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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power woman

세계 석권 임박! 역도 샛별 박혜정

오홍석 기자 lumiere@donga.com

입력 2022.07.25 10:00:01

한국 역도계에 혜성같이 등장해 단숨에 최강자로 등극한 박혜정 선수. 솔직함과 당당함이 매력인 그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났다.
“5cm만 더 크면 좋을 텐데요….”

“아! 감독님, 그러면 남자 친구 못 사귄다고요.”

호랑이 같은 감독과 독기 가득한 선수 조합을 예상했지만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은 박혜정(19) 선수와 강민석(49) 역도 국가대표팀 감독은 친밀한 아빠와 딸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 한국 역도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박 선수는 중학생 시절부터 한국 역도계의 전설 장미란 선수의 기록을 경신하며 국내외 주니어 무대를 석권했다. ‘2022 아시아주니어역도선수권대회’ 참가를 위해 7월 15일 우즈베키스탄 타슈겐트로 떠날 박 선수를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만났다.

인터뷰가 이루어진 7월 11일은 선수촌 내부에서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선수촌 곳곳은 행사 준비로 떠들썩했다. 원래대로라면 훈련을 쉬는 날이지만 박혜정 선수와 국가대표 동료들은 훈련장을 찾았다. 임박한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쉬지 않고 담금질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훈련 시간보다 한 시간 일찍 역도 연습장에서 기자와 만난 박 선수는 체육대회 기념품인 부채를 연신 만지작거리며 쑥스럽게 인터뷰에 임했다. 답변은 대부분 단답형. 그럼에도 그는 당돌했고 솔직했다.


“선수촌 생활 답답해요”

힘든 훈련 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박혜정 선수. 밝은 성격이 그의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힘든 훈련 시간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박혜정 선수. 밝은 성격이 그의 최대 장점으로 꼽힌다.

원래 오늘은 훈련을 쉬는 날이라고 들었어요.

체육대회에 참가할 줄 알았는데, 감독님이 시합이 얼마 안 남았다고 빠지라고 하셨어요(그는 실망이 큰 듯 행사 소리가 들려오면 숙였던 고개를 들어 연신 밖을 쳐다봤다).



7월 16일 우즈베키스탄으로 출국하신다면서요.

네.

5월 그리스에서 열린 세계주니어역도선수권대회에서 3관왕을 했잖아요. 이번 대회 목표도 당연히 1등인가요.

그렇죠. 전에도 1등 했으니까요.

그렇군요. 선수촌 생활은 어떤가요. 답답하지 않으세요.

음…. 답답한데, 여기 있는 동안은 참아야죠. 못 견디겠으면 잠깐 나갔다 오고 그래요. 같이 훈련하는 언니들이랑 밥도 먹고 가끔 극장에도 가요. 최근에 ‘쥬라기 월드:도미니언’이랑 ‘범죄도시2’를 봤어요.

나갔다 오면 좀 괜찮아지나요.

아니요, 똑같아요(웃음). 그래도 국가의 대표니까 최선을 다해 결과를 보여드려야죠.

19세, 한창 놀고 싶을 나이지만 박혜정 선수는 선수촌에서 학교와 훈련장을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평일 오전에는 선수촌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충북체고에 등교하고, 선수촌에 돌아오면 다시 훈련에 참여하는 일정이다. 최근에는 대회 준비를 위해 학교에도 가지 않고 하루에 서너 번씩 훈련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다. 박혜정 선수를 지도하고 있는 강민석 감독은 “혜정이가 그래도 많이 밝은 편”이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혜정이의 최고 장점은 멘털이에요. 저 나이에 억지로 체중 유지하면서 제때 밥 챙겨 먹고, 맛없는 보충제 마셔가면서 운동하기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도 참 밝아요. 저한테 농담도 잘하고 다른 선수들과도 잘 지냅니다.”

