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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밀레니엄 서울힐튼 총지배인 에릭 스완슨&뮤지컬 배우 전수경 다시, 사랑을 쓰다

글·진혜린 | 사진·조영철 기자

2013. 09. 13

밀레니엄 서울힐튼의 총지배인 에릭 스완슨은 한국을 사랑할 운명을 타고난 남자다. 그는 잃어버린 한국 문화재 찾기에 평생을 바친 고 조창수 여사의 아들이자, 뮤지컬 배우 전수경의 남자친구다. 서울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호텔 객실에서 열린 전수경과 에릭 스완슨의 소박한 티타임에 초대를 받았다. 이들과 유쾌한 담소를 나누다 보니 나른한 한여름 오후가 산뜻한 공기로 채워지고 있었다.

밀레니엄 서울힐튼 총지배인 에릭 스완슨&뮤지컬 배우 전수경 다시, 사랑을 쓰다


재치 있고 유쾌하게 대화를 주고받는 두 사람을 보며 그들의 사랑이 어른스럽다고 느꼈다. 유난스럽지 않고 잔잔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이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충분히 따뜻해 보였기 때문이다.
1996년부터 3년간, 서울 리츠칼튼 서울 부총지배인으로, 2006년부터 지금까지 밀레니엄 서울힐튼의 총지배인으로 한국과 특별한 인연을 맺고 있는 에릭 스완슨(54). 뮤지컬계 신화이자 최근에는 JTBC 드라마 ‘그녀의 신화’에서 깊이 있는 연기를 선보이고 있는 배우 전수경(47). 이들은 호텔리어와 배우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아름다운 빛으로 반짝이고 있다.

이 남자의 첫사랑, 어머니 조창수

밀레니엄 서울힐튼 총지배인 에릭 스완슨&뮤지컬 배우 전수경 다시, 사랑을 쓰다


미국은 물론 인도와 이집트 등에서 근무하며 뼛속까지 호텔리어로 성장한, 글로벌 체인 호텔의 총지배인에게 ‘소주와 삼겹살’의 의미를 듣는 것은 흥미진진했다. 그는 삼겹살과 소주가 갖는 ‘의리’라는 코드도 기가 막히게 이해하고 있었다. 본인 또한 ‘의리’라는 한국적 정서가 무척 마음에 든다고도 했다.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나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한국인을 이해하며 한국인과 비슷한 생각을 하는 에릭 스완슨. 그것은 오랜 시간 한국에 머물며 한국 문화에 익숙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더 많은 것을 어머니, 고 조창수 여사에게 물려받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지내며 ‘사소한 언어적 불편함’을 제외하고는 힘든 게 없었다고 할 정도다. 그는 스스로 자신이 한국인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고 조창수 여사는 미국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44년간 일하며 박물관 내 한국관 개관을 주도하고, ‘고종 옥보’ 등 잃어버린 한국 문화재 수십 점을 한국으로 돌려보낸 인류학자이자 민속학자다.
“어머니는 일단 마음먹은 것이 원하는 수준에 오를 때까지 그 결심을 바꾸신 적이 없었어요. 돌아가시기 전 마지막 4년 동안 암과 싸우면서도 어머니는 ‘투쟁가’의 모습을 잃지 않으셨죠. 학문적 목표를 위해 쉼 없이 전진하셨고, 미국을 비롯한 전 세계에 한국의 역사, 문화 그리고 예술 작품을 소개하고 전파는 데 헌신하셨죠. 그런 어머니는 제가 리더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데 큰 영향을 주셨어요. 어려운 순간일수록 일에 더욱 집중하는 태도나 능력은 제가 어머니를 통해 배운 위대한 교훈이죠.”
에릭 스완슨은 한국계 어머니, 스페인계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나 워싱턴에서 자랐다. 하지만 그의 어린 시절 또한 한국 문화의 영향권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는 지금의 여자친구인 전수경을 통해 자신의 어머니가 가졌던 한국적 정서를 깨닫곤 한다.
“어머니의 인생을 요약하자면, ‘두 아이를 기르는 동시에 강한 목표와 의지를 가지고 전문 분야에 집중했던 삶’으로 얘기할 수 있어요. 여자친구가 두 딸을 키우며 자신의 꿈을 이뤄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를 비롯한 한국 어머니들의 특별한 사랑을 느끼는 것도 그 때문이죠. 한국의 어머니들은 대체로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아이들에게 헌신적으로 쏟고 있어요. 분명 이것이 아이들에게 좋은 영향을 줄 것이라 믿어요. 제 어머니의 노력과 업적 역시 제게 영향을 주고 있으니까요.”
그에게서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효심이 진하게 느껴졌다. 그는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셔서, 희생해주셔서, 모든 허물을 용서하고 사랑해주셔서, 그리고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 온전히 아들의 품에 있어주셔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그는 어머니의 운명을 물려받고 싶다고 했다. 한국의 문화와 유산의 후원자로서 나라에 기여해야 할 운명. 아직은 막연한 꿈에 불과하지만 기회가 다가오면 주저하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보였다. 그 굳은 의지는 은퇴 후 한국에 살고 싶은 이유 중 하나가 됐다. 에릭 스완슨에게는 한국이 ‘제2의 고향’인 셈이다.
“일 년에 한 번쯤 미국에 있는 집에 가는데, 오히려 미국의 제 집이 어색하게 느껴지고 딱히 할 일도 없고 외롭더라고요. 자연스레 한국이 그리워지고, 한국에 있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지죠. 그래서 은퇴 후 한국에서 지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현재는 부산 영산대학교에서 관광마케팅 박사 과정을 밟고 있는데, 호텔 비즈니스에서 은퇴 후에는 전업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인생의 목표예요.”



