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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지, 사람들 속으로

“‘문화대통령’ 이름 누가 좀 가져가주길”

글·김민주 자유기고가 | 사진·지호영 기자, 포츈엔터테인먼트 제공

입력 2014.11.18 10:17:00

영원히 신비주의로 살 것 같던 서태지가 눈에 띄게 달라진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이와 나란히 누워 잠든 모습을 공개하고,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5년 만에 내놓은 새 앨범의 콘셉트도 딸에게서 영감을 얻은 ‘동화’.
가족 안에서 행복을 찾은 서태지의 인생 2막이 기대된다.
서태지, 사람들 속으로
서태지, 사람들 속으로
서태지(42)가 돌아왔다. 8집 이후 5년 만에 9집 앨범 ‘콰이어트 나이트’로 팬들 앞에 섰다. 그 사이 이지아와의 이혼 소송, 이은성(26)과의 결혼과 딸 탄생 등 여러 개인사를 겪어서일까. 서태지는 변했고 그의 음악도 달라졌다. 컴백 행보에서도 이런 변화는 여실히 드러났다. 은퇴 이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서태지가 10월 초 5년 만에 처음으로 예능 프로그램에도 출연했다. KBS ‘해피투게더’에서 MC 유재석과의 1:1 토크를 통해 그동안 물음표로 둘러싸여 있던 개인사를 들려준 것. 이에 대해 대중의 반응은 ‘속 시원하지는 않았지만 서태지도 할 만큼 했다’는 분위기로 흘렀다. 실제로 서태지는 방송에서 그동안 언론에 공개하지 않았던 사생활을 서슴없이 털어놓았고, 특히 아내 이은성과 지난 8월에 태어난 딸에 대한 애정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서태지는 이은성의 첫인상에 대해 “(2009년) 뮤직비디오 촬영을 하면서 처음 봤는데 오묘한 느낌이었다”며 “그때부터 마음이 있었고 먼저 사귀자고 말했다”고 밝혔다. 또한 아내와 연애시절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함께 했던 데이트 사진과 결혼식·딸 사진도 공개하며 “예전과 마음이 많이 달라졌다. 지금은 아내와 딸을 위해서 뭐든 다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이지아에 대해선 “남자로서 미안했다. 앞으로 잘 살길 바란다”는 말로 상황을 정리했다. 일부에서는 MC들의 소극적인 태도에 서태지를 지나치게 배려한 방송이 아니었냐는 지적도 있었지만, 20년 동안 신비주의로 일관해온 그간의 행적에 비하면 ‘엄청난 변화’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다.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로 데뷔한 서태지는 1996년 돌연 은퇴,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2000년에 다시 한국 무대로 돌아왔다.

새 앨범 뮤즈는 갓난쟁이 딸 삐뽁이

서태지의 탈 신비주의 행보는 ‘가족’이라는 새로운 울타리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지난 10월 20일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9집 앨범 발매 기념 기자회견을 가진 서태지는 새 앨범의 음악적인 영감을 가족과 딸에게서 받았다고 밝혔다.

“딸도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어요. 앨범 재킷의 소녀도 6~7세 정도 됐을 때 딸의 모습을 상상해 넣었어요.”

오랜만에 기자들 앞에 선 그는 살짝 긴장한 기색도 보였지만, 딸에 대해 얘기할 때는 환하게 웃는 영락없는 ‘딸 바보’였다. 9집 앨범도 어른과 아이가 함께 들을 수 있는 한 권의 동화책 콘셉트로 꾸몄다. 앨범 커버에 등장하는 소녀가 세상을 여행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이야기와 그 소녀에게 들려주고 싶은 서태지의 이야기가 주제다. 서태지는 앨범 속 스토리텔링에서 나오는 소녀는 모두 자신의 딸이라고 밝혔다. 딸의 탄생과 함께 음악도 한결 대중적으로 변모했다. 서태지 역시 이 같은 평가에 반색했다.



“대중적으로 들린다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모든 이가 들을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 싶었거든요. 저를 모르는 어린 친구들이 ‘서태지가 이런 음악을 하는 사람이구나’라는 걸 알게 되면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앨범의 마지막 곡인 ‘성탄절의 노래’는 가장 먼저 녹음을 했는데, 이 역시 아이를 위한 태교 음악이라고 한다.

“이 노래는 삐뽁이(태명)가 태어나기 전, 벅찬 감동을 담았어요. 삐뽁이가 뱃속에 있을 때 태교 음악으로 많이 들려줬어요. 앞으로 새 생명을 낳게 되는 어머니와 아이가 같이 들었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9집 앨범 중에 유일하게 선 공개된 곡 ‘소격동’은 서태지가 유년시절을 보낸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대한 이야기다.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겨울이 오면 운치를 더해 예뻤던 소격동의 모습이 그리워서 나이가 들어서도 종종 그곳을 찾는다는 서태지는 이 곡 역시 딸을 생각하며 만들었다. 아빠가 어린 시절을 어떤 곳에서 어떻게 보냈는지, 아버지가 돼 느끼는 감정들을 노래를 통해 말해주고 싶었다고 한다. ‘소격동’ 아이유 버전은 서태지의 음악이 대중에게 더욱 친근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만든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서태지도 아이유와의 콜래보레이션은 기대 이상의 성공이라 여긴다.

