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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18년 무명 털어낸 정상훈 ‘양꼬치엔칭따오’ 날다

글 · 김유림 기자 | 사진 · 지호영 기자

2015. 08. 25

‘양꼬치엔칭따오’ 캐릭터로 단박에 뜬 배우 정상훈. 뮤지컬 마니아들 사이에선 이미 개그맨 뺨치게 웃긴 배우로 소문이 자자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그는 탤런트 데뷔 이후 18년 동안 ‘무명’이었다. 그렇다고 그를 유행어 하나로 뜬 벼락 스타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 뼛속 깊이 연기자인 정상훈의 숨겨진(?) 과거.

18년 무명 털어낸 정상훈 ‘양꼬치엔칭따오’ 날다
큼직한 눈, 코, 입을 일제히 움직이며 마이크를 입에 대고 “셰셰”로 그럴싸하게 멘트를 시작한 뒤 진짜 중국어 몇 마디를 날리다 “이상하게 중국말이 잘 들리지예?”라며 기가 막히게 우리말로 갈아타는 남자. ‘SNL 코리아-글로벌 위켄드 와이’ 코너에서 중국 특파원 ‘양꼬치엔칭따오’로 활약한 정상훈(37)이다. 프로그램은 시즌 종료됐지만 요즘도 여전히 직장인들 회식 자리에선 양꼬치엔칭따오란 유행어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덕분에 정상훈은 얼마 전 실제로 우리나라 최초 칭다오 맥주 광고 모델로도 발탁됐다. 그뿐 아니라 피자, 음료수, 비타민, 모바일 게임 등 다양한 분야의 CF를 섭렵 중이다. 무려 18년 만의 무명 탈출이다.

1998년 SBS 시트콤 ‘나 어때’로 데뷔한 정상훈은 줄곧 이렇다할 만한 역할을 만나지 못하다 2005년 ‘아이러브유’에 출연하면서 뮤지컬 배우로 전향했다. 그동안 ‘스팸어랏’ ‘두 도시 이야기’ ‘김종욱 찾기’ ‘구텐버그’ ‘맨 오브 라만차’ 등에 조연으로 출연해왔다. 하지만 ‘정상훈’이란 이름 석 자를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양꼬치엔칭따오로 하루아침에 스타덤에 오른 지금의 현실이 볼을 꼬집어볼 만큼 믿기지 않는다.

“요즘 스케줄이 많아서 팬들을 만나기 쉽지 않지만, 촬영 중 밥 먹으러 갈 때 많은 분들이 알아봐주셔서 정말 기분 좋아요. 사인을 해달라고 하거나 같이 사진 찍자고 하는 건 용기가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그 마음이 고마워서 한 분 한 분 다 열심히 응대해드려요. 좀 전에도 어머니가 문자를 보내셨더라고요. ‘네 덕에 인사 많이 받아서 기분이 좋다’고요. 그동안 믿고 기다려준 가족이 가장 고맙죠.”

정상훈에게 이런 기회를 안겨준 이는 방송인 김생민과 신동엽이다. 그동안 정상훈이 출연한 공연을 거의 다 본 김생민이 신동엽에게 정상훈을 ‘SNL 코리아’ 크루로 적극 추천한 것. 세 사람은 모두 서울예술대학 선후배 사이다.

“어느 날 (신)동엽이 형이 전화를 해서는 ‘이제 너도 결혼해서 아기도 낳았으니 좀 더 안정적인 일이 필요하지 않겠냐. 주업은 뮤지컬로 하고, 직장 다닌다 생각하고 방송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어요. 정말 감동이었죠.”



‘양꼬치엔칭따오’란 이름은 ‘SNL 코리아’ 남지연 작가에 의해서 탄생했다. 평소 남 작가가 즐겨 먹던 메뉴였던 것. 정상훈은 “사실 맥주보다 고량주를 좋아해서 다른 이름으로 하자고 했는데, 작가 말을 듣기 정말 잘했다”며 웃었다. 프로그램 기획은 지난해부터 이뤄졌다고 한다. 크루 합류가 결정되고 난 뒤 ‘SNL 코리아’ 워크숍에 따라갔다가 중국 특파원으로 지명됐다.

“뮤지컬 ‘스팸어랏’에서 아서 왕으로 출연했는데, 아서 왕이 프랑스 사람을 만나 욕 배틀을 벌이는 장면에서 영어와 프랑스어 대신 전라도와 경상도 사투리를 써서 실감나게 욕을 한 적이 있어요(웃음). 그 내용을 국장님도 알고 계셔서 워크숍에서 바로 중국 특파원을 하라고 하시더라고요(웃음). 제가 해봐서 아는데, 중국어와 경상도 사투리가 잘 어울리고 프랑스어에는 전라도 사투리가 잘 어울려요(웃음). 다음 시즌에 또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다 됩니다. 하하.”

