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번화가의 한 룸카페 내부.
“룸 카페를 유해업소로 취급하는 건 청소년의 신체접촉과 성행위 자체를 범죄화하는 것”(청소년 인권행동 단체 ‘아수나로’)
최근 밀실형 룸 카페 등 신·변종 룸 카페가 ‘청소년 모텔’로 전락했다며 서울시와 경찰이 합동 점검에 나섰다. 내부가 보이지 않는 밀실형 룸 카페가 늘어나면서 청소년 안전에 대한 우려가 커진 데 따른 대책이다. 청소년 성행위가 이뤄지는 룸 카페를 금지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그들을 위한 공간을 보장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에 맞선다. 아동·청소년 전문가들은 “룸 카페 단속은 범죄 행위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며 “청소년의 성적자기결정권과는 다른 문제”라고 경고한다.
2월 7일 서울 마포구 번화가 일대를 찾았다. 평일 오후 4시임에도 홍대입구역 인근 룸 카페엔 학생들로 붐볐다. 기자가 처음 방문한 곳은 “(사람이 많아) 혼자 온 손님은 못 받는다”며 대기를 거절했다. 길 건너편 룸 카페도 대기 줄은 길었다. 카운터 옆 벤치에는 남녀 여럿 쌍이 앉아 입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앳된 얼굴과 차림이 영락없는 중고등학생의 모습이었다. “청소년 출입 금지 업소”라는 여성가족부의 발표와 달리 룸 카페 내부엔 큰 글씨로 “밤 10시까지 청소년 이용 가능”이라는 안내가 붙어 있었다.
30분 정도 대기 후 입장한 룸 카페 방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조도 조절이 가능한 무드 등이 달려 있어 완전히 등을 끌 수도 있었다. 복도를 향해 뚫린 창이 있지만 반 이상이 시트지로 가려져 키 160cm인 기자의 눈높이에선 다른 방 내부가 아예 보이지 않았다. 방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밖에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비디오 시청 기자재가 설치돼 있었고, 바닥엔 얇은 매트리스가 깔려 있었다.
같은 날 찾은 서울 서대문구의 한 룸 카페는 더 폐쇄적이었다. 내부엔 문을 잠글 수 있는 도어록과 침대, 화장실까지 갖춰져 완벽한 숙박업소 형태를 띠고 있었다. 이곳엔 “청소년 출입·고용 금지 업소”라는 표지가 있었지만 시선이 잘 닿지 않는 자동문 출입구 맨 위쪽에 부착돼 있었다. 입실 시 별다른 신분증 검사도 거치지 않았다.
법적 사각지대가 변종 룸 카페 양산
룸카페 방마다 설치된 도어락.
샤워실에는 세면도구까지 구비돼 있다.
이런 이유로 2015년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출입 및 고용제한 표시 의무제’를 시행했지만 그 효과도 미미하다. 업종 관계없이 밀폐된 공간·칸막이 등으로 구획돼 있거나 침구·시청 기자재를 설치한 경우 신체접촉 또는 성행위 등이 이뤄질 우려가 있는 곳이 그 대상이다. 또 청소년 출입·고용 금지 업소로 지정될 시 이를 안내하는 표지를 의무 부착해야 한다. 여가부에 청소년 출입을 제한하는 구체적인 기준을 묻자 “평균적 눈높이에서 내부 사람과 모니터 화면이 보이지 않으면 단속 대상”이라며 “이를 구체화할 경우 룸 카페 업자가 또다시 사각지대를 노릴 가능성이 있어 (정확한 기준은) 설정하지 않는다”는 모호한 답변이 돌아왔다.
침대와 TV가 구비된 서울 서대문구의 한 밀실형 룸카페.
“가장 안전한 공간은 집”
“아파트 계단이나 복도, 상가 공중화장실 정도요. 더 비위생적이겠죠.”(윤 모 양·16)“지하 주차장이요. 사람 없고 어두운 곳.”(신 모 군·15)
룸 카페 방문 경험이 있는 청소년에게 룸 카페의 대안을 묻자 이러한 대답이 돌아왔다. 성행위 장소를 찾기 위해 더 위험한 곳을 선택할 가능성을 언급한 셈이다. 현행법상 청소년의 성관계는 위법이 아니다. 만 13세 미만의 미성년자와 성관계할 경우 미성년자의제강간죄로 처벌받지만 만 13세 이상 상호 동의하에 성관계를 가질 경우 처벌받지 않는다. 교육부에서 2015년 배포한 성교육 표준안에도 피임, 임신 등 성 경험 관련 내용이 포함돼 있다. 2월 3일 청소년 인권행동 단체 아수나로는 “청소년의 신체접촉이나 성행위가 이뤄질 수 있다는 이유로 룸 카페를 유해업소로 취급하는 것은 청소년의 성적 권리를 위협하는 것”이라는 내용의 논평을 냈다.
하지만 청소년 성관계와 룸 카페 허용은 별개의 문제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이현숙 탁틴내일 상임대표는 “청소년은 성적자기결정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들의 성관계를 일탈행위만으로 봐서는 곤란하다”면서도 “밀실형 룸 카페는 원조교제·불법촬영 등의 범죄 위험이 높아 관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현행법상 청소년 출입 금지 업소에 성인과 미성년가 동행할 경우 업주는 처벌 대상이지만 미성년자를 데리고 간 성인이 처벌된 사례는 없다”며 “이러한 법률 사각지대에서 미성년자가 성적 착취의 대상이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결국 전문가들은 “청소년이 안전하게 성 경험을 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공간은 집”이라고 입을 모은다. 장경은 경희대 아동가족학과 교수는 “무작정 자녀의 성 경험을 막으면 더 숨기려 할 것”이라며 “첫 성 경험 나이가 낮아진 현재 상황에 맞춰 충분한 대화를 통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현숙 대표는 “우리나라 문화가 청소년 자녀의 성관계를 허용하는 분위기는 아니지만 이젠 부모 세대도 현실을 인지해야 할 때”라고 강조하면서 ‘포괄적 성교육’(CSE)을 제시했다. 어린 나이 때부터 신체와 심리, 성과 관련한 문화와 윤리 등 자세하고 다양한 교육을 하는 방식이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청소년에게 위생과 안전, 상호 동의하에 성행위가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을 주지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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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이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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