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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별 보아, 다시 처음처럼

글·김명희 기자 | 사진·현일수 기자, KBS 제공

입력 2013.10.16 15:13:00

극작가 사무엘 베케트가 말했다.
“항상 도전하고 실패도 해보라. 안 될 게 뭔가?’”
열두 살 때 SM 연습생으로 시작해, 가수로서 정점을 찍은 보아가 연기자로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보아라서 쉬웠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그의 데뷔 과정은 여느 연기자들보다 곱절은 더 힘들었다.
완벽한 엔터테이너로 가는 중간 즈음에서 만난 보아의 인간적인 이야기.
아시아의 별  보아, 다시 처음처럼


초등학교 5학년 때 오빠를 따라 오디션장에 들렀다가 이수만 프로듀서에게 발탁돼 연예계에 첫발을 내디딘 보아(27). 당시 그는 한 인터뷰에서 10년 후 자신의 모습을 그려달라는 질문에 “현모양처가 돼 있을 것 같다”며 깜찍하게 웃었다. 예상이 빗나간 건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가 이룬 가수로서의 인기와 명성은 열두 살짜리 꼬마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을 테니까.
20대 중반에 가수로서 이미 많은 것을 이룬 보아가 연기자로 새로운 모험에 나섰다. 9월 11~12일 방영된 KBS 2부작 드라마 ‘연애를 기대해’를 통해서였다. ‘연애를 기대해’는 숙맥 주연애가 연애 고수 차기대(최다니엘)에게 휴대전화 채팅으로 연애 기술을 코칭받는다는 내용.
드라마 속 보아의 모습은 카리스마가 철철 넘치는 무대 위에서의 모습과는 전혀 딴 판이었다. 그가 맡은 주연애는 연애를 할 때마다 나쁜 남자들만 만나 배신을 당한다. 배신하고 돌아선 남자에게 집착하는 지질한 모습도 있다. 보아는 그런 연애의 모습을 다소 거칠지만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 파일럿 프로그램이라는 한계 때문에 시청률은 그리 높지 않았지만 보아의 연기력은 합격점을 받았다.

실제 연애하면 다 퍼주는 성격
드라마 방영에 앞서 제작발표회에서 만난 보아는 빨간 원피스를 입은 탓인지 다소 상기돼 보였다. 데뷔 13년 동안 노래가 아닌 연기로 국내 시청자들의 평가를 받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할리우드 영화 ‘메이크 유어 무브 3D’에 출연했지만, 아직 개봉일(하반기 예정)이 잡히지 않았다.

▼ 드라마를 보니 욕도 하고, 상대역 임시완을 때리기도 하더라.
“그동안 바른말만 해야 했는데 속이 후련했다. 하하. 주연애는 연애 빼고 다 잘하는 친구다. 연애에 대한 환상과 (나이에 맞지 않은) 순수함 때문에 남자친구와의 관계를 망친다. 왈가닥에 욱하는 성격의 캐릭터라 소리 지르는 장면도 많았다. 소리를 지르니 스트레스가 풀리더라. 촬영 기간 동안 시완 군이 고생했다. 욕도 많이 먹고 많이 맞았다.”

▼ 연기 데뷔작인데, 예쁜 캐릭터를 맡고 싶지 않았나.
“주연애는 실제 내 모습과 상반된 캐릭터다. 가수, ‘K팝스타’ 심사위원 이미지를 지울 수 있는 캐릭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주말도 반납한 채 2주 넘게 여의도 KBS로 출퇴근을 했다. 대본 리딩도 하고 감독님과 캐릭터에 대한 얘기를 나눴다. 돈 주고 못 들을 소중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다. 나 자신을 내려놓고 마음껏 즐기며 찍었다.”



▼ 주연애는 사랑을 하면 남자에게 다 퍼주는 성격인데, 실제로는 어떤 편인가.
“나도 연애에는 허당이다. 제대로 된 연애는 아직 못해봤지만 잠깐 그런 감정을 느꼈을 땐 나도 주연애처럼 실속 없이 다 퍼줬던 것 같다. 하지만 마음이 떠난 남자에게 집착하거나 그런 스타일은 아니다. 오는 사람은 가려 만나지만 가는 사람 잡지는 않는다.”

