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렇다면 우리가 할 일은? 2010년대로 시간을 돌려 당시의 패션에 집중하는 것! 그야말로 대혼돈의 멀티버스였던 2000년대 초를 지나 2010년대에 다다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어두컴컴한 지하의 클럽이나 펍에서 로큰롤, 디스코 무드의 음악을 즐기던 청춘들. 당대의 힙스터들은 술과 담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달려갔고, 자연스럽게 인디 록, 파티, 페스티벌 등이 패셔너블한 문화로 자리 잡았다. 쾌락주의, 자유, 반항 등의 키워드와 떼놓을 수 없는 인디 슬리즈 스타일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무질서의 미학’이다. 보헤미안 무드의 미니드레스와 벨트 그리고 진흙이 덕지덕지 묻은 레인부츠를 신고 페스티벌 룩을 선보인 케이트 모스, 해진 데님 팬츠를 각자의 취향에 맞춰 멋스럽게 연출한 알렉사 청과 픽시 겔도프, 후줄근한 티셔츠에 넥타이를 걸친 모델 이리나 라자레누, 스카프나 헤어벤드를 머리에 둘러 보헤미안 스타일을 연출한 올슨 자매, 찢어진 망사 스타킹에 데님 쇼츠와 초커 차림으로 무대에 오른 테일러 맘슨까지. 이때 땀에 흠뻑 젖은 듯 기름지고 헝클어진 헤어스타일과 퀭한 눈, 아래 속눈썹까지 두껍게 그린 블랙 아이라인과 스모키 아이도 빠질 수 없다. 지저분하고 정돈되지 않은 스타일이 곧 인디 슬리즈의 정체성이 된 것이다.

에디 슬리먼만큼 열렬한 구애는 아니지만, 디자이너들도 런웨이에 저마다 재해석한 인디 슬리즈 코드를 심어두었다. ‘구찌 트윈스버그’라는 테마로 쌍둥이 모델 68쌍을 패션쇼에 세운 알레산드로 미켈레는 성별, 시대, 국적 등의 경계를 넘어선 룩을 선보였다. 레오퍼드 프린트 레깅스나 오버사이즈 바이커 재킷, 스팽글 장식 헤어 스카프 등 인디 슬리즈 스타일의 아이템도 시선을 사로잡았다. 코치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스튜어트 베버스는 뉴욕 코니아일랜드 부두와 다큐멘터리 ‘파리 이즈 버닝’에서 영감을 받아 2023 S/S 컬렉션을 완성했다. 빈티지 워싱을 더한 오버사이즈 레더 재킷으로 오프닝을 장식했고, 해골 펜던트를 단 히피풍의 비즈 목걸이나 하이톱 슈즈, 베이비 돌 드레스와 메리 제인 슈즈 등 2010년대 알렉사 청의 옷장을 보는 듯한 룩들이 눈길을 끌었다.

이번 시즌 런웨이에 부활하며 ‘유행은 20년 주기로 돌아온다’는 가설을 증명한 인디 슬리즈. 2010년대에 입고 다녔던 물 빠진 스키니 진이나 스키니 스카프, 스터드 디테일 액세서리, 찢어진 망사 스타킹, 로큰롤 무드의 낡은 티셔츠가 아직 옷장에 남아 있다면 꺼내볼 것. 이때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무심함까지 갖춘다면 인디 슬리즈를 맞이할 준비는 끝난 것이다.
#인디슬리즈 #패션트렌드 #여성동아
기획 최은초롱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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