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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한인 고교 교사가 본 하버드·스탠퍼드대 거짓 합격 소녀 사건 전말

기획 · 김명희 기자 | 글 · 김숭운 미국 존 애덤스 고교 교사

입력 2015.07.08 10:47:00

세계 최고 명문 학교들로부터 동시에 러브콜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던 한인 천재 소녀의 이야기가 거짓으로 막을 내렸다. 바다 건너 우리를 부러움과 놀라움에 빠뜨렸던 이 사건의 뒷이야기.
미국 한인 고교 교사가 본 하버드·스탠퍼드대 거짓 합격 소녀 사건 전말
미국 한인 고교 교사가 본 하버드·스탠퍼드대 거짓 합격 소녀 사건 전말
6월 초 미주 한인 신문과 한국 언론에 보도됐던 ‘버지니아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한국인 유학생 김모(18) 양이 미국 최고 명문인 하버드와 스탠퍼드 대학에 모두 합격을 했는데, 두 학교에서 학생을 서로 탐내는 바람에 스탠퍼드에서 2년, 하버드에서 2년을 다닌 후 학생이 졸업할 학교를 선택하기로 했다’는 기사는 미국의 교육 관계자들도 깜짝 놀랄 만한 사건이었다. 언론 보도에는 김양이 고등학교에서 진행한 프로젝트 제목과 대학 교수들의 이름까지 실명으로 등장한다. 언론을 통해 소개된 그녀의 집안 내력도 좋은 데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주커버그와 통화까지 했다는 구체적인 에피소드까지 덧붙여져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도 사교육에 시달리는 한국 학생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미국 언론에서는 김양과 관련된 보도가 단 한 줄도 없었다. 이곳에서도 명문대 입시는 주요한 이슈로 다뤄진다. 탁월하게 뛰어난 학생이나 이색 합격자는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마련이다. 하지만 김양의 소식은 이상하리만큼 미국 언론의 관심을 받지 못했다. 불과 일주일 전 수많은 신문과 방송이 MIT에 동시 합격한 뉴포트비치의 세쌍둥이를 떠들썩하게 다뤘던 것과는 너무 대조적이었다.

김양의 명문대 동시 합격은 30년째 미국에 살면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전대미문의 일이었지만, 이 학생이 미국 최고 명문 공립학교로 꼽히는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Thomas Jefferson High School for Science and Technology) 졸업반이라는 점과 워낙 다양한 입학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미국 대학들의 특성상 전문가들도 모르는 새로운 시스템이 생겨나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니기 때문에 ‘긴가민가’ 하는 생각에 빠졌다. 토머스 제퍼슨 고등학교는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과 가까운 교외에 위치해 정부 고위직과 고학력자, 고소득자들의 자녀가 많이 다닌다. 또한 미국 고등학교들 가운데 하버드대 합격생을 가장 많이 배출하는 학교로도 유명하다. 한국으로 치면 강남에 위치한 과학고나 특목고쯤 되는 셈이다. 워싱턴 인근에 사는 한국 부모들 가운데는 자녀를 이 학교에 보내기 위해 초등학교때부터 과외를 시키고 학원에 보내는 이들이 많다. 그렇게 뛰어난 학생들 중에서도 미국대학수학능력시험(SAT) 만점, GPA(학점) 4.6에 미국 수학경시대회 수상까지, 언론을 통해 알려진 김양의 성적과 스펙은 단연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김양이 이룩한 놀라운 일들이 한국 언론에 보도된 직후 워싱턴 지역의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이 기사의 진위를 둘러싸고 의혹이 일었다. 김양 측이 두 대학 합격증과 유명 교수들과 주고받은 이메일 등을 공개했지만, 모두 거짓임이 드러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족과 떨어져 한국에서 지내던 김양의 아버지는 급히 미국으로 건너가 사실을 확인한 뒤 사과하며 “아이가 많이 아프다” “치료가 필요하다” 고 언급, 딸이 거짓말의 진원지이며 건강하지 않은 상태에 있음을 시사했다.



