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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 로컬처 운동을 말하다

“아래에서, 날 것으로, 느리게”

글·김지은 자유기고가|사진·박해윤 기자, 지역발전위원회 제공

입력 2014.12.17 10:46:00

로컬처 운동은 대통령 직속 기구인 지역발전위원회가 지역 주민들이 주도하는 문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 시작한 일종의 실험 프로젝트다. 지난 9월 양평에서 진행된 첫 번째 로컬처 활동이 성공리에 마무리되면서 지역발전위원회는 한껏 고무된 모습이다.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으로부터 양평 프로젝트 전후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 로컬처 운동을 말하다

로컬처 활동의 첫 번째 실험 무대였던 양평 문호리 리버마켓. 양평의 지역민들이 자생적으로 시작한 소규모의 프리마켓이던 ‘문호리 리버마켓’에 각 분야의 예술가들로 구성된 로컬처팀이 합류, 다양한 공연과 볼거리, 이벤트 등을 제공해 주민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매달 셋째 주 토요일,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문호리의 북한강변 기슭에는 크고 작은 색색의 천막들이 즐비하게 늘어선다. 호박이며 고추 같은 텃밭에서 기른 유기농 채소부터 천연 염색 스카프와 한 땀 한 땀 수놓은 수건, 손으로 나무를 깎아 만든 도마, 올망졸망 도자기 그릇에 집에서 만든 음식들까지 각자의 노력과 재주가 총출동하는 순간이다.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없는 귀한 ‘핸드메이드’라 그 안에 담긴 정신과 예술적 가치는 돈으로 환산하기 힘들 것이나, 동네 주민들끼리 품앗이하듯 소소하게 내놓은 물건들인 만큼 서로의 가벼운 지갑 사정까지 배려하는 착한 가격에 마음까지 훈훈해진다.

몇 달 전 몇몇 뜻 있는 주민들이 시작한 마을 장터였던 ‘문호리 리버마켓’은 블로거들과 주민들의 입소문을 타고 꽤나 큰 반향을 일으켜 이제는 지역 명물로 자리 잡았다. 9월 20일에는 대금 연주가 이주항, 패션 디자이너 김동률, 방송 작가 박이안, 색소포니스트 신현필, 한복 디자이너 오인경, 요리사 경미니, 작곡가 배영준, 가구 디자이너 김제록, 공연 기획자 이나항, 그래픽 디자이너 김도현, 포토그래퍼 이상인, 북 에디터 양춘미 등 지역 문화 운동에 뜻을 지닌 예술인 모임인 ‘로컬처팀’까지 힘을 보태 행사가 한층 더 풍성해졌다.

자생적 지역 문화에 거름을 주다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 로컬처 운동을 말하다
이날 행사는 대통령 직속 기구인 지역발전위원회가 지역민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행복 찾기의 일환으로 시작한 ‘로컬처 운동’의 첫걸음이었다. 지역 발전 정책을 수립, 실행, 평가하는 기구이자 중앙 정책과 지방자치단체를 연결하는 컨트롤 타워인 지역발전위원회가 싱싱하게 살아 있는, 날것 그대로의 지역 문화 운동을 시작한 것이다. 특히 로컬처 운동은 거추장스러운 포장 단계를 과감히 생략하는 대신 ‘과정’을 공유하면서 공감을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관에서 주도한 행사들과 많이 달라보인다.

양평의 리버마켓에서 시범적으로 진행된 첫 번째 로컬처 운동의 가장 큰 성과는 ‘성과를 강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성과에 급급해하다간 오히려 로컬처 운동이 가진 진정성을 훼손할 수 있다는 데 지역발전위원회와 행사를 준비한 예술가들의 생각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로컬처 운동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지역을 뜻하는 ‘로컬(local)’과 문화를 뜻하는 ‘컬처(culture)’의 합성어이기도 하지만 아래(low)에서 위로, 그러니까 지역민들이 이끌어나가고 관은 뒤에서 밀어주는 방식이라는 의미도 있죠.”

이원종(72) 지역발전위원회 위원장의 설명이다. 그래서 지역발전위원회는 애초부터 행사의 준비와 기획의 주도권을 지역민들과 ‘로컬처팀’에 일임했다. 행사의 주체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의견을 모은 다음 필요한 지원을 요청하면 지역발전위원회가 이들의 손발이 되어주는 식이다. 불필요한 보고 체계나 상명하달식 시스템도 과감히 버렸다. 어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지만 지금까지의 관행을 보면 쉽지만은 않은 결정이었다.

