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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과 대치동 들썩인 '의대 증원' 후폭풍

문영훈 기자

2024. 02. 22

2006년 이후 의대 정원은 3058명으로 유지됐다. 2월 초 정부가 ‘의대 증원’ 수치를 구체화하자 대한의사협회는 파업까지 불사하겠다며 맞서고 있다. 

2월 15일 서울시의사회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2월 15일 서울시의사회는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집회를 열었다.

정부가 의대 입학정원을 올해부터 2000명 늘리기로 하면서 정부와 의사 단체 사이 갈등이 극으로 치닫고 있다. 2월 6일 보건복지부는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방안 관련 브리핑’을 열고 2035년 1만5000명의 의사가 부족할 것이라는 전망을 토대로 2035년까지 1만 명 증원을 목표로 삼아 오는 입시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3058명에서 5058명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의사 및 의대생들은 근무 중단, 동맹휴학 등을 선언하며 증원 계획에 적극 반발하고 있다.

정부는 국민 생명과 건강권 보장을 위해 의대 정원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발표한 통계 자료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임상의사(한의사 포함)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전체 회원국 중 멕시코(2.5명) 다음으로 적다. 이로 인해 지역 의료가 붕괴되고, 필수 의료 분야 의사가 부족하다고 본 것이다.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기준 인구 1000명당 전국 평균 활동 의사 수는 서울은 3.47명인 데 비해 경북은 1.39명에 불과했다. 여기에 인기 과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 쏠림 현상으로 인해 필수 의료 과목인 ’내외산소‘(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 지원자가 줄었다. 정부는 의사 인력을 확충하면 수도권 외 지역과 필수 의료 과목에 대한 ‘낙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대한의사협회(의협)를 비롯한 의사 단체는 즉각 반발했다. 개원의를 주축으로 한 의협 산하 16개 시도 의사회는 2월 15일 전국 곳곳에서 궐기대회를 열었다. 서울시의사회 소속 의사 300여 명은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정부의 의대 대폭 증원을 비판했다.

전공의 역시 집단행동에 나섰다. 서울 5대 병원(삼성서울·서울대·서울성모·서울아산·세브란스 병원) 전공의들은 전원 사직서를 제출하고 근무 중단을 예고했다. 2월 16일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페이스북을 통해 “빅5 병원 전공의 대표들이 현안 대응 방안에 대해 긴급히 논의했다”며 “추후 전체 수련 병원을 대상으로 (집단행동) 참여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월 19일 밤 11시 기준 사직서를 낸 전공의는 100개 병원, 6415명이다. 각 병원에서 전공의 비중은 30~40% 수준으로 사직 릴레이가 본격화하면 의료 현장 혼란은 불가피하다. 2월 15일 한림대 의대 4학년이 1년간의 동맹휴학을 선언한 이후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의대협) 측은 동맹휴학 참여 여부를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의사의 저돌적인 반대는 왜?

정부는 전공의 파업 등 의료계 반발에 강공 드라이브로 응수하고 있다. 2월 16일 박민수 보건복지부 제2차관은 “전공의들이 복귀하지 않으면 그에 따라 처벌이 가해질 것”이라며 “전공의가 장기간 복귀를 안 해서 병원 기능에 상당한 마비가 오고, 실제로 사망 사례나 중대한 위해가 발생할 경우는 법정 최고형까지 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2월 18일 대국민담화를 통해 “집단행동으로 인한 의료 공백은 국민 생명과 건강을 볼모로 삼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라며 “전공의 여러분의 노고를 잘 아는 국민의 마음과 믿음에 상처 내지 말고 환자 곁을 지켜달라”고 말했다.

의협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를 구성하고 3월 10일 대규모 집회를 열 전망이다. 한 총리 담화 직후 비대위는 “의사라는 전문직을 악마화하면서 마녀사냥을 하는 정부의 행태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에 크게 실망했다”며 “환자 곁을 지켜달라는 부탁을 가장한 겁박”이라고 비판했다.

