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 생활을 하다 보면 한국의 유행을 뒤늦게 쫓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다 보니 일부러 한국 웹사이트를 찾아보지 않는 한 한국의 대중가요를 들을 기회도 없다. 그래서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끄는 가수나 노래가 등장해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런데 작년에 하버드대에서 진풍경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하버드대 학생들이 캠퍼스 내에서 한국말로 노래를 부르고 춤을 따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인기는 쉬 식지 않았다. 뮤직비디오를 패러디해 페이스북과 유튜브에 업로드하는 학생들도 있었고, 수업 발표 시간에도 ‘강남스타일’은 다양한 형태로 활용됐다. 분야를 막론하고, 각계의 많은 교수들은 학생들과 싸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이는 하버드대의 풍경만이 아니었다. 가까운 MIT에서도 비슷한 진풍경이 이어졌는데, 세계적인 석학 노암 촘스키가 패러디 비디오에 출연해서 ‘오빤 촘스키 스타일’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사람들이 모이면 자연스럽게 싸이 이야기는 화제가 됐고, 뮤직비디오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웃음꽃을 피우곤 했다.
이렇게 지난해 말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싸이가 하버드대로 강연을 온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에서 싸이를 초청해 강연회를 열기로 한 것. 약 2백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는 강의실에서 강연이 예정돼 있었다. 3일 동안 지원자를 받고, 지원자가 많이 몰리면 추첨을 통해 입장권을 배부한다는 공지가 올라왔다. 아무리 싸이의 인기가 좋다지만 학기말 시험 기간인 데다 지원자 모집 기간이 너무 짧았다. 그런데, 막상 지원자가 1천6백여 명을 넘어서자 주최 측은 급히 8백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하버드대 교내 교회인 ‘메모리얼 교회’로 장소를 변경했다. 더욱이 강연회 지원 자격이 하버드대 학생과 교직원만으로 제한돼 있었기 때문에 추첨 결과가 발표되기 전부터 지원조차 하지 못한 주변 학교 친구들에게 부러움을 사기도 했다.
Wet Psy at Harvard
싸이 강연에 대한 열기는 강연 당일인 5월 10일(현지 시간)에는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 추첨에서 탈락한 학생들이 강연 직전까지 수령하지 않은 티켓을 받기 위해 강연회 2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리는 바람에 북새통을 이뤘고, 당첨된 사람들조차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 1시간여 전부터 줄을 서 기다리는 열성을 보였다. 이 같은 학생들의 관심을 반영한 듯 학교 측은 라이브 스트림(Live Strem)을 통해 강연회를 생중계했다.
이날 강연은 동아시아어(East Asian Language) 전공의 알렉산더 잘튼(Alexander Zahlten) 교수와 한국사 담당인 카터 J. 에커트(Carter J. Eckert) 교수의 진행으로 시작됐다. 특히 카터 교수는 싸이의 트레이드마크인 선글라스를 쓰고 싸이를 소개해 관객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그는 이와 함께 “이제 한국 팝 음악은 한국 현대사에서 정부나 민주화만큼이나 큰 의미를 지닌다”며 “싸이는 현대 사회의 글로벌 디지털 문화를 뒤흔든 현상”이라고 싸이를 소개했다. 이어 알렉산더 교수 또한 ‘강남스타일’을 언급하며 아시아 국가들의 문화 수출이 서부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다고 했다. 두 교수 모두 순수한 한국어로 부른 노래가 전 세계에서 큰 유행을 떨치고 많은 사람들에게 패러디된 것을 상당히 흥미로운 현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두 교수의 소개가 끝나자 드디어 청중이 기다리던 싸이가 뒷문을 통해 등장했다. 하버드대에서의 강연. 어떤 의미에서는 큰 긴장감을 줄 법한 자리일 텐데, 싸이는 이런 대규모 강연에 익숙한 듯 손을 흔들다가 관객들이 내민 손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일일이 악수하는 여유를 보였다. 더욱이 강연장으로 걸어 들어오는 동안 사진 촬영까지 신경 쓰는 센스도 돋보였다.
