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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Style Life in Hokkaido

일본 최북단 바다 위의 신기루 리시리레분토

글&사진·황경성 일본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

입력 2013.07.03 16:55:00

분명히 섬은 두 개인데 사람들은 하나의 이름으로 부른다. 배를 타고 바다 위에서 리시리토와 레분토를 바라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마치 두 손을 마주잡은 연인처럼 나란히 사이 좋게 있는 섬. 왜 홋카이도 주민들조차 이곳을 꼭 가보고 싶은 곳 1순위로 꼽는 걸까.
일본 최북단 바다 위의 신기루 리시리레분토

히메누마 호수에 투영된 리시리산(리시리후지)의 모습.



홋카이도에는 6개의 국립공원이 있는데, 그중 가장 북쪽에 위치한 것이 리시리레분사로베쓰(利尻禮文サロベツ)국립공원이다. 홋카이도 내륙의 최북단 지역인 와카나이 해안 부근과 사로베쓰 습지대, 리시리토(利尻島) 와 레분토(禮文島) 두 섬을 포함하고 있는 이 국립공원은 아름답고 독특한 지형뿐만 아니라 섬 특유의 기후 덕분에 저지대에서도 희귀한 고산식물 수백 종을 볼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래서 이번 여행지는 홋카이도 주민들 사이에서도 꼭 가봐야 할 곳 1순위로 꼽히는 리시리레분사로베쓰국립공원으로 정했다. 단 사로베쓰 습지대는 작년 이맘때 다녀온 적이 있어 이번에는 두 섬만 돌아보기로 했다.
섬 모양 자체가 원형인 리시리토에는 후지산과 흡사해 ‘리시리후지’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한 리시리산이 있다. 후지산은 일본의 상징이나 다름이 없어, 일본 사람들은 후지산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도 후지미(富士見·후지산이 보이는 곳)라는 지명을 붙이거나, 후지산을 볼 수 없는 지역에서는 리시리후지(利尻富士·1721m)처럼 산 이름에 후지를 붙여 부를 만큼 큰 애착을 가지고 있다.
한 가지 더 재미있는 사실은 리시리토와 레분토가 엄연히 다른 섬인데도 사람들은 마치 하나의 섬처럼 ‘리시리레분토’라 부른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와카나이항을 떠난 배가 두 섬을 향해 북쪽으로 뱃머리를 향했을 때 쉽게 알 수 있었다. 맑은 날이면 와카나이항에서 육안으로도 보이는 두 섬은 마치 두 손을 마주잡은 연인처럼 나란히 사이 좋게 떠 있다. 이처럼 가까운 거리에 있으면서도 서로 다른 매력을 지녀서 여행객들은 두 섬을 모두 방문하는 것이 관례가 됐다고. 나는 레분토 출신인 지인 오이시(大石) 씨 부부의 조언에 따라 리시리토에서 시작하는 이틀간의 여행 일정을 짰다.

‘하얀 연인’과 리시리후지

일본 최북단 바다 위의 신기루 리시리레분토

1 레분토 최북단에 있는 스코톤미사키 카페에서 바라본 사할린 쪽 바다. 2 오타토마리누마에서 바라본 리시리산.



오전 6시에 출항하는 배를 타러 와카나이항 쾌속선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단체 관광객이 몰려들어 터미널 안은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각각 두 섬으로 떠나는 배가 거의 같은 시간에 출발하기 때문에 혼잡은 더욱 심했다. 한국인을 포함해 외국인들의 모습도 적잖이 눈에 띄었다. 와카나이항에서 배를 타고 출발할 때만 해도 먼 바다 위로 구름이 잔뜩 끼어 섬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게 아닐까 걱정했지만 어느새 전혀 다른 정경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배 주위를 맴도는 갈매기들을 배경 삼아 시야에 들어온 것은 잔설이 산 정상으로부터 바다에 닿을 듯 선명하게 흰 선을 그어내린 웅장한 리시리토였다. 정확히 말해 리시리후지 산이다. 리시리레분사로베쓰국립공원의 상징은 누가 뭐래도 리시리후지다. 육지에서 봐도 바다에서 봐도 웅장한 자태가 늘 풍경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쾌속선은 한 시간 반을 달려 리시리후지 코밑에 도착했다. 배에서 내리자 주차장에 관광버스가 늘어서 있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삿포로 등 내륙에서부터 관광객을 싣고 버스째 섬까지 온 것이다. 나는 이들과 달리 개별 관광객을 위한 정기 관광버스에 올라타 반나절 여행 코스를 선택했다. 달변의 가이드가 곳곳의 특징과 에피소드를 쉼 없이 설명해줘 단기 체류자에게는 매우 유용한 여행 방법이다.
가장 일반적인 코스는 섬을 한 바퀴 돌며 어디에서나 보이는 리시리후지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감상하는 것이다. 리시리후지는 어느 각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16가지 다른 자태를 드러낸다고 한다. 54km에 이르는 섬 일주를 할 때 관광버스 대신 승용차나 자전거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섬 일주에서 첫 번째 뷰포인트는 히메누마(姬沼)라는 호수다. 구름 한 점 없이 맑게 갠 하늘을 배경으로 그리 크지 않은 호수와 잔설이 알맞게 남아 있는 리시리후지, 그 아래쪽에는 녹색 숲이 잔디처럼 펼쳐져 있는 모습을 상상해보라. 무엇보다 이 풍경이 파란 호수 위에 거꾸로 투영돼 절묘한 풍경화를 그려낸다. 10분 정도 호수 주위를 걸으며 아기자기한 꽃들을 본 뒤 다음 장소인 오타토마리누마(オタトマリ沼)로 이동했다.



