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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의 아이콘 하지원, 그녀가 사랑스러운 이유

글 | 권이지 기자 사진·자료제공 | 북로그컴퍼니

입력 2012.12.18 10:27:00

복서, 스턴트맨, 탁구 선수, 여전사까지 하지원은 몸으로 연기하는 배우다.
일단 뜨고 나면 본업보다 CF에 더 몰두하는 연예계 풍토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몇 안 되는 배우이기도 하다.
화수분처럼 흘러넘치는 하지원의 열정의 근원을 따라가봤다.
도전의 아이콘 하지원, 그녀가 사랑스러운 이유


도전의 아이콘 하지원(34·본명 전해림)이 작가에 도전했다. 11월 초 서울 강남 임피리얼팰리스 호텔에서 열린 ‘지금 이 순간’ 출판기념회에서 만난 그는 대단한 이야기를 쓴 것도 아닌데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줘 쑥스럽다는 말부터 했다.
“영화제 시상식보다 떨리네요. 사람들에게 뭔가 서로 소통하고 서로 응원할 수 있는 에너지를 주고 싶었어요. 연기를 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나 응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자그마한 비타민이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내게 됐습니다.”
하지원은 처음엔 책이란 인생을 많이 살아온 선배들이 내는 것이라 생각해 제안이 들어올 때마다 거절했다. 이제까지 책을 낸다는 건 상상도 해본 적이 없어 더 힘들었다고. 영화나 드라마와는 또 다른 도전이었기 때문이다. 출판사 측에서 5~6번 정도 제의를 해오자 먼저 가족들에게 ‘책을 내는 건 어떨까’ 하고 의견을 구했다. 가족들은 “열심히 했잖아, 지원아. 최선을 다했으니까 (책을 내도) 괜찮아”라며 그의 도전을 응원해줬다. 그리고 이제까지 배우로 살면서 생각했던 것들을 하나씩 가슴 깊은 곳에서 꺼내 보였다. 그는 책을 내기까지 고마웠던 사람들이 생각이 나는지 잠시 눈물을 비치기도 했다.
“13년 전 신인 시절로 돌아가서 제 스스로 터득했던 게 뭘까 생각했어요. 1백 번 넘게 오디션을 보고 낙방했지만 기죽지 않던 내 모습과 지금까지 쌓아온 나만의 노하우가 있더라고요. 연기하는 친구들에게 옆집 언니 같은 마음으로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에 책을 내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책을 내면서 오히려 제가 응원을 많이 받았어요. 연기자를 꿈꾸는 사람들, 꿈을 키워나가는 사람들에게 제가 받은 만큼 돌려주고 싶었어요.”
하지원은 글 쓰는 일 외에 책을 만드는 과정에도 적극 관여했다. 책에 들어가는 사진부터 크게는 디자인까지 꼼꼼히 체크했다. 어떤 사이즈가 가장 보기 좋을지 편집자와 수 차례 대화를 나눴다는 후문이다. 2012년 7월로 예정했던 발간일을 11월로 늦춰가며 몇 번이고 살펴봤다. 제목에서도 그의 고민이 묻어났다. ‘지금 이 순간’은 그가 가장 좋아하는 말이자 가장 ‘하지원다운’ 말이라 선택했다고 한다. 그는 지금 이 순간이 있기 때문에 내일도 있다고 생각한다고.
“글을 통해 나 자신을 읽는 느낌은 영상과는 많이 다르더라고요. 시간이 지날수록 작업을 하면 할수록, 또 알면 알수록 글 쓰는 일이 소중해지더라고요. 욕심도 나고 그랬는데 영화나 드라마보다는 작업하기가 좀 더 외로웠어요(웃음). 물론 그 덕분에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죠.”

숨어 있는 끼를 눈빛에서 찾다

도전의 아이콘 하지원, 그녀가 사랑스러운 이유

장난기 가득한 표정과 몸짓으로 창 밖을 바라보는 하지원. 그녀에게 일상은 곧 즐거움이다.



