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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정윤정, 리스타트 아닌 스타트

글·구희언 기자 | 사진·이기욱 기자

2014. 04. 15

‘워커홀릭’ 쇼핑호스트 정윤정이 인생에 잠시 쉼표를 찍고 가기로 했다. 최근 13년간 몸담았던 GS샵을 떠난 그는 ‘남들과 30초가 다른’ 자신의 인생 경험을 강의로 나누고 있다.

정윤정, 리스타트 아닌 스타트
정윤정(38)만큼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인 쇼핑호스트가 있을까. 그가 들고 입은 제품이 화제가 되고 구매로 이어지는 게 웬만한 셀레브러티 저리 가라다. ‘1분에 1억을 파는 여자’로 유명한 그가 2월 15일 방송된 ‘쇼 미 더 트렌드’를 마지막으로 13년간 몸담았던 GS샵을 떠나 ‘자유인’이 됐다. 최근 그가 쇼핑호스트로서의 노하우와 그의 인생을 담은 책을 내고 강연을 한다는 소식에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 특유의 쾌활한 목소리가 들렸다. “다음 주 어떠세요?” 그는 여전했다.

인터뷰는 그의 단골 헤어숍에서 이뤄졌다. 재클린 원장과는 햇병아리 방송 리포터 시절부터 알고 지낸 사이라고 했다. ‘가르마만 달라져도 여자의 얼굴은 딴판이 된다’는 걸 알았던 그는 재클린 원장에게 “언니, 저 돈 없는데 하루에 1만원으로 계산해서 한 달 30만원에 드라이 티켓 끊어주면 안 돼요?”라며 당돌한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 패기가 지금의 정윤정을 만들었겠구나 싶었다. 이날 그는 싱그러운 웨이브 헤어를 하고 요즘 유행하는 재질의 파스텔 톤 스커트를 입고 나왔는데, 지난해 여성동아 ‘워너비 스타 화보’를 찍을 때보다 살이 빠진 느낌이었다. 그는 “쉬는 동안 살이 엄청 쪘다”며 손사래를 쳤다.

남들과 30초를 다르게 사는 여자

“오랜만에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놀고먹으니 좋다”는 그와 대화하는 도중에도 그의 휴대전화는 쉬지 않고 울렸다. 이런 ‘대어’가 홈쇼핑 FA시장에 나왔는데 타사에서 눈독 들이지 않을 리 없다. “어디로 갈지 마음을 굳혔느냐”고 묻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고개를 젓는다.

“아직은 모르겠어요. 지금의 자유가 참 좋아요. 밀린 삶을 살고 있거든요. 직업상 ‘다음 주 뭐해?’ ‘몰라요’의 연속이었어요. 한 치 앞을 알 수 없으니 친구들과 미리 약속 잡기가 쉽지 않았죠. 지금은 휴대전화에 한 달치 일정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요. 한동안 못 만났던 사람 만나고, 인터뷰도 하고,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은 몰랐죠.”



그동안 ‘나쁜 엄마’ ‘부족한 아내’였다는 그는 ‘사람 빚’을 열심히 갚고 있다.

“8년 동안 제게 토요일은 ‘쇼 미 더 트렌드’ 촬영으로 저당 잡힌 날이었어요. 저번 토요일에는 아이들이랑 시간을 함께 보내고, 영화관 가서 ‘겨울왕국’도 같이 봤어요. 남편이 외조를 잘해줘서 늘 미안한 마음이 컸는데 그날만큼은 하루 쉬라고 하고 남편 봄 재킷 사러 아웃렛도 다녀왔죠. 얼마 전에는 둘이서 심야 영화를 봤는데, 그때 기절하는 줄 알았어요. 좋아서(웃음). 다음 토요일에도 술 약속이 있어요. 신나죠.”

그는 “사람이 쉬어봐야 된다는 말이 맞더라”며 “정말 행복하다”고 했다. 그의 강점은 무슨 말을 해도 흡입력이 있다는 점이다. 순간 그가 ‘휴가’를 파는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사회생활 시작하고 이렇게 길게 쉰 게 처음이에요. 출산 휴가는 사실 쉰다고 해도 쉬는 게 아니잖아요. 이렇게 온전하게 쉬니 새로운 게 보이고, 하고 싶은 일이 막 생겨요. 하고 싶은 게 생기니 큰 에너지가 샘솟고요. 같이 방송했던 사람들이 ‘요즘 너 정말 좋아 보인다’고 해줘요. 3월 마지막 주에는 가족여행도 가기로 했어요. 전 별다른 계획이 없는데 남편이 테마가 있는 여행을 가고 싶다면서 열심히 계획을 짜고 있죠.”

한때 ‘힐링 크림’ 사건으로 마음고생도 했기에 ‘친정’ 같은 GS샵을 떠난 이유가 궁금했다. 그는 “행복하게 일하고 싶었다”고 했다.

“전 행복해야 일을 잘할 수 있거든요. 쇼핑호스트로 생활하면서 ‘톱’이 되고 싶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일을 열심히 하다 기자들이 찾아오면 그제야 ‘아, 나 성공하긴 했나 보네’ 생각했죠. 이제는 다른 곳에서 쇼핑호스트들이 해보지 못한 일에 도전하고, 후배들에게도 기회를 주고 싶어요.”