박혜정 선수는 “괜찮습니다. 열심히 해서 국민들의 성원에 보답하겠습니다”라는, 흔히 아는 국가대표 선수의 모범 답안을 모방하지 않았다. 힘들면 “힘들다”고, 답답하면 “답답하다”고 말했다. 오늘같이 훈련하기 싫은 날은 강 감독에게 “조금만 하면 안 되냐”며 훈련량 협상을 시도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를 게으른 선수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는 장미란 선수의 고1 기록을 중3 때, 고3 기록을 고1 때 경신하며 노력을 기록으로 증명해왔다.

박 선수의 솔직함과 관련된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2019년 평양에서 ‘아시아유소년·주니어역도선수권대회’가 열렸을 당시 북한에는 극소수의 취재진만 동행해 내부 사정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대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그는 공항에서 만난 취재진에게 “애국가가 울리면 북한 관중이 다 나가 당황스러웠다. 저희는 북한 선수들에게 박수도 많이 쳐주고 호응도 해줬는데…”라며 대회 뒷이야기를 낱낱이 밝힌 것.

선수촌 훈련 프로그램은 어떤가요.

학교랑 다르죠(박혜정 선수는 선수촌에 오기 전 모교인 안산공고에서 훈련했다). 학교에서는 보조운동을 많이 했어요. 스쾃이나 데드리프트 같은 운동이요. 선수촌은 확실히 제 몸에 더 집중할 수 있도록 훈련 프로그램이 잘 짜여 있어요. 제가 인상(引上) 종목이 좀 약했는데 선수촌에 와서 안정적인 자세가 만들어진 것 같아요. 감독님들이 제게 맞는 운동을 잘 찾아주세요.

솔직하고 털털한 모습을 보면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웃음). 그냥 평범하게 다니고 있어요.

어린 시절부터 미디어에서 관심을 많이 보였잖아요. 사람들의 이목이 부담스럽진 않나요.

부담스럽죠. 예전에는 대회장에 들어갈 때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메달권에 들면서 이제는 조금씩 부담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훈련 프로그램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짜여 있나요.

학교에 가는 날은 오후, 야간 운동하고요. 안 가는 날은 새벽, 오전, 오후, 야간 운동이 있어요.

쉬는 날은 없나요.

감독님들이 훈련만큼 쉬는 날도 중요하다고 말씀하세요. 매주 목요일에는 운동을 쉬고, 주말에는 쉬엄쉬엄하죠.

훈련하기 싫은 날도 많을 것 같은데요.

있죠(한숨). 오늘 같은 날이요. 이런 날은 빨리 하고 빨리 가자는 생각이에요.

운동 안 하는 시간에는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요.

다음 운동 시간 기다리죠(웃음). 뭐 종종 유튜브도 보고 인스타그램도 해요. 배드민턴도 가끔 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요즘 웨이트 트레이닝을 대표하는 ‘3대 운동(스쾃,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 무게’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알겠네요. 박 선수 기록은 어떻게 되나요.

데드리프트는 220kg, 스쾃은 260kg, 그리고 벤치프레스는 80kg이요. 벤치프레스는 잘 안 해서요(웃음).

대단한데요. 동네 헬스장에 가본 적도 있나요.

네. 제가 가니까 사람들이 다 쳐다보더라고요. 절 알아보시는 분들은 와서 사인해달라고도 하고. 부끄럽습니다(웃음).

요즘 운동선수들 중에는 관심을 즐기는, 인플루언서 같은 선수들도 더러 있잖아요.

저는 그런 유형은 아닌 것 같아요. 얌전히 운동만 하는, 그런 스타일입니다.

그렇군요. 요즘 웨이트 리프팅이 인기가 높아지면서 사람들이 무게 증량에 관심이 많아요. 팁을 주신다면요.

최대 무게보다 조금 낮은 기록으로 횟수를 늘려가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인상은 역기를 몸에 가깝게 두는 게 중요하고요. 용상은 팔꿈치를 빨리 돌려서 바벨을 잘 받아줘야 해요.

좋아하는 연예인은 없나요. 아이돌이라든가 배우 등등이요.