학창 시절의 하지원은 공부도 제법 잘했고, 부모님 말도 잘 듣는 모범생이었다. 하지만 고등학교 1학년 때 전학을 한 후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가정 형편에도 문제가 생겼다. 그 때문일까. 2, 3학년이 돼서도 불안감과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던 중 사진관에 걸린 사진을 봤다며 한 연예기획사의 매니저로부터 전화가 왔다. 1996년의 일이다. 남들은 몰랐지만 하지원이 몰래 꾸던 꿈이 배우였다. 전화는 한 통으로 끝나지 않고 계속 걸려왔고, 결국 딸의 마음을 알아챈 엄마는 딸의 손을 잡고 기획사를 방문했다.
찾아온 기회. 연습실에서 선배 배우들의 대본을 빌려보며 꿈을 키웠다. 쉽진 않았다. 출연 기회가 오지 않아 걱정만 늘었다. 기획사의 한 임원은 그가 고3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먼저 연극영화과에 붙고 오라”고 했다. 수줍음 많던 소녀는 그간 갈고닦고 눈치로 배운 실력을 발휘해 당당히 단국대 연극영화과에 합격해 돌아왔다. 산 하나는 넘었지만 배우로 가는 길은 아직도 멀고 험했다. 오디션에 수백 번 떨어졌다. 자신감을 잃어 포기할까도 고민했다.
“너는 끼가 없어서 안 돼! ”
오디션을 보러 다니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말이다. 끼가 뭔지 몰랐다. 사람들 앞에 나서서 춤 잘 추고, 노래 잘 하고, 어떤 질문에도 센스 있게 답하는 사람을 끼가 있다고 하는지, 왜 그런 끼가 있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끼가 없다는 사실을 점점 수긍하게 됐다. 같은 말만 반복해 듣다 보니 도저히 연예인이 될 수 없겠구나 싶었다. 억지로 목소리 톤도 높이려고 애썼다.
그러던 중 1999년에 영화 ‘가위’ 캐스팅이 확정되기 전 안병기 감독과 미팅할 기회를 얻었다. 하지원을 본 안 감독은 메이크업을 지우고 오라 했고, 그는 세수를 하고 다시 감독 앞에 섰다. 감독은 눈을 위로 옆으로 떠보라 주문했다. 그뿐이었다. 이번에도 떨어지나 싶었는데, 뜻밖에도 오디션에 합격했다는 연락이 왔다. 안 감독은 그의 눈빛에서 끼를 발견했다고 했다. 하지원은 김규리, 최정윤, 유준상 등이 포진한 이 영화에서 신인임에도 눈빛 하나로 스크린을 가득 채웠고, 좋은 평가를 이끌어냈다. 하지원은 이후 여러 감독들을 만나면서 잠재해 있던 끼가 하나씩 밖으로 나오게 된 것 같다고 고백한다.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스스로 가늠할 수 없는 에너지가 바로 배우의 끼였던 것이다.



옷부터 향기까지 그 배역을 입다
사람마다 영감의 대상이 있다. 하지원은 향기를 통해 영감을 얻는다고 한다. 새로운 작품에 들어갈 때면 그 작품의 이미지와 분위기에 어울리는 향을 찾는 버릇이 있다는 것. 작품에 딱 맞는 향을 찾아내면 그 향이 그 사람의 이미지로 만들어주는 것 같은 신기한 힘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그렇게 작품을 하면 캐릭터에 빠져 그 사람으로 산다.
많은 이들은 그를 ‘액션 여전사’라 하지만 액션뿐 아니라 그는 국가대표 탁구 선수(코리아), 예인(황진이), 장례지도사(내 사랑 내 곁에) 등 다양한 모습으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하지만 그런 배역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은 아니다.
하지원은 1999년 ‘학교2’로 사람들에게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이후 어떤 작품, 어떤 배역이 주어질지 모르니 가능한 한 많은 것을 배워두자고 다짐했다. 데뷔 초에는 기본적인 체력 단련뿐 아니라 검도, 합기도, 승마, 재즈댄스, 골프 등을 한번에 배우느라 지쳐 나가떨어진 적도 많다. 하지만 그 덕에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았다. 드라마 ‘다모’를 할 때는 ‘언젠가는 필요하겠지’ 하고 배운 승마와 검도가 큰 도움이 됐다. 재즈댄스를 배웠더니 영화 ‘색즉시공’ 제의가 들어오고, 피아노를 배우니 영화 ‘바보’ 시나리오가 찾아오는 우연이 겹쳤다. 배운 것, 배우고 있는 것과 관련된 배역 제의가 들어오면 짜릿했고, 이로 인해 무언가를 새로 배운다는 것이 신나는 일이 됐다.

