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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른한 일요일 아침, 한재석

글·진혜린|사진·홍중식 기자, cj E&M 제공

입력 2014.06.17 14:40:00

한재석은 반듯한 엄친아 이미지처럼 슈트가 잘 어울리는 남자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흐트러진 그의 모습은 일요일 아침처럼 근사했다.
나른한 일요일 아침, 한재석
“촬영장 가는 길이 즐거워요. 가장 좋아하는 일이니까요. 힘든 때도 있지만, 어떤 일이나 힘든 순간은 있잖아요.”

한재석(41)이 이렇게 유쾌한 사람이었나. 그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질 않는다. 우수에 젖은 눈으로 한 손에 상그리아를, 다른 손에 장미꽃을 들고 있을 것 같은 그가 무릎을 다소곳이 모으고 앉아 양손을 살포시 올린다. 그리고 눈가 주름 신경 쓰지 않고 완벽히 활짝 핀 미소를 짓는다. 고뇌에 차거나 우수에 젖은 모습보다, 등받이에 팔을 걸치고 폼 잡는 모습보다 ‘유쾌함’으로 점철된 그의 모습이 더 매력적이었다.

한재석은 첫 등장부터 트렌디 드라마에 최적화된 남자였다. 드라마 한 편에 단역으로 출연한 게 연기 경험의 전부였지만 1995년 ‘째즈’에서 당시 최고의 스타였던 최진실의 상대역을 맡아 단숨에 스타덤에 올랐다.

하지만 tvN 드라마 ‘마녀의 연애’에 한창 출연 중인 지금의 한재석을 만나 과거 화려했던 추억까지 애써 더듬을 필요는 없었다. 연기 경력 21년 차에 접어든 그가 아직도 성장통을 마다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배우 한재석이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우리는 아직도 한재석을 다 알지 못한다



“저 원래 가벼운 사람인데, 어려운 사람으로 알더라고요. 맡은 역할 대부분이 폼을 잡아서 그런 거겠죠? 요즘 촬영 중인 ‘마녀의 연애’에서도 폼을 잡아요. 이제는 폼 잡지 않는 역할을 해보고 싶어요.”

‘마녀의 연애’ 공식 홈페이지에는 그가 맡은 노시훈에 대해 ‘생각은 깊고, 결은 곧고, 품은 넓고 뭐 하나 빠질 것이 없는 완벽한 남자’라고 소개돼 있다.

나른한 일요일 아침, 한재석

tvN ‘마녀의 연애’에서 한재석은 반지연(엄정화)의 첫사랑, 완벽한 남자 노시훈 역을 맡았다.

“첫 작품인 ‘째즈’때는 그런 역할이 트렌드였어요. 한때는 그런 배역만 하자는 생각도 들었죠. 한 가지 색깔을 가진 배우도 매력적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 색깔로는 어느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그런 배우요. 하지만 그러다 보니 연기의 폭이 너무 좁아지더라고요.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대중의 시선도 변하기 시작했고, 저 또한 조금씩 유치하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그때는 화면에 제 모습이 나오는 걸 외면하기도 했어요(웃음).”

아직까지 그를 따라다니는 ‘엄친아’라는 꼬리표가 부담스럽다고도 했다. 무엇인가를 더 잘해야 할 것 같고, 더 보여줘야 할 것 같은 부담. 그래서 그의 오랜 과제는 ‘변신’이었다. 실제로 ‘재벌 2세’보다 새로운 모습에 도전한 작품이 더 많다. ‘순수’(1998)를 통해 완벽을 벗고 까불거려보기도 했고 ‘이브의 모든 것’(2000)에서 만날 울기만 해본 적도 있다. 영화 ‘퀴즈왕’(2010)과 드라마 ‘울랄라 부부’(2012)는 코미디 장르다. 자신을 스타덤에 올려놓은 데뷔작 ‘째즈’를 제외하고 가장 의미 깊은 작품으로 ‘대망’(2002)을 꼽는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박시영이라는 역할을 맡았는데, 그게 악역이었거든요. 이제는 그보다 더 강한 이미지의 매력 있는 악역을 해보고 싶기도 해요. 한편으로는 편안하고 재미있는 역할도 해보고 싶고요. 저, 완벽하지 않아요. 그냥 평범해요. 조금 흐트러지고 편안한 그런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최근에는 데뷔 후 처음으로 KBS 예능 프로그램 ‘미스터 피터팬’에 출연하기도 했다. 비록 파일럿으로 2회만 방송됐지만 신동엽, 윤종신 등과 함께 출연하며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한 그의 노력이 엿보인다. 하지만 그는 결코 서두르지 않는다.

