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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울산 큰애기 나경윤

구찌의 쇼윈도 내가 만든다

글·구희언 기자 | 사진·현일수 기자, 나경윤 제공

2013. 09. 13

백화점 쇼윈도 앞을 지나 다니면서도 몰랐다.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구찌 매장의 쇼윈도가 한국인의 손으로 디자인된 줄은. 그것도 전 세계 매장이 말이다.

울산 큰애기 나경윤


현관이 그 집의 인상을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집에 현관이 있다면, 명품의 얼굴은 쇼윈도가 아닐까. 누구나 한 번쯤 백화점 쇼윈도 앞에서 가던 길을 멈춘 기억이 있을 것이다. 세계적인 명품 구찌 제품도 마찬가지. 시즌마다 구찌 제품들은 ‘구찌다운’ 모습으로 쇼윈도에 진열돼 소비자의 시선을 끈다. 쇼윈도 디자인은 그 자체로 구찌의 아이덴티티를 보여준다.
이런 구찌의 쇼윈도 디자인을 맡은 이가 한국인이라는 사실. 주인공은 이탈리아 구찌 밀라노 본사에서 비주얼 머천다이저(VMD)·쇼윈도 디자이너로 활동 중인 나경윤(33) 씨다. VMD는 패션에서 시각적인 분야를 총괄, 지휘하는데 나씨는 브랜드 광고부터 제품 진열과 장식까지 브랜드 전반의 시각적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특히 쇼윈도 디자인은 소비자의 즉각적인 반응을 느낄 수 있는 부분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결정하고 판매에도 직접 연관되기에 중요할 수밖에 없다.
나씨는 2011년 1월부터 이탈리아 구찌 본사에서 쇼윈도 디자이너 겸 비주얼 머천다이저로 활약하며 재능을 맘껏 뽐내고 있다. 구찌 비주얼 머천다이징·쇼윈도 스페셜 프로젝트팀 소속인 그는 5명의 동료와 함께 시즌별로 전 세계 구찌 매장의 디스플레이를 디자인해 선보인다. 이탈리아 구찌 본사는 로마와 밀라노, 피렌체에 있는데 본사 머천다이징 팀에서 한국인 정직원은 그뿐이라고. 2003년 울산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한 그는 국내에서 시각디자이너로 활동하다 2005년 이탈리아행을 결심했다. 외국인과 정규직 계약을 맺는 경우가 흔치 않은 이탈리아, 불황으로 자국 출신들에게도 바늘구멍처럼 좁은 취업 문을 순수 국내파인 나씨가 뚫은 비결은 뭘까. 만나보니 조금은 의문이 풀렸다. 생글생글한 표정에 이야기할 때 부정적인 단어를 쓰지 않는 그는 ‘긍정의 아이콘’이었다.
“유학이란 건 꿈도 꿀 수 없는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어요. 공부를 더 하고 싶었지만 대학원 진학도 어렵던 상황이었죠. 이곳저곳 알아본 끝에 이탈리아에 1년 만에 졸업이 가능한 대학원이 있다는 걸 알았어요. 가서 정말 1년만 열심히 해보겠다고 부모님을 설득했어요.”
떠날 당시만 해도 이탈리아어를 거의 못했던 그지만 갖은 노력 끝에 밀라노 폴리테크니카에서 1년 만에 시각디자인 전공 마스터(석사) 과정을 마쳤다.
“디자이너라는 직업 특성상 언어보다는 제 작업이 저를 더 잘 설명해주잖아요. 하지만 언어가 안 통한다고 한국 사람끼리만 어울리는 경우도 있는데 그러면 끝까지 말을 배울 수 없어요. 그래서 완벽한 이탈리아어를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외국 친구들과 어울리려고 노력했어요. 이탈리아에 왔으면 이탈리아 말을 배우고 문화를 접해야죠. 어떻게 온 유학인데(웃음). 입학할 때는 한마디도 못했지만 졸업할 땐 교수님이랑 농담까지 주고받을 정도였죠.”
졸업 후 한 달 안에 취직하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배수진을 친 나씨. 그는 가고 싶은 회사 10군데에 각각의 스타일에 맞춘 10개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제출했다.
“인생 모토가 ‘후회 없이 살자’거든요. 정말 미친 듯이 해보고 안 되면 깔끔하게 접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한 달이 다 되도록 아무 곳에서도 연락이 오지 않더라고요. 결국 여행사에 가서 출국까지 3일 남은 한국행 티켓을 샀어요. 그러곤 어머니에게 전화로 ‘한국 가면 이것저것 먹고 싶으니 만들어달라’고 이야기하던 중에 라 리나센테 백화점에서 면접을 하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이탈리아 최초의 백화점 체인인 라 리나센테 백화점에 시각 디자이너 겸 VMD로 취직한 나씨에게 비주얼 머천다이징은 생소한 분야였다.
“백화점은 비주얼 머천다이저에겐 정말 좋은 학교예요. 의복부터 인테리어용품, 속옷까지 다양하게 비주얼 머천다이징하는 법을 배울 수 있거든요. 전공을 살려 비주얼 머천다이징 가이드라인 제작, 트렌드 헌터의 무드 작업, 쇼윈도 디자인도 하게 됐어요. 상상한 것이 눈앞에서 내 손을 거쳐 현실이 된다는 게 정말 재밌더라고요.”

