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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hiphop #burgerlady #interview

힙합 레이디로 돌아온 버거 소녀 왓썹?

editor 정희순

2017. 02. 15

촬영장을 가득 메운 몽환적인 힙합 음악에 맞춰 천천히 몸을 흔든다. 카메라는 그저 그녀를 가만히 응시할 뿐이다. ‘생각보다 강해진 멘탈’로 왕년의 ‘버거 소녀’ 양미라가 돌아왔다.

양미라(35)는 최근 인생에서 ‘대격변’을 맞이했다. 셀레브러티의 힙합 도전기를 그린 jtbc 〈힙합의 민족2〉에서다. 그녀는 지금껏 두 번의 행운을 만났는데, 첫 번째 행운이 ‘버거 소녀’라는 캐릭터를 얻은 것이었다면, 다른 하나는 “힙합을 알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녀를 만난 건 〈힙합의 민족2〉의 우승자가 가려지고 며칠이 흐른 후였다. 양미라는 비록 우승은 차지하지 못했지만, 가장 눈에 띈 도전자였다. 첫 회 때 ‘혀까지 떨며’ 랩을 했던 그녀는 파이널 무대에서 힙합 가수 치타와 함께 한층 단단해진 모습으로 랩을 선보였다. 파이널 무대의 ‘come follow me’ 가사에는 ‘내 생각보다 강해진 내 멘탈’이라며 힙합 무대를 통해 자신이 느낀 감정을 솔직하게 써내려갔다. 그녀는 “힙합에 빠져 살던 지난 8개월 동안 양미라의 세상이 달라졌다”며 인터뷰 내내 밝게 웃었다.  

“예전엔 힙합 하는 사람들에 대한 편견이 있었어요. 또 힙합은 사회에 불만이 많고 반항아들이 하는 음악이라고 생각했죠. 〈힙합의 민족2〉에 도전한 것도, 힙합 음악에 관심이 많아서는 아니었어요. 시즌1 때처럼 고정 출연진이 힙합에 도전하는 프로그램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셀렙들을 대상으로 한 힙합 오디션 프로그램이더라고요. 1차 블라인드 테스트 때 가수 다나, 박광선, 이미쉘 씨가 랩을 하는 모습을 보고 엄청 좌절했죠. 가수는 ‘아’ 할 때부터 다르더라고요. 당연히 탈락할 거라고 생각해서 떨어졌을 때 소감 인터뷰까지 미리 준비했었어요.”

‘광탈’ 할 거라고 생각한 그녀의 생각은 완전히 빗나갔다. 힙합 레이블 ‘브랜뉴뮤직’ 소속의 프로듀서 한해는 베일 뒤에서 랩을 하는 그녀의 목소리에 열광했고, 결국 프로듀서들의 선택을 받아 다음 라운드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제 목소리가 파워풀한 것도 아니고, 제가 리듬감이 뛰어난 것도 아니잖아요. 쟁쟁한 도전자들 사이에서 선택받았다는 게 제 자신도 의아했죠. 나중에 절 왜 뽑았냐고 물어보니 제 목소리가 너무 좋았다는 거예요. 알고 보니 제 목소리가 서양에서 유행하고 있는 ‘클라우드 랩’에 적합한 스타일이더라고요.”



방영 초 양미라는 걸핏하면 눈물을 보였다. 예상치 못한 합격 소식을 받았을 때, 기대하지 않았던 극찬을 받았을 때 그랬다. 모델 주우재를 상대로 한 일대일 배틀에서 승리했을 땐 다리에 힘이 풀려 무대 위에 주저앉기도 했다. 흔히 힙합에서 말하는 ‘스웨그(허세를 부리듯 자유분방한 스타일을 뜻하는 힙합 용어)’는 찾아볼 수 없었던 게 사실이다.  

“녹화에 갈 때마다 주변에선 ‘그래, 미라야. 마지막 녹화 잘하고 와’ 하고 말했어요. 다들 도전자 중 제가 가장 랩을 못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런데 매번 ‘의외의 선전’을 했잖아요. 〈힙합의 민족2〉는 제게 예능이 아닌 한 편의 드라마와도 같았죠.”

무엇보다 그녀를 가장 변화시킨 건 힙합 하는 사람들의 ‘마인드’였다. 예선부터 파이널까지 총 8개월에 걸친 대장정을 이어왔는데, 힙합 뮤지션들과의 교류가 그녀를 변화시키는 가장 큰 계기가 됐다.  

“연예인 생활을 꽤 오래했지만, 기간에 비해 제가 강단 있고 멘탈이 강한 스타일은 아니었거든요. 그런데 함께 무대를 준비하는 힙합 프로듀서에게 ‘사람들이 나더러 힙합에는 안 어울리는 목소리래’ 하면서 나약한 말을 하면 ‘뭐 어때! 그게 너야! 꺼지라 그래!’ 하면서 제게 힘을 실어주더라고요. 그게 힙합의 정신이라면서요(웃음). 그런 사람들과 어울리다 보니 제가 많이 변한 것 같아요.”

‘버거 소녀’로 승승장구하던 그녀의 발목을 잡았던 ‘성형 논란’도 이제는 지나간 일이 됐다. 일대일 데스매치에서 선보인 그녀의 자전 랩에는 과거 성형 논란으로 질타를 받았던 때 이야기를 고스란히 담아냈다. ‘양미라 오랜만이네. 힙합으로 이슈 몰이 노리네. 버거 소녀 미라 오랜만이네’라는 라임에선 그녀의 진심이 전해져 보는 이들이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버거 소녀’는 얄미운 구석이 하나도 없는 캐릭터잖아요. 다른 이들에게 욕을 먹거나 비난받을 일이 전혀 없었죠. 그래서 성형 논란은 제게 더 힘들었는지도 몰라요. 프로듀서 피타입 오빠가 ‘그 상처를 랩으로 풀어내보자. 사람들에게 진심이 전해질 거다. 힙합에는 그런 힘이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쓴 가사예요.”  

