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혜진
입력 2021.10.13 10:30:01
중고 거래 플랫폼을 이용할 때 지금 구입하는 혹은 판매하는 물건의 가격이 적당한지, 상태가 괜찮은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날이 올지 모른다. 나이키, 이케아 등 자사 중고품을 직접 매입해 수리한 뒤 되파는 글로벌 브랜드가 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중고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가운데 예전과 다른 움직임이 눈에 띈다. 지금까지는 소비자들이 직접 중고 물건을 사고팔도록 도와주는 중고 거래 플랫폼과 중고품 전문 판매업체가 주를 이뤘다면, 요즘은 직접 자사 제품을 수거해 재판매하는 글로벌 브랜드들이 늘고 있는 것. 특히 트렌드에 민감한 패션업계에서 자원 순환 차원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유엔환경계획(UNEP)에 따르면 의류 폐기물 재활용률은 1%도 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2050년에는 전 세계 탄소 절감 예산의 4분의 1이 패션산업에서 소비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나이키 Refurbished
리퍼비시 제품들은 ‘Like New(A급 중고)’와 ‘Gently Worn(중고)’ ‘Cosmetically Flawed(외관상 결함)’ 등 3등급으로 분류해 판매한다. 다시 팔기 어려운 상태라면 신소재로 재활용하거나 기부를 한다. 판매는 정가 제품처럼 매장에서 이뤄지며 60일 안에 환불도 가능하다. 미주 내 10개 매장으로 시작해 참여 매장 수를 점차 늘릴 예정이다.

룰루레몬 Like New

리바이스 second hand

스래드업

더리얼리얼

이케아 buy-back
지난해 11월부터는 국내 전 점포에서도 바이백 서비스를 시작했다. 보통 잘 사용하지 않는 가구를 처분하려면 중고마켓을 이용하거나 돈을 내고 버려야 했는데 오히려 돈을 받고 처리할 수 있어 국내 소비자들의 반응은 좋은 편.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의자, 협탁 등 소가구 처리하기에 편리하다” “환급 카드를 당일 사용 가능해 바로 다른 물건을 사왔다” “조립하다 남은 유닛도 판매가 가능하다” 등의 긍정적 후기를 확인할 수 있다.
ESG 경영과 브랜드 충성도 2마리 토끼 잡기

반품된 중고 운동화를 세척하고 보완해 다시 판매하는 나이키.
유통 전문가들은 먼저 고객의 브랜드 충성도를 높이는 효과를 꼽는다. 실제로 나이키, 룰루레몬, 이케아 등은 중고품을 사들일 때 고객에게 현금처럼 쓸 수 있는 포인트 카드를 지급하고 리바이스는 할인 쿠폰을 제공한다. 다시 그 브랜드 제품을 구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불어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앞장서는 브랜드라는 이미지 제고 효과도 노릴 수 있다. 현재 대다수 국가에서 공격적으로 탄소중립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친환경 경영은 점점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어가는 분위기다. 이를 통해 ‘가치 소비’를 지향하는 MZ세대에게 어필할 수 있는 것은 덤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제조사의 중고 비즈니스는 반가운 일이다. 중고 거래의 관건은 제품 상태, 정품 여부, 가격인데 제조사에서 직접 매입해 수리해 내보내니 일단 믿을 만하다. 게다가 아직은 역부족이지만, 이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제조사 직영 중고 플랫폼이 활성화된다면 ‘완판’되어 구하지 못했던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득템’할 수 있다. 특히 나이키의 경우 한정판을 되파는 리셀러가 많기로 유명한 브랜드다. 리셀 문제가 불거지자 자구책으로 2019년에는 에어포스 ‘파라노이즈’의 래플(Raffle·추첨식)을 진행하면서 나이키 상의와 에어포스1 운동화를 착용한 사람만 응모할 수 있도록 조치했으나 리셀러들을 막지는 못했다.
조춘한 경기과학기술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중고 비즈니스에 뛰어든 글로벌 브랜드를 살펴보면 전부 강력한 팬덤을 지닌 브랜드”라며 “이들은 중고 비즈니스를 통해 친환경 브랜드라는 이미지를 얻을 수 있을뿐더러 직접 중고 시장에 뛰어들면 가격 관리 효과도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서비스를 표준화하는 데 적지 않은 비용이 들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팬덤이 형성된 브랜드에 한해서 내구성이 있는 제품군 위주로 더 확산될 것”이라고 향후 중고 비즈니스 시장에 대해 전망했다.
미국 기술 연구 및 시장조사 기관인 ARC 자문그룹의 스티브 뱅커 공급망 서비스 부사장 역시 비슷한 의견이다. ‘포브스’에 기고한 ‘The Circular Supply Chain: A Push for Sustainability’란 제목의 글에서 “글로벌 기업들은 폐기물과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지속 가능성 계획에 더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다”며 “기업들은 제품이 제조사로 돌아온 후 종류에 따라 어떤 리폼 과정을 거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가전제품의 경우 상황이 좀 더 까다롭다”고 설명했다.
현재 자사 중고품을 판매하는 전자제품 브랜드는 애플, 에이수스, HP 등이다. 삼성전자도 올 8월부터 북미 삼성닷컴 온라인 스토어에 별도의 카테고리를 마련하고 삼성전자에서 인증한 중고품을 새 제품의 절반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다만 아직 국내에 선보일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제공 나이키 더리얼리얼 룰루레몬 리바이스 스레드업 이케아
여성동아 2021년 10월 69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