일본 최북단 바다 위의 신기루 리시리레분토

3 레분토 서쪽에 있는 스카이미사키의 정경.



일본 최북단 바다 위의 신기루 리시리레분토

레분토의 상징 레분아츠모리소 꽃. ‘난초의 여왕’이라 불린다.



홋카이도 관광객들이 기념품으로 사는 과자 중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가 ‘시로이코이비토(白い戀人 하얀 연인)’인데 이 과자 포장지에 그려진 정경이 바로 오타토마리에서 바라본 리시리후지다. ‘하얀 연인’이라는 이름이 붙게 된 것은 창업자가 리시리후지에서 스키를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 눈이 내리는 정경을 보며 무심코 “하얀 연인들이 내려오고 있어요”라고 중얼거린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오타토마리누마에서 바라본 리시리후지는 더욱 웅장한 자태를 드러낸다. ‘리시리’라는 말은 아이누어로 높은 산이 있는 섬이라는 뜻의 ‘리이시리’에서 따온 것이라 한다. 관광객들은 호수 주변에 늘어서 ‘인증샷’을 찍기에 여념이 없었다. 단체 관광객들을 위한 사진 촬영대가 따로 마련돼 있고, 몇 군데 매점에서는 각종 지역 특산물을 판매하며 적극적으로 시식을 권했다. 특히 다시마로 만든 차와 젤리 등은 고소한 맛과 단맛이 어우러져 독특했다.
다음 이동지로 향하는 차 안에서 가이드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해줘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일본 최초의 영어교사로 알려진 인디언계 미국인 래널드 맥도널드(Ranald MacDonald)이야기다. 인디언의 조상이 일본인이라고 믿었던 그는, 다니던 은행을 그만두고 일부러 선원이 됐고, 1848년 배가 난파된 것으로 위장해 처음 도착한 곳이 리시리라는 것이다. 부는 방향에 따라 저마다 독특한 이름을 가진 리시리의 바람 이야기를 듣는 동안 구쓰가타미사키(沓形岬)에 도착했다. 고산식물이 여기저기 피어 있는 산책로를 걸으니 특정 지역과의 거리를 표시한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서 도쿄까지는 1045km인데 사할린까지는 불과 108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맑은 날 육안으로도 볼 수 있다니, 러시아와 얼마나 가까운지 실감했다. 이곳은 여름에도 기온이 27℃ 이상 오르는 일이 없어 관광을 겸한 피서객들이 몰린다.
버스가 마지막으로 머문 곳은 리시리 공항. 인구 5천 명 남짓한 작은 섬임에도 산 밑자락에 공항이 있어 삿포로에서 이곳까지 하루 두 편씩 직항 노선이 운행된다. 기차로는 이틀을 잡아야 하는 거리를 한 시간 만에 도착하니 여행객들에게는 매우 유용한 교통편이다.

‘난초의 여왕’ 레분아츠모리소의 섬

일본 최북단 바다 위의 신기루 리시리레분토

레분토의 모모이와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



리시리토에서 레분토까지는 배로 40분 거리. 리시리토가 리시리후지를 가운데 둔 원형의 섬이라면, 레분토는 남북으로 고구마처럼 긴 형태여서 보는 각도에 따라 리시리토보다 더 큰 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 면적은 리시리토가 훨씬 크다.
레분토는 60%의 지역이 국립공원에 들어가며 성게와 다시마 맛이 일품이라는 것 외에 레분아츠모리소라는 난초로 유명하다. 두 손에 쏙 들어올 것처럼 아담한 녹색 줄기에 아이보리색 꽃의 가련한 자태에 사람들은 ‘난초의 여왕’이라는 별칭을 붙여주었다. 섬의 북쪽에 군락지가 있는데, 워낙 희귀해서 일본 내 ‘특정 국내 희소야생식물종’으로 지정돼 보호받고 있으며, 수많은 관광객이 오직 이 작은 꽃을 보러 섬을 찾을 만큼 절대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홋카이도 사람들도 쉽게 가지 못하는 외딴 섬이지만 매년 방문하고 싶은 곳 1위에 오르는 레분토의 매력은, 작은 섬임에도 웅장하고 박력 있는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해안과는 대조적으로 가련하기 그지없는 작디작은 꽃을 중심으로 한 생태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이 섬에 자리 잡은 고산식물배양센터는 희귀식물 연구와 증식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또한 3년 전 레분초(禮文町) 직원의 아이디어로 레분토의 생태계를 지키기 위한 기부 프로젝트가 시작돼 현재 1억원 가까이 모금했다고 한다. 기부자에게는 이 섬의 희귀한 꽃을 새긴 배지를 선물한다.

