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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커피의 자존심 양광준 대표의 ‘세상을 바꾸는 커피’

셰프 로랭&푸드 칼럼니스트 미령 ‘맛을 탐하다’

글·이미령 | 사진·홍중식 기자

입력 2014.02.04 12:00:00

커피 맛을 ‘깨끗하다’와 ‘더럽다’로 구분하는 남자. 양광준 대표가 권한
커피를 입 안에 머금었다 한 모금 삼키는 순간, 지금까지 마신 모든 커피는 잊어버렸다.
한국 커피의 자존심 양광준 대표의 ‘세상을 바꾸는 커피’

(주)한국커피 양광준 대표는 국내 원두커피 시장의 개척자이자 선구자로 불리는 인물이다. 일본 브랜드인 도투루에 입사해 커피에 관심을 갖게 됐고, 1992년 회사를 나와 당시 원두커피 문화가 생소한 한국에서 직접 생두를 수입하고 로스팅해서 보급하는 일을 시작했다. 양 대표는 세계 각지의 커피 산지를 직접 찾아가 생두의 품질을 확인하고,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구입하는 ‘공정무역’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의 커피는 ‘착한 커피’라 불린다. 하지만 이는 단지 가격의 문제가 아니다. 각 산지별 생두의 특징과 개성을 파악해야 서로 다른 맛과 향 등의 장단점을 보완해 완벽한 블렌딩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한국커피 본사는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있고 1층에는 원두커피와 천연효모 빵을 파는 브런치카페 ‘팩토리670’이 있어 인기를 얻고 있다.

“그 커피 아직 남아 있나요?”

양광준 대표가 사진기자에게 물었다. 경기도 광주시 오포읍에 있는 (주)한국커피를 찾아가는 동안 동행한 사진기자는 프랜차이즈 커피전문점에서 테이크아웃한 커피를 마셨다. 그 맛도 나쁘지 않았다고 하자 양 대표가 불쑥 질문한 것이다. 양 대표는 사진기자가 마시던 커피를 가져와 달라고 부탁했다.

이제 식탁 위에는 사진기자가 가져온 커피전문점 커피와 한국커피에서 만든 커피가 나란히 놓여 있다. 한국커피에서 로스팅한 브라질산 시오이 원두를 갈아 클레버를 이용해 드립한 것으로, 내온 지 시간이 꽤 지나서 역시 식은 상태였다.

“커피전문점의 테이크아웃 커피와 브라질산 커피를 비교해서 마셔 보셔요. 커피를 마신 순간의 일차적인 맛보다 입 안에 품었다가 목구멍으로 넘겼을 때 향과 맛을 비교해보세요.”

양 대표의 설명을 들으며, 마치 와인을 시음하듯 두 종류의 식은 커피를 차례로 맛보았다. 숟가락으로 떠서 입안에서 잠시 머금어 맛과 향을 음미한 뒤 나는 탄성을 질렀다.



“이렇게 맛이 다를 수가!”

간단히 말하면 커피전문점 커피는 떫고 텁텁하고 불쾌한 쓴 맛이 났다. 하지만 브라질 드립 커피의 뒷맛은 개운했다. 두 종류의 식은 커피 맛이 그야말로 천지 차이였다. 놀란 표정을 짓자 양 대표는 싱긋 웃었다.

“신선하고 품질 좋은 생두의 개성을 잘 살리도록 볶아서 추출법에 맞게 원두를 갈아 핸드 드립한 커피랑 커머셜 커피의 맛이 같을 수가 없죠. 시오이 커피는 티 없이 맑고 깨끗한 느낌을 주지 않나요?”

여기서 커머셜 커피란 인스턴트 커피의 원료나 프랜차이즈 커피점에서 저가로 판매하는 커피를 가리킨다. 그 맞은 편에 스페셜티 커피(고메 커피라고도 한다)가 있다.

“좋은 커피는 이렇게 식은 상태나 막 추출했을 때나 맛에서 큰 차이가 없어요. 뜨거울 때나 식었을 때나 맛이 좋은 커피가 진짜로 좋은 커피죠.”

사진기자도 한마디 거들었다.

“정말 이 정도로 맛이 다르리라곤 상상하지 못했어요. 이 커피전문점 커피는 워낙 유명하고 값도 비싼 편이어서 나름 고급이라고 생각했는데요.”

“불쾌한 뒷맛이 있느냐 없느냐, 단맛과 신맛이 조화로우냐, 향이 은은하고 깊이가 있느냐 등등 다양한 평가를 통해 좋은 커피인지 나쁜 커피인지 판단하죠. 그런데 식었을 때 쓰고 부담 주는 뒷맛을 남기는 커피에 대해 우리는 단적으로 ‘더럽다’고 표현해요.”

그는 눈살을 찌푸렸다. 나는 내 앞의 잔에 남은 브라질산 커피를 쭉 마셨다. 뒷맛이 상쾌했다. 기분도 절로 좋아졌다.