울산 큰애기 나경윤

나경윤 씨가 디자인해 선보인 구찌의 쇼윈도들.



후회 없이 살았더니 구찌에 와 있었다
그의 열정은 당시 총책임자였던 스테파니아 라체렌차의 눈에 띄었다. 그는 2010년 구찌로 자리를 옮기며 나씨를 데려갔다.
구찌에서의 작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것에 대해 묻자 그는 지난해 3월 서울 강남 구찌 플래그십 스토어 오픈 때 선보인 무궁화를 활용한 디스플레이를 꼽았다. 그는 “한국인이라 가장 한국적인 디자인을 구상했다”며 “불가능할 것 같던 아이디어가 서울 한복판에서 구체화됐을 때 정말 감동이었다”라고 말했다.
“한국인으로서 유럽 사람과 완전히 다른 문화에서 다른 교육을 받고 자랐기에 그들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었고, 그건 제 무기가 됐어요. 다르니까 특별해지더라고요. 사람들이 매장에서 꼭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멈춰 서서 전시된 제품을 보고 ‘이런 것도 있네’ 해주는 것 자체로도 브랜드에 도움이 된다고 여겨요.”
작업 과정은 퀴즈를 푸는 것과 같다고 한다.
“‘이번 시즌 콘셉트는 퓨처리즘에 1980년대 스타일을 약간 섞었어’라거나 ‘크리스마스 시즌용 디자인인데 크리스마스처럼 보여서는 안 돼’ 하는 식으로 회사 측에서 몇 개의 단어로 콘셉트를 제시하면 그걸 가지고 구찌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야 해요. 예술은 작품만 만들면 되지만, 디자인은 클라이언트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야 하잖아요. 회의 때 아이디어를 내라고 하면 세 개씩 준비했어요. 하나를 가져갔다 평가가 나쁘면 거기서 끝이지만, 세 개라면 적어도 하나는 살릴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고른 디자인이 피렌체 구찌 본부로 넘어가면 시뮬레이션을 거쳐 색상과 소재, 구성을 확정짓고 전 세계 매장 크기에 맞춰 도면으로 만들어진다.
그는 “원래 귀엽고 비비드하고, 때론 장난스러운 물건을 좋아하는데 구찌에서 일하면서부터는 항상 모든 걸 구찌화하려고 노력한다”고 했다. 구찌다운 게 뭔지 묻자 그는 “이탈리아 장인의 전통과 어울리는 고급스러움”이라고 대답했다.
“영감을 얻고자 여행을 많이 다녀요. 회사의 좋은 점이 그런 여행을 장려한다는 점이죠. 여행지에 가면 재래시장을 꼭 찾아서 둘러봐요. 박람회나 전시회에서 작품도 살펴보고, 맛있는 것도 먹죠. 처음부터 아이디어를 건져야겠다는 생각으로 찾아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거든요. 아, 최근에는 수영도 배웠어요. 물은 가끔 먹지만 조금씩 전진할 수 있게 됐죠. 저는 일이 인생의 목표가 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사랑하는 것도 중요하죠. 요가도 배우고 있는데 그게 자신을 사랑하기에 적합한 운동이더라고요.”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은 구찌의 얼굴을 만드는 핵심 일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8년 전 그가 낸 10개의 포트폴리오가 어디서도 빛을 보지 못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는 “플랜 B는 생각한 적 없다”라며 “떨어졌으면 그때 가서 생각했을 것”이라고 말하곤 활짝 웃었다. 앞으로의 목표는 학생들에게 더 큰 꿈을 꾸도록 도와주는 교수가 되는 것. 나씨는 “실패도 인생에서 엄청난 도움이 된다”라며 “도전해서 깨지는 걸 두려워 말라”고 조언했다.
“제가 가고 있는 길이 국내에서도 생소한 분야잖아요. 저 같은 학생들이 꿈을 꾸고 이룰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저도 처음에 유학 간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말렸지만, 꾸준히 하다 보니 기적이 일어나더라고요. 꿈을 끝까지 부여잡고 있으면 언젠간 가까이에라도 도착하게 된다는 말도 있잖아요. 헤매는 걸 두려워하지 마시고요. 지금 헤매고 있다는 건, 그만큼 열심히 하고 있다는 증거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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