존중받는 사랑의 온도

밀레니엄 서울힐튼 총지배인 에릭 스완슨&뮤지컬 배우 전수경 다시, 사랑을 쓰다


“첫눈에 반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원하는 타입이 아니었다”던 전수경이 에릭 스완슨을 다시 보게 된 이유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에릭 스완슨이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은 모든 것이 그를 충분히 돋보이게 했다.
“처음에는 서로 말이 잘 안 통하다 보니, 그와 저는 삶의 방식이 다르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자신의 인생을 꾸려나가는 의지와 추진력에 차츰 존경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는 국적이나 인종을 떠나 사람이 지녀야 할 좋은 점을 정말 많이 가지고 있어요. 인생을 잘 구상해나가고, 어머니의 영향인지 문화와 자선에 대한 가치관이 뚜렷하죠. 여러모로 배울 점이 많은 사람이에요.”(전수경)
그들이 처음 만났난 2010년은 각자에게 힘든 한 해였다. 전수경은 갑상선암 수술로 심신이 지쳐 있는 상황이었고, 에릭 스완슨은 2009년 어머니를 잃고 의기소침해 있었다. 두 사람 모두 소개팅이라도 해보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고 큰 기대감 없이 사람들과 어울리는 자리에서 첫 만남을 가졌다고 했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첫인상은 별로 좋지 않았다. 에릭 스완슨은 전수경을 ‘카리스마가 강한, 기 센 여자’로 봤고, 전수경은 그를 ‘원하는 타입이 아닌 남자’라고 생각했다.
“이후 몇 번 더 만났는데, 횟수가 거듭될수록 정이 쌓였고 이 사람 특유의 긍정적인 에너지가 좋게 느껴졌어요. 저에게 점점 특별한 사람으로 다가온다는 느낌을 받았죠.”(에릭 스완슨)
모든 사람이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은 아니다. 또 젊은 시절의 사랑이 휘발유에 불붙는 격이라면, 지금의 사랑은 보다 더 성숙하다. 한 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고 했지만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 또 사랑 아닌가. 두 사람 모두가 경험한 이혼과 세월 속에서 얻은 교훈들은 이 둘에게 사랑에 대한 어른스러운 태도를 갖게 했다.
“예전보다는 아무래도 정신적으로 성숙해진 것 같아요. 그래서 각자 삶의 영역을 쿨하게 인정해요. 상대방의 100%를 가질 수 없다는 것, 일정 부분 이상을 원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됐죠.”(전수경)
상대방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사랑인 줄 알았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이제 희생이라는 말보다 배려와 존중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에릭은 무슨 일이 있어도 월요일 저녁 약속을 잡지 않아요. 한 주를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에 준비하는 시간을 갖더라고요. 아마 20대였다면 절대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아요. 특별한 일은 없지만 만나자고 하는 저의 제안을 거절한 셈이잖아요. 그런데 이제는 존중하죠. 에릭 역시 저의 영역을 존중해주고요.”(전수경)
이제 두 사람은 상대방이 내게 무엇을 해주느냐로 사랑을 평가하지 않는다. 각자의 삶에 대한 진지한 태도와 열정, 그리고 이타적인 마음으로 사람됨을 알게 됐고 존경하게 되면서 그것이 사랑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수경 씨는 엄마로서 자식에 대한 책임감과 인내심이 매우 강해요. 또 연예인이지만 성격이 매우 털털하고 동시에 유쾌하죠. 중년의 나이에도 자기 계발에 적극적이며 학구적이기까지 한데, 어찌 매력적이지 않을 수 있겠어요?”(에릭 스완슨)
“어린 시절의 로맨스와는 다른 점이 분명 있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의 사랑이 이성적이고 차가운 것만은 아니에요. 사랑의 표현이 다를 뿐이죠. 에릭에게서 깊은 이해심과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자 하는 따뜻한 마음을 느껴요. 또 상대방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모습이 훌륭하다고 생각해요. 주변 사람들의 사소한 일까지 세심하게 신경 쓰는 편인데, 제사를 잘 챙기는 걸 보면 영락없는 한국 사람이에요.”(전수경)