‘힐링 크림’ 사건, 지나보니 약이더라

정윤정, 리스타트 아닌 스타트
지난해 그가 진행한 프로그램에서 판매한 ‘힐링 크림’에서 스테로이드가 검출됐을 때, 통상적으로 제품에 문제가 생기면 제조사나 수입 판매원이 비난받는 것과 달리 쇼핑호스트 개인에게 포화가 집중되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GS샵도 개인이 아닌 회사에 전적인 책임이 있다고 진화에 나섰지만 역부족이었다. 바꿔 생각하면 그만큼 고객들이 정윤정의 ‘입’을 신뢰했다는 말도 된다. ‘아픈 기억’이라 생각해 조심스레 물었으나 그는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다고 말했다.

“그때 안팎으로 한바탕 뒤집어졌죠. 어머니께서는 너무 충격을 받아 아프셨고, 전 집에 콕 박혀 있다가 정신 차려야겠다 싶어 계획을 짰어요. ‘고객이 틀렸다고 하면 다시 생각해야겠다’ ‘그렇게 비판해준 걸 감사하자’고 생각했죠. 잃은 만큼 얻은 것도 있었어요. 앞으로 두 번 다시 정윤정이 파는 물건에서 그런 일은 없을 거예요.”

지난해 인터뷰 때 그는 “맨땅에 헤딩 해서 뭔가 이뤄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낸 책이 ‘나는 30초가 다르다’(김영사). 20년 전의 정윤정이 지금의 그에게 들려주는 ‘초심’이 담긴 책이다. 하얀 악어가죽 엠보싱 표지에 핫핑크 컬러라니, 그답다고 생각했다.

“보통 출판사에서 표지에 핫핑크를 넣는 경우가 드물대요. 하지만 남녀노소 불문하고 핑크색 싫어하는 사람이 있나요? 안 해봤다면 해보자고, 괜찮다고 했어요. 악어 무늬도 처음 시도해보는 거였는데 잘 나와서 마음에 들어요.”

그는 “이렇게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는데 이렇게 하면 이게 좋고, 저건 저렇게 하는 게 낫다며 시시콜콜 수다 떠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정윤정 원액을 짜놓은 주스 한 잔을 들이켜는 기분이랄까. ‘업체가 알려준 단어가 아니라 휴전선 부근 최북단 주민부터 해남 땅끝마을 사람들까지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쓰라’거나, ‘대충 만들어 파는 게 아니라 내가 쓸 물건 만들듯 세심하게 관찰하고 제품을 보완하라’ ‘오감을 빌린 표현은 빠르게 전달되고 그것이 주는 울림 또한 크다’ 등 쇼핑호스트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곱씹어봄직한 내용이 담겼다.

트렌드와 비주얼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내친김에 옷 입을 때 어떤 스타일을 추구하는지 물었더니 “뭘 선택할까 고민하지 않고 항상 그 시기 ‘톱’을 따른다”고 했다.

“무조건 저보다 잘난 여자를 따라 해요. 전지현, 김남주처럼 그때그때 화제인 스타의 스타일을 따라 하죠. 그렇게 그대로 따라 하는 것도 용기예요. 트렌드 읽는 데 드라마만 한 게 없어요. 이번 S/S 트렌드가 어떤지 글로 읽는 것보다 드라마를 보는 게 기억에도 잘 남고 놀면서 정보를 얻는 기분이 들거든요.”

정윤정, 리스타트 아닌 스타트
‘저거 사서 오래 들고 신어야 되는데’ 생각하는 순간 옷장과 신발장은 온통 검은색으로 채워진다. 그는 “위시 리스트를 작성하는 건 인생을 살아가는 데 하나의 동력이 된다. 희미했던 목표를 선명하게 만들어주고 이것이 의욕과 활력으로 이어진다”고 했다. 지금 그의 위시 리스트는 뭘까.

“‘별에서 온 그대’에서 전지현 씨가 손가락마다 낀 반지가 화제였잖아요. 보석이 잘 어울리는 시기가 있어요. 젊은 친구들은 오히려 보석에 관심이 별로 없는데, 저도 40을 바라보는 나이다 보니 보석이 예뻐 보이고 엄마들이 보석을 좋아하는 이유를 알겠더라고요. 밋밋한 손이나 목덜미에 보석만큼 활기를 주는 게 없거든요. 그래서 나이에 맞는 보석이 위시리스트 1순위죠.”

여자들의 행복 ‘완판’시키는 게 목표

그는 “고객이 원하는 제품이라면 진심은 통하게 돼 있다”고 했다.

“모든 힌트는 고객에게서 나와요. 상품평에 적힌 좋은 점, 나쁜 점, 제 카페 회원들이 나누는 ‘이런 제품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수다…. 제 30초가 달라질 수 있었던 건 고객이 준 데이터 덕이었어요. 그런 목소리를 판매자, 제작자들에게 전달하는 게 제 역할이죠. 초심으로 돌아가서 저부터 인정하고 업체와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기획한 상품만 판매할 생각이에요.”

스타 쇼핑호스트. 스타라는 타이틀은 빛나지만 그만큼 무겁다. 그는 “스타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지만 정작 나 자신은 그런 마인드가 없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했다.

“개구리, 올챙이 적 생각하자는 게 인생 모토예요. 남보다 더뎌서 올챙이 시절이 길었거든요(웃음). 전 제가 좋아서 물건 파는 사람이에요. 남들이 그걸 많이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앞으로도 여자에게 행복을 전하고, 여자들이 즐겁게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어요.”

참고도서·나는 30초가 다르다(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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