유쾌한 싸이의 유쾌한 강연
싸이의 강연회가 열린 하버드대 메모리얼 교회 전경. 이곳은 미국 부통령, 달라이 라마 등이 강연한 곳이기도 하다.
강단에 오른 싸이는 겉으로 보이는 여유로운 모습과는 달리 하버드대에서 자신을 초청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나를 여기에 초대하다니, 이상하지 않나?”라며 말문을 열었다.
“어릴 적 보스턴에서 대학 생활을 할 때 저는 낙제생이었습니다. 14년 만에 돌아와서 하버드대에서 강연을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그래서 인생이 참 아름답습니다.”
그는 담담히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가업인 반도체 장비회사를 이어받아야 한다는 부모님의 압력 속에서 자라왔다는 이야기를 들려주며 한때 “부모님이 원하는 곳으로 유학을 가서 경영학 공부를 하겠다고 한 적이 있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하마터면 가수가 못 될 뻔했다”며 웃었지만 이는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으로서, 그리고 유학생으로서 청중과 공감을 이끌기에 충분했다.
이어 처음 미국 유학을 와서 부족한 영어 실력 때문에 곤욕을 치른 이야기도 재치 있게 들려주었다. 설사병을 ‘Water shit’로 표현하며 약을 구입했다는 에피소드에 관객들은 폭소했다.
싸이 또한 자신의 유머 코드가 미국인들과 조금 다르다고 했지만 전반적으로 싸이의 유머는 청중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물론 영어 발음이 원어민처럼 유창하지는 않았어도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자유롭게, 그것도 대본 없이 스토리 라인을 가지고 한 시간 넘게 강의를 이끌어나갔다는 점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세계인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그것도 완벽한 실력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재미있게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은 싸이가 장시간 전 세계에서 인기를 누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순수한 한국어 노래로 인기를 끌었을 때, 적극적인 해외 공연과 홍보를 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고 이런 과정이 없었다면 그의 인기가 이렇게 오래갈 수 없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학 시절 저의 별명은 WWF(Withdrawal: 수업 철회, Withdrawal, Fail: 낙제)였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때의 유학 경험이 오늘날 성공의 밑거름이 됐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강연회가 무르익자 싸이는 ‘강남스타일’의 성공담을 들려주었다. 싸이는 ‘강남스타일’의 세계적인 인기에 대해 말하면서, 각기 다른 나라에 있는 사람들이 노래가사가 무슨 뜻인지 전혀 알지도 못하면서 이 음악을 즐기고 매우 행복해하는 것이 기쁘다고 했다. 하지만 싸이는 이 또한 틀에 박힌 사고방식으로 보지 않았다.
“‘강남스타일’이 언어를 뛰어넘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은 것을 두고, 언어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이 ‘음악’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고리타분한 대답이고 저는 이것이 바로 재미(fun)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자신의 인기를 실감하지 못해서 저스틴 비버의 매니저이자 지금 자신의 매니저이기도 한 스쿠터 브라운에게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 “당신이 스쿠터 브라운이면 나는 저스틴 비버다”고 했다던 일화를 소개했다. 스쿠터 브라운에게 그의 사진을 이메일로 받고 나서야 믿을 수 있었다고.
미국에서 활동을 하면서 마돈나, 브리트니 스피어스, 어셔, 티페인과 함께했던 경험담도 흥미로웠다. ‘강남스타일’의 인기 덕분에 이런 자리에까지 올 수 있었지만 이런 인기는 이례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겸손함도 보였다. 그는 “뮤직비디오를 유튜브에 올려준 직원이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이라며 자신은 매우 운이 좋았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가수 활동을 해왔지만 국제적인 가수가 되는 것을 꿈꾸지 않았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행복했어요. ‘강남스타일’의 성공은 사고(accident) 같은 것이었죠. 그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습니다.”
자만하지 않고, 초심을 잃지 않는 모습, 사람들을 웃게 하려는 유쾌함, 거기에 긍정적인 자세가 엿보였다. 그는 분명 ‘강남스타일’ 이후 많은 부담을 안고 있었을 것이다. ‘강남스타일’의 인기를 이어갈 수 있을지 사람들이 후속곡 ‘젠틀맨’을 ‘강남스타일’만큼 좋아할지, 걱정됐을 것이다. 싸이는 이런 자신의 부담감을 숨기지 않았다.