저는 유재석이랑 개그우먼 장도연 좋아해요. 웃기기도 하지만 구설수 없이 롱런하잖아요. 두 분 다 철저하게 자기 관리하면서 일하는 모습이 멋있더라고요.
슈퍼스타는 종목의 얼굴이 돼 어린이들의 우상으로 자리한다. 박세리를 보고 골퍼의 꿈을 키운 ‘박세리 키즈’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를 석권하고 있다. 수많은 어린이들이 김연아를 보고 아이스링크를 처음 찾았다. 박혜정 선수는 ‘장미란 키즈’다. 중학교 1학년 때 장미란 선수가 금메달 따는 모습을 보고는 역도를 하고 싶어 안산시청 실업팀을 무작정 찾아가면서 역도에 입문했다. 그는 2019년, 우상인 장미란 선수와의 만남에 대해 “선배님이 언니라고 부르라고 하셨는데 부끄러워 말도 잘 못 했다”며 “재미있는 얘기를 해주셨는데 기억도 안 난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돈 벌면 저축해 집도 사고 차도 사고 싶어요.”

현재 박혜정 선수의 대회 공인 최고 기록은 인상 124kg, 용상 166kg으로 도합 290kg. 지난해 열렸던 도쿄 올림픽에 섰다면 은메달을 거머쥘 수 있었을 수치다. 주니어 무대에서 적수가 없는 박혜정 선수는 지난 4월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첫 시니어 대회를 경험했다. 국내 대회였지만 국가대표 선발전이라는 치열한 대회임에도 최중량급(87kg 이상)에 출전해 최정상에 섰다. 이제 본격적으로 시니어 대회에 출전하며 우상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한 첫걸음을 뗀 셈이다.

시니어 무대는 어떻던가요.

확실히 분위기가 많이 무거웠어요. 주니어 무대에서는 1차 시기에 메달 안정권인 무게를 들고 2, 3차 때 신기록에 도전했거든요. 그래도 금메달을 땄어요. 시니어 무대에서는 언니들이랑 겨루는 양상이 되다 보니까 좀 더 떨리더라고요. 긴장감을 놓을 수 없고 경쟁심도 생기고요. 그런 감정들이 제 기록 향상에 좀 더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제가 승부욕이 센 편이거든요. 앞으로 국제 무대에 나가면 좀 더 치열하겠죠.

이제 성인 무대에도 서고, 성인이 되는데 설레진 않으세요.

설렌다기보단 이제 시니어 무대만 뛰어야 하니까 좀 걱정이 앞섭니다. 실업팀에도 가게 되겠네요.

실업팀에 가면 월급도 받을 텐데 어디에 쓰실 건가요.

저축할 거예요(웃음). 집도 사고 싶고 차도 사고 싶어요.

국제 무대를 보면 박 선수 체급에 신장이 180cm가 넘는 선수들도 많던데요. 박 선수는 아직도 키가 크고 있나요.

제 키는 175에서 176cm 사이를 왔다 갔다 하더라고요. 이제 더 안 크는 것 같아요. 그만 크고 싶어요.

여기서 강민석 감독이 치고 들어왔다. “5cm만 더 크면 좋을 텐데요…. 중량급 선수들은 다리가 길면 유리하거든요.” 그러자 박 선수가 “아! 감독님, 그러면 남자 친구 못 사귄다고요”라며 핀잔을 줬다. 강 감독은 “은퇴하고 나중에 빼면 되지. 미란이도 은퇴하고 날씬해졌잖아”라고 말하며 웃었다.

역도가 단순히 힘세고 덩치 큰 사람이 잘하는 운동이란 생각은 오산이다. 훈련을 하지 않은 일반인은 맨몸으로 양손을 들고 ‘오버헤드 스쾃’만 해도 자세가 흐트러지기 일쑤다. 역도는 근력뿐만 아니라 민첩성과 유연성을 모두 요한다. 박혜정 선수는 이 삼박자를 고루 갖췄다. 강민석 감독은 “클린(땅에 놓인 바벨을 들어 어깨 위에 올려놓는 동작) 자세를 할 때 역기를 받는 모습을 보면 정말 남다릅니다. 아주 부드러워요”라며 박 선수의 재능에 찬사를 보냈다.