일본 최북단 바다 위의 신기루 리시리레분토

영화 ‘북쪽의 카나리아들’의 촬영 장소인 초등학교 교정의 정겨운 풍경.



레분토에 도착하자마자 오이시 씨 부부가 섬 서편에 자리한 ‘맑은 바다’라는 뜻의 스카이미사키(澄海岬)로 안내해주었다. 언덕은 26m 높이에 불과했지만 그 위에 서자 이미 여름이 시작됐음에도 한기가 돌 만큼 차가운 바람이 몰아쳤다. 하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바다는 이름 그대로 맑고 투명한 별세계였다. 겨울에는 실제 온도보다 체감온도가 20℃가량 낮을 정도로 춥다고 한다. 혹한 때문에 나무가 제대로 자라지 못하고 드넓은 초원이 형성된 것이 오히려 이국적인 풍경을 만든다. 레분토는 트레킹을 즐기기에 좋은 섬으로, 고도가 가장 높은 490m의 레분다케(禮文岳) 코스를 비롯해 여러 루트가 마련돼 있다. 체력에 맞춰 선택하면 섬의 아름다운 경관을 다양한 각도에서 즐길 수 있다.

영화 ‘북쪽의 카나리아들’ 촬영지
그 다음날 아침 가와무라 씨가 호텔로 나를 데리러 왔다. 그는 레분토의 최북단으로 쾌청한 날이면 사할린을 볼수 있다는 스코톤미사키(スコトン岬)로 나를 안내했다. 이곳에서 내려다보는 동쪽 바다의 색깔은 코발트블루라는 말로도 다 설명하지 못할 만큼 아름다웠다. 언덕 정상에 주차장이 있어 접근이 쉽고, 주차장 옆 카페에서 느긋하게 차를 음미하며 창 너머로 풍경을 감상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이어 복숭아 모양의 모모이와(桃岩) 전망대에 올랐더니 트레킹을 즐기려는 사람들이 개미떼처럼 줄지어 가는 모습이 보였다. 이들은 주위에 아기자기하게 피어 있는 고산식물들을 감상하면서 걷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에서 특별한 목적지 없이 산과 들을 걷는 트레킹 본연의 의미를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올라선 언덕 아래로는 길이 없어 일반인은 접근하기 어려운 서해의 절경이 펼쳐진다. 서해안의 기암절벽은 도보로 접근할 수 없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야만 볼 수 있다.
절경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뒤로하고 이번 여행의 최종 목적지로 발길을 돌렸다. 다행히 그곳은 그런 아쉬움을 단숨에 잊도록 할 만큼 매력적인 곳이었다. 지난해 가을 개봉한 영화 ‘북쪽의 카나리아들’의 촬영지인 이곳은 영화 포스터를 통해 처음 접했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아름다운 바다와 어우러진 초등학교 교정의 실제 장소가 어딜까 하는 궁금증이 이번 여행의 계기가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북쪽의 카나리아들’은 소설가 미나토 가나에(湊かなえ)의 연작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인 ‘20년 뒤의 미스터리’를 영화화한 것으로, 일본 최고 인기 여배우 요시나가 사유리(吉永小百合)를 비롯한 유명 배우가 다수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작은 운동장에 이어진 바다, 그 건너편 리시리토를 배경으로 빛바랜 진홍색 페인트의 소박한 지붕을 올린 교사(校舍), 운동장 모퉁이에 덩그러니 놓인 그네 등이 보는 이의 가슴을 괜스레 뭉클하게 한다. 7월 27일 정식 공원으로 개장할 예정인 이곳에 가면 누구나 운동장에서 뛰놀던 초등학교 시절로 되돌아가는 감흥에 젖게 될 것이다. 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임은 말할 것도 없고.

일본 최북단 바다 위의 신기루 리시리레분토


홋카이도 닛싱 역의 명예역장 황경성은…
도쿄대학대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나요로시립대학 보건복지학부 교수로 재직하며 홋카이도의 문화 예술 진흥에 힘을 쏟고 있다. 2012년 1월부터 ‘여성동아’ 지면에 홋카이도 구석구석을 소개하는 ‘Life in Hokkaido’를 연재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홋카이도의 관광에 기여한 바를 인정받아 2013년 4월 홋카이도관광대사로 임명됐다.

여성동아 2013년 7월 59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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