18년 무명 털어낸 정상훈 ‘양꼬치엔칭따오’ 날다
아무리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정상훈이지만 ‘SNL 코리아’ 첫 방송 때는 무척이나 떨렸다고 한다. 자신의 모습을 전국의 시청자들이 실시간으로 지켜본다는 생각에 머리카락이 쭈뼛 서는 기분이었다고. 하지만 실수하지 않으려고 몇날 며칠을 연습한 덕에 방송은 성공적이었다.

“대사를 놓치기라도 하면 큰일이니까 촬영 들어가기 전에 밤낮으로 대사를 외웠어요(웃음). 콩트이지만 영화배우 못지않은 진지한 연기와 그래서 막판에 개그가 더 재미있어지는 그런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못 말리는 개그 본능, 뮤지컬 통해 연기로 승화

이미 오래전부터 정상훈의 몸속에는 개그 본능이 꿈틀대고 있었다. 미대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다 서울예술대학에 다시 입학한 그는, 전국에서 다 모인 ‘괴짜’들 틈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그 동아리 ‘개그클럽’에서 활동하며 마음껏 끼를 발산했다.

“저뿐만 아니라 제 주변 친구들은 다 제정신이 아니다 싶을 정도로 서로 웃기려고 안달이었어요(웃음). 축제 때 사회도 많이 봤는데, 팬티 차림에 엉덩이 노출까지 강행한 적이 있어요. 마침 이영자 선배님이 축제를 보러 온다고 하셔서 어떻게든 눈에 들려고 했던 거죠. 실제로 그날 이영자 선배님께 캐스팅이 됐고 ‘아이 러브 코미디’라는 개그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어요.”

이후 그는 이휘재, 송은이, 김한석, 백재현, 정성화와 함께 서울 대학로에서 ‘포유’라는 공연을 펼쳤다. 그러던 중 SBS PD 눈에 띄어 시트콤 ‘나 어때’에 출연하게 됐고 본격적인 지상파 방송 데뷔가 이뤄졌다. 작은 역할이었지만 드라마 ‘세 친구’ ‘장길산’, 영화 ‘화산고’ ‘목포는 항구다’ 등에 출연하며 연기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던 중 그를 뮤지컬로 이끈 사람은 개그맨 출신 배우 정성화다.

“연기에 대한 고민이 굉장히 많을 때였어요. 배우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건 제 연기가 그만큼 부족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컸죠. 그러던 어느 날 정성화 씨가 하는 뮤지컬 ‘아이러브유’를 보게 됐는데, 무대에 모든 걸 바치는 배우들을 보면서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어요. 그때부터 ‘오디션만 한번 보게 해달라’며 제작사를 쫓아다녔어요. 회식 때마다 얼굴을 비치니까 처음에는 ‘누구지?’ 했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다들 제가 없으면 허전해하더라고요. 남경주 형님이 산에 가신다고 하면 따라가고, 최정원 누나가 어디 계신다 하면 바로 쫓아가고 그랬죠(웃음). 음악 감독님이 다니시는 교회에도 나갔는데, 때마침 예수님의 음성을 듣는 꿈을 꾸는 바람에 음악 감독님이 오디션에서 저를 떨어뜨리면 큰일 날 것 같은 분위기로 몰고 가기도 했어요. 하하.”

결국 오디션에 합격한 그는 6개월간의 혹독한 준비 기간을 거쳤다. 그동안 혼자 가슴속에 쌓아두고 끙끙 대던 고민들을 동료들과 얘기하면서 하나둘씩 풀어갔고, 책도 많이 보면서 연기와 인생에 대해 다양한 시선을 갖게 됐다. 뮤지컬 무대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그는 비로소 연기 갈증을 풀 수 있었다. 초반에는 무대 전환 시 잠깐 관객 앞에 나와 웃음을 주는 일명 ‘바람잡이’ 역할도 자주 맡았는데, 그가 나왔다 하면 객석은 웃음 폭탄으로 초토화됐다. 정상훈 역시 그때의 경험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꺼내 쓸 수 있는 자신만의 개그 포인트를 쌓을 수 있었다.

“뮤지컬을 하면서 진짜 연기가 뭔지 배운 것 같아요. 작품에 들어가기 전 배우들끼리 두 달 정도 합을 맞추는데 그 과정에서 서로 연기를 배우거든요. 관객들이 무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감동을 느끼려면 진실된 연기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비싼 돈 내고 보러 오시는 분들인데, ‘연기 잘한다’는 소리는 나오게 해드리고 싶어요(웃음).”

뮤지컬 하면 배놓을 수 없는 것이 노래. 정상훈은 성악 전공자들처럼 매끄럽게 고음을 발산하지는 못하지만 흥이 많아 노래하는 걸 좋아하고, 꾸준히 음악 레슨을 받은 결과 이제는 꽤 풍부한 성량을 자랑한다. 그는 “레슨비가 워낙 비싸서 뮤지컬 배우 지망생인 음악 전공자들과 노래와 연기를 서로 가르쳐주는 방법을 썼다”며 웃었다.

