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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아일리시도 반한 네일 아티스트 오소진 글로벌 MZ세대의 퀸이 되다

글 이나래

2021. 03. 19

길이 2cm, 너비 1.5cm 남짓한 손톱 위에 바다를 빚어내는 예술가가 있다. 세계적인 팝 스타 빌리 아일리시와 리아나, 크리스티나 아길레라가 그녀의 팬을 자처한다. 미국 LA를 무대로 활동하는 한국인 네일 아티스트 오소진은 새로운 세대의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는 중이다.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 환경에 익숙했고,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에서 쉴 새 없이 새로운 트렌드를 찾아 헤매는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의 시선을 사로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기성 세대가 보기에는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강하지만 실제로는 환경이나 인종, 젠더 이슈 등에 민감하고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치 있는 일에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MZ세대는 그야말로 신인류에 가깝다. 

그런데 최근 그들로부터 열광적인 응원을 받는 한국인 아티스트가 등장했다. 지난 3월 중순 열린 그래미 어워드에서 2관왕에 오른 빌리 아일리시와 협업하며 전 세계 MZ세대의 시선을 사로잡은 한국계 네일 아티스트 오소진(30) 씨가 그 주인공이다. 광대한 심해와 영롱한 파도, 기묘해서 더욱 매혹적인 동식물을 손톱 위에 빚어내며 MZ세대만큼이나 새로운 예술의 시대를 열고 있는 그녀와 이메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아직 오소진 씨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LA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네일 아티스트 오소진입니다. 제 이름을 딴 숍 ‘소진 네일’을 운영하고 있고요. 아마 한국에 계신 분들께서 저를 알게 된 가장 큰 계기는 올해 초 팝 스타 빌리 아일리시와 스페인 출신 가수 로살리아가 함께 발표한 ‘Lo Vas A Olvidar(넌 결국 날 잊겠지)’ 뮤직비디오 속에서 두 스타가 선보인 네일 작업이 아닐까 싶네요. 1월 말 발표된 이 노래는 유튜브에서 조회수 5천2백만 이상을 기록하며 큰 화제가 되었죠. 노래가 큰 인기를 끈 만큼, 뮤직비디오 속에서 비중 있게 소개된 네일 아트에 대해서도 많은 분들께서 관심을 보여주셨거든요. 

뮤직비디오 속 투명한 예술 작품 같은 네일 아트가 정말 신기하던데요. 어떻게 작업한 건가요. 

‘Lo Vas A Olvidar’에서 선보인 네일 아트는 투명한 유리를 사용해 심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 목적을 두었어요. 뮤직비디오의 콘셉트가 우울하고 비관적인 무드에 어두운 분위기라서, 그 속에서 희망을 줄 수 있는 자연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작업 과정을 상세하게 알려줄 수 있나요. 

처음 뮤직비디오 팀과 커뮤니케이션을 시작했을 때는 꽃을 모티프로 한 3D 네일 아트 사진을 보내주셨어요. 거기에서 영감을 얻되 새롭게 표현해달라고 요청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꽃 위에 고드름이 매달린 이미지에서 착안했죠. 다양한 느낌을 리서치하고 스케치하면서 이미지를 구축했습니다. 이미지가 완성된 후에 실제로 제작할 때는 캐나다 유리 공예 아티스트인 그레이스 워들로와 협업을 진행했어요. 촬영할 때 조명이 아티스트에게 집중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눈에 띄는 비주얼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유리를 활용하는 편이 효과적일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다행히 제 생각이 잘 맞아떨어져서 뮤직비디오에서도 완성도 높은 네일 아트를 표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소진 씨는 세계적인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와 로살리아의 뮤직비디오 네일 작업을 담당했다.

오소진 씨는 세계적인 팝스타 빌리 아일리시와 로살리아의 뮤직비디오 네일 작업을 담당했다.

