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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학의 길

연세대 대학원 진학한 이순자 여사

“학생들에게 돌 맞더라도 공부는 계속하고 싶다”

■ 글·이영래 기자 ■ 사진·동아일보 출판사진팀

2003. 10. 02

전두환 전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 여사가 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 고위여성지도자과정에 입학, 만학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이여사는 이화여대 의대 1학년 재학중 전 전대통령과 결혼하면서 금혼 학칙에 의해 학업을 중단해야 했는데, 학업을 이어가고 싶은 욕심에 이 과정에 등록했다고 한다. 그의 첫 수업 현장을 찾아가보았다.

연세대 대학원 진학한 이순자 여사

올해 이화여대 금혼 학칙이 없어지면서 ‘혹 복학하지 않을까’ 가장 관심을 모았던 사람 중 한명이 이순자 여사(67)였다. 전두환 전대통령과 결혼하면서 이화여대 의대를 중퇴해야 했던 이여사는 학업을 중단해야만 했던 상황에 대해 영부인 시절부터 자주 아쉬움을 표하곤 했기 때문. 더욱이 이여사는 회화 테이프 등을 활용해 영어를 독학으로 마스터하고 최근엔 프랑스어에 도전하는 등, 만학열로 화제를 모아온 인물이라 복학 여부가 더욱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지난 5월 연희동측은 “나이도 있는 데다 살아가는 데 졸업장이 꼭 필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복학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항간의 추측을 일축한 바 있다.
그런데 그가 올가을 돌연 연세대학교에 나타났다. 지난 9월3일, 연세대학교 생활환경대학원의 ‘고위여성지도자과정’ 입학식에 나타난 것. 퇴임 이후 그의 생활은 격랑의 세월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백담사 시절을 거쳐 12·12 재판, 그리고 최근의 추징금 논란까지 그의 주변은 조용해본 적이 없다. 그는 그동안 연희동 자택에서 거의 칩거에 가까운 생활을 해온 터라 이날 그의 등장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자기 소개 시간에 이여사는 ‘이순자’라고 쓰여진 명찰을 달고 앞에 나서 “결혼을 일찍 하는 바람에 학업을 중단해야 했다. 학업을 중도에 포기한 것 때문에 항상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이제 이대에서 복학을 시켜준다고 하는데 나이도 많고, 졸업장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어서 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공부하고 인연이 잘 닿지 않은 사람이다. 지난 79년엔 연세대 어학당에서 영어를 배우며 외국어 대학 편입학 준비를 한 적이 있었다. 편입학이라도 해서 졸업장을 따보려고 했더니 하필 그때 12·12사태가 일어나 꿈을 이루지 못했다. 공부는 너무 하고 싶었는데 잘 알다시피 그동안 그럴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에 둘째 사돈이 연세대에 좋은 과정이 있다고 해서 공부하러 왔다. 연세대와 나는 각별한 인연이 있다. 아들 셋이 다 연대를 나왔고, 집도 가까워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잘 부탁한다”며 만학의 길에 나선 배경을 설명했다. 이날 그의 재치 넘치는 말에 폭소를 터뜨리던 동기생들은 아낌없는 박수로 그의 용기를 격려했다.
사실 이여사는 경기여중, 경기여고, 이화여대 의대를 다닌 재원. 중학교 시절에는 국가시험에 합격해 서울에 있는 경기여중을 다니려고 했으나 당시 육군사관학교 참모장이던 아버지 이규동씨를 따라 진해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그후 육군사관학교가 태릉으로 옮긴 후에 경기여중으로 옮겨 졸업하고, 이어서 경기여고, 이화여대 의대에 입학했다. 그러나 당시 중위였던 전두환 전대통령과 결혼하면서 금혼 학칙에 따라 1년여 만에 중퇴한 바 있다.

연세대 대학원 진학한 이순자 여사

이순자 여사는 강의실 복도에서 기자와 마주치자 “이제 우리 같은 늙은이는 잊히게 내버려달라”며 한사코 인터뷰를 고사했다.


지난 9월 중순, 첫 수업을 받으러 나선 그를 찾았다. 복도에서 마주한 그는 두손을 마주잡으며 반갑게 기자를 맞았지만 “이제 정치인도 우리 같이 늙은 사람들한테는 신경 쓰지 말고 젊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져야죠. 우리 늙은이들은 이제 잊혀서 그냥 평범하게 살다 가야지” 하며 끝끝내 인터뷰에는 응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현재 회고록을 쓰고 있고 거의 다 써간다. 이 과정을 졸업하면 인터뷰를 하자”고 밝혔다.
‘고위여성지도자과정’은 일주일에 한번, 오후 2시부터 8시30분까지 수업이 이어지는 6개월 과정으로 리더십 강좌, 정치·경제·경영 강좌, 교양 강좌 등의 내용으로 짜여져 있다. 정식 수업은 6시30분까지이며, 이 시간이 지나면 저녁 식사 후 개별적으로 컴퓨터 교육, 중국어 회화, 댄스스포츠 건강교실 등 특별수업을 받게 된다.
사실 그가 이 수업에 참가하기로 결정하기까진 많은 고민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전 전대통령에 대한 추징금 논란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중이라 그의 수업 참가가 또 다른 논란의 불씨가 될 수도 있고, 운동권 학생들과 충돌하는 상황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주변의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여사는 “공부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막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학생들이 돌을 던지면 그 돌을 맞더라도 나는 공부하러 가겠다”며 주변의 만류를 물리쳤다고 한다. 수행원들과 학생들이 충돌할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그는 수행원도 없이 수업에 참가하고 있다. 사실 이런 여러가지 문제 때문에 그의 입학 사실은 학교 당국에서도 보안을 유지하며 쉬쉬하던 사항. 한 학교 관계자는 “혹시라도 모를 충돌이 무척 걱정된다. 연세도 있으신 분이고, 공부를 하기 위해 나선 분인데 학업을 이어갈 수 있도록 모든 사람들이 도와줬으면 싶다. 언제까지 남편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포기해야 하느냐?”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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