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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YLE

fashion

패션이 전쟁을 막을 수 있을까 #PrayforUkraine

글 오한별 프리랜서 기자

2022. 04. 21

패션계가 세계 곳곳에서 우크라이나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 옷과 시와 노래, 그리고 침묵으로 연대의 메시지를 보내면서.

엄숙하고 조용하게 치러진 2022 F/W 패션위크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스웨트 셔츠를 입고 등장한 이자벨 마랑.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스웨트 셔츠를 입고 등장한 이자벨 마랑.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한동안 여러 패션쇼가 취소되거나 연기됐다. 3월 첫 주 열린 파리 패션위크는 당초 코로나19 팬데믹 종식과 일상 복귀를 기념하는 첫 대규모 패션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시작 직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더 이상 떠들썩하고 화려한 분위기를 꿈꿀 수 없게 된 것. 3월 1일, 행사 시작에 맞춰 랄프 톨레다노 파리 패션위크 조직위원장은 “패션쇼를 엄숙하게, 이 어두운 시간을 반영하라”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디자이너들 또한 자신들의 무대를 통해 반전 메시지를 전하는 데 앞장섰다.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힘겹게 걷는 발렌시아가 쇼의 모델.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힘겹게 걷는 발렌시아가 쇼의 모델.

발렌시아가의 쇼는 디자이너 뎀나 바잘리아가 우크라이나 시인의 시를 낭송하며 시작됐다. 360도 뷰가 가능한 돔 형태 컬렉션장의 좌석 위엔 우크라이나 국기 색 티셔츠가 메모와 함께 놓여 있었다. “지금 같은 상황에 패션위크를 하는 것이 어처구니없지만, 쇼 취소는 ‘항복’을 의미하기에 강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조지아 출신인 바잘리아는 1993년 압하지야-조지아 분쟁으로 난민이 된 경험이 있다. 그의 아픔이 담긴 메시지다. 이어진 쇼는 모델들이 매서운 눈보라 속에서 힘겹게 걷는 모습으로 연출됐다. 전쟁을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 난민들 모습을 투영한 것으로 해석된다.

침묵 속에서 진행된 조르지오 아르마니 쇼.

침묵 속에서 진행된 조르지오 아르마니 쇼.

조르지오 아르마니의 쇼는 음악 없이 침묵으로 치러졌다. 조르지오 아르마니는 “비극을 맞은 이들을 존중하기 위한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자벨 마랑 또한 컬렉션 시작 직전 우크라이나 국기를 상징하는 스웨트 셔츠를 입고 런웨이에 등장했다. 그는 “이자벨 마랑 기금을 통해 유엔난민기구와 유니세프에 기부했다. 지금은 하나하나의 목소리가 중요한 때”라고 화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영국 디자이너 스텔라 매카트니는 존 레넌의 노래 ‘기브 피스 어 챈스(Give Peace A Chance·평화에 기회를 주세요)’로 쇼의 엔딩을 채웠다. ‘기브 피스 어 챈스’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내 150개 라디오 방송국이 우크라이나 지지 의사 표명을 위해 공동으로 틀었던 노래다.

컬렉션 직전 반전 메시지를 발표한 발렌티노의 디렉터 피에르 파올로 피치올리.

컬렉션 직전 반전 메시지를 발표한 발렌티노의 디렉터 피에르 파올로 피치올리.

한편 러시아의 유명 디자이너 발렌틴 유다스킨은 파리 패션위크에서 퇴출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과거 러시아 군복을 제작한 것으로 알려진 유다스킨이 우크라이나 사태에 관련해 분명한 의견을 밝히지 않은 점이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랄프 톨레다노는 “패션위크 관계자들이 그에게 의견을 물었지만, 유다스킨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반대했다면, 패션위크에서 퇴출당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지지와 기부, 보이콧 연대

국제적십자위원회에 500만 유로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한 LVMH SNS 메시지.

국제적십자위원회에 500만 유로를 기부하겠다고 발표한 LVMH SNS 메시지.

패션쇼로 메시지를 전하는 것 외에도 패션계는 우크라이나 난민을 돕기 위해 기부 행렬을 이어가고 있다. 케어링, LVMH 등 글로벌 패션 그룹이 먼저 움직였다. 케어링 산하 브랜드 구찌는 유엔난민기구에 50만 달러(약 6억원)를 기부한다고 밝혔고, LVMH는 국제적십자위원회에 500만 유로(약 67억원)를 기부했다. 메종마르지엘라, 디젤, 마르니 등을 보유한 OTB 그룹은 산하 자선단체 OTB 재단을 움직인다. 이곳은 현재 우크라이나를 탈출한 난민들이 이탈리아에 무사히 도착하도록 지원하는 단체들과 협조 중이다. 베르사체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모회사의 지원 아래 긴급 기부를 결정했다”며 유엔세계식량계획(WFP)에 동참의 뜻을 밝혔다. 베르사체의 모기업인 카프리 홀딩스는 기부금을 내는 것에 더해 의류, 의약품, 저장 식품, 생존 장비 등 다양한 물품을 난민들이 있는 폴란드 국경까지 배송할 예정이다.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기반인 브랜드 나누슈카도 자선 봉사회와의 협업을 통해 피란민에게 숙소와 음식, 옷, 교통편을 제공하기로 했다.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위해 패션위크의 수입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미카 아르가나라즈(왼쪽)와 지지 하디드.

우크라이나 피란민들을 위해 패션위크의 수입을 기부하겠다고 밝힌 미카 아르가나라즈(왼쪽)와 지지 하디드.

톱 모델들도 기부에 적극 동참하며 우크라이나에 지지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아르헨티나 모델 미카 아르가나라즈는 파리 패션위크 수입 일부를 우크라이나 단체에 기부한다고 밝혔다. 톱 모델 자매 지지 하디드와 벨라 하디드도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 분쟁으로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 패션위크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했다. 아버지가 팔레스타인 출신인 지지 하디드는 2022 F/W 패션위크에서 약 15개의 런웨이를 걸었다.

보이콧 효과도 상당하다. 에르메스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에 항의하는 의미로 러시아 안에서의 모든 상업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밝힌 후 LVMH, 케어링도 러시아 내 일부 매장을 폐쇄하고 운영을 중단했다. 버버리와 마이테레사, 나이키도 러시아로의 배송을 중단했고, H&M과 자라의 모기업인 인디텍스 등 SPA 브랜드도 러시아 내 매장을 철수한 상태다. 샤넬은 러시아 매장을 폐쇄했을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러시아인에게는 제품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샤넬은 성명을 통해 “러시아에 300유로(약 40만원) 이상 사치품 수출을 금지하는 유럽연합(EU)과 스위스의 러시아 제재를 준수하기 위한 조치”라고 덧붙였다. 이에 맞서 일부 러시아 인플루언서들은 샤넬 백을 가위로 자르는 퍼포먼스를 하기도 했다.

쇼로, 기부로, 그리고 보이콧으로 평화를 지키고자 패션계가 움직이고 있다. 패션이 전쟁과 고통을 막는 데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 고통받는 사람들과 어떻게 연대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오늘도 우크라이나의 자유와 안녕을 기원한다.

#prayforukraine #파리패션위크 #여성동아

사진 게티이미지 
사진제공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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