친구에서 가족으로

밀레니엄 서울힐튼 총지배인 에릭 스완슨&뮤지컬 배우 전수경 다시, 사랑을 쓰다


전수경이 남자친구의 존재를 방송에서 공개했을 때, 모두들 ‘곧 결혼할 모양이구나’ 생각했을 것이다. 2011년의 일이니 2년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구체적인 결혼 계획은 없다.
“대부분의 시청자가 연애 공개를 결혼 발표로 연결 지어 생각할 거라고 예상은 했어요. 하지만 연애 사실을 속이거나 숨기고 싶지는 않더라고요. 누가 물어보면 그냥 솔직하게 남자친구의 존재를 말해요. 걱정이 되는 것은 아이들이었죠. 행여 아이들이 어려서 상처 입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지만 얼렁뚱땅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이혼할 때 ‘아빠가 일하러 멀리 갔어’ 같은 거짓말로 아이들을 속이지 않았던 것처럼, 새로운 사랑을 시작할 때도 아이들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했죠.”
이제 초등학교 5학년이 된 쌍둥이 딸들은 엄마의 남자친구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고 한다.
“큰아이는 아빠를 두고 엄마가 그러면 안 된다고 말렸고요, 둘째는 엄마는 매력이 있으니까 더 괜찮은 남자를 만날 수 있다고 했죠(웃음). 저는 평소에 아이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려고 노력해요. 아이들이 어려서 모를 것 같지만 다 알고 있거든요.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로 말을 해주려고 하죠. 엄마도 한 사람이고, 여자라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하기도 하고요.”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모범이 되는 엄마, 아이들이 자라서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되고 싶다는 전수경. 늘 바쁜 탓에 아이들과 같이 지내는 시간이 적어 아쉽지만 함께하는 시간만큼은 아이들에게만 집중하려고 노력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잘 때 엄마가 없으면 응석부리던 아이들이 ‘엄마, 일하느라 힘들겠군요. 그렇지만 조금만 더 파이팅!’ 할 때면 부쩍 컸다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도 집에 있을 때는 라면을 같이 끓여 먹는다거나 목욕탕에 함께 가고, 여행을 다니면서 아이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 위해 애쓰죠.”
요즘은 에릭 스완슨과 두 딸을 데리고 영화나 공연을 보는 등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갖는다고 했다. 에릭 스완슨이 두 딸에게 갖는 마음도 사뭇 애틋하다.
“저 또한 부모님이 이혼을 하셔서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동시에 보호받는다는 느낌을 가져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어요. 그래서 수경 씨의 두 딸에게 더 잘해주고 싶어요. 수경 씨는 두 딸과 정말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내고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세 모녀가 있는 아름다운 그림의 한 부분이 되고 싶은 마음 간절해요. 아직은 노력이 더 필요하겠죠.”