빌리 아일리시, 로살리아 같은 세계적인 팝 스타와 협업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로살리아는 뮤직비디오 촬영 전부터 저와 인연이 있었던 오랜 단골이에요. 로살리아와 빌리 아일리시가 협업을 하기로 결정한 후에, 네일에 포인트를 주는 아이디어를 냈던 것 같아요. 두 아티스트 모두 평소에도 워낙 멋진 네일 아트를 자랑해오기도 했고요. 수많은 네일 아티스트 중에서 저에게 연락을 해온 이유는 아마도 제가 거의 최초로 3D 네일 아트를 유행시킨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수많은 할리우드 스타들이 오소진 씨에게 3D 네일 아트를 받았다고 들었어요. 어떤 이들과 작업했나요. 

한국에 잘 알려진 스타로는 킴 카다시안을 꼽을 수 있어요. 그녀가 론칭한 속옷 브랜드인 스킴스(SKIMS) 캠페인 작업에 참여했어요. 킴 카다시안도 저를 통해 처음으로 3D 네일 아트에 입문한 거라서 매우 신기해하고 좋아하더라고요. 특히 물방울에서 모티프를 얻어서 진행했던 작업은 예상보다 훨씬 반응이 좋아서 놀랐죠. 온라인에서도 크게 화제가 되었고, 미국 잡지에도 많이 소개되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국민 가수인 비요크와도 콘서트 무대를 특별하게 꾸미기 위해 여러 번 함께 작업했는데요. 워낙 신비하고 기묘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아티스트이다 보니, 완성된 네일 아트는 거의 뭔지 알 수 없는 형태를 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어요. 하지만 원래 착안했던 모티프는 대부분 곤충과 꽃이었어요. 

유튜브에 비욘세 커버곡을 업로드하면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클로이 앤 할리 자매의 경우에는 뮤직비디오 ‘Do it’과 ‘Forgive Me’ 촬영을 함께했어요. 아티스트가 여성적이고 카리스마 넘치는 결과물을 선호하는 까닭에 길고 뾰족한 모양에 크롬 컬러와 레드 컬러를 매치한 네일을 선보였답니다. 

개성을 뽐내고 싶어하는 아티스트들, 특히 MZ세대 뮤지션들에게 러브 콜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최근 미국에서는 네일 아트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고,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어요. 특히 MZ세대는 뷰티와 패션에 대한 관심이 엄청난데요. 소셜미디어, 그중에서도 틱톡을 통해 저의 작업이 많이 공유되고 있더라고요. 빌리 아일리시와 로살리아가 함께 발표한 ‘Lo Vas A Olvidar’ 같은 경우, 미국 HBO를 통해 방송된 청소년 드라마 ‘유포리아’ 시즌2의 사운드트랙으로 삽입되었는데요. 2019년 방영된 시즌1은 내용만큼이나 독특한 메이크업으로도 큰 화제를 모았어요. 인스타그램에서 #euphoriamakeup(#유포리아메이크업)을 검색하면 28만 개가 넘는 게시물이 나올 정도죠. 이번 뮤직비디오가 공개된 후에도 소셜미디어상에서 제 작업을 따라 한 여러 게시물을 보며MZ세대의 관심을 느낄 수 있었고요. 

작업을 공개한 이후 MZ세대의 반응을 체감한 에피소드가 있나요. 

인스타그램, 트위터, 유튜브에서 제 작업을 활용한 밈(Meme,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콘텐츠를 일컫는 말)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제 느낌을 솔직히 말하자면 ‘넘쳐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요. 그리고 제 소셜미디어 채널을 통해 러브 레터도 많이 받았고요. 젊은 네일 아티스트, 특히 한국 출신 네일 아티스트들이 저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 메시지를 보내주신 게 참 자랑스러웠어요. 핀란드나 네덜란드, 영국 등 멀리 떨어져 있는 나라의 패션 학도들이 응원 메시지를 보내준 것도 뿌듯하고 신기했고요. 