죽도록 연습해 무대에 올랐지만 자신감은 여전히 부족했다. 그저 예선에서 자신을 믿고 뽑아준 브랜뉴뮤직 프로듀서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 싫은 마음이었다. 그리고 계속 주문을 외웠다고 했다. 울지 말고 서 있어야지, 약한 모습 보여주지 말아야지. 마치 브랜뉴뮤직의 대표 가수 같은 비장함으로 양미라는 준비한 무대를 선보였다. 그리고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힙합에는 진심을 전하는 힘이 있다”는 피타입의 말처럼 청중 평가단에게 양미라의 진심이 전해진 것이다.



그보다 더 큰 기적은 양미라 자신에게 일어났다. 그녀의 마음 한 곳을 누르고 있었던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쳐다보지도 않았을 인터넷 기사의 댓글들을 요즘에는 빼놓지 않고 찾아 봐요. 댓글을 보는 건 제게 일종의 비타민 같은 거예요. 참 아이러니하죠? 성형 논란이 있었을 때 저를 더 약하게 만들었던 것도 댓글인데, 치유해주는 것도 댓글이더라고요. 아, 물론 너무 심할 것 같은 건 안 봐요(웃음).”  

소위 ‘까는 댓글’이 한 번씩 등장해도 “빅뱅도 욕먹는 세상에 이런 댓글 한두 개쯤 뭐 어때” 하고 넘긴다. 그녀는 ‘양미라 랩은 들을 땐 이상한데 계속 따라 하게 돼’라는 댓글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웃었다. 힙합에 대해 가졌던 편견도 이제는 버렸다. 자기 주관이 뚜렷한 사람들이 하는 멋있는 음악. 요즘의 양미라가 생각하는 힙합이다.

“랩을 쓰면서 서로 속내를 많이 이야기해서인지 브랜뉴뮤직 사람들은 꼭 오래 알고 지낸 친구 같아요. 피타입 오빠가 제 과거를 조심스럽게 말하면서 “걱정된다”고 말한 인터뷰 장면을 보고 제 동생은 펑펑 울었대요. 언니를 그렇게 가족처럼 이해해줘서 너무 감사하다면서요. 브랜뉴뮤직 사람들과는 이번 주 금요일부터 2박 3일간 같은 팀 사람들 전부 같이 강원도 양양으로 여행을 가기로 했어요. 프로그램이 끝나서 가장 아쉬운 점이 이 사람들을 정기적으로 만날 수 없게 됐다는 거예요.”  

양미라는 “무대가 좋으면 보통 래퍼를 인정하는데, 내 무대에서는 프로듀서가 인정받았다. 결국 내가 브랜뉴뮤직의 프로듀서를 빛나게 해준 셈이다”라며 크게 웃었다. 그간 힙합을 통해 스웨그가 아닌 멘탈 훈련을 받고 온 티가 났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제일 못했던 분야가 미술이랑 음악이에요. 가족끼리 외식을 하면 딱 정해진 코스가 ‘돼지갈비-노래방’이었죠. 인기곡들을 쭉 예약해놓고 부르다가도 후렴 부분의 하이라이트가 나오면 무조건 동생에게 마이크를 넘겼어요. 생각해보면 가족들도 모두 그걸 원하셨던 것 같아요. 요즘 부모님은 ‘미라야, 아무래도 네 길을 찾은 것 같다’라고 하세요. 친구분들께도 ‘요새 우리 미라 랩 하잖아’ 하고 자랑하신다더라고요(웃음).”

〈힙합의 민족2〉는 종영했지만, 양미라의 플레이 리스트는 힙합 음악들로 가득 차 있다. 물론 가장 즐겨 찾는 곡은 그녀가 〈힙합의 민족2〉 무대에서 직접 부른 힙합들이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잖아요. ‘할리우드에 가서 연기하겠다, 중화권에서 이름을 알리는 스타가 되겠다’ 같은 것들요. 실현 가능한 일이든, 그렇지 않든 간에 누구나 마음속에 그리는 꿈들은 한두 개쯤 있을 거예요. 그런데 힙합은 제가 단 한 번도 꿈꿔본 적 없는 일이었어요. 그런 일이 지금 제게 기적처럼 일어났으니, 그 결과물을 저라도 고이고이 모셔야죠. 그래서 매일 제 노래를 열심히 듣고 있습니다(웃음).”

촬영과 인터뷰를 모두 마치고 그녀는 모니터 화면에 비친 자신의 사진을 한동안 빤히 들여다봤다. 과거 성형 직후 찍은 화보집 탓에 큰 상처를 받았으니, 잡지에 자신의 어떤 사진이 실릴지는 그녀로선 굉장히 걱정스러운 문제일지도 모른다.

“예전엔 다들 카메라를 보고 웃으라고만 했어요. 자연스러운 모습을 사진에 담은 건 정말 오랜만인 것 같아요. 제게 이런 모습이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았어요. 예전엔 왜 몰랐을까요. 진짜 나를 발견하는 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닌데 말이죠.”

힙합이 그녀에게 가져다준 건 양미라 본연의 모습이었다. ‘버거 소녀’로, ‘성형 논란의 아이콘’으로 가려져 한동안 잊고 살았던 ‘진짜 양미라’ 말이다.



사진 홍중식 기자
디자인 최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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