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보고 맛보고 즐기는 영화 디깅

오한별 객원기자

2026. 10. 16

OTT로 언제든 영화를 볼 수 있는 시대지만, 관객의 몰입은 스크린 속에서 끝나지 않는다.
관람을 넘어 향유로 확장되는 요즘의 영화 감상법.

요즘 영화를 감상하는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는 분위기다. 과거에는 영화관에서 한 번 관람하는 것으로 감상이 일단락됐다면, 요즘 관객들은 영화 한 편을 중심에 두고 다층적인 경험을 스스로 만들어낸다. 어떤 매체로 어떻게 소비하느냐에 따라 영화가 완전히 새로운 경험으로 확장되기 때문이다. 

단 한 편의 영화에 이토록 깊이 침투하는 ‘디깅(digging)’ 현상. 그 바탕에는 영화를 소비하는 환경과 관객의 인식 변화가 맞물려 있다. 언제 어디서나 손쉽게 콘텐츠를 즐기는 OTT 시대가 열리면서, 영화를 한 번 관람한 사실만으로는 만족감을 얻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문화 소비를 통해 자신의 취향을 증명하고 드러내는 SNS 문화가 더해졌다. 이제 관객은 작품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영화를 직접 해체하고 재해석하는 플레이어로 거듭나고 있다.

해석하고 덧붙이는 능동적인 관객들

올해 7월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영화 ‘호프’는 관객이 주도하는 집단 지성의 장이 어디까지 확장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사례로 꼽힌다. 고립된 항구 마을에서 펼쳐지는 재난 SF 스릴러인 이 작품은 개봉 직후 호평과 혹평이 팽팽하게 맞섰다. 흥미로운 점은 관객들의 반응이었다. 감독의 의도를 수동적으로 읽어내기보다 저마다의 가설과 해석을 쏟아내며 영화를 재가공하기 시작한 것이다.

유튜버 김단군은 개봉 이후 5차례에 걸쳐 ‘호프 망상회’ 콘텐츠를 올리며 이러한 과몰입 열풍에 불을 지폈다. 연출자의 실제 의도보다 관객의 자의적인 해석과 ‘뇌피셜’이 더 재미있고 유효하다는 취지의 “나홍진 감독이 뭘 알아”라는 발언은 순식간에 하나의 ‘밈’으로 확산됐다. 방송인 유병재와 유튜버 침착맨, 이동진 평론가 등도 저마다의 이론을 풀어놓으며 가세했다. 할 말이 넘치는 ‘호프 망상러’들을 위해 독립출판사 디깅룸은 비평집 ‘호프 끝장’을 출간하기에 이르렀다. 호평이든 혹평이든 영화를 본 모두가 한마디씩 보태고 싶어 하는 이례적인 반응을 아예 책 한 권의 담론으로 묶어낸 것이다.

작품에 대한 애정은 단순한 온라인 해석을 넘어 실제 행동으로까지 이어진다. 4월 개봉한 공포영화 ‘살목지’는 누적 관객 324만 명을 넘어서며 2003년 ‘장화, 홍련’(314만 명)이 보유하던 국내 공포영화 최다 관객 기록을 23년 만에 갈아치웠다. 흥행 배경에는 온라인 밈의 영향이 컸다. SNS에서 “영화를 보고 안 무섭다고 허세 부리는 건 가짜 광기, 극장 문을 나서자마자 심야의 실제 예산 저수지로 차를 모는 게 진짜 광기”라는 밈이 퍼지면서, 실제로 자정 무렵 저수지에 200여 대의 차량이 몰려가 텐트를 치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야간 방문객이 급증하자 충남 예산군은 결국 오후 6시 이후 보행자 통행을 금지하고 차량을 24시간 통제하기에 이르렀다.



스크린을 넘어 텍스트와 원전으로

체험과 해석의 유희를 넘어 관객들은 작품의 원전이나 텍스트 자체를 깊이 파고들기도 한다. 올해 최고의 화제작으로 손꼽히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개봉 37일 만에 누적 관객 1033만 명을 돌파하며 2022년 ‘아바타: 물의 길’ 이후 4년 만에 ‘천만 외화’ 반열에 올랐다.

흥행의 중심에는 단연 IMAX 상영관이 있다. 놀란 감독이 작품 전편을 70mm IMAX 필름으로 촬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해당 화면비를 온전히 구현하는 CGV 용산아이파크몰 IMAX관은 예매 창이 열릴 때마다 전 회차 즉시 매진을 기록했다. 관객들은 영화 감상을 넘어 원전인 호메로스의 서사시 ‘오디세이아’를 찾아 읽는가 하면, 2000년대 초반 인기를 끈 ‘만화로 보는 그리스 로마 신화’(홍은영 작가 판)까지 다시 호출했다. 과거 저작권 분쟁으로 절판된 이 구판은 현재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18권 세트가 40만~100만 원대에 매물로 올라오고 있다. 출간 당시 권당 8500원이었던 낱권 가격도 급등해 오디세우스의 귀향을 다룬 16권은 현재 4만5000원에 거래될 정도다.

좋아하는 작품일수록 영화 속 문장과 대사를 집요하게 탐구하려는 경향이 짙다. 2022년 개봉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각본집 소장 열풍을 일으키며 지금까지 25쇄를 찍었고, 지난 7월에는 그의 데뷔작부터 최근작까지 9편을 묶은 ‘박찬욱 각본 컬렉션’도 출간됐다. 지난 2월 개봉한 ‘왕과 사는 남자’ 역시 누적 관객 1600만 명을 돌파한 흥행에 힘입어 3월 출간된 각본집이 직후 종합 베스트셀러 3위에 올랐다.

관람이 하나의 유희이자 경험이라면, 굿즈는 그 경험을 손에 쥐어 자신의 취향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마지막 단계다. 9월 개봉한 로버트 패틴슨·젠데이아 주연의 영화 ‘더 드라마’는 브랜드 썬러브투어와 협업한 티셔츠를 9월 4일부터 6일까지 사흘간 서울 한남동 팝업스토어에서만 한정 판매했다. 이 행사는 온라인 판매 없는 오프라인 한정 판매 방식으로 진행됐는데, 오픈 직후 전량 품절됐다. 발매가 5만9000원짜리 티셔츠는 현재 중고 거래 플랫폼에서 10만 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이처럼 요즘 관객들은 스크린 안팎을 능동적으로 넘나들며 자신만의 다채로운 문화 경험을 완성해나간다. 단 한 편의 영화를 ‘찍먹’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끝까지 파고드는 디깅 경험을 즐기며 자신만의 라이프스타일로 재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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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교보문고 네이버영화 디깅룸 썬러브투어 유튜브 사진출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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