▼ 극 중 시완처럼 순진한 남자와 연애 고수가 있다면 어떤 사람을 택할 것 같나.
“밀당을 못하는 성격이라, 남자가 너무 고수면 말릴 것 같다. 그럴 바에는 순진한 남자를 만나 알콩달콩 연애하면서 서로 맞춰가는 게 좋지 않을까.”

▼ 시완이 아이돌 그룹 ‘제국의 아이들’ 멤버다. 그 가운데 이상형을 찾는다면.
“아기병사 박형식 씨? 하하하. 그렇지만 진짜 이상형은 이종석 씨다(웃음).”

▼ 힘들었던 촬영이나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첫날 촬영했던, 전 남자친구 얼굴에 낙지를 던지는 장면이었다. 팔에 들러붙는 낙지를 던지다가 머리가 터져 먹물이 이리저리 튀었다. 낙지가 살아 있어야 느낌이 사는데, 날이 더워서인지 몇 번 던지니까 기절하더라. 스태프가 새벽에 수산시장을 오가며 살아 있는 낙지를 구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가수, 연기 활동 모두 즐거움과 고통스러움이 복합적으로 느껴진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건 정말 행복한 것 같다.”

보아라서 더 힘들었던 배우 데뷔

아시아의 별  보아, 다시 처음처럼

‘연애를 기대해’를 연출한 이은진 PD는 발전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보아의 연기력에 75점이라는 점수를 줬다.



‘연애를 기대해’를 연출한 이은진 PD는 보아의 연기력을 점수로 평가해달라고 하자, 고심 끝에 “75점”이라는 점수를 내놓았다. 그래도 아시아의 별 보아인데, 점수가 좀 야박하지 않나 싶었다. 이에 이 PD는 “보아가 연기를 못했다는 게 아니라 그만큼 발전 가능성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번 작품에서 보여준 것보다 앞으로 보여줄 게 훨씬 더 많은 친구다. 그리고 신인으로서 작품에 임한 열의와 자세에는 정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사실 이 PD는 처음부터 보아를 캐스팅할 생각은 아니었다. 그런데 우여곡절 끝에 대본을 받아든 보아가 한번 해보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고 한다. 연기 초보인 그를 선뜻 캐스팅할 수 없어 고민을 거듭하는 사이 한 달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런데 세 번째 만나는 자리에서 보아가 “어차피 PD님이 짐을 져야 할 텐데, 저는 신경 쓰지 말고 PD님 생각대로 하시라”고 했다. 그런데 이 말이 이은진 PD의 마음을 움직였다. 이렇게 자신을 믿어주는 배우라면 함께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 이번 드라마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대본이 재미있었고 2부작이라는 점에서 부담을 많이 갖지 않으면서 배울 수 있는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했다. 처음엔 더블 액션 같은 걸 못 맞춰서 고생했지만 덕분에 많이 배울 수 있었고, 출연하는 배우들이 모두 비슷한 또래라 마음 편하고 행복하게 작업했다.”

▼ PD가 75점을 줬는데, 서운하지 않은가.
“현장에서 나를 혼낸 것에 비하면 후한 점수다. 그리고 처음부터 90점 받았다면 더 부담스러웠을 거다. 그리고 나도 작품 끝나고 PD님 연출 점수 매기면 된다(웃음).”

▼ 캐스팅을 기다리는 3주 동안 어떤 생각이 들던가.
“사실 PD가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아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세 번째 보자고 할 땐 ‘어치피 캐스팅 안 할 거면서 왜 자꾸 보자고 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만날수록 긴장도 풀어지고, 더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사실 PD를 고민에 빠뜨린 건 나이기 때문에 좀 미안한 마음도 들었다. 그동안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보아라는 이유로 거절을 당한 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이은진 PD는 계속 나를 봐주고, 가능성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주셨다. ‘이분과 작업한다면 내가 생각지 못했던 내 모습을 끌어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길다면 긴 시간이지만 그만큼 값어치 있는 기다림이었다.”