박혜정 선수는 어릴 때부터 힘이 셌나요. 골목대장이었을 것 같은데.

아니에요(웃음). 어린 시절은 그냥 자유분방했고요. 키는 좀 많이 커서 항상 뒷자리에 앉았어요.

역도는 힘도 세야 하지만 유연해야 하잖아요. 별도로 훈련은 안 하나요.

네. 훈련은 따로 안 합니다. 부모님께 운동신경을 많이 물려받은 것 같아요. 아버지는 남자 평균 키에 90kg 정도 나가요. 어머니는 투원반 육상선수 출신이시고, 운동을 원체 좋아하시죠.

항저우, 파리 그리고 로스앤젤레스

우즈베키스탄 타슈겐트에서 열리는 ‘2022 아시아주니어역도선수권대회’를 위해 쉬는 날에도 훈련장에 나온 역도 국가대표 선수들. 왼쪽부터 박혜정(19), 최지호(20), 신록(20), 박형오(20), 이은화(20).

우즈베키스탄 타슈겐트에서 열리는 ‘2022 아시아주니어역도선수권대회’를 위해 쉬는 날에도 훈련장에 나온 역도 국가대표 선수들. 왼쪽부터 박혜정(19), 최지호(20), 신록(20), 박형오(20), 이은화(20).

항저우 아시안게임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연기돼서 김이 좀 빠졌겠어요.

어렵게 국가대표가 됐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네요.

실전에서 긴장을 많이 하나요.

네. 긴장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긴장돼서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대처하는 방법은요.

“할 수 있다”고 혼잣말을 많이 해요. 그러면 조금 나아지더라고요.

박혜정 선수의 단기적 목표, 장기적 목표가 궁금해요.

단기적으로는 다치지 않고 운동하는 거예요. 그리고 올해 안에 인상 130kg, 용상 170kg, 총합 300kg으로 기록을 늘리는 겁니다. 장기적 목표는 당연히, (씨익 웃어 보이며) 올림픽 금메달이죠.

인터뷰를 마치고 역도 국가대표 선수들의 훈련을 참관했다. 2021년 세계역도선수권대회 남자 61kg급에서 1위를 한 신록(20) 선수를 비롯해 박형오(20), 최지호(20), 이은화(20) 선수가 각자 자리를 잡고 보호 장비를 착용했다. 오늘은 인상 훈련이 있는 날. 박혜정 선수가 휴대폰으로 신나는 음악을 재생시켰다. 다섯 선수는 순서에 맞춰 차례대로 역기를 들어 올렸다. 자기 차례가 오면 동료들이 이름을 호명해주면서 기를 불어넣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혜정, 혜정 파이팅!” 동료의 응원 소리에 맞춰 박 선수가 진지한 표정으로 바벨을 가볍게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대한민국 역도는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메달리스트 장미란, 사재혁, 윤진희라는 연이은 스타 탄생에 최전성기를 맞았다. 그러나 이후 어두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슈퍼스타가 부재했고, 정치권에서 민간 기업의 체육계 후원을 문제 삼은 뒤 기업 후원이 줄면서 선수 육성 단계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촉망받는 어린 선수들의 어깨에 지워진 짐은 결코 가볍지 않다.

강민석 감독에 따르면 박혜정 선수의 신체 능력은 현재 최고치에 거의 도달해 있는 상태다.

“혜정이가 어리지만 신체 능력은 거의 다 끌어올려 놨어요. 역도는 경력도 많이 작용하는 스포츠거든요. 이제 기술만 좀 더 익히고 경험을 쌓다 보면 올림픽에서 좋은 결과를 기대해볼 만합니다.”

자신과의 싸움만을 남겨두고 있는 박혜정 선수. 인터뷰 도중에는 쑥스러워했던 그가 구슬땀을 흘리며 진지하게 훈련에 임하는 모습을 보면,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부담감을 잘 알고 있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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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지호영 기자 



여성동아 2022년 8월 70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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