에서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또한 아홉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해 서울예고, 이화여대 음악과를 나온 피아니스트인 그는 이런 재능을 활용해 성가대를 지휘하는 한편, 복음성가 만드는 일을 했다. 그가 만든 복음성가 중에는 조목사가 작사한 것도 20여편으로 많이 불리워지고 있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부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김총장은 총장으로 있으면서도 피아노 전공 교사로 박사과정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한번은 남편이 작사한 것을 보는 순간, 악상이 떠올라 그 자리에서 곡을 완성한 적이 있어요. 그러니까 남편이 놀라며 ‘당신 천재야’ 그러더군요(웃음).”
한창 피아니스트로서 활약할 시기에 교회 일에 파묻혀 지냈으니 아쉬움이 있을 법도 하건만 그는 오히려 축복이었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젊을 때 음악가의 길을 가다 나이 들어 힘이 달리면 교회음악을 한다고 하는데, 저는 반대로 젊을 때 교회음악을 하고 나이 들어 다시 음악가의 길을 걸었어요. 그래서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아요.”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김총장은 어떨까. 우선 조목사와의 결혼과정이 궁금했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1주일 만에 결혼식을 올렸다.
“고등학교 때 남편에게 영어를 배워 친하긴 했지만 특별한 감정은 없었어요. 그래서 언제부터 사귀었다고 말하기 힘들죠. 그런데 대학 2학년 때인가, 남편이 불쑥 제게 시계를 주면서 ‘약혼예물이다’ 하는 거예요. 다른 말도 없었어요. 그게 프러포즈였던 셈이죠. 전 순진하게 약혼시계를 받았으니까 결혼을 당연히 해야 하는 줄 알았어요(웃음).”
기자가 웃으며 “조목사가 남자로 느껴지기도 전에 ‘찜’을 당한 것 아니냐”고 하자 그는 “이미 중3 때부터 어머니 최자실 목사가 ‘조목사는 똑똑한 청년이다. 사위삼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었다”며 “어머니랑 조목사가 진작부터 나를 ‘찜’한 것 같다”며 웃었다.

대학 2학년 때 조목사가 시계를 약혼예물이라고 주며 프러포즈
“물론 저도 좋아했죠. 무엇보다 진취적이고 열심히 일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어요. 지금도 기억나는 게, 불광동 시절에 조목사가 폐결핵을 앓았어요. 병이 낳은 지 얼마 안된 때인데 교인 20∼30명 앞에서 엄청나게 큰소리로 설교를 했어요. 건강이 염려돼서 ‘교인도 얼마 없는데 작은 목소리로 설교해도 되는 거 아니냐’고 했더니 ‘난 여기에 2천명의 신자가 있다는 마음으로 설교한다’고 하더군요. 그때부터 큰 뜻을 품고 있었던 거죠.”
김총장은 지금 돌이켜보면 남들 다 가지고 있는 연애시절의 즐거움이 거의 없는 게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했다. 그건 결혼하고도 마찬가지. 그저 교회에서 얼굴 보는 게 전부였다고 한다.
“조목사는 신혼초 6개월 동안 매일 부흥회에 다녔어요. 월요일에 지방 내려갔다가 토요일에 올라와 일요일에 교회 예배하고, 다시 월요일에 지방에 내려가는 생활의 연속이었죠. 그래서 저 혼자 자느라 무서웠어요. 남편이 그때 왜 그랬는지는 나중에야 알았어요. 한 여자 교인이 남편에게 ‘결혼을 했으니까 이제 당신은 타락했다’는 편지를 보낸 거예요. 그걸 보고 충격을 받은 남편이 그렇지 않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부흥회만 열심히 한 거죠. 전 그것도 모르고 목사 부인은 원래 이렇게 살아야 하나 보다고 생각했어요.”
조목사는 부흥회를 하러 지방에 갈 때 출발 시각보다 2시간 먼저 서울역에 가 있거나, 심방 가는 집을 약속시간 1시간 전에 찾아가 신자들을 난처하게 한 적이 있을 정도로 급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한다. 반면 그만큼 모든 일에 부지런하고 치밀하게 준비하는 성격이다.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부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한세대 학생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김총장.


