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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STYLE

CEO

LG家 유리천장 뚫은 여성 경영인 구지은 아워홈 대표이사

글 정혜연 기자

2021. 06. 28

장자 경영을 원칙으로 하는 기업인 LG그룹 계열에서 드물게 여성으로서 17년째 경영에 참여하고 있는 구지은 아워홈 대표이사. 지난 6월 오빠와의 경영권 분쟁에서 승리한 그녀의 이력을 되짚어봤다.

지난 6월 4일 종합식품기업 아워홈은 이사회를 열어 구지은(54) 씨를 대표이사로 선임했다. 보복 운전으로 1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구본성(64) 전 아워홈 부회장이 이사회에서 세 여동생의 공격을 받고 대표이사직에서 해임된 후 즉각 내려진 결정이었다. 구지은 대표이사는 구자학(91) 회장의 1남 3녀 중 막내딸이다.

앞서 지난해 9월 구 전 부회장은 자신의 BMW X5 차량을 타고 서울 강남 도로를 운전하던 중 40대 남성의 벤츠 차량이 자신의 차 앞에 끼어들자 해당 차량을 앞지른 뒤 급정거해 뒤 차량을 파손시키고 도주했다. 당시 벤츠 차량의 수리비는 4백만원 가까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구 부회장의 차량을 쫓아간 벤츠 차주가 구 전 부회장의 차를 막고 “경찰에 신고했으니 도망가지 말고 기다리라”고 했으나 구 전 부회장은 자신의 차를 운전해 그를 차로 치어 허리와 어깨 등에 부상을 입혔다. 이에 구 전 부회장은 특수재물손괴와 특수상해 혐의로 검찰에 기소됐고, 6월 3일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번 이사회에서 구지은 대표이사가 경영권을 차지하게 된 데는 큰언니 미현 씨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인 것이 주효했다. 아워홈의 지분율은 구 전 부회장이 38.6%로 최대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고, 장녀 미현 씨가 19. 3%, 차녀 명진 씨가 19.6%, 구지은 대표이사가 20.7%를 보유하고 있다. 구본성 전 부회장과 구지은 대표이사는 2017년에도 경영권 분쟁을 벌인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장녀 미현 씨가 아버지 구 회장의 뜻을 따라 구 전 부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이번에는 구지은 대표이사의 편에 힘을 실어줘 화제가 됐다. 구 전 부회장이 부도덕한 일로 회사 이미지에 흠집을 내고, 경영에 있어서도 실적 악화를 개선하지 못하자 미현 씨가 여동생을 지지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미현 씨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고 있고, 차녀 명진 씨는 조정호 메리츠금융지주 회장 부인으로 대외 활동은 하지 않았다. 다만 명진 씨는 구지은 대표이사가 지난 2월 캘리스코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한 후 대표이사로 등재되며 경영 일선에 처음 나섰다.

이번 아워홈의 경영권 교체를 계기로 구지은 대표이사의 이력이 다시금 조명되고 있다. 그녀는 구인회 LG그룹 창업주의 3남인 구자학 아워홈 회장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누나인 이숙희 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LG그룹을 친가, 삼성그룹을 외가로 둔 구 대표이사를 비롯한 4남매는 한국 재계 인맥구도의 핵심으로 꼽혔다.

젊은 시절부터 경영에 뜻 내비친 재원

구 대표이사는 젊은 시절부터 전문 경영인의 코스를 밟았다. 서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보스턴대에서 인사관리 석사과정을 마친 후 삼성인력개발원과 글로벌 컨설팅 회사인 왓슨와이어트코리아를 거쳐 2004년 아워홈에 부장으로 입사했다. 당시 아워홈은 LG건설 및 LG엔지니어링을 경영하던 구자학 회장이 LG그룹에서 계열 분리해 나와 2000년 설립하고 운영해나가기 시작한 급식업체에 불과했다.



원래 LG그룹의 구씨 가문은 철저히 장자 승계를 원칙으로 회사를 운영해왔다. 장남이 경영권을 물려받을 경우 나머지 형제들은 계열사를 분리해 나가는 것이 원칙이었다. 이로써 자식들 간의 경영권 분쟁 여지를 원천적으로 차단했다. 또 아들이 없으면 성인을 입양하기도 했다. 일례로 1994년 외아들을 잃은 구본무 전 LG그룹 회장은 2004년 동생 구본능 희성그룹 회장의 장남인 구광모 현 LG그룹 회장을 나이 스물여섯에 양자로 입적했다. 2018년 구 전 회장이 세상을 떠난 뒤에는 구광모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그런 측면에서 구지은 대표이사가 아워홈의 대표이사에 오른 일은 장자 승계라는 가풍을 깬 첫 번째 사례다. 구 대표이사가 경영권을 획득할 수 있었던 데는 과거 그녀가 아워홈에서 일하며 경영 능력을 입증한 것도 한몫했다. 2004년 서른일곱의 나이에 아워홈에 입사한 그녀는 구매물류사업부장, 외식사업부장, 글로벌유통사업부장, 구매식재사업본부장 등 여러 부서장을 거치며 입사 당시 5천억원대였던 회사 매출을 11년 만에 1조3천억여 원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받았다. 그 결과 2011년 글로벌유통사업부 전무, 2015년 구매식재사업본부 본부장을 맡으며 부사장 자리에까지 올랐다.