로스팅 기계에 따라 커피맛 달라져

한국 커피의 자존심 양광준 대표의 ‘세상을 바꾸는 커피’

1 커피 생두가 지닌 고유의 맛과 향을 표현해내는 로스팅 과정. 2 양 대표는 커피 생산자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공정무역커피를 추구한다.

양 대표는 마침 로스팅하는 시간이라며 우리를 넓은 공간으로 데리고 갔다. 들어서자마자 생두를 블렌딩하고 로스팅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구수하고 부드러운 커피 향이 코를 자극했다. 독일과 이탈리아에서 들여온 거대한 로스팅 기계 3대가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히 독일산 로스팅 기계들(Dwyer와 Probat)의 육중한 몸체에 위압감마저 느꼈다. 마치 독일 탱크 같았다. 바그너의 웅장한 오페라가 머릿 속에서 연주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수많은 질문들이 떠올랐다. 양 대표는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는데, 우리가 감탄한 커피 맛이 나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정성이 들어가야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음은 그의 설명 중 핵심만 정리한 것이다.

-로스팅 기계를 이용해 양질의 생두가 지닌 고유의 맛과 향을 표현해낸다.

-여러 가지 생두 자체에 내포돼 있는 수분 함량은 물론 각종 성분들의 함량을 정확히 분석한 데이터 축적이 필요하다.

-가장 적합한 화력을 이용해 정확한 로스팅 포인트를 찾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생두 자체와 원산지 자연환경, 인적환경에 대한 지식은 기본이다.

-개성이 다른 생두를 적절하게 조합해 완벽한 향을 찾는 데 많은 인내심이 요구된다.

-기계 속에서 돌아가는 원두 입자를 받아 수시로 향을 체크해야 한다.

-로스팅 과정에서 생두 내부에 열이 닿으면 내부 세포벽의 수축과 상승 효과로 물리적 변화가 일어난다.

-색과 향, 형태와 무게가 서서히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생두가 어떻게 반응하는지 살펴볼 수 있다.

“로스팅 기계에 따라 맛이 달라지나요? 어느 쪽이 더 좋은가요?”

나는 어두운 색의 육중한 독일 기계와 빨간색에 세련된 디자인의 이탈리아 기계를 번갈아 보며 물었다.

“독일 기계로 로스팅한 원두가 맛이 중후하고 무게감이 있다면, 이탈리아 기계는 생두 고유의 개성을 최대한 살려주는 섬세함을 가지고 있다고 할까요?”

양 대표는 생두의 내부 온도, 배기 온도, 가스 분량 등 생두가 가지고 있는 고유의 특징과 로스팅 과정에서 일어나는 패턴을 데이터로 관리하는 과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이곳에서 로스팅과 블렌딩을 잘한다 해도 원산지 커피의 맛을 따라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

“제가 완도 출신입니다. 김이 특산품이죠. 그러나 고향에선 최고 품질의 김은 모두 외지로 보내고 상품 가치가 떨어지는 김만 먹어요. 커피 생산지의 사정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생산자가 마시는 커피의 질이 소비자가 마시는 것보다 떨어질 수 있는 거죠. 저는 세계 각지의 커피 산지를 직접 찾아가 최고 품질의 생두를 생산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정당한 대가를 치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공정한 거래를 하는 거죠. 각 산지 생두별 특징과 개성을 정확히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직접 산지에 가보지 않으면 도저히 알 수 없는 특징들도 있지요. 직접 느껴야 하는 거예요. 단종 원두를 이용해 뽑아낸 커피 맛을 잘 알고 다양한 생두별 특징을 잘 알아야 맛과 향 등의 장단점을 보완할 수 있도록 완벽하게 블렌딩할 수 있으니까요. 내가 원하는 맛과 향을 얻고자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어요.”

양 대표의 개인적인 커피 취향이 궁금했다.

“특별히 선호하는 커피는 없어요. 커피가 가진 개성을 존중해서 즐기는 편이에요,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맛이 깨끗한가 아닌가죠.”

맛있는 커피는 깨끗하다. 맛없는 커피는 더럽다. 이 단순한 구분법이 그 어떤 설명보다 마음에 와 닿았다.

“커피도 생산자의 사람됨과 ‘깊이’에 따라 천차만별의 품질 차이를 보이죠. 재료 자체의 가치를 간과한 채 쉽게 만들어진 물건이나 음식에서 어떤 품격도 찾을 수 없는 것처럼 커피를 누가 생산하고 누가 블렌딩 하느냐는 아주 중요한 질문이에요.”

와인 주조에서 포도 품종의 특징을 파악해 서로 다른 맛과 향의 장단점을 보완하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생두별 특징을 파악하고 블렌딩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작업이라고 한다. 설명을 듣다보니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이 떠올랐다. 만화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와인을 잘 만들기 위해서는 ‘천지인(天地人)’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하늘에 축복받고, 풍요로운 대지를 갖고 있으면서도 범작의 와인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어디엔가 있다면, 그건 천지인 중에 사람 말고는 없다.”