“교회에 대한 집념이 대단한 사람이에요. 제가 일중독에 걸렸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집안 살림은 제가 다 했어요. 심지어 이사갈 때도 ‘오늘 이사 가요’ 하면 ‘알았다. 나중에 이사간 집에서 만나’ 할 정도로 집안일에 신경쓸 겨를이 없었죠. 그러니까 아이들은 아버지가 고생하는 것을 봐서 ‘우리는 아버지처럼 못하겠다’며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한 거죠.”
김총장은 조목사가 교회에서는 훌륭한 목사였지만 집안에서는 자상한 아버지가 아니었다며 조목사의 인간적인 면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한다.
“남편은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는 법이 없었어요. 그래서 아이들도 아버지에게 용돈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고요. 어느날 막내가 ‘아버지 용돈 좀 주세요’ 하니까 놀라서 저에게 ‘저 아이가 나보고 용돈 달래’ 하더라고요.”
그는 돌이켜보면 자신도 자녀교육을 다소 부족한 게 아닌가 싶다고 했다. 몸이 약한 조목사 위주로 모든 걸 하다 보니까 아이들에게 “조용히 해라” “아버지를 피곤하게 하지 마라”며 본의 아니게 아이들과 아버지를 차단시킨 적이 많았다는 것이다. 물론 김총장은 장난감을 사도 자기가 직접 주지 않고 남편에게 주도록 하는 등 아버지와 아들의 간격을 좁히기 위한 노력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훌륭하면 자식들은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더구나 목사의 아이들은 더하지 않았을까 싶다. 김총장도 고개를 끄덕였다.
“있었어요.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이 생기면 아이들이 무슨 돈으로 샀냐고 물어요. 제가 81년부터 대학에 강의를 나갔으니까, 엄마 월급으로 샀다고 하면 다행이라고 해요. 아버지 월급으로 샀다고 하면 마음이 안 좋대요. 친구들이 ‘목사 아들이니까 교회 헌금으로 산 것이 아니냐’고 말하는 게 가장 괴롭대요. 그만큼 스트레스가 심했던 거죠.”
그래서일까, 그는 자녀교육에 특별히 신경을 썼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엄격하게 지킨 것이 존칭어를 쓰도록 한 것. 그는 아이들이 반말을 못하게 한 것 뿐 아니라 자신도 아이들에게 경어를 썼다고 한다.
“황순원 선생이 손자들에게 높임말을 쓴다는 이야기를 듣고 좋은 것 같아 저도 그렇게 했어요. 아이들이 높임말을 써서 그런지 다른 사람들에게 ‘말씨가 곱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젊었을 땐 조목사가 큰소리치면 겁이 덜컥 났는데 이젠 맞먹어
그래도 사내아이 셋을 키우는 건 힘들었던 모양이다.
“사실 좀 힘들었어요.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아이들이 억세지더라고요.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어요. 둘째가 ‘어머니 팔씨름해요’ 하기에 무심코 했다가 제가 졌어요. 그랬더니 다음부터는 제가 몽둥이만 들면 제 팔목을 잡아요. 힘으로 해서 이긴다는 거죠. 그후로는 아이들이 잘못해도 때리질 못했어요. 그래서 엄마들에게 충고하죠. 절대 아이들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마라, 특히 팔씨름하지 말라고(웃음).”
그는 자식을 키우는 엄마들에게 선배로서의 충고를 들려주었다. 아이들은 반항할 때 야단을 치면 꼭 엄마들이 속상해할 이야기를 골라서 하는데, 그건 엄마를 화나게 하려는 의도일 뿐 본심이 아니니 신경을 쓰지 말라는 것이다.
“아이들이 사춘기 때 저를 화나게 하는 말을 많이 했어요. 그럴 땐 아이를 데리고 나가 먹을 걸 사주면서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몇마디 하기도 전에 아이가 ‘어머니가 무슨 이야기하는지 다 안다’고 해요. 그러면서 서로 풀어지죠. 엄마와 자식간이라도 매일 집에서만 아웅다웅하지 말고 분위기를 바꿔 밖에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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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최자실 목사의 소개로 만나 결혼한 조용기 목사와 함께.


아들 셋 중에서 누가 그렇게 속을 많이 썩였냐고 묻자 잠깐 멈칫하더니 웃으며 “별명이 섭섭이인 아이가 있다”고 했다. 막내아들 승제씨(31)다. 위의 형들은 새것을 사주지만 막내는 계속 형들 것을 물려받다 보니까 그게 상처가 되었다는 것이다.
“대학교 때 불만을 표출하더군요. 제가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 사랑은 다 똑같은 거다’고 해도 수긍을 안해요. 그래서 ‘뭘로 보상을 해줄까’ 했더니 시계를 사달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비싼 시계를 사줬어요. 큰맘 먹고 시계를 사주며 ‘이건 엄마 사랑의 표시야’ 그랬죠. 막내도 제 마음을 안 모양이에요.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시계만 차고 다니며 엄마의 사랑을 느낀다고 하더군요. 참, 이거 형들이 알면 안 되는데(웃음).”
아직까지는 세 아들 중 아버지의 뒤를 이어 목사가 된 자식이 하나도 없다. 서운함이 있지 않을까?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서운함은 없어요. 저희는 주의 종이 되겠다는 사명감이 있다면 몰라도 아버지가 목사니까 아들도 목사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은 안해요. 아이들에게 요구한 적도 없고요.”
장남 조희준씨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서울예고와 서울대 음대를 졸업한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 맨하튼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했는데 경영인으로 진로를 바꿨기 때문이다.
“큰아이는 제가 보기에 재능이 있고 감정도 좋고 목소리도 좋았어요. 그 아이의 꿈이 루치아노 파바로티처럼 성악가로 일인자가 되는 것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나는 파바로티가 못될 것 같아. 체력이나 무엇을 봐도 그런 소리가 나올 수 없어’ 하면서 음악을 포기하고 사업가의 길을 가겠다고 하더군요. 전 ‘꼭 파바로티가 되지 않으면 어떠니. 그냥 음악인으로 살면 안되겠냐’고 했는데, 싫대요.”
그는 자식이 부모의 부속물이 아닌 이상 인생을 간섭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했다. 아이의 결정을 존중하면서 조언을 해주는 정도가 부모의 역할이라는 것.