현재 전국 의과대학의 정원은 3058명으로 2006년 이후 동결된 상황. 이와 비교해 간호대학 정원은 2008년 1만1686명에서 2020년 2만1083명으로 꾸준히 증가해왔다. 지난 정부 역시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지만 집단 휴진에 부딪혀 무산됐다. 여론은 의대 정원 확대에 우호적이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2023년 12월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89.3%가 의대 증원에 찬성했다. ‘2000명 증원’ 계획이 발표된 뒤인 2월 13~15일 실시된 한국갤럽의 여론조사에서도 의대 증원에 긍정적이라는 응답이 76%에 달했다.

여론을 등에 업고 정부는 의대 증원 추진 계획을 철회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의사 및 의대생 단체에서는 왜 의대 증원에 강경하게 반대하며 파업 선언까지 불사할까. 우선 증원 숫자에 대한 반발이 크다. 정부는 지난해 11월 40개 의과대학을 대상으로 의대 정원 확대 수요를 조사했는데, 2025학년도 2151~2847명으로 나타났다. 의협은 이를 두고 “졸속적이며 비과학적인 수요 조사”라고 질타했지만 2월, 2000명 정원 확대에 그대로 반영됐다.

또 의협 측은 의대 정원 확대가 지방 의료나 필수 의료 부족 현상을 해결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수호 의협 비대위 언론홍보위원회 위원장은 KBS ‘전종철의 전격시사’에서 “필수 의료를 하고자 하는 의사에게 유인책을 써야 필수 의료가 살아나는 것이지, 필수 의료로 가지 않는 원인을 그대로 둔 채 의대 정원을 늘리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세브란스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4년 차 전공의로 일했던 김혜민 의국장의 사직서가 최근 의사 커뮤니티에서 화제에 올랐다. 그는 “소아청소년과가 ‘돈을 벌어오지 못하는 과’이므로 지원해주지 않아 입원전담의를 구하기도 어렵고, 정부의 지원도 없어 교수와 강사가 전공의의 빈자리를 메우며 이제는 정말 모두가 지쳐가고 있다”며 “의사가 5000명이 된들, 소아청소년과를 3년제로 줄인들 정당한 보상이 주어지지 않는다면 지원자는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썼다.

그간 정부와 의료계의 소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 계획을 발표하며 “의료계를 비롯한 사회 각계각층과 130차례 이상 소통했다”는 입장을 냈지만 의료계 입장은 다르다. 의대협 측은 성명서를 통해 “보건복지부는 학생 의견을 듣고 싶다는 입장을 전하며 2차례 일자를 정했으나 모두 일방적으로 취소 및 무기한 연기 후 증원 계획을 발표했다”고 밝혔다.

‘긴급’ 입시설명회 열리는 대치동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의대 입시 홍보 현수막이 세워져 있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학원가에 의대 입시 홍보 현수막이 세워져 있다.

의료 공백에 대한 우려와 별개로 학원가는 의대 증원 소식으로 들썩이고 있다. 정부가 제시한 확대 정원 수 2000명은 서울대 이공 계열 전체 모집 정원(1775명)보다 많은 숫자다. 자연 계열 입학 인원의 의대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는 상황에서 증원 규모가 확정되면 입시 판도 지각 변동이 불가피하다. 의대 증원 발표 후 대치동 등 학원가에서는 긴급 입시설명회가 잇따라 열리고 있다.

종로학원은 의대 정원이 2000명 늘면 의대 합격선은 수능 국어·수학·탐구 합산 점수(300점 만점) 기준 281.4점으로 지금보다 4.5점 낮아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자연 계열 합격자 중 의대 합격 가능권에 드는 비율도 현재 45.4%에서 78.5%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동시에 보건복지부는 의대생 지역 인재 선발 비율을 60%까지 확대하겠다는 방침이다. 지역 인재 선발 인원은 기존 1000명대에서 2000명대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초등 4~6학년 학부모들은 이미 지역 인재 선발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려 규모, 절차 등을 문의해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구체적인 대학별 정원과 지역 인재 전형 규모 등은 오는 5월 말 대학들이 2025학년도 전형 계획을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할 때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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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뉴스1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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