“문학이든 예술이든 철학이든 궁극에는 감동을 주는 것이 가장 큰 목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누구에게는 커다란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 누구에겐 그다지 관심 가지 않는 내용일 수도 있어요. 어느 쪽이 고급문화이고 어느 쪽은 그렇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대상에 따라 그들에게 맞는 문화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겁니다.”

사람에게는 정서적 식량이 필요하다

지난해 지역발전위원회에서 진행하고 평가한 사업의 수는 1천여 가지, 그 안에는 도시가스가 공급되지 않는 지역에 도시가스 공급망을 설치하는 것부터 행정구역이 달라 협조가 이뤄지지 못하는 인접 지역의 상하수도 문제, 쓰레기 매립 문제 등을 공동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일도 포함돼 있다. 올레길과 같은 산책로를 개발하고 관광 루트를 기획하는 것, 각 도별로 지역적 특색을 살려 지역 특화 산업을 육성하는 것도 지역발전위원회가 하는 중요한 일들이다. 강원도는 의료 산업을, 충북은 바이오 산업을, 경기는 생태 평화 벨트를 조성하고 있다. 전남은 해양 관광 산업을, 제주는 용암수 개발 사업을 진행 중이다.

지역민들의 낙후된 생활환경과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사업들도 있다. 최근 지역발전위원회의 주선으로, 전북 전주시와 완주군이 협업을 통해 문을 연 로컬 푸드 매장이 대표적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내내 농사를 지어놓고도 판로를 개척하지 못해 속수무책이었던 농민들은 로컬 푸드 매장이 생기고부터 직접 가꾼 농산물을 판매할 수 있는 든든한 판로를 얻었다. 또한 전주 시민들에게는 지역에서 생산된 저렴하고 싱싱한 농산물을 믿고 구입할 수 있는 구매처가 생겼으니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다.

이 모든 사업은 지역 발전에 필요한 것들을 찾아내고 가려운 곳을 긁어준다는 데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지역발전위원회가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빠르게 가져올 수 있는 것도 아닐뿐더러, 수익이 남거나 생활의 불편함을 해소하는 것이 아닌 문화 사업에 이처럼 관심을 가지고 공을 들이는 이유가 궁금해진다.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선 물질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인간에게는 정서적 식량이 필요하거든요. 아무리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풍족해도 정서적으로 피폐하다면 결코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볼 수 없지 않겠어요? 더군다나 현대사회는 소득이 높고 인구가 많은 지역에 문화가 집중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지역에 작은 영화관이나 도서관 같은 시설을 마련하는 것도 이러한 편향을 막기 위한 방편입니다. 그리고 로컬처 운동처럼 그 지역 사람들에게 맞는 정신적 양식을 마련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양평에서처럼 자생적 문화에 힘을 실어주는 형태는 그 지역의 특색에 맞는 프로젝트를 기획하면서 나온 아이디어고, 앞으로 다른 지역에서는 그곳에 맞는 방법으로 사업을 펼쳐나갈 계획입니다.”

로컬처 운동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역민과의 소통이다. 그 내용이 무엇이 됐든 어느 한쪽에서 일방적으로 보여주거나 전달하는 방식으로는 ‘꾸준히 이어가는’ 문화로 뿌리내리기 힘들기 때문이다.

주민의 눈으로 지역을 바라보다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 로컬처 운동을 말하다
“로컬처 활동을 시작하면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부산 감천마을을 방문했는데 깜짝 놀랐어요. 그곳을 보면 지역의 문화 활동이 주민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알 수 있어요. 꼬불꼬불한 뒷골목 어딜 다녀봐도 그 흔한 담배꽁초 하나 찾을 수 없었거든요. 그만큼 주민들이 자신이 사는 동네를 사랑한다는 뜻이겠죠.”

인터뷰에 동석한 대금 연주가 이주항 씨의 말이다. 감천마을은 한국전쟁 시절 피란민들이 모여 무허가 판자촌을 이루면서 생겨난 마을로, 부산에서도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꼽히던 곳이다. 그런 마을을 변화시킨 것은 지역의 예술가들이었다. 2009년부터 마을 미술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 빈 벽과 계단에는 그림을 그리고 낡은 지붕에 색을 입혔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어린왕자와 여우의 동상이었어요. 흔히 그런 조형물을 세울 때면 그 자체가 볼거리가 되도록 하게 마련인데 감천마을의 어린왕자와 여우는 오르막길을 등지고, 마을을 바라보고 있어요. 사람들은 그 동상의 시선을 따라 마을 전체를 바라보게 되는 거죠. 그런 따스한 배려가 감천마을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봅니다.”