무엇보다 구 대표이사는 급식 사업을 중심으로 하던 아워홈의 사업 분야를 다각화해 종합식품기업으로 성장시키는 데 공을 세운 것으로 알려진다. 한식 패스트푸드점 ‘밥이 답이다’, 한식당 ‘반주’ 등 50여 개 외식 브랜드가 구 대표이사가 내놓은 작품이었다. 또 미국의 멕시코 음식 패스트푸드 체인인 타코벨과 프랜차이즈 계약을 맺고 국내 처음 선보이는 등 감각적이고 트렌디한 음식 브랜드들을 내놓으며 주목받았다.

6년간 이어진 남매간 경영권 갈등

2014년 국정감사에 출석한 
구지은 대표이사(왼쪽). 
지난 6월 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보복 운전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참석한 뒤 청사를 나서는 구본성 전 부회장.

2014년 국정감사에 출석한 구지은 대표이사(왼쪽). 지난 6월 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보복 운전 관련 1심 선고 공판에 참석한 뒤 청사를 나서는 구본성 전 부회장.

회사 내에서 승승장구하던 구지은 대표이사도 2015년부터 난관에 부딪혔다. 2월 구매식재사업본부장으로 일하며 전무에서 부사장으로 승진됐는데 돌연 5개월 만인 그해 7월 구매식재사업본부장에서 보직 해임된 것. 당시 회사 안팎에서는 부사장이던 구 대표이사가 기존 경영진과 갈등을 빚었고,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부친이 경영 일선에서 배제하는 인사를 단행한 것이란 추측이 나돌았다.

그즈음 아워홈 대표는 잦은 교체로 구설에 올랐다. 2010년부터 경영을 맡아온 이승우 아워홈 사장이 2015년 1월 돌연 대표직을 내려놓고 회사를 떠났다. 그 뒤 김태준 CJ제일제당 부사장이 아워홈 사장으로 발탁됐는데 3개월 만에 사퇴를 표명하고 다시 이승우 사장이 복귀했다. 당시 오너 일가와 전문경영인 사이에 갈등이 빚어진 것으로 추측됐다. 특히 2015년 7월 보직 해임된 구지은 대표이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외부는 인정, 내부는 모략, 변화의 거부는 회사를 망가뜨리고 썩게 만든다’는 글을 올려 갈등설에 힘이 실렸다.

얼마 가지 않아 구 대표이사는 경영에 복귀했다. 2016년 1월 구매식재사업본부장에 다시금 임명된 것. 구 대표이사가 해임되고 구매식재사업본부장 자리가 장기간 비어 있었는데 당시 회사 측은 “보직 공백을 채우기 위한 조치”라고 밝혔다. 하지만 석 달 뒤 구지은 대표이사는 아워홈의 일식 돈가스 브랜드 ‘사보텐’의 경영권을 갖고 2009년 분리된 외식 기업 ‘캘리스코’ 대표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또한 아워홈 등기이사에서도 제외되며 경영권 승계구도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부침을 겪었다.

당시 구지은 대표이사가 회사에서 쫓기다시피 나온 데는 직전까지 아워홈 경영에 관심을 보이지 않던 장남 구본성 전 부회장이 등장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우세했다. 그는 2016년 4월 아워홈 등기이사에 선임되며 경영권 승계 구도에 변화를 예고했다. 그간 삼성캐피탈 부장과 삼성경제연구소 상무보를 지내며 아워홈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는데 아워홈 등기이사로 선임된 지 두 달 뒤 쉰아홉 살에 아워홈 대표이사 부회장 자리에 앉았다.

경영권이 정리된 듯 보였지만 갈등은 계속됐다. 2019년 3월 구본성 전 부회장이 구지은 대표이사가 이끌던 캘리스코 측에 일방적으로 거래 종료를 통보한 것. 아워홈은 2001년 일본의 사보텐사와 기술 제휴 및 브랜드 도입 계약을 맺고 운영해왔다. 이후 구지은 대표이사가 본부장으로 일하던 2009년 사보텐 사업 부분을 물적 분할해 캘리스코를 설립했다. 약 10여 년간 아워홈이 캘리스코에 돈가스 소스, 장국 소스 등 각종 식자재 상품과 정보기술 전산 시스템 서비스 등을 공급하며 공생해왔다.

