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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들이 망치와 전동드릴을 든 이유

여기공협동조합

글·사진 최진렬 기자

입력 2020.07.15 10:48:36

여기공협동조합의 나영 강사와 인다 이사장, 자베 이사(왼쪽부터).

여기공협동조합의 나영 강사와 인다 이사장, 자베 이사(왼쪽부터).

7월 9일 오후 1시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3층 건물 옥상. 전동드릴 같은 공구를 든 여성들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30℃를 훌쩍 넘어선 날씨에, 뜨거운 햇볕을 정면으로 받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는 모습이었다. 

한여름 더위도 잊고 목공작업에 몰두하고 있는 이들은 여기공협동조합(이하 여기공)에서 진행하는 주택 수리강좌를 수강하는 여성들이다. 지난해 11월 설립된 여기공은 목공과 집수리, 직조 등의 기술을 가진 5명의 여성들로 구성됐다. 이들은 ‘여자가 뭐하려 기술을 배우냐’는 남성 중심적 시각에 맞서 의기투합했다. 여기공 구성원들은 기술에 대한 교육과 문화가 차별 없이 형성되는 것을 꿈꾼다. 이를 위해 교육 과정에서도 이름과 직책 대신 닉네임(활동명)으로 서로를 부른다. 이날 인터뷰에 응한 3인은 자신을 인다(27)와 자베(26), 나영(33)으로 소개했다. 인다와 자베는 각각 여기공 이사장과 이사를 맡고 있다. 나영은 외부강사로 초빙돼 활동 중이다. 

여기공은 5월 21일부터 42명의 여성들을 대상으로 ‘집 고치는 여성들: 주택수리 입문과정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동드릴 등 기초 공구 사용법은 물론 전등 교체하기에서부터 배관과 타일 작업까지 폭 넓게 가르친다. 당초 수강 인원을 14명으로 한정했으나 희망자가 1백 명 가까이 몰리면서 토요반과 일요반을 신설했다. 20대·30대 여성이 주축이고 40대에서 60대까지 연령대도 다양하다. 

강좌가 어느덧 중반을 넘어섰지만 어렵지 않은 순간은 없었다. 이날 진행된 플랜터(화분) 만들기 수업도 마찬가지. 나무가 휘어지고 목재 간 길이가 맞지 않은 경우가 발생했다. 하지만 누구 하나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았다. 여기에는 교육을 맡은 나영 강사의 격려도 큰몫을 차지한다. 

“처음 기술을 배우는 과정인 만큼 결과가 완벽하게 나오지 않는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어요. 나무가 조금 휘어지긴 했지만 흙이 쏟아지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해요.” 



그의 말처럼 첫술에 배부를 수 없는 법이다. 핵심을 놓지 않으면서 저마다의 속도로 기술을 즐기며 배우는 것이 여기공이 추구하는 교육 목표다.

“억울하다, 이렇게 쉬운 걸 이제껏 몰랐다니”

여기공협동조합에서 용접 작업을 교육하는 모습.

여기공협동조합에서 용접 작업을 교육하는 모습.

“모두 셰프가 되자는 것보다 밥 해먹는 법을 배우자는 쪽에 더 가깝죠.” 

인다는 여기공의 지향점을 음식 만들기에 비유했다. 기술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여성들이 일상과 맞닿아 있는 다양한 기술에 친숙해지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이다. 집수리 강좌를 진행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집은 의식주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집수리’ 하면 어렵게만 느끼는 여성들이 많다. 수강생 다수가 이에 대해 크고 작은 경험을 공유한다. 집에 하자가 발생했는데 어떻게 손을 써야할지 몰랐다거나, 수리기사를 불러도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 대표적이다. 의뢰인이 여성인 경우 ‘어차피 모르겠거니’ 생각해 대충 설명하고 넘어가는 것도 문제다. 자베는 “여성 입장에서 수리기사의 말은 멀게만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기초라도 배우고 나면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긴다”고 설명했다. 나영 강사는 “전선 작업이나 커튼 달기 등은 알고 나면 별 것 아닌데 남성만이 할 수 있는 작업으로 포장돼왔다. 수업을 마치면 이렇게 쉬운 걸 이제껏 몰라 아무 것도 못하고 살았단 사실에 억울해하는 분도 많다”고 말했다. 