이 사건이 벌어진 후 일각에서는 한국 부모들의 지나친 교육열을 원인으로 분석하기도 하고, 또 일부에서는 김양을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소설 ‘재능 있는 리플리 씨’의 주인공에게서 이름을 따온, 거짓을 진실로 믿고 행동하는 반사회적 인격 장애 ‘리플리 증후군’ 환자로 진단하기도 했다.

미래의 노벨상감인 수학 천재의 탄생에 흥분했던 사람들은 그만큼 실망감도 컸을 테지만, 사실 이번 일은 그동안 벌어진 명문 대학 가짜 학생 사건들에 비하면 그리 놀라운 것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학생의 거짓말과 부모의 지나친 자랑 때문에 벌어진 해프닝일 수도 있다. 거기에 명문 대학이라면 지나치게 흥분하는 국내 언론들이 경쟁적으로 합세하는 바람에 일이 커진 것이다.

미국 한인 고교 교사가 본 하버드·스탠퍼드대 거짓 합격 소녀 사건 전말
미 명문대의 선발 인원 제한으로 갈수록 입학이 어려워지는 아시아계 학생들

미국에서는 거의 매년 각종 명문대 합격증 위조 사건이 벌어진다. 어떤 학생들은 합격도 하지 않은 학교에 입학해서 강의를 듣기도 한다. 2007년에는 캘리포니아 주 오렌지 카운티의 명문 트로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한인 학생이 8개월 동안이나 스탠퍼드 대학의 학생 행세를 하며 기숙사에서 생활하다가 학교 당국에 적발된 사건이 있었다. 당시 그 학생은 자신을 생물학 전공이라고 소개했으며, 다른 학생들과 마찬가지로 수업용 교과서를 구입하기도 하고, 심지어는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함께 밤을 새워 시험공부를 하기도 했다. 기숙사 동료들은 아무도 그녀가 가짜 학생이었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음은 물론, 사실을 알고 난 후에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번 사건에 대해 미국에서는 한국인뿐만 아니라 어느 민족에게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보자면, 학벌에 집착하면서도 점점 더 명문대에 들어가기 힘들어지는 동양권 학생들이 이런 유혹에 빠지기 쉽다.

과거 하버드 등 미국 명문대는 입학생 중 유대인이 상대적으로 너무 많아서 선발 인원에 제한을 두었다. 그런데 지금은 아시아계 학생들이 그 대상이 됐다. 아이비리그의 아시아계 학생 선발 비율은 14~18% 정도. 적은 수는 아니지만 해마다 한국인은 물론 중국, 일본 등에서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들기 때문에 경쟁은 점점 더 치열해진다. 이 때문에 동일한 점수와 활동으로 대학에 충분히 합격할 수 있는 학생도 아시아인일 경우 합격 가능성이 크게 떨어진다. 명문대에 지원하는 동양 학생들은 모두 공부를 잘하고 뛰어나다. 악기 한두 가지를 전문가 수준으로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운동, 리더십, 봉사활동 등 거의 모든 면에서 탁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들어가기 어려워지니 학생도 부모도 고달픈 것이다.

명문대 진학이 고소득 혹은 행복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하버드 · 예일대 같은 아이비리그 졸업생보다 이름 없는 뉴욕의 선원학교 졸업생들이 더 많은 소득을 올리는 것은 미국인들에게는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또 명문대 졸업생들은 여유 있게 사는 것처럼 보여도 속으로는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을까 하는 스트레스로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통계도 있다.

좋은 교육이란, 재학 시절 성적 몇 점으로 장래를 결정짓는 것이 아니라 노력한 만큼 그리고 자신의 적성에 맞는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도록 지식과 인격을 길러주는 것을 말한다. 학창 시절 성적이 조금 나쁘더라도 사회에 나아가 성공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 바로 우리 어른들의 몫이다.

사진 · 동아일보 사진DB파트

디자인 · 김수미

여성동아 2015년 7월 6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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