“작품이 끝나고 꼭 충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은 없지만 캐릭터의 잔재가 남아 있으면 안 된다고는 생각해요. 연이어 작품을 하다 보면 전작의 흔적이 남을 수밖에 없거든요. 배우뿐 아니라 시청자가 갖는 잔상도 사라질 시간이 필요하죠. 그런데 시간을 둔다고 해서 잔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계속 새로운 것을 시도하면서 예전의 이미지를 바꿔나가야 하는 거더라고요. 계속 도전을 해서 여러 가지 모습의 잔상을 남기는 거죠.”

나른한 일요일 아침, 한재석
아내 박솔미, 딸과 함께하는 결혼생활 행복해

나른한 일요일 아침, 한재석
자신이 “평범하다”고 했지만 사실 연세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당구, 골프, 야구 등 종목 가릴 것 없이 못하는 운동이 없다. 장동건, 공형진 등과 함께 연예인 야구단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해왔다. 하물며 ‘미스터 피터팬’에서는 팽이를 현란한 솜씨로 돌려 ‘능력자’로 불리기도 했다. 음악도 예외는 아니다. 기타는 물론 드럼까지 다루는 전천후다.

“전문가들이 보면 우습죠. 아마추어들이 보면 좀 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잘하는 편이 못 돼요. 저는 뭐든 어중간한 사람인 것 같아요. 뭐든 쉽고 빠르게 배우지만 ‘더 잘해야지’ 하는 생각보다 편안하게 하는 편이에요. 거기에서 최고가 안 됐다고 스트레스를 받지도 않고요(웃음).”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움. 그는 “결혼과 나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고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드라마 ‘거상 김만덕’(2010)에서 인연을 맺은 탤런트 박솔미와 연애 3년 만인 지난해 결혼에 골인, 3월 예쁜 딸을 낳았다.

“여행도 혼자 갈 때가 많았고, 커피숍도 혼자 자주 갔었어요. 뭐든 혼자가 편했어요. 그래서 누군가와 같이 한다는 게 힘들 줄 알았거든요. 그 사람의 상황을 배려한다는 거, 그게 될까 싶었죠. ‘아, 나는 자유로운 영혼인가 보다’ 싶었는데, 결혼할 여자가 나타나니까 하게 되더라고요.”

결혼 한 지 1년이 됐다. 혼자가 아닌 둘, 아니 이제는 셋이 된 상황에서 ‘자유로운 영혼’이 발동하진 않았을까?

“없더라고요. 좋더라고요. 소속감도 있고, 책임감도 생기고 즐거워요. 많이 행복해요. 만족해요.”

긍정의 단어가 총동원됐다. 좋고, 즐겁고, 만족스럽고, 행복하다는 것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

“꽤 늦은 나이에 아이를 낳은 거잖아요. 그래서 그런지 좋아요. 하루는 아이에게서 제 얼굴이 나오는 것 같다가도 다음 날엔 엄마 얼굴을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제 누나나 형 얼굴이 나오기도 하고요.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아요. 아직 태어난 지 50일밖에 안 돼서 목을 좀 가누었으면, 조금 덜 울었으면 하는 바람밖에 없어요(웃음). 그래도 아이와 꽤 오랜 시간을 단둘이 보내곤 해요. 제가 감기 기운이 있거나 하면 마스크 끼고 안아주죠. 그런데 기저귀 가는 건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갈아주려고만 하면 너무 심하게 울어요.”

굳이 따지자면 남편으로서의 한재석은 장미꽃 대신 쓰레기봉투를 드는 남자에 더 가깝다.

“다정해서 도와주는 게 아니라, 그냥 하는 스타일이에요. 예전에는 여자가 할 일, 남자가 할 일 따로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결혼하고는 그런 생각이 없어졌어요. 어려운 일도 아니잖아요. 그냥 들어다 내놓는 것뿐인데요. 부탁받은 일이나 함께하기로 한 일을 미루거나 하는 편이 아닌 거죠.”

트렌디 드라마 속 왕자님은 기저귀를 갈거나 쓰레기봉투를 버리지는 않는다. 그래서 한재석의 일상 이야기가 낯설기는 하지만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는 올여름 중화권에서 제작하는 영화에 출연할 계획이다. 예전보다는 빠른 템포지만 자신이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빠르기로 그의 성장은 계속되지 않을까.

“배우 가운데 자신의 강점에 대해 선뜻 대답할 수 있는 이는 아마 없을 거예요. 지금도 제 강점을 찾아가고 있거든요. 그것은 연기를 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제가 찾아야 할 일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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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동아 2014년 6월 6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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