입체적이며 독창적인 오소진 씨의 네일 아트 작품.

입체적이며 독창적인 오소진 씨의 네일 아트 작품.

주로 어디에서 영감을 얻는지 궁금합니다. 

자연이나 아트, 패션, 음악, 예술적인 요리로부터 영감을 얻어요. 이미 제작된 네일 아트를 참고하는 편은 아니죠. 특히 선호하는 건 자연물이에요. 자연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나 책을 보면서 리서치를 한 후 스케치를 완성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영국 BBC의 다큐멘터리 감독이자 동물학자인 데이비드 애튼버러의 작품을 특히 좋아해요. 여행을 다니면서 찍은 사진을 보면서 브레인스토밍을 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로드 트립이나 캠핑에 시간을 아끼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이렇게 접한 자연이 작업의 모티프가 되니까요. 이 외에 박물관이나 미술관, 패션쇼, 특히 존 갈리아노나 장 폴 고티에, 헬무트 랭, 알렉산더 맥퀸 같은 천재적인 디자이너의 패션쇼를 보면서 영감을 얻기도 합니다. 

예술적인 작업인 만큼 시간이 오래 걸릴 것 같은데요. 

보통은 하나의 작업에 약 2주의 시간이 소요되지만, 솔직히 시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하하. 인상적인 디자인이 떠오르지 않을 땐 시간을 쪼개 등산을 떠나거나 바닷가에서 명상을 하는 등 나름대로 방법을 모색해야 하거든요.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한 달 정도 시간이 주어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예를 들어 비요크의 경우, 개인적으로도 열렬한 팬이라서 좀 더 시간을 들여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작품으로 연결하기도 했어요. 

작업 시간이 오래 걸리는 소재를 선호하는 것도 한 가지 이유이긴 해요. 제가 가장 선호하는 소재는 한국에서 젤 네일로 널리 알려진 빌딩 젤(Building Gel)이에요. 투명한 소재를 가지고 제가 원하는 대로 구조적이거나 조형적으로 빚어낼 수 있어서 좋지만, 결과물이 예상과 다르게 나오는 경우도 있죠. 절반 정도는 실패하고, 절반 정도만 겨우 성공할 정도예요. 그래서 작업이 오래 걸리는 요인이 되기도 한답니다. 

네일 아티스트가 되기 전에는 유명 패션 브랜드의 마케터였다고 들었습니다. 

처음부터 네일 아티스트를 꿈꾼 건 아니었어요. 퀸스대학을 졸업한 후 아메리칸어패럴 미국 본사에서 마케팅 업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거든요. 19개 국가에서 활동하는 마케팅 매니저를 관리하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게 제 업무였어요. 아메리칸어패럴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관리하면서 5백만 명이 넘는 팔로어를 확보하기도 하고, 의상을 촬영해 룩 북을 만들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카니예 웨스트가 론칭한 패션 브랜드 이지(YEEZY)에 스카우트 됐고요. 카니예가 직접 전화를 걸어 한 시간 넘게 대화를 나누고 스카우트 제의를 한 것이 인상적이었어요.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어가다가 어떻게 돌연 네일 아티스트로 전업을 하게 되었나요. 

정말 개인적인 흥미 때문이었어요. 단골 헤어 숍 원장님이 미용실을 미용 학교로 바꾸겠다고 하시더라고요. 네일 아트는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네일 아트를 배우던 중, 평소 좋아하던 스쿠버 다이빙을 위해 멕시코로 여행을 떠났다가 제 작업의 큰 주제를 발견하게 됐는데요. ‘바닷속에 사는 생물들의 독특한 모양새와 알록달록한 컬러를 네일에 접목해보면 어떨까?’ 이것이 작업의 시작이었어요. 그런데 주변에서 제 작업에 대해 좋은 반응을 보여주셔서 아예 사업체를 차리게 된 거고요. 