18년 무명 털어낸 정상훈 ‘양꼬치엔칭따오’ 날다
배우로서의 자존심과 가족 지킬 수 있는 남자 되고파

2012년 10세 연하의 아내와 결혼해 세 살, 한 살배기 두 아들을 둔 정상훈은 블로거들 사이에서 열혈 아빠로도 유명하다. 영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패러디해 ‘양꼬치엔칭따오의 20가지 육아 그림자’라는 Daum ‘스토리볼’을 운영한 것. 이곳에는 둘째를 집에서 자연 출산법으로 얻은 내용, 신생아 목욕법, 이유식 만들기, 돌잔치 셀프로 준비하기 등 깨알 같은 정보가 가득하다.

“제 육아 철칙 중 하나가 ‘배워서 적용하자’예요. 처음부터 부모인 사람은 없잖아요. 아내도 처음부터 엄마가 아니었던 것처럼 아빠도 모르는 건 배워서 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무엇보다 아이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 뭐라도 더 해주고 싶은 게 부모 마음이더라고요. 쉬는 날 집에 있으면 아이들 보느라 체력적으로는 많이 지치지만 그래도 그 시간이 가장 행복한 것 같아요. 한 놈은 제 팔을 철봉 삼아 매달리고, 한 놈은 배 위에서 ‘방방이’를 타는데, 아휴~ 하루하루가 다이내믹합니다.”

그는 아내에 대한 고마움도 털어놓았다. 스물다섯 어린 나이에 결혼한 아내는 경제적으로 힘들 때도 내색하지 않고 묵묵히 그를 믿어줬다고 한다. 생활비가 없어 걱정하는 그에게 오히려 “우리 가족 중 누구 하나 아프지도 않고 부족한 사람 없으니 너무 돈 걱정하지 마”라며 그를 위로했다고. 정상훈은 양꼬치엔칭따오 캐릭터를 만난 행운도 다 아내 덕분이라고 믿는다.

“혼자 살 때는 돈이 없으면 없는 대로 지냈어요. 술은 (정)성화 형이 사주고, 바지 하나에 티셔츠 하나로 버티면 됐거든요. 그런데 결혼하니까 상황이 달라지더라고요. 아이들은 쑥쑥 자라고, 돈 들어갈 일은 많고. 정말 힘들 때가 있었죠. 배우들은 작품이 끝나면 정말 설 곳이 없어져요. 사실 내년까지 해보고 안 되면 이 일을 그만두고 음식 장사를 해볼 생각이었는데, 심성 고운 아내 덕분에 이렇게 좋은 기회가 찾아온 것 같아요. 최근 들어 빚도 많이 갚았고, 지인들에게 술도 자주 사요(웃음). 받은 만큼 베푸는 게 당연한 거 같아요.”

이 여세를 몰아 정상훈은 8월 13일 시작하는 케이블 채널 올리브 TV ‘비법’에도 고정 멤버로 출연한다. ‘비법’은 일반인이 출연해 자신만의 레시피를 선보이고 5명의 MC 중 1명이 직접 요리해 현장에서 검증해보는 시간을 가진 뒤 투표를 통해 ‘비법 전서’에 등재되는 요리 프로그램. 윤종신, 김풍, 김준현, 강남, 정상훈으로 MC 군단이 꾸려졌다. 음식 만드는 걸 좋아해 집에서 거의 주방 일을 전담하고 있다는 그는 이번 프로그램에 강한 자신감을 보였다.

“요리도 하다 보니 늘더라고요. 결혼해서 직접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만들어보니까 그 시간이 그렇게 뿌듯할 수 없어요. 아이들과 아내가 맛있게 먹는 모습만 봐도 흐뭇하고 행복하죠(웃음).”

7월 30일부터는 뮤지컬 ‘맨 오브 라만차’ 10주년 공연에서 산초 역으로 관객을 찾아갈 예정이다. 이번 작품은 그에게도 남다른 의미가 있다. 2013년 그가 처음 출연한 대형 뮤지컬로, 마음의 고향과도 같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주변에서는 조금이라도 떴을 때 ‘큰물’로 나가라는 말을 많이 하지만 그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다시금 산초 역으로 돌아왔다.

“금의환향한 기분이에요. 덕분에 2년 전보다 개런티도 좀 올랐어요. 하하. 더블 캐스팅이라는 게 조금 아쉽지만(웃음) 다시 불러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배우로서 그가 꿈꾸는 지향점은 결코 주연이 아니다. 배역은 작아도 연기력만큼은 인정받는 신 스틸러가 되는 것이 그의 목표다. 그러기 위해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순수함’을 잃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연기자는 다른 사람의 인생을 그리는 도화지라고 생각해요. 종이가 깨끗하지 않다면 어떻게 좋은 그림, 좋은 연기가 나오겠어요? 어떤 일이 있어도 배우로서의 자존심과 가족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디자인 · 최진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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