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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와 함께하는 템플 스테이

카리스마 현종 스님의 강릉 현덕사

글·여태동 불교신문 기자 | 사진·현일수 기자

입력 2013.12.17 09:12:00

늘 바쁘고 피곤한 아빠는 어쩌다 가족과 함께 휴일을 보내고 싶어도 무엇을 해야 할지 어색하기만 하다. 엄마에게는 미주알고주알 잘도 떠들던 아이들이 아빠가 들어오면 말문을 닫아버린다.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방송을 통해 ‘카리스마 스님’으로 유명해진 현종 스님이 이런 아빠와 아이들을 강릉 현덕사로 불러모았다.
아빠와 함께하는 템플 스테이
강원도 강릉 소금강산 자락 만월산에 있는 현덕사에서 11월 16일과 17일 이틀간 ‘아빠와 함께하는 템플 스테이’가 열렸다. MBC 예능 프로그램 ‘아빠! 어디가?’ 템플 스테이 편에 출연해 ‘카리스마 스님’으로 얼굴을 알린 현종 스님이 이곳 주지다. 현종 스님이 내건 참가 조건은 무조건 엄마가 아닌 아빠와 함께여야 한다는 것.

산사는 적요(寂寥)하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만은 아니다. 세인들의 발길이 닿을 때는 저잣거리보다 요란스럽기도 하다. 오후 3시가 되자 템플 스테이에 참가하기로 한 8가족이 현덕사에 속속 도착했다. 수련복으로 갈아입고 하루 동안 머물 방을 배정받은 후 간단한 입제식(행사를 시작하는 의식)을 가졌다. 7가족은 아빠와 아들이고, 한 가족만 아빠와 딸이었다. 아무래도 애교 많은 딸보다는 무뚝뚝한 아들과의 대화가 더 어려운 모양이다. 아빠들의 직업은 각양각색이지만 참가 목적은 하나였다. “자녀와 소통하지 못한 응어리를 산사에서 하룻밤 묵으며 풀어보겠다”는 것이었다. 현종 스님은 이들의 답답한 마음을 읽고 이렇게 인사말을 했다.

“현덕사에 오심을 환영합니다. 이렇게 좋은 인연은 맺게 된 것은 여러분과 제가 수백 생의 인연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 아버지들은 승진도 중요하고 돈도 중요했을 것이지만, 가족의 행복도 중요합니다. 아이들에게 좋은 아버지로 존경받으려면 아버지가 솔선수범을 해야 합니다. 또 아이들이 하고 싶은 일을 지원하고 응원해주는 부모이되 의존하지는 않게 해야 합니다. 1박 2일이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아빠와 아들, 딸이 함께하며 행복한 가정을 만들기 위한 소통의 시간이 되기 바랍니다.”

입제식이 끝나고 오후 4시, 각자 짐을 정리한 뒤 현덕사 앞마당에서 공도 차고 뛰놀며 아빠와 아이들은 오랜만에 몸으로 대화를 했다. TV에 등장했던 강아지 ‘보리’와 ‘깜둥이’도 신이 나 펄쩍펄쩍 아이들 주위를 맴돈다. 답답한 도시에서 쳇바퀴 돌듯 살아온 일상을 뒤로하고 대자연이 주는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시니 저절로 몸은 상쾌해지고 머리는 차분해진다.

저녁 공양(식사)은 오후 5시에 시작됐다. 뷔페식으로 차려진 유기농 채식 식단을 각자 먹을 만큼 가져다 옹기종기 모여 앉아 식사를 했다. 단둘이 있자니 서먹하기만 했던 부자가 슬슬 대화를 시작한다.



“아빠, 제가 씻을게요. 식판 주세요.”

서울 노원구 공릉동에서 온 성우(11) 군이 살갑게 굴자 아빠 홍원식(41) 씨의 입가에 어느새 미소가 고였다.

