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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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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 사러 비행기 탄다! 무착륙 비행 쇼핑 트렌드

글 정혜연 기자

2021. 06. 30

코로나19 이후 기약 없이 해외여행을 기다리던 소비자들은 명품 구매에 눈을 돌렸고, 백화점 명품 매장마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오픈런에 지친 소비자들이 면세 쇼핑을 위한 ‘무착륙 비행’에 눈을 돌리는 추세다.

“오픈런을 해도 1~2시간 대기는 기본인 데다 사고 싶은 물건은 없으니 답답하기만 해요.”

직장인 A 씨는 한 달째 주말이면 어김없이 백화점 오픈 시간에 맞춰 줄을 서왔다. 샤넬, 루이비통, 에르메스 등 인기 명품 매장은 일찌감치 대기 등록을 해야 점심시간 전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 코로나19 확산 이후 해외여행이 불가능해지자 A 씨는 모아둔 여행비를 들여 명품 가방을 사는 쪽으로 눈을 돌렸는데 그녀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소비자가 늘어난 탓인지 번번이 허탕을 쳤다. 그녀는 “힘들게 입장해도 인기 품목은 ‘재고가 없다’며 보여주지 않는다. 결국 원치 않는 물건을 사서 나올 때도 있었다”고 호소했다.

명품 관련 정보를 공유하는 온라인 카페에서도 비슷한 불만을 토로하는 게시글이 넘쳐난다. 심지어 백화점 브랜드마다 실시간 대기 번호와 전시된 품목을 공유하는 글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면세점으로 눈을 돌리는 이도 생겨나고 있다. 주부 B 씨는 “신라호텔 에르메스 매장에 샌들을 사러 방문할 때마다 사이즈가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신라면세점 내 에르메스 매장을 들렀는데 인기 가방과 신발이 넘치게 진열돼 있어 그 자리에서 무착륙 비행기 티켓을 끊을 뻔했다”고 말했다.

무착륙 국제관광비행은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출발해 다른 나라 상공에서 2~3시간 정도 날다가 다시 한국 공항에 내리는 상품을 말한다. 정부가 지난해 11월 중순, 1년여간 한시적으로 허용한 관광 상품이다. 당시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장기간 국제선 운항 중단으로 항공 관광 면세업계는 고용 불안과 기업 생존 위기에 직면했다”며 “업계를 지원하고 소비 분위기 확산을 위해 새로운 관광 형태인 무착륙 국제관광비행 도입을 추진한다”고 밝힌 바 있다.

무착륙 국제관광비행 여정을 통해 온·오프라인 면세 쇼핑을 즐기는 것도 물론 가능하다. 1인당 6백 달러까지 기본 면세가 적용되고, 별도로 술 1병(1L, 4백 달러 이내), 담배 2백 개비, 향수 60ml까지 면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비행기에 탑승할 때 검역 및 방역 절차를 진행하지만 입국 후 격리 조치와 진단 검사는 면제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만 정부는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탑승객을 전체 좌석의 4분의 3 이내로만, 하루 최대 3편으로 제한해 운항토록 했다. 정부의 발표 직후 대한항공을 비롯해 아시아나항공, 제주항공, 진에어, 티웨이항공, 에어부산 등 6개 항공사에서 1인당 10만~20만원 정도로 관련 상품을 출시했다.



지난해 12월 코로나19 재확산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국민 불안감이 높아졌지만 무착륙 국제관광비행 상품을 이용한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관세청이 6월 14일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5월 말까지 무착륙 국제관광비행을 이용한 탑승객은 1만5천9백83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탑승객들의 면세점 구매액은 2백28억원, 1인당 1백42만원꼴이다.

이용자들의 수는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5월을 기점으로 늘어나는 분위기다. 온라인상에서 무착륙 국제관광비행을 이용한 후 면세쇼핑 후기를 전하는 인플루언서 및 탑승객의 글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한 인플루언서는 화장품, 향수, 영양제 등 자신의 쇼핑 목록과 자진신고로 면세 혜택을 받은 금액을 올리며 “비행기표 값을 아끼고도 남았다”는 후기를 전하기도 했다.


면세점마다 적립금 혜택, 항공권 주기도

지난 6월 중순 서울 시내 한 면세점 입구로 여행객들이 입장하는 모습.

지난 6월 중순 서울 시내 한 면세점 입구로 여행객들이 입장하는 모습.

면세점을 이용하는 무착륙 국제관광비행 탑승객들이 실제로 어느 정도인지 알아보기 위해 6월 중순 서울 시내의 한 면세점을 찾았다. 화장품 매장들은 물론, 여러 명품 매장들 입구에 ‘MARK DOWN(가격인하)’이라고 적힌 알림판이 내걸려 있었다. 전체적으로 한산한 분위기였으나 내국인 관광객들도 적지 않게 눈에 띄었다. 한 관광객은 “무착륙 국제관광비행으로 기분도 전환할 겸 쇼핑을 나왔다. 올해 초에는 불안했는데 잔여 백신 접종까지 마쳐서인지 공항에 가는 것도 그리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러한 이용객들을 유치하기 위해 각 면세점은 항공사 및 카드사와 협업해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신세계면세점은 지난 5월, 하나카드로 당일 4백99달러 이상 구매한 고객들에게 진에어 항공권 1장을 지급했고, 신라면세점 역시 6월, 하나카드로 당일 4백50달러 이상 구매한 고객들에게 진에어 항공권 1장을 선착순으로 증정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롯데면세점은 온라인 이용객에게 당일 사용 가능한 3천 달러 상당의 적립금을 매일 지급한다.

면세점 앞의 할인 기획전을 알리는 입간판.

면세점 앞의 할인 기획전을 알리는 입간판.

무착륙 비행의 경우 면세 쇼핑이 목적인 탑승객이 대부분이다 보니 세관 심사가 까다롭게 이뤄져 입국 대기시간이 길다는 단점이 있다. 입국장에 도착하면 탑승객들은 시내 면세점에서 구입한 물품의 총금액과 출국장 및 기내 면세점에서 구입한 물품의 건별 금액을 세관신고서에 적어 자진신고 해야 한다. 인천본부세관에 따르면 무착륙 국제관광비행 초기에는 통관에 걸리는 시간이 평균 65분가량이었으나 전용 통로 구비, 면세점 구매 내역 확인서 제도 신설, 전용 검사대 확대 등 신속통관지원 대책 마련 이후 소요시간이 40% 단축돼 30분 정도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7월부터 면세점 이용객들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마친 사람은 자가격리 없이 단체 해외여행을 할 수 있게끔 방안을 마련 중이기 때문. 6월 9일 정부는 코로나19 방역 상황이 양호한 국가들과 ‘트래블 버블(Travel Bubble, 여행 안전 권역)’ 협약을 체결해 여행객 격리를 면제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방안이 실현되면 특정 국가를 방문했다가 자가격리 없이 귀가할 수 있다.

이 같은 소식에 여행 및 면세업계는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S 면세점 홍보팀 관계자는 “무착륙 국제관광비행이 반년 넘게 시행됐지만 면세점 매출이 체감할 정도로 증가한 것은 아니다”며 “다만 최근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단계적으로 이뤄지고, 정부가 단체 해외여행 허가 방안도 마련 중이어서 하반기에는 숨통이 트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사진 지호영 기자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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