지역발전위원회와 로컬처팀이 눈여겨보고 있는 다음 프로젝트 목표 지역은 인천의 괭이부리마을이다. 이 위원장은 괭이부리마을 역시 감천마을처럼, 마을 곳곳에 숨어 있던 따스한 감성을 이끌어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변화할 수 있다고 믿는다.

“과거에는 문화 활동이든 무엇이든 개선한다 하면 무조건 있던 것을 없애고 새로 만드는 것만이 능사라 여겼던 시절도 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는 있는 것들을 어떻게 잘 활용하고 그 안에서 어떤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답을 찾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더 나은 환경을 찾아 마을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환경을 바꾸고 삶의 질을 개선해나가는 식이 돼야 합니다.”

이 위원장은 지역 문화의 발전 덕분에 주민들 삶의 질이 나아진 사례는 수없이 많다고 소개했다. 서울시에서 진행한 범죄 예방 디자인 프로젝트도 그중 하나다. 우범 지대에 속했던 서울 마포구 염리동 소금길 일대 낡은 벽에 주민들 스스로 화려한 색을 덧입히고 비석 치기 같은 놀이 문화를 정착시킴으로써 사람들이 서로 마음의 문을 열고 소통하도록 만든 것이다. 두렵고 떠나고 싶던 마을은 이제 소통과 향유의 공간으로 변모했다.

진정한 자기반성이 필요한 때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 로컬처 운동을 말하다

이원종 지역발전위원장은 문화 인프라의 특정 지역 편중을 해소하고, 지역 주민들이 함께 누릴 수 있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으로부터 딱 20년 전, 전 국민을 충격과 공포로 몰아간 성수대교 붕괴 사고 당시 이원종 위원장은 서울시장으로 재임 중이었다. 이 위원장에게는 그 사고가 공직 생활 중 가장 가슴 아픈 사건으로 기억된다. 올 한 해 대한민국을 뒤흔든 크고 작은 사고들을 바라보는 그의 심경도 남달랐을 터. 그에게 20년 전의 일에 대해 물었다.

“누군가는 제게 그 이야기는 이제 하지 말라고도 하는데, 그건 아닙니다. 내가 잘못한 건 잘못했다, 인정하고 반성을 해야지 숨기면 안 되는 거잖아요. 긴 시간을 놓고 보면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온 고속 성장의 대가를 치른 것이지요. 우리나라는 반세기 전만 해도 식량 문제조차 해결하지 못하던 빈국이었습니다. 불과 50년 만에 3백 배의 경제성장을 이뤄낸 것은 세계적으로도 전무후무한 일입니다. 심지어 우리는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동시에 이뤄냈죠. 하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도 엄청났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0년에 있었던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입니다. 당시 무허가 판자촌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빨리빨리, 더 많이, 더 싸게 시민들을 아파트에 살게 하는 정책을 밀어붙인 것이 시민 아파트 건립이었거든요. 그 일 뒤에도 아현동 가스 폭발, 성수대교와 삼풍아파트 붕괴 등 수많은 사고들이 있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우리나라 건설에는 유지 관리 개념이 없었습니다. 빨리 많이 지으면 그걸로 끝이었거든요.”

그에게 어렵게 세월호 사고 이야기를 꺼냈다. 설핏 그의 목소리에도 무거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앞의 사고들이 양적 붕괴였다면 세월호 사고는…, 질적 붕괴입니다. 우리 가치관의 붕괴, 탐욕과 이기심이 가져온 인간성의 붕괴인 거죠. 어린 학생들을 비롯한 탑승객들을 누군가의 귀한 아들딸, 부모, 형제로 보지 않고 머릿수 곱하기 돈으로만 본 겁니다. 어디 세월호 사고뿐이겠습니까. 우리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그런 풍토가 만연해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런 일이 생길 때마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떠넘길 생각부터하곤 합니다. 남 탓을 하기 전에 스스로를 돌아보았으면 합니다. 정말 이러한 사고들이 특정한 개인의 잘못으로 일어난 일인 것인지….”

그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것은 사회 지도층을 중심으로 한 한국판 노블레스 오블리주 운동이라 말했다. 정계와 학계, 종교계, 문화계가 모두 나서서 자기 위치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솔선수범하는 모습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로컬처 운동은 그가 스스로 택한 솔선수범의 한 방법일 수도 있다. 조금 더 천천히 가더라도, 당장에 눈에 보이는 거창한 성과가 없더라도, 지역의 예술인들과 주민들이 함께 즐기기 위해 손을 잡는 것만으로 그 시도는 충분히 신선하고 즐겁다. 그리고 주민 스스로 자신의 터전에서 온전히 뿌리내리며 즐겁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나간다면 ‘로컬처 운동’은 성공이다.

여성동아 2014년 12월 6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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