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깅스에 반바지를 덧입은 배우 현빈의 공항 패션.
이미 레깅스는 일상생활과 운동을 동시에 추구하는 애슬레저 룩(Athleisure Look)의 유행과 함께 여성들 사이에서 하나의 패션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남성들에겐 거리감이 있었던 게 사실. 남자들 사이에서는 ‘레깅스’라는 단어가 언급되면 곧바로 “몸매가 드러나서 민망하다” “어, 남자가 쫄쫄이를…” 등의 반응이 잇따랐다. 레깅스는커녕 반바지도 입지 않는 대표적인 ‘하의 보수주의자’인 기자 역시 이들 중 한 명이었다.
하지만 최근 분위기가 뒤바뀌고 있다. 레깅스의 성지였던 피트니트 센터는 물론 강변과 등산로 등지에서도 레깅스를 입은 남성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코로나19 등으로 실내 활동 대신 러닝과 등산 등을 즐기는 사람이 증가한 덕분이다. 운동에 대한 관심이 애슬레저 제품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 것이다. 대표적인 애슬레저 브랜드 안다르 역시 이러한 시장 분위기에 주목해 지난 5월 남성용 레깅스를 출시한 바 있다. 안다르 측은 “운동을 할 때 근육이 어떻게 쓰이는지 확인하기 위해 레깅스를 착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신축성이 우수해 운동에 적합한 점 역시 레깅스를 찾도록 하는 유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기자가 7월 16일과 17일 이틀간 레깅스를 입고 거리를 다녀봤다.
남성들에겐 레깅스를 구입하는 것부터 쉽지 않은 도전
남성들에게는 레깅스를 사는 것부터 쉽지 않은 일이다. 한 번도 입어본 적 없는 옷이라 인터넷에서 사기에는 사이즈가 맞지 않을까 불안하다. 그렇다고 생면부지의 매장 직원에게 “레깅스 사러 왔노라” 말하기도 겸연쩍다. 서울의 한 백화점 아웃도어 매장에서 조용하게 “레깅스를 파느냐”고 묻자 직원은 남성용 레깅스와 반바지를 내밀었다. 피팅룸에서의 레깅스 입고 거울 앞에 서니 어색한 표정을 한 남자가 눈앞에 있었다. 직원은 연신 “요즘 남성들도 레깅스를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지만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백화점의 밝은 조명이 레깅스를 입은 다리 곳곳을 비추었다.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네’ 가수 비와 달리 깡이 부족했던 기자는 더 이상 거울을 보지 못하고 신속하게 제품을 구매했다.레깅스에 처음 도전하는 사람이라면 도심 곳곳에 마련된 산책로를 가보길 추천한다. 강변의 자전거 트랙이나 러닝 코스에서는 레깅스를 입고 운동을 나온 남성들이 많다. 이들은 입은 듯 안 입은 듯 가벼운 착용감을 레깅스의 장점으로 꼽았다. 레깅스 입문 3개월 차인 류승혁(26) 씨는 “날씨가 덥다고 반바지만 입으면 다리가 탈 것 같아 레깅스를 입기 시작했다. 별다른 착용감이 느껴지지 않고 편해 운동할 때 즐겨 입는다”고 말했다. 류 씨를 비롯한 대다수의 남자들은 레깅스 위에 반바지를 덧입은 차림으로 운동을 했다. 기자 역시 레깅스에 반바지를 겹쳐 입은 채 자전거를 타거나 뛰어봤다. 걱정과 달리 다리에 별다른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맨다리일 때보다 땀이 빨리 식어 더 시원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과감하게 레깅스만 입고 운동을 즐기는 남성들도 있었다. 레깅스 입문 2년 차인 박 모(27) 씨가 바로 그다. 박 씨는 “세계 여행을 다녔는데 외국에서는 남자의 레깅스 패션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한국에 온 후에도 레깅스가 편해 즐겨 입었는데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며 “서울숲 등 다양한 곳에서 레깅스 차림으로 운동을 하고 인근에서 식사도 하는데, 레깅스 차림에 신경 쓰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운동 공간을 벗어나면 ‘글쎄’
얼마 전 한 언론사가 여론조사 회사와 공동으로 20~50대 남녀 4천여 명에게 ‘레깅스를 입고 어디까지 갈 수 있냐’는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적이 있다. 이에 △야외 운동(50.6%) △헬스장(42.9%) △일상생활 공간(33.9%) △회사(8.3%) △소개팅자리(3.2%) 순으로 답변이 나왔다. 조사에 응한 3명 중 한 명은 레깅스를 입은 채 일상생활을 할 수 있다고 답변한 것이다. 하지만 피트니스 센터나 실외 운동장 등 운동 공간을 제외한 장소는 남성들에게 여전히 ‘레깅스 금지 구역’이다.강변 산책로에서 자신감을 얻은 기자는 다음 날 낮 시간 강남 일대를 활보해봤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레깅스에 반바지를 덧입은 차림이었지만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형형색색의 레깅스를 입은 여성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레깅스 차림의 남성은 기자뿐이었다. “요즘은 옷을 참 자유롭게 입고 다닌다”며 이상한 눈길로 보는 이들도 있었다. 레깅스를 판매하는 매장들도 남성용 레깅스에는 아직 인색했다. 레깅스를 착용한 직원이나 심지어 마네킹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웹 프로그램 개발자 김 모(28) 씨는 운동할 때만 레깅스를 입는 남성 중 한 명이다. 그가 다니는 IT 회사는 복장이 자유로워 평소 청바지 등도 무리 없이 입을 수 있다. 하지만 김 씨는 출퇴근 시간은 물론 일상에서도 레깅스를 입을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는 “스키니진은 평소에 자주 입지만 레깅스를 입고 다니는 것까지는 생각해보지 않았다”고 말했다.
일상생활에서 레깅스 수요가 적다 보니 패션에 있어서도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다변화되지 못하고 있다. 요즘 여성 레깅스가 화려한 컬러와 다양한 패턴으로 나와 선택의 폭이 넓은데 반해 남성 레깅스는 단색 제품으로 출시된다. 이마저도 검정이 많고 단색 반바지에 겹쳐 입는 방식으로 패션이 획일화돼 있다.
슈트의 시대가 저물고 레깅스가 뜬다
애슬레저 브랜드 안다르는 지난 5월 남성 레깅스를 출시하며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주변의 시선이 걱정돼 레깅스 패션을 시도하지 못하고 있는 남성들에게 TPO(Time, Place, Occasion)를 고려해 차근차근 도전해볼 것을 권했다.
이미 피트니스 센터를 중심으로 다양한 레깅스 패션을 시도하는 남성들이 증가하는 추세다.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대형 피트니스 센터에서 일하는 권 모(27) 팀장은 “운동을 할 때도 남성들이 각자가 예뻐 보이는 옷을 입으며 개성을 추구하는 추세다. 이미 10명 중 한 두 명은 다양한 방식으로 레깅스를 소화하며 운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간 교수는 “주변의 시선이 걱정된다면 피트니스 센터에서 조금 멋을 부린다 생각하고 레깅스에 입문하는 것이 좋다. TPO에 맞게 천천히 패션을 바꿔나가다 보면 레깅스에 대한 거부감도 차츰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제공 뉴스1 안다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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