아워홈의 일방적 통보는 캘리스코에 즉각 타격을 입혔다. 이에 따라 캘리스코는 서울중앙지법에 아워홈의 일방적인 공급 중단 조치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냈다. 이어 성명을 내고 “사보텐은 아워홈 사업의 일부였다는 태생적 한계로 사실상 종속 기업이나 마찬가지인데 아워홈이 공급을 중단한다면 사실상 사보텐은 존폐 위기에 놓일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자체적으로 대체식품을 만드는 데 시간이 걸릴뿐더러 같은 맛을 내기 어렵고, 자체 전산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막대하게 들 것”이라고 주장했다. 양측의 갈등에 사보텐 가맹점주와 종업원 등 관계자 1천5백여 명이 불안에 떨어야 했다.

내막을 들여다보면 또다시 경영권 갈등 문제에 맞닥뜨리게 된다. 당시 구지은 대표이사는 “아워홈 정기주주총회를 앞두고 구본성 대표가 아들을 사내이사로 선임하고, 이사 보수를 높이려 하는 데 이의를 제기하자 갑자기 일방적으로 거래 종료를 통보한 것”이란 뜻을 밝혔다. 또한 법원에 제출한 가처분신청서에서 “구본성 대표는 그의 배우자와 아들까지 기타비상무이사로 선임시켜 보수를 받도록 하는 등 독단적 경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갈등은 끝내 봉합되지 않았고, 결국 캘리스코는 2020년 3월 신세계푸드와 식자재 공급 및 제품 개발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연간 2백억원 규모의 식자재를 공급받기로 했다. 또 캘리스코는 다이닝 카페, 커피 전문점 등 새로운 매장을 오픈하는 데 이어 가정간편식(HMR) 사업에도 나서는 등 자구책을 마련해나갔다. 그러나 캘리스코는 지난해 90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적자 전환을 피해갈 수 없었다.


회사 안팎으로 불안 요소 여전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면세 구역 4층에 위치한 ‘아워홈 푸디움’ 매장 전경. 아워홈 사보텐, 타코벨 광화문점 전경(오른쪽).

인천공항 제2여객터미널 면세 구역 4층에 위치한 ‘아워홈 푸디움’ 매장 전경. 아워홈 사보텐, 타코벨 광화문점 전경(오른쪽).

지난 6월 경영권을 탈환한 구지은 대표이사 앞에는 난제가 첩첩이 쌓여 있다. 무엇보다 적자 문제가 심각해 기업의 존폐 위기까지 거론될 정도다. 구 대표이사가 캘리스코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겼던 2016년 아워홈의 영업이익은 8백16억원이었으나 2017년 8백12억원, 2018년 6백57억원으로 감소했다. 다행히 2019년에는 7백15억원으로 반등했으나 지난해에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93억원의 적자를 냈다. 적자 기록은 창사 후 21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실적 부진에도 불구하고 구 전 대표이사가 배당금 잔치를 벌이고, 이사진의 보수를 늘리는 안을 펼쳐 논란이 됐던 만큼 이것도 개선해야 할 문제다. 6월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아워홈은 지난해 총 7백76억원의 배당금을 주주에게 지급했다. 주당 배당금은 3천4백원으로 2019년보다 70% 이상 증가했다. 문제는 아워홈 지분을 오너 일가가 대부분 소유하고 있다는 것. 구자학 회장의 4남매를 포함해 구씨 일가가 보유한 아워홈 지분을 모두 합치면 전체의 98%가 넘는다. 이에 따라 구씨 일가는 총 7백60억원의 배당금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대주주인 구본성 전 대표이사는 2백99억원, 구지은 대표이사는 1백60억원, 구미현 씨와 구명진 캘리스코 대표이사도 각각 1백49억원, 1백52억원을 배당받았다.

타코벨 매장에서 주문을 받는 구지은 대표(왼쪽). 아워홈 동서울물류센터 전경.

타코벨 매장에서 주문을 받는 구지은 대표(왼쪽). 아워홈 동서울물류센터 전경.

이사들의 보수 한도를 초과해서 지급한 것도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3월 아워홈은 정기주주총회에서 이사 보수 연간 한도를 60억원으로 결의했다. 그런데 8월까지 지급된 이사 보수는 총 83억원인 것으로 드러나 논란이 됐다. 그러자 구본성 전 대표이사는 올해 초, 주총 안건으로 이사 보수 한도를 1백50억원으로 대폭 상향하는 안을 올렸다. 당시 그는 보복 운전으로 재판을 받던 중이어서 더욱 비난을 받았다.

구지은 대표이사가 이 같은 내부 문제를 해결해 회사를 정상화하고, 흑자 전환을 이끌어내지 못하면 경영권을 유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구본성 전 대표이사가 여전히 최대주주인 데다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려는 의지도 있는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 업계의 한 경영 컨설턴트는 “코로나19 사태로 외식업계의 어려움이 계속되고 있고, 구 전 대표이사의 유죄 판결로 아워홈의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된 상황에서 구지은 대표이사는 시험대에 오른 것과 다름없다”며 “급식 및 외식업계 전체가 수렁에 빠져 즉각적인 흑자 전환은 어려울지라도 지난해보다 실적을 개선해 경영 능력을 입증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분석했다.

사진 뉴스1 뉴시스 
사진제공 아워홈 구지은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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