생산자의 지혜와 노력이 부족하면 좋은 와인이 생산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마찬가지로 천지인의 완벽한 협력을 통해 최고 품질의 생두가 생산되고, 블렌딩된다.

한국 커피의 자존심 양광준 대표의 ‘세상을 바꾸는 커피’

1 (주)한국커피 1층의 카페 ‘팩토리670’. 2 커피를 테이스팅하는 양 대표의 표정이 흥미롭다. 3 좋은 품질의 스페셜티 커피를 추출하면 마지막 한 방울까지 맛있다.

맛있는 커피는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오로지 커피’에 집중해온 양 대표의 삶은 어떨까.

“왜 커피입니까?”

“복잡할 것 없어요.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잖아요. 좋은 커피를 만들어 좋은 사람들과 즐기기 위해 이 일을 계속하게 된 것 같아요.”

로랭 달레 셰프도 좋은 음식을 만들어 사람들이 즐기고 행복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것이 자신이 요리를 하는 목적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때도 내 질문은 “왜 요리를 하고 싶은데?”였다.

“좋은 커피를 사람들과 함께 즐기기 위해!”,

“좋은 음식을 사람들과 함께 즐기기 위해!”

단순한 철학이다. 인생을 더 풍요롭고 즐거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커피를 제조하고 음식을 만든다.

풍부한 단맛과 신맛이 조화로운 깨끗한 맛의 커피를 만들어서 커피에 대한 복잡한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맛있는 커피를 맛보게 하는 것. 그것이 양 대표가 커피 사업을 하는 이유다.

“커머셜 커피는 맛있게 뽑으려면 바리스타의 전문적 기술이 많이 요구됩니다. 커피의 단점을 보완하면서 뽑아야 하기 때문이에요. 커피 전문점마다 커피 맛의 수준이 천차만별인 이유도 거기에 있죠. 그러나 스페셜티 커피는 누구나 맛있게 커피를 뽑을 수 있어요.”

우리 부부는 2011년 12월 과테말라 안티구아를 여행하면서 커피 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과테말라 안티구아 산 커피는 고산지대에서 재배돼 커피 조직이 치밀하고 맛과 향이 우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일이 손으로 따서 가공한다. 커피의 향은 은은하면서도 강하다. 과일 같은 단맛과 새콤한 향이 부드러우면서도 힘이 있다. 적당한 신맛과 부드러운 향, 한 모금 마셨을 때 입 안 가득 차는 ‘보디’감도 있다. 지금도 그 맛을 잊을 수 없다.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안정된다.

모자라지도 지나치지도 않은 조화로운 맛의 커피는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린 음식처럼 우리를 즐겁게 한다. 인스턴트 커피와 인스턴트 음식이 판치는 세상에서 적당히 쓴맛, 새콤한 신맛, 은은한 단맛이 조화로운 ‘깨끗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입안에 남는 부드러운 맛과 풍부한 향을 음미하다보면 빨리 돌아가는 세상이 나와는 상관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편안해진다. 제대로 쉴 수 있는 여유, 포근한 위로마저 느끼게 된다.

최고급이라는 인도네시아산 코피루왁,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 하와이의 코나 커피, 예멘의 마타리와 이스마일리, 푸에르토리코의 캐리비안 마운틴이 아니더라도 좋은 생두가 갖고 있는 고유의 맛과 향을 최대한도로 끌어내는 로스팅이 잘 된 블렌딩 커피들은 각각의 맛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편안한 맛을 이끌어낸다. 그런 커피를 혼자 즐겨도 좋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어 마시며 오손 도손 이야기를 해보자. 행복해진다. 좋은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의 목적은 그렇게 이뤄주는 것이다.

푸드 칼럼니스트 이미령·셰프 로랭 달레

한국 커피의 자존심 양광준 대표의 ‘세상을 바꾸는 커피’
로랭 달레는 프랑스 노르망디 루앙 출신으로 파리 에콜 데 카드르, 시티 오브 런던 폴리테크닉을 졸업하고 뉴욕에 오기 전까지 프랑스 르노사와 브이그 텔레콤에서 일했다. 마흔 살이 되기 전 요리를 배우고 싶다는 꿈을 실현하러 2007년 2월 말 뉴욕으로 가 맨해튼 소재 프렌치 컬리너리 인스티튜트에서 조리를 배우고 뉴욕 주재 프랑스 영사관 수 셰프로 근무했다. 이미령은 연세대 음대, 런던대 골드스미스 칼리지, 파리 에콜 노르말 드 뮤직에서 피아노를 전공했고, 브이그사에서 국제 로밍 및 마케팅 지역 담당 매니저로 일했다. 두 사람은 런던 유학 중 만나 결혼했고 현재 한국에서 쿠킹 스튜디오 ‘르 셰프 블루 코리아’를 운영하며 각종 매체에 음식 문화 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저서로는 ‘파리의 사랑 뉴욕의 열정’이 있다. mleedallet@yahoo.fr

여성동아 2014년 2월 6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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