주부도 시간과 노력의 3분의 1은 자신을 위해 투자하길
김총장과 조목사도 결혼한 지 거의 40년이 되었다. 처음과 지금이 어떻게 다르냐고 묻자 “젊었을 땐 조목사가 ‘이게 뭐야’ 하고 소리를 지르면 겁이 덜컥 났는데 이젠 하나도 겁이 안 난다. 맞먹는 수준이 되었다”며 웃었다.
“나이가 들면서 부부관계도 역전이 되잖아요. 그래서 이제는 제 목소리가 높아졌죠. 남편이 얼마 전에 설교하면서 그러더군요. 결혼하면 ‘캣(고양이)’이 ‘라이언(사자)’이 된다고(웃음).”
그는 젊은 주부들에게 자기를 계발하며 살라고 조언했다. 자식이나 남편을 위해 희생하는 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
“3분의 1은 남편을, 3분의 1은 자식을, 나머지 3분의 1은 자신을 위해 살았으면 좋겠어요. 100% 자식을 위해서 살면 늙어서 자식이 효자면 다행이지만 아니면 눈물 흘리고 살아요. 남편만을 위해 살아도 마찬가지예요.”

여의도 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 부인 김성혜 한세대 총장 첫 프라이버시 인터뷰

김총장은 매주 하루는 순복음교회로 출근한다.


자신의 말처럼 김총장은 첫아이를 낳은 지 3년만인 68년 이화여대 음악대학원에 진학하는가 하면 대학에서 음악을 가르치던 중 부족함을 느끼자 과감하게 외국 유학을 떠나 미국 맨하튼음대 대학원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영어의 필요성을 느끼자 늦은 나이에 연세대 대학원에 진학해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기도 했다. 또한 환갑의 나이에 신학을 공부, 목사 안수를 받기도 했다. 현재 그가 가지고 있는 석사학위만 5개.
“전 필요성을 느끼면 뭐든 배우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배우면 나중에 다 쓰임새가 있어요. 영어를 전공한 것도 그렇고, 뒤늦게 신학대학을 다니게 된 것도 그래요. 처음엔 목회자가 되겠다는 생각보다는 부부가 상대방이 하는 일을 너무 몰라선 안되겠다 싶어서 공부를 시작한 것이었어요.”
그는 81년 호서대학으로부터 음대 교수직 제안을 받았다. 어려서부터 교사가 꿈이었기에 그는 서울에서 2시간 넘게 걸리는 먼 거리임에도 기꺼이 달려가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후 예술대학장, 사회교육원장의 자리에 올랐다. 95년 한세대로 옮긴 그는 지난해 총장에 취임했다. 대학을 옮길 당시 그로서도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한세대 재단이 순복음교회이기 때문에 세상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저도 그런 우려가 있다는 걸 알죠. 그래서 처음엔 싫다고 했어요. 하지만 고민 끝에 제가 호서대에서 할 일보다는 이곳에서 할 일이 더 많다고 생각해 마음을 굳혔어요. 그래도 역시 쉽지는 않아요. 말 한마디 하는 것도 조심스럽고, 행동도 조심스럽고….”
그는 앞으로도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계획이라고 했다. 학교 총장으로서의 일뿐 아니라 피아니스트로 익혀온 기술을 후배들에게 전수하기 위해 강의도 계속할 욕심이다. 또한 최근에도 산호세, 말레이시아, 달라스, 툴사 등에서 영어 선교를 하고온 그는 앞으로도 자신의 신앙을 나누기 위해 국내든 해외든 불러주는 곳은 다 찾아다닐 생각이다. 끊임없이 자신을 위해 투자하고 나누는 삶, 그게 김총장이 환갑을 넘어서도 젊음을 유지하고 있는 비결인 셈이다.

여성동아 2003년 11월 4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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