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명절이 끝났다. 코로나19로 인한 5인 이상 집합 금지 때문에 큰 집에서 가족들이 모이지는 못했다. 대신 오랜만에 어머니, 누나와 함께 단출하게 차례 상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 명절이 주는 소중함은 떨어져 지냈던 가족을 만나 안부를 묻고, 그간 하지 못한 이야기를 나누는데 있다. 밤새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내던 누나를 보며 명절이 아니어도 종종 시간을 마련해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조카는 우리 헌이와 동갑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들끼리 함께 시간을 보내며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헌이와 조카는 각각 잘하는 게 다르다. 헌이는 또래에 비해 작고 왜소한 반면 두뇌회전이 빠르고 영특한 편이다. 조카는 상대적으로 동작이 느리지만 몸집이 크고 건강하며 감성적으로 따뜻하다. 누나와 만날 때마다 서로의 자녀가 부럽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열 살 어린이의 부모로서의 고민은 항상 같았다. 과연 앞으로의 세상은 어떻게 바뀔 것인지, 유망 직업은 어떻게 변할 것인지, 부모는 그러한 세상과 환경에 자녀가 적응할 수 있도록 지금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말이다. 자녀 교육에 극성인 부모나, 그렇지 않은 부모도 아이가 건강하고 우수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 명절에도 누나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영어학원은 어디로 보내는지, 학습지는 무엇을 하는지 등 결국 선행학습 이야기로 흘러갔다. 솔직히 헌이도 학원을 보내고는 있지만, 어머니와 합의를 본 부분이 있다. 학업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억지로 사교육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내가 학업 역량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의 책임감을 북돋아주는 일이다. 책임감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당당하게 수행하도록 하는 기본 역량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은 대체로 부모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책임감을 일깨우기란 어려운 일이다. 영국 유학에서 헌이와 둘이 시간을 보내기 전까지 누구보다 못난 아빠였기에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다행히 영국에서 1년을 붙어 지낸 뒤로 헌이와 내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었다. 물론 헌이가 관심을 갖고 아빠의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주지는 않는다. 아이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내 업무에 헌이의 아이디어를 반영키로 했다. MBC에서 새롭게 기획, 제작한 예능 프로그램 ‘마녀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아빠가 밖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벽에 부딪혔는지 솔직하게 이야기 했다. 그 당시 ‘마녀들’을 10대 및 어린이도 흥미롭게 보도록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헌이가 흥얼거리던 애니메이션 주제곡이 번뜩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곡을 ‘마녀들’의 테마송으로 정했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유튜브 채널에 콘텐츠를 공유하자 댓글 창에 ‘브금(BGM의 인터넷 용어)이 익숙했다 했더니 터닝메카드 노래?’라는 반응이 많았다. 아이의 평소 관심사를 활용해 시청자의 관심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헌이 : 아빠! ‘마녀들’ 보면 내 주제곡이 나와요~
나 : 헌이가 알려준 노래잖아. 헌이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헌이 : 그럼 마녀들은 아빠랑 나랑 같이 만든 프로그램이네요?
나 : 그럼! 헌이가 만든 프로그램이지!
헌이는 요즘 친구들한테 아빠의 프로그램을 자랑하느라 정신없다. 물론 테마송을 자기가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번 일로 헌이의 눈빛도 달라졌다. 하라고 강요해도 하지 않던 것들을 조금씩 스스로하기 시작했다. 헌이에게 책임감에 대해 언급하고 조금만 유도해도 바로 알아듣고 실천한다.
‘자기 것’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명절 아침, 조부모와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한 차례상을 차리고 차례를 올렸다. 처음으로 헌이에게 내가 열 살부터 해왔던 역할을 맡겼다. “우리 집 차례상에 술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은 헌이 뿐”이라고 말하자 헌이의 발걸음과 태도가 조심스러워졌다. 그렇게 헌이는 마냥 어린 아이에서 책임감을 가진 소년으로 한걸음 나아갔다.
이성배 아나운서는 2008년 MBC에 입사해 ‘섹션TV 연예통신’ ‘생방송 오늘 아침’ 등에서 리포터와 MC로 활약했다. 7년 전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우는 싱글 대디. ‘아놔리(아나운서 리)’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걸 좋아하는 그가 자신만의 특별한 육아 경험을 담은 칼럼을 여성동아에 연재한다.