“다음 작품은 ‘강남스타일’보다 나아야 하고, 유튜브 동영상 조회수도 더 많아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었죠. 누군가는 제가 ‘원 히트 원더’가 될 것이라고 하지만 저는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한국에서 12년간 활동하며 7장의 음반을 발표했으니까요. 내가 ‘원 히트 원더’가 될 거라던 사람들에게 ‘내가 뭔가 해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젠틀맨’을 만들었습니다. 이번 주 빌보드 차트에서 33위를 했어요. 33위를 하고도 실망하는 내 모습에 나도 놀랐습니다. 빌보드 차트에 올라가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대단한 일인데 말이죠.‘강남스타일’정도의 성공을 바라지는 않지만 ‘더 열심히 해야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강연 이후 이어진 질의 응답 시간에는 ‘아시아 예술가로서 세계적인 문화에 끼칠 수 있는 영향’에 대한 질문과 ‘말춤의 탄생 배경’ 등의 질문이 나왔고, 싸이는 전문적인 관점이 아닌, 가수로서 생각하는 바를 재미있게 풀어냈다. 이어 미국에서의 콘서트에 대해 “아직 두 곡밖에 없어서 할 수 없다”며 “나중에 5~6곡이 알려지면 반드시 미국에서 그리고 이곳 보스턴에서 콘서트를 하고 싶다”는 꿈을 밝혔다.
싸이, 그리고 한국
강연이 끝났을 때 청중들이 갖는 아쉬움은 딱 하나였다. 싸이가 춤을 추지 않았다는 것. 장소가 교회인 것을 감안했을 때 싸이의 입장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싸이의 노래와 춤을 기대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의 재치 있는 강연은 분명 흥미롭고 유쾌했으며 관객의 반응 또한 뜨거웠다.
더욱이 강연을 마친 후, 그가 모든 관객을 위해 비빔밥을 선물했을 때의 반응은 엄청났다. 선물자체도 감동이었지만 미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으로서 그의 메뉴 선택 또한 탁월하게 느껴졌다. 중국, 타이, 베트남, 일본 음식에 비해 한국 음식은 정체성이 약하다는 것이 많이 아쉬웠기 때문이다. 물론 이미 불고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실제 외국인 친구들에게 한국 음식을 소개했을 때는, 불고기 외에 비빔밥에 대한 반응도 무척 좋았던 경험이 있다. 그런 측면에서 싸이가 강연회를 통해 비빔밥을 선물해 8백 명의 하버드대 학생들이 한국의 음식을 먹었다는 것이 한국인으로서는 꽤 뿌듯하게 느껴졌다.
‘강남스타일’이 인기를 끌기 전까지 나 역시 싸이에게 큰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가장 유명한 아침 뉴스 방송에서 초청 가수로 출연한 싸이의 모습을 보았을 때, 미국 부통령, 달라이 라마 등이 초대됐던 하버드대 메모리얼 교회 강단에 선 싸이를 보았을 때, 같은 한국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울컥 솟아올랐던 게 사실이다. 아마 이는 필자와 같은 유학생이나 교포들에게는 커다란 힘이 됐을 것이다.
싸이의 하버드대 강연은 그가 가진 전체적인 분위기 때문인지 가시적인 교훈을 가진 강연회가 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일대기와 솔직한 성공담 그리고 이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으면서 관객 각자가 강연회를 통해 얻고 돌아가는(take home) 메시지는 달랐을 것이다. “애초 세계 진출을 목표로 ‘강남스타일’을 제작한 것이 아니었다. 단지 사람들을 웃고 행복하게 만들어주고 싶었다”던 그의 말처럼 그의 강연 또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의 일환일 수도 있으니까. 적어도 필자는 싸이가 ‘소박하지만 의미 있는 초심’과 ‘젊은 시절의 무모했던 도전’, 그리고 ‘다양한 경험’이 밑거름돼 ‘전 세계 사람들을 웃게 만든 의외의 성공’을 이룰 수 있었던 그의 삶을 전해준 것만으로도 큰 의의를 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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