아빠와 함께하는 템플 스테이

1 수원에서 참가한 장상옥 씨는 “아들이 생각 없는 녀석인 줄 알았는데 이야기를 나눠보니 듬직했다. 속마음을 알고 나니 더 좋은 아빠가 돼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2 참가자들은 1백8배를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자신을 돌아보고 서로를 이해하는 시간

오후 6시. 저녁 공양을 마친 가족들은 법당에 모여 사찰에 대한 안내를 듣고 저녁 예불을 올렸다. 참가자들이 모두 불교 신자인 것은 아닌 만큼 ‘조상님에 대한 예의’ 정도를 취하면 된다는 설명에 각자 자유롭게 의식에 참여했다. 이어 자신을 돌아보는 1백8배를 하는 시간. 동림 스님에게서 1백8배의 의미를 듣고, CD에서 흘러나오는 ‘나를 닦는 1백8배’의 설명을 들으며 1배 1배에 집중했다.

“모든 생명을 지극히 내 안에 모시고, 살림의 장을 확산해나가는 생명과 평화를 위해 1백8배를 올립니다.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를 생각하며 첫 번째 절을 올립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부모님께 감사하며 두 번째 절을 올립니다. 나는 누구인가를 생각하며 세 번째 절을 올립니다. … (중략) … 나의 생존의 경이로움과 지금 여기 끊임없이 생성하는 생존에 대해 감사하며 1백7번째 절을 올립니다. 이 모든 것을 품고 하나의 우주인 귀하고 귀한 생명, 나를 위해 1백8번째 절을 올립니다.”

대부분 처음 해보는 1백8배가 무척 힘겨운 듯했다. 일곱 살배기 아이는 몸을 비틀며 ‘왜 이런 절을 해야 하지?’ 하는 눈치다. 다행히 초등학교 고학년과 중학생 자녀들은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진지하게 절을 하는 것이 느껴졌다. 아버지들도 마찬가지. 서울 정릉에서 왔다는 윤재상(45) 씨는 1백8배를 한 뒤 이렇게 말했다.

“절을 하면서 자신을 돌아보길 권하는 말을 음미해보니 가슴에 와 닿았어요. 지금까지 살아온 제 자신을 돌아보게 됐고, 가족과 주위의 사람을 생각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살고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지 않겠다고 다짐했어요. 가정에서는 아빠로, 사회에서는 당당한 직장인으로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습니다.”

20여 분에 걸쳐 1백8배를 마친 가족들은 차담실로 모였다. 처음 해본 1백8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현종 스님은 “서울에서 신도가 보내왔다”며 찐빵 한 소쿠리와 귤을 간식으로 들여보냈다. 그리고 잠깐의 휴식 시간을 이용해 자녀의 미래를 위한 독서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여러분들 아들과 딸이 잘되게 하려면 책을 읽어야 합니다. 시간이 나는 대로 세 분야의 책을 읽어야 합니다. 자기가 일하는 분야의 책과 인문 분야의 책, 그리고 감성을 키우는 책을 읽어야 합니다. 책을 읽으면 퇴보하지 않습니다. 도서관에 가면 그 나라의 미래를 알 수 있다고 하지 않습니까. 책 읽는 젊은이가 얼마나 많은지가 그 나라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하잖아요.”

아빠와 함께하는 템플 스테이

1 번뇌를 녹이고 지혜를 얻겠다는 기원을 담아 염주를 꿰는 모습. 2 3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아빠와 아이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부쩍 가까워진 모습이었다. 4 5 아이들은 처음에는 힘들어하던 발우 공양도 결국에는 모두 해냈다.

1백8배를 마친 아이들에 대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지현이는 아빠와 이야기 많이 했니? 네 모습을 보니 참 머리도 좋고 착하게 생겼어. 공부도 참 잘할 것 같구나. 태현이도 열심히 1백8배를 하는 거 보니 현덕사 다녀간 후부터는 성적도 오를 것 같네.”