▼ 그런 상황에 자존심 상할 수도 있었을 텐데.
“전혀 그렇지 않았다. 보아라는 이름만 보고 하자고 했다면 오히려 더 불안했을 것이다. 캐릭터를 만들고 그리는 사람은 PD이기 때문에 그분 의견을 따르는 건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가 왜 안 돼’라는 착각만큼 위험한 건 없는 것 같다. 아시아의 별도 당연히 까일 수 있다(웃음).”

▼ 거절을 당했을 때 마음을 추스르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있나.
“원래 내 것이 아니었겠거니 생각한다. 다만 연기를 시작한 후 미팅도 하기 전에 거절당한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땐 속이 상한다. ‘보아라서 안 된다’거나 ‘부담스럽다’는 거였는데 그렇다고 내가 보아가 아닌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어떤 점이 부족하니 고치거나 보완하라고 하면 거기에 맞춰 노력하면 되지만 그 자체로 부담이라면,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 않나.”

▼ 이번 드라마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봐주길 바라나.
“드라마를 보면서 가수 보아를 찾지 말고, 주연애라는 인물로 편하게 봐주시면 좋겠다. 가수 출신 연기자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얼마나 잘하는지 한번 보자’는 시선일 것이다. 나 또한 그게 두렵다.”

▼ 그런 두려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연기에 도전한 이유는.
“어떤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었다고 해서 안주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아직 나이도 어리고, 남들보다 빨리 시작한 만큼 빨리 걸어와서 안주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는데 그러기엔 내 젊음이 너무 아깝더라. 그래서 다시 한 번 도전해서 새롭게 차근차근 이뤄나갈 수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그게 연기다. 그리고 음반 내는 배우도 있고, 가수가 예능도 하지 않나. 장르의 경계는 많이 허물어진 것 같다. 무엇을 하는가보다는 얼마나 책임감 있는 자세로 잘해내느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데뷔 전으로 돌아간다면 그때는 전혀 다른 일에 도전할 것

아시아의 별  보아, 다시 처음처럼


보아와 호흡을 맞춘 임시완은 ‘제국의 아이들’ 멤버 사이에서 부러움의 대상이 됐다고 한다. 보아는 그들 사이에서도 스타였던 것. 그만큼 부담감도 컸다고 한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밉보이면 어떡하나’ ‘자칫 대선배에 대한 하극상으로 비춰지지 않을까’라는 걱정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건 말 그대로 기우였다. 임시완은 “내가 말을 던졌을 때 그 말을 세심하게 고민하고 들으려는 마음가짐이 굉장히 고마웠다. 그 덕분에 나도 부족하지만 더 많이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런 자세가 지금의 ‘아시아의 별’ 보아를 만들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 데뷔 전으로 돌아가서 가수와 연기자의 길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뭘 하겠나.
“둘 다 안 할 것 같다. 가수나 연기자는 해봤으니까 다른 일에 또 흥미를 느끼지 않을까.”

▼ 극 중 임시완과 키스 신이 있었는데 느낌이 어땠나.
“영화에서 백인 친구와 키스 장면이 있었는데 갑자기 딥 키스를 해서 놀랐다. 이번 드라마에서 시완 군은 자꾸 인공호흡을 하더라(웃음). NG가 나서 여러 번 촬영하느라 힘들었다.”

▼ 앞으로도 연기를 계속할 생각인가.
“드라마 현장에는 즐거움과 고통이 동시에 있는 것 같다. 노래든 춤이든 연기든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다. 중요한 건 그 힘든 현장에서도 열심히 하면서 즐기는 거다.”

▼ ‘연기자’ 보아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시청자들의 반응이 궁금하지만 평가가 두려운 건 아니다. 안 좋다고 해서 연기를 그만둘 건 아니니까. 설령 평가가 좋지 않더라도 노력해서 꼭 잘하는 모습 보여드리겠다.”

여성동아 2013년 10월 5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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