아이들과 처음 만나기 전 에릭 스완슨은 전수경에게 “나의 좋은 점만 이야기하며 ‘아저씨랑 친해지라’고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단다. 억지로 떠밀듯이 맺어진 관계는 좀처럼 가까워질 수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엄마의 남자친구에게 익숙해지고 스스로 다가올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고마웠다고 했다.
“수경 씨와 결혼하고 싶어요. 다만 아이들이 성장하면서 저희 둘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때가 가장 좋은 결혼의 타이밍이라고 생각해요.”(에릭 스완슨)
주로 뮤지컬의 주인공만 맡던 전수경이 최근 간만에 연극무대에 올랐다. 그가 출연 중인 ‘급매 행복아파트 천사호’는 미마지아트센터 눈빛극장에서 8월 31일까지 진행된다. JTBC 월화드라마 ‘그녀의 신화’에서도 열연 중이다. 그는 작품에서 주인공(최정원)의 행복을 빼앗고, 오로지 자기 자식(손은서)밖에 모르는 김미연 역을 맡았는데, 최근 오랫동안 헤어졌던 딸을 만나는 장면을 보니 제작진이 왜 그녀를 캐스팅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악역으로 대변되는 인물이 가지고 있는 지나친 모성애를 시청자들에게 동질감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 비록 삐둘어진 모성애지만 딸에 대한 애틋한 사랑에 시청자도 함께 울었다.
“사실 딸들이 울상이 돼서 ‘엄마, 나쁜 역 안 하면 안 돼?’하더라고요(웃음). 예전에 비해 작품 선택의 폭이 줄어드는 것 같긴 해요. 그래서 역할에 상관없이 다른 모습을 보여 줄 수 있는 게 중요한 것 같고요. 많은 부분, 제가 원했던 이상을 성취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예전처럼 저의 꿈은 현재 진행형이지만 조급해 하지 않고 굽이굽이 돌아가는 맛도 즐기면서 인정받을 수 있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어요.”
목표를 향해 나아가되 조급해 하지 않는 것. 그것은 세월이 인간에게 준 또 다른 선물일 수 있다. 각자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두 사람이 함께 그리는 미래의 그림도 지금처럼 잔잔하고 어른스러울 것 같다.

◆故 조창수 여사는…
1925년 평양에서 태어나 경기여고를 졸업한 후 일본여자대학에서 인류학을 전공했다. 광복 후 첫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에 건너가 맥머레이 칼리지에서 민속학 학사를, 워싱턴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마치고 스미소니언 박물관에서 아시아 전문 큐레이터로 44년간 재직했다.
박물관 재직 중 24권에 달하는 한국의 역사·문화·민속 관련 책을 출간했으며, 2004년에는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한국 민속 문화재 첫 도록 ‘은자의 나라 민속지’를 출간했다. 2007년 스미소니언 박물관이 한국관을 개관하자 자신의 전 재산 4억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2009년 퇴직과 함께 귀국해 그해 11월 지병인 유방암으로 타계했다.
그는 고종의 옥보, 순종 옥새를 포함해 93점에 달하는 우리의 유물과 문화재를 찾아 한국으로 돌려보낸 것으로 유명하다. 6월 서강대 로욜라 도서관 내 유드림 홀에서 열린, 조창수 문화재 반환 운동 정신을 기리는 ‘한국의 자랑스러운 딸’ 전시를 맞아 에릭 스완슨이 어머니가 남긴 책 3백57권을 서강대에 기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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