다음은 동림 스님의 진행으로 1백8개의 염주를 꿰는 시간이다. 불교 신자가 아니어도 저마다 가진 1백8번의 번뇌를 녹이고 지혜를 얻겠다는 기원을 담아 염주를 꿴 뒤 매듭을 지었다. 어느새 차담실 문틈에는 환한 보름달이 휘영청 솟아올라 있었다. 오후 9시. 도시에서라면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거나 여전히 학원에서 돌아오지 못하고 있을 시간이지만, 사찰에서는 하루 일과를 마치는 순간이다. 사찰의 일과에 따라 가족들은 밖으로 나와 보름달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남은 음식까지 싹싹, 발우 공양

아빠와 함께하는 템플 스테이
11월 17일 새벽 5시. 산사의 고요함을 깨우는 목탁 소리가 낭랑하게 울려 퍼진다. 각자의 방에서 잠들었던 아빠와 아들, 딸이 법당으로 모여들었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며 부처님과 자신의 깨끗한 본성을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아침 예불을 올렸다. 예불 후 현종 스님은 잠시 인사말을 하며 산사에서 하룻밤을 보낸 의미에 대해 말했다.

“어제와 오늘 여러분들은 아빠와 함께 하룻밤을 산사에서 보냈습니다. 이제 엄마만큼 아빠도 여러분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았을 겁니다. 산사에 와서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아빠와 함께 만든 소중한 추억은 여러분들이 평생 살아가는 데 힘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이어 불교 식사법인 발우 공양을 체험했다. 발우 공양은 가장 위생적이고 경제적이며 욕심을 일으키지 않는 식사법으로, 한 톨의 밥이나 반찬을 남겨서는 안 된다. 일곱 살 지민이와 민준이는 스님의 꾸중을 들어가면서도 씩씩하게 발우 공양을 해냈다. 화성(13)이는 발우를 헹궈 먹다가 토할 뻔했고, 눈물을 흘리기도 했지만 결국 해냈다. 현종 스님이 “발우를 헹궈서 먹는 음식은 결국 여러분의 배 속에 들어가는 것이니 절대 지저분하지 않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먹을 수 있다”고 하자 용기를 낸 모양이다. 모든 아이들이 아빠의 도움 없이 씩씩하게 발우 공양을 끝내자 현종 스님이 칭찬을 해주었다.

아침 공양 후에는 스님과 손을 잡고 현덕사를 산책한 뒤 마지막 프로그램인 차담 시간에 참여했다. 어른들은 ‘바리스타 현종 스님’이 내려주는 향기로운 원두커피를 마시고, 아이들은 사찰에서 준비한 달콤한 식혜를 마셨다. 현종 스님은 동참 가족 모두에게 일일이 스님이 쓴 ‘산사로 가는 즐거움’을 나누어주며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나갈 것을 당부했다.

딸 지현(16) 양과 함께 참가한 박광재(45) 씨는 “무엇이 우선이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깨닫는 소중한 시간이었고 의미 있는 여행이었다”고 말했다. 아빠의 식판까지 씻어주겠다고 나섰던 성우는 “전에는 엄마를 더 사랑했는데 이제는 50 대 50”이라고 말해 주변의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경기도 수원에서 온 장상옥(47) 씨와 원석(14) 부자는 다음에는 온 가족이 함께 오고 싶다고 입을 모았다. 1박 2일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은 사랑과 정을 가득 안고 유유히 산문(山門)을 나섰다.

아빠와 함께하는 템플 스테이
여태동 씨는…

‘불교신문’ 취재 1부장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 따뜻한 정이 흐르는 세상을 꿈꾼다. ‘명문가에서의 하룻밤’ ‘천년사찰 천년숲길’ ‘도시농부 바람길의 자급자족 농사일기’ 등의 책을 펴냈다.

여성동아 2013년 12월 6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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