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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shion column

쇼핑의 성지가 사라지다

#Good-bye Barneys New York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조엘 킴벡

입력 2020.01.16 15:00:01

쇼핑의 성지가 사라지다
한 시대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시작됐다고 느끼는 순간이 바로 이런 것일까. 최고라고 칭송받던 존재가 나락으로 떨어져버렸을 때, 혹은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것 같던 존재가 변두리로 밀려나버렸을 때. 모든 결과에는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나락으로 떨어지거나 밀려나는 이유가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해서라거나,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기 때문이라면 정말 한 시대가 끝났다는 말을 피하기가 힘들 것이다. 

얼마 전 미국을 대표하는 백화점 중의 한 곳인 ‘바니스 뉴욕(Barneys New York)’이 높은 임대료, 온라인 쇼핑몰과의 경쟁을 견디지 못하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전에도 몇 차례 파산 위기가 있었지만 그때마다 잘 넘겨왔기에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예상했던 뉴요커들은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매디슨 애비뉴에 있는 본점만큼은 어떻게라도 유지해야 한다며 서명운동을 벌이는 이들도 있었고 마지막까지 인수 경쟁을 펼쳤던 키스(Kith’s)의 대표 샘 벤 아브라함을 주축으로 ‘세이브 바니스’라는 캠페인이 진행되기도 했지만 결국 바니스 뉴욕을 인수한 라이선싱 전문 기업 어센틱 브랜즈 그룹과 부동산 전문 기업 B. 라일리 파이낸셜은 뉴욕 본점을 비롯한 미국 전역의 바니스 뉴욕 매장을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쇼핑의 성지’답게 뉴욕에는 많은 백화점이 있지만 그 가운데서도 바니스 뉴욕의 존재감은 특별했다. 1923년에 문을 연 노포이면서도 언제나 트렌드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이다. 조르지오 아르마니, 아제딘 알라이아, 크리스찬 루부탱, 고야드 등 유럽의 브랜드들을 미국 시장에 처음 소개해 인기의 도화선 역할을 했고, 그런 성공 신화가 쌓이면서 한때 바니스 뉴욕 바이어의 위상은 하늘을 찌를 정도였다. 패션 브랜드들 사이에선 바니스 뉴욕에 입점했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스태터스(Status·지위)가 됐다. 비단 판매하는 제품뿐 아니라 매장의 디스플레이와 점원들의 패션 센스도 타 백화점의 그것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사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진정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이었다. 

필자 개인적으로도 바니스 뉴욕은 그야말로 동경의 무대였다. 그곳에 처음 발을 들인 날의 기억은 아직도 선명하다. 아직 어릴 때라 수중의 돈으로 살 수 있는 물건은 많지 않았지만 1층부터 꼭대기까지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그저 즐거웠던 기억이 난다. 그때 남성복 매장 1층에서 구입한 투톤 컬러의 비니는 거의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멋스럽다. 

뉴요커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가본 적이 있을 바니스 뉴욕의 웨어하우스 세일(Warehouse Sale)에 대한 추억도 한 움큼씩 있을 것이다. 지금은 없어진 첼시의 바니스 뉴욕 매장을 닫고, 지하 창고까지 개방해서 그 시즌 제품들을 엄청나게 할인 판매하는 웨어하우스 세일은 뉴욕의 패션 피플들이 반드시 챙기는 연례 행사였다. 그런데 이제 웨어하우스 세일이 아니라, 본점 및 미국 내 남아 있는 바니스 뉴욕 매장 전체에서 폐점 세일을 한다는 공지가 떴다. 바니스 뉴욕이 폐점을 한다는 것도 아직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인데, 폐점 세일이라니. 거기에 모든 제품은 최종 판매이기에 반품은 절대 안 된다고 적혀 있는 문구를 보는 순간, 정말 한 시대가 끝났음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라이벌 백화점에 숍인숍으로 셋방살이 들어갈 예정

뉴요커들이 사랑한 쇼핑 명소이자, 트렌드를 선도해 온 바니스 뉴욕 백화점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뉴요커들이 사랑한 쇼핑 명소이자, 트렌드를 선도해 온 바니스 뉴욕 백화점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바니스 뉴욕의 새 주인인 어센틱 브랜즈 그룹은 바니스 뉴욕 매장들을 전부 정리하고, 바니스 뉴욕이라는 콘셉트만을 살려서 다른 대형 매장들에 숍인숍(Shop-in-Shop) 형태로 부활시킬 예정이라고 한다. 그 첫 번째로 바니스 뉴욕의 라이벌로 불렸던 뉴욕 맨해튼 5번가의 강자, 삭스 핍스 애비뉴 백화점에 바니스 뉴욕의 팝업 스토어를 열 계획이다. 한때는 전 세계 패션 트렌드를 선도한 최고의 백화점이 ‘영원한 2등’으로 불렸던 삭스 핍스 애비뉴의 한 층에 셋방살이를 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뭔가 운명의 장난 같은 묘한 기분이 든다. 더불어 어센틱 브랜즈 그룹은 향후 바니스 뉴욕이라는 이름을 라이선스화해서 전 세계 리테일 매장에 내놓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미 일본에서는 편의점 세븐일레븐의 모회사인 세븐앤드아이홀딩스가 바니스 뉴욕 라이선스를 사들여 일본 내 12개 매장을 열고 있다. 

쇼핑의 플랫폼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이동할 때부터 바니스 뉴욕의 몰락은 이미 정해진 운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뉴욕과 패션 그리고 쇼핑을 대표하는 드라마인 ‘섹스 앤 더 시티’의 캐리 브래드쇼는 “쇼핑은 나의 유산소 운동(Shopping Is My Cardio)”이라는 명언을 남겼지만, 그 유산소 운동은 이제 택배 아저씨의 몫이 돼가고 있다.


조엘 킴벡의 칼레이도스코프
쇼핑의 성지가 사라지다

뉴욕에서 활동하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기네스 팰트로, 미란다 커 등 세기의 뮤즈들과 작업해왔다. 현재 브랜드 컨설팅 및 광고 에이전시 ‘STUDIO HANDSOME’을 이끌고 있다.



기획 김명희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 디자인 최정미




여성동아 2020년 1월 6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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