사진제공 이성배
조카는 우리 헌이와 동갑이다. 그러다보니 아이들끼리 함께 시간을 보내며 둘도 없는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헌이와 조카는 각각 잘하는 게 다르다. 헌이는 또래에 비해 작고 왜소한 반면 두뇌회전이 빠르고 영특한 편이다. 조카는 상대적으로 동작이 느리지만 몸집이 크고 건강하며 감성적으로 따뜻하다. 누나와 만날 때마다 서로의 자녀가 부럽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나 열 살 어린이의 부모로서의 고민은 항상 같았다. 과연 앞으로의 세상은 어떻게 바뀔 것인지, 유망 직업은 어떻게 변할 것인지, 부모는 그러한 세상과 환경에 자녀가 적응할 수 있도록 지금 어떻게 교육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 말이다. 자녀 교육에 극성인 부모나, 그렇지 않은 부모도 아이가 건강하고 우수하게 자랐으면 하는 바람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번 명절에도 누나와 아이들에 대한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영어학원은 어디로 보내는지, 학습지는 무엇을 하는지 등 결국 선행학습 이야기로 흘러갔다. 솔직히 헌이도 학원을 보내고는 있지만, 어머니와 합의를 본 부분이 있다. 학업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억지로 사교육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내가 학업 역량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이의 책임감을 북돋아주는 일이다. 책임감은 앞으로 무슨 일을 하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당당하게 수행하도록 하는 기본 역량이라 생각한다.
아이들은 대체로 부모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들에게 책임감을 일깨우기란 어려운 일이다. 영국 유학에서 헌이와 둘이 시간을 보내기 전까지 누구보다 못난 아빠였기에 그 부분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다행히 영국에서 1년을 붙어 지낸 뒤로 헌이와 내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이 늘었다. 물론 헌이가 관심을 갖고 아빠의 업무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주지는 않는다. 아이의 흥미를 돋우기 위해 내 업무에 헌이의 아이디어를 반영키로 했다. MBC에서 새롭게 기획, 제작한 예능 프로그램 ‘마녀들’에 대해 이야기 나누며 아빠가 밖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벽에 부딪혔는지 솔직하게 이야기 했다. 그 당시 ‘마녀들’을 10대 및 어린이도 흥미롭게 보도록 하는 방법이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헌이가 흥얼거리던 애니메이션 주제곡이 번뜩 떠오르는 것이 아닌가. 그 곡을 ‘마녀들’의 테마송으로 정했는데,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유튜브 채널에 콘텐츠를 공유하자 댓글 창에 ‘브금(BGM의 인터넷 용어)이 익숙했다 했더니 터닝메카드 노래?’라는 반응이 많았다. 아이의 평소 관심사를 활용해 시청자의 관심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한 것이다.
헌이 : 아빠! ‘마녀들’ 보면 내 주제곡이 나와요~
나 : 헌이가 알려준 노래잖아. 헌이 덕분이에요! 고마워요~
헌이 : 그럼 마녀들은 아빠랑 나랑 같이 만든 프로그램이네요?
나 : 그럼! 헌이가 만든 프로그램이지!
헌이는 요즘 친구들한테 아빠의 프로그램을 자랑하느라 정신없다. 물론 테마송을 자기가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먼저 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번 일로 헌이의 눈빛도 달라졌다. 하라고 강요해도 하지 않던 것들을 조금씩 스스로하기 시작했다. 헌이에게 책임감에 대해 언급하고 조금만 유도해도 바로 알아듣고 실천한다.
‘자기 것’이라는 인식이 생긴 것이다.
명절 아침, 조부모와 돌아가신 아버지를 위한 차례상을 차리고 차례를 올렸다. 처음으로 헌이에게 내가 열 살부터 해왔던 역할을 맡겼다. “우리 집 차례상에 술을 올릴 수 있는 사람은 헌이 뿐”이라고 말하자 헌이의 발걸음과 태도가 조심스러워졌다. 그렇게 헌이는 마냥 어린 아이에서 책임감을 가진 소년으로 한걸음 나아갔다.
‘싱글 대디’ 아놔리의 육아 라이프
이성배 아나운서는 2008년 MBC에 입사해 ‘섹션TV 연예통신’ ‘생방송 오늘 아침’ 등에서 리포터와 MC로 활약했다. 7년 전 이혼 후 홀로 아들을 키우는 싱글 대디. ‘아놔리(아나운서 리)’라는 호칭으로 불리는 걸 좋아하는 그가 자신만의 특별한 육아 경험을 담은 칼럼을 여성동아에 연재한다.
사진제공 이성배
-
추천 0
-
댓글 0
- 목차
- 공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