알고 보면 이처럼 대수롭지 않은 기술임에도 여성들이 어렵게 느끼는 이유는 일상에 필요한 기술들을 자연스럽게 터득할 기회가 적었기 때문이다. 자베는 대학에서 제품 디자인을 전공하며 기술을 배웠지만 대학에서도 여성은 기술 교육에서 소외되는 측면이 있다고 말한다. “조모임을 할 때면 아예 남자 한 명에 여자 두 명 이렇게 해서 조를 만들라고 한다. 이후에는 남자들이 끝까지 각종 공구를 잡고 일한다. 여자에게는 주로 설계도면 그리기나 파워포인트 작업이 맡겨진다”고 말했다. 

한국산업인력공단의 국가기술자격통계에 따르면 가장 높은 기술자격 등급인 기술사를 취득한 여성이 한해 100명이 넘어선 게 2018년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전체 취득자의 6.7%에 불과한 수치다. 수가 적다보니 작업 현장에서도 홀대 당하기 일쑤다. 인다는 “현장에서는 사람 대 사람으로 교육이 전수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여성에게는 기술 전수를 꺼리는 분위기다. 힘이 약하니 제대로 작업하지 못할 것이라는 편견 탓이다”라고 말했다.

낮은 문턱의 여성 기술 커뮤니티를 꿈꾸다

전동드릴을 이용해 목재 작업을 하는 모습(왼쪽). 목공 작업을 위해 자를 이용해 재료를 측정하고 있는 모습.

전동드릴을 이용해 목재 작업을 하는 모습(왼쪽). 목공 작업을 위해 자를 이용해 재료를 측정하고 있는 모습.

여기공 구성원들이 각종 장벽에도 불구하고 손에서 공구를 놓지 못하는 이유는 작업이 주는 쾌감 때문. 이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작업이 뭐냐고 묻자 “망치를 이용한 목공” “실을 사용한 직조” “각종 자를 이용한 도면 작업” 등 다양한 이야기가 쏟아졌다. 모든 공구들이 각각의 매력이 있지만 이번 강좌에서는 수강생들이 전동드릴을 ‘최애템’으로 여기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망치의 짝이 일반 못이라면 전동드릴의 짝은 ‘피스(나사못)’다. 자연스레 전동드릴만 사용할 수 있으면 경첩은 물론 스위치, 테이블 다리 등 피스가 사용되는 각종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 또한 사용법이 상대적으로 단순해 기구에 대한 마음의 장벽을 낮추는데도 안성맞춤이다. 언뜻 어려워 보이지만 강사들의 지도 아래 차근차근 한 동작씩 배우다보면 어렵지 않게 사용법을 익힐 수 있기 때문이다. 인다는 “전동드릴은 소리도 크고 빠르게 돌아가기 때문에 작업 내내 긴장감을 불러일으키지만 순서대로 배워나가며 작업을 마치고 나면 성취감이 크다”고 설명했다. 

전동드릴의 매력에 빠진 수강생들도 하나둘 나타나고 있다. 수업이 마친 후에도 전동드릴을 손에서 놓지 못하고 있는 학생들이 등장했다. 참가자들이 다양한 드릴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모습은 강사들에게도 커다란 보람이다. 나영 강사는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보쉬 전동드릴을 사용했다. 자신에게 맞는 전동드릴을 찾기 위해 공구판매점을 가도 “여자가 왜”라는 반응만 되돌아왔다. 그는 “인터넷에서 알아보고 결국 보쉬 제품을 샀는데 여기공에서는 여러 드릴을 사용할 수 있어 자신과 가장 잘 맞는 제품을 고를 수 있다”고 말했다. 수업 참가자들은 교육과정에서 어떤 전동드릴이 자신에게 맞는 제품인지 찾아나간다. ‘기술 선배’들이 값진 경험을 공유했기에 가능한 일이다. 

여기공은 기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 다양한 여성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는 플랫폼을 추구한다. 앞으로 집수리 외에도 직조와 목공, 용접 등 다방면에 관한 기술을 배우는 수업을 계획하고 있다. 기혼과 비혼은 물론 2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이 취미생활을 공유할 수 있는 커뮤니티를 목표로 한다. 인다는 “문턱이 낮은 커뮤니티 혹은 여성들에게 비빌 언덕이 돼줄 수 있는 플랫폼을 지향한다”고 설명했다. 

중장년층 여성들에게도 두려움 없이 문을 두드리라는 조언도 잊지 않는다. 인다 여기공 이사장은 “주요 소식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공지하다보니 50대 여성들이 전화로 문의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은 ‘이 나이에 수업을 들어도 되나’는 걱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여기공의 목표는 빠르게 배우거나 잘 하는 게 아니라 기술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나이에 상관없이 도전에 보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여기공협동조합



여성동아 2020년 7월 6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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