“저는 보컬리스트보다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 노래를 다른 가수가 부르면 어떨까 많이 생각했죠. ‘소격동’은 예쁜 노래예요. 그래서 남자보다 여자가 부르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평소에 아이유 씨 목소리를 ‘보물’이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좋아했는데, 소격동을 아이유 씨가 불러줘서 덕을 많이 봤어요. 덕분에 10대들에게 제 음악을 더 많이 들려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아이유 씨를 업고 다니고 싶을 정도예요(웃음).”

서태지는 아내 이은성 역시 아이유의 열성 팬이라고 덧붙였다. “아이유 씨와 함께 평창동 집에서 녹음도 하고 식사도 하면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많이 했다”며 그간의 편안했던 일상을 들려줬다.

기자회견에 앞서 지난 10월 18일 잠실 주경기장에서 서태지의 컴백 공연이 열렸다. 콘서트 무대에 오른 서태지는 “너무 보고 싶었다. 한자리에 모인 여러분들을 보니 너무 좋다”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일부에서는 서태지의 명성에 비해 공연장을 찾은 관객 수가 너무 적었던 게 아니냐는 지적도 있었는데, 이에 대해 서태지는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음에도 항상 공연장을 찾아주는 팬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지금 다시 생각해도 울컥한다”고 전했다. 또한 콘서트는 보통 2시간 이상 진행되는데, 이번 콘서트는 1시간 30분만에 끝나서 ‘아쉬웠다’는 의견도 많았다. 서태지는 이 사실을 공연이 끝난 뒤에야 깨달았다고 한다.

“첫 공연이라 긴장을 많이 했어요. 특히 5년 동안 민간인으로 살다가 오랜만에 무대에 서니까 몸이 덜 풀리기도 했고요. 원래는 멘트를 많이 준비했는데, 긴장해서 멘트도 많이 안하고 계속 노래만 불렀어요. 심지어 밴드 소개하는 것조차 잊어버렸죠(웃음). 그나마 무대에서 팬들의 환호성을 듣고 몸이 많이 풀렸어요. 앞으로는 더욱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전국투어도 할 예정이고, 스페셜한 공연도 있을 겁니다.”

서태지, 사람들 속으로

1 2 신보 발매에 앞서 진행된 컴백 공연 ‘크리스말로윈’ 리허설 현장. 서태지가 직접 무대 및 음향을 점검 중이다. 3 동화를 콘셉트로 하는 9집 앨범 ‘콰이어트 나이트’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4 생후 3개월 된 딸 ‘삐뽁이’는 아빠의 음악적 성향까지도 바꿔놓았다 .

사생활 관련 악성 루머에도 여유

90년대를 풍미한 문화대통령으로 군림했던 서태지는 공연 중간에 “한물간 90년대 가수가 들려드립니다” 라는 멘트를 하며 관객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하지만 이 같은 발언은 그간의 고뇌를 담은 표현이기도 했다.

“한물간 가수라는 표현은 노래를 소개하는 멘트였지만, 고해성사 같은 진심이 담겨 있어요. 음반을 만들 때마다 항상 좌절을 많이 했어요. 다음 음반이 잘 나올까 걱정도 했고요. 과연 나이가 들어서도 90년대처럼 음악을 잘할 수 있을까도 고민했죠. 30~40대가 지나고 저도 팬들도 나이가 들어가잖아요. 그러면서 비주류로 밀려나는 느낌도 있고요. 팬들에게 이런 상황을 받아들이자고 희망을 말하고 싶었어요. ‘우린 아직 젊기에, 괜찮은 미래가 있기에~’라고요.”

서태지는 누가 뭐래도 한국 음악사에 큰 획을 그은 인물이다. 하지만 지금 세대들은 ‘서태지가 왜 그렇게 대단한가요’라고 물을 정도로 그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한다. 서태지 역시 “서태지의 시대는 90년대에 끝났다”고 말한다. 2000년대 들어서 컴백을 했지만, 마니아적인 음악을 해서 대중성을 버린 것은 사실이기 때문. 또한 ‘문화대통령’이라는 타이틀에 대해서도 “자랑스럽지만 족쇄 같은 면도 있다”며 “너무 장기 집권하고 있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누군가 가져갔으면 좋겠다. 그러면 선배로서 흐뭇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공백기 사이 있었던 여러 가지 사생활 관련 악성 루머에 대해서도 농담을 던질 수 있을 만큼의 여유를 보였다.

“20년 동안 내 음악을 듣고 평가를 내리는 팬들과 안티 팬들의 콜래보레이션 토론은 적극 찬성입니다. 안티 팬들의 역사도 정말 오래됐는데, 8집에서 9집 사이에는 아주 심오한 과정이 있었죠. 제가 떡밥을 많이 던졌습니다(웃음). 그걸로 재미있게 이야기하시지만, 중요한 건 음악이고 나머지는 가십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오히려 그런 관심들 덕분에 제 음악을 한번이라도 더 들어보게 할 수 있다면, 얼마든지 환영입니다.”

‘신비주의 문화대통령’이라는 타이틀 대신, ‘남편과 아빠’라는 타이틀을 달고 대중을 향해 더욱 친근하게 손을 내밀고 있는 서태지. 그가 내민 손에 대중들은 과연 어떻게 화답을 할지 기대된다.

여성동아 2014년 11월 61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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