혹시 협업이 예정된 아티스트가 있다면 알려주시겠어요. 

카일리 제너와 작업을 할 예정이에요. 자세한 사항은 아직까지 극비라서 알려드릴 수 없지만요. 디자이너 장 폴 고티에와 컬래버레이션 작업도 진행하고 있고요. 

한국의 아티스트 중에 꼭 함께 작업해보고 싶은 스타가 있다면요. 

이정현 씨요. 정말 제게는 영웅과도 같은 존재예요. 전 세계를 통틀어서 이정현 씨만큼 유니크한 아티스트가 없다고 생각해요. 초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이정현 씨의 ‘와’ 의상과 부채를 직접 만들어서 장기 자랑에 나갔던 기억도 있는데요. 천부적인 재능으로 신들린 듯한 퍼포먼스를 보여줬다는 점에서 항상 애정과 존경을 가지고 있어요. 

열다섯 살에 유학을 떠났다고 들었어요. 어떤 학생이었나요. 

저 스스로는 활발하고 친화력이 좋은 학생이었다고 생각해요. 초등학교와 중학교 시절 늘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고, 회장이나 부회장을 도맡으면서 리더십을 발휘하곤 했죠. 영어에 능숙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고등학교 재학 시절에는 학생회에 들어가고 싶어서 혼자 열심히 선거운동을 했었고, 친구들에게 표를 많이 받아 뽑혔던 기억이 있어요. 유학을 온 이유는 영어를 정말 좋아했기 때문이에요. 부모님께 듣기로는 서너 살 때 이미 집 근처에 있는 영어 학습지 사무실을 찾아가서 교재를 신청했다고 하더라고요. 유학을 온 후에는 부모님을 자랑스럽게 만들어드리는 게 목표였고요. 

아티스트를 꿈꾸는 MZ세대 청소년에게 좋은 모델이 될 것 같아요. 꼭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요. 

실패는 나쁜 게 아니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실패를 두려워하고, 실패를 하면 모든 기회가 끝날 것처럼 생각하잖아요. 하지만 실패를 통해서 얻는 교훈이 때로는 인생의 큰 밑거름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모르는 분이 많아요. 저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3D 네일 아트를 시작하게 된 것이 바로 실수, 실패를 통해서였거든요. 네일 스쿨을 다니던 시절, 빌딩 젤 소재를 가지고 실험을 하다가 실수로 젤이 흘러내리면서 작업이 수포로 돌아갔거든요. 하지만 거기서 힌트를 얻어서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죠. 여러분도 의도하지 않은 결과에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최근 K팝, K뷰티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K컬처의 강점,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한국이 가진 에너지는 독보적이라고 생각해요. 해외에서 보기엔 굉장히 독특하고 새로운 문화를 가지고 있죠. 어느 나라보다 빨리 진화하고 성장한다고 생각하고, 모든 분야에서 놀라울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고요. 미국에서 태어난 한국계 친구들을 봐도, 한국인 특유의 직업 윤리나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정말 놀랍습니다. 한국에서 태어난 게 정말 자랑스럽습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지금은 네일 아트를 주로 선보이고 있지만, 다른 미디어를 통해서도 미술 작업을 이어가고 싶습니다. 사진도 다시 찍을 계획이고요. 한국에서 활동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어요. 최근에는 한국 뷰티 산업에서 눈에 띄는 메이크업 아티스트와 헤어 아티스트들이 많이 활약하고 있더라고요. 그들과 손을 잡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보아도 좋을 것 같아요. 

아티스트로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인가요. 

‘작업을 통해 인간으로 성장하는 것’이에요. 저는 예술 작업을 통해 저라는 사람의 본질을 더 잘 들여다볼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저 자신의 만족을 위해 작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더 넓은 세상에 영감과 감동을 주는 작업이 되길 바라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려고요. “Making art that can heal and inspire peop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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