도전의 아이콘 하지원, 그녀가 사랑스러운 이유

1 KBS 드라마 ‘황진이’. 2 영화 ‘가위’. 3 영화 ‘7광구’. 4 SBS 드라마 ‘시크릿 가든’. 5 영화 ‘코리아’. 6 드라마 ‘더킹 투하츠’의 대본 일부. 빼곡한 메모에 하지원의 고민이 비친다.



그렇게 그는 ‘도전의 아이콘’이 됐다. 요즘에는 차기작 때문에 요요를 배우고 있는데, 재미있어서 자다가 요요 생각이 나 잠에서 깬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 정도로 열정을 갖고 있으니 뭐든 즐겁게 배우고 또 몸에 익히는 것이 아닐까.
배움으로 속을 채우고 난 뒤에는 배역처럼 살았다. 그 사람에게 잘 맞는 옷, 그가 좋아할 것 같은 향수, 그에게 있을 법한 습관 등을 생각하고 자신에게 하나하나 입혀가는 작업을 하는 것이다. 그중 가장 먼저 손보는 것은 헤어스타일. 짧을 때와 길 때 머리를 넘기는 손짓 하나하나가 달라지는데, 이런 작은 차이가 캐릭터를 차별화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물론 캐릭터에 빠져드는 건 매번 쉬운 일은 아니란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땐 차분히 ‘그분’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래도 잘되지 않으면 현장에서 계속 모니터링하며 고민한다고 한다.
하지만 배역에서 빠져나오기 어려울 때도 있다고 털어놓는다. 김명민과 함께 주연을 맡았던 영화 ‘내 사랑 내 곁에’ 촬영 후 사랑하는 남자를 떠나보낸 여주인공 지수 속에 꽤 오랫동안 갇혀버렸다. 하지원은 며칠간 밖에도 나가지 못하고 사람도 만나지 못한 채 집에서 눈물만 흘리며 지내기도 했다. ‘다크나이트’에서 조커 역을 맡고 자살을 택한 히스 레저처럼 자신도 혹시 악역을 맡으면 빠져나올 수 없을까봐 걱정도 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며 전작의 캐릭터를 털어내는 하정우처럼 하지원은 여행을 특효약으로 꼽았다. 한 작품이 끝나면 가족들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데 아직까지는 혼자서 가본 적은 없다고 한다. 몇 년 전에는 뉴질랜드에서 한 달쯤 머무르며 현지 사람들과 어울리며 지냈다. 그럴 때만큼은 배우 하지원을 떠나 자연인 전해림으로 충분히 즐기려고 노력한다.

도전의 아이콘 하지원, 그녀가 사랑스러운 이유


여배우보다 배우 하지원으로 살고 싶어

도전의 아이콘 하지원, 그녀가 사랑스러운 이유

‘하지원 사랑하기’ 멤버들과의 봉사활동. 팬들의 경조사를 챙기고, 1023이라는 애칭으로 살갑게 부르는 하지원. 1023은 LOVE를 하지원 식으로 재해석한 단어다.



우리나라 여배우들 중 가장 격한 역을 많이 맡은 배우로 손꼽히는 하지원. 그는 한 인터뷰에서 여배우로 사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에 망설임 없이 행복하다고 이야기했다. 작품 속에서 배우 하지원으로 사랑받는 것이 좋기만 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점차 하지원 속 전해림으로서의 삶도 행복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면서 최근에는 여배우로서의 삶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혹시라도 스캔들이 날까 두려워 술을 마셔도 집에서만 마시고, 밖에서 술 약속이 있을 때는 아무리 많이 마시더라도 취하지 않으려 정신을 붙들어 맨다. 비슷한 스캔들이어도 여배우에게는 훨씬 더 안 좋은 이미지가 덧씌워지기 때문이다. 다만 그는 여배우니까 언제나 예뻐 보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은 없다. 여배우 이전에 배우라는 생각이 굳건하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연기에 함께 몰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배우로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몸매 관리보다는 몸 관리를 하며 좋아하는 연기를 오랫동안 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영화 ‘맘마미아’의 메릴 스트립처럼 중년의 나이에도 멜빵바지를 입고 멜로 연기를 할 수 있는 싱그러운 사람이면 좋겠어요. 얼굴에 주름은 깊어질지언정 언제나 밝은 기운이 느껴지고 보는 사람도 기분 좋아지는 그런 사람이요.”
드라마 ‘시크릿 가든’에서 함께한 현빈은 하지원에 대해 “하지원이라는 이름만으로 신뢰가 간다. 그녀의 끊임없는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더욱 기대가 된다. 배우 하지원, 멋있다”라고 평했다. 영화 ‘바보’에서 상대역을 맡았던 차태현은 “하지원은 아마도 전 세계 여배우들 중 가장 모험을 두려워하지 않고 즐기는 배우일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동료 배우들의 믿음이 굳건한 배우다. 함께 일하는 이들도 신뢰하니, 하지원이 나오는 작품은 당연히 믿고 보게 되는 것이 아닐까.
“이순재 선생님께 ‘제가 연기를 더 잘할 수 있을까요? 고민이에요’ 하고 털어놨어요. ‘나도 고민인데?’라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내가 하는 고민은 행복한 고민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행복한 고민을 하는 만큼 더 좋은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여성동아 2012년 12월 5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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