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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인생 사용설명서 열한 번째 | 이게 바로 천생연분

“N극과 S극이 만나 시너지가 좋아요”

커피 내리고 빵 굽는 이림·이승림 형제

글 | 구희언 기자 사진 | 지호영 기자

2012. 09. 19

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을 전공한 형과 제품디자인을 공부한 동생. 두 사람은 각각 카페 ‘이미’의 바리스타와 파티시에가 됐다. 아마추어는 아닐까 하는 걱정은 접어두시라. 두 사람 모두 일본에서 커피와 제과제빵에 대해 배운 실력파니까.

“N극과 S극이 만나 시너지가 좋아요”

파티시에 이승림 씨(동생·왼쪽)와 바리스타 이림 씨(형).



지난해 5월 서울 마포구 동교동에 문을 연 카페 ‘이미’. 맛집 사냥꾼들에겐 밀크팥빙수가 맛있기로 소문이 자자한 곳이다. 조용한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자 아늑한 느낌의 카페가 나타났다. 커피를 내리며 손님과 이야기꽃을 피우는 검은 옷차림의 남자와 투명한 유리창 너머에서 묵묵히 팥을 내리는 하얀 조리복 차림의 남자. 척 봐도 전혀 안 닮은 두 남자는 실은 형제다. “형제 아닌 것 같다”는 말에 둘은 “그런 이야기 많이 들었다”며 웃었다.
맛집으로 소문난 카페지만 두 사람 모두 처음부터 커피와 제과제빵을 전공한 것은 아니다. 형은 대학에서 항공우주공학을, 동생은 제품디자인을 전공했다. 카페는 창업에 관심이 많던 형 이림(32) 씨의 아이디어였다. 그는 대학생 때도 커피가 좋아 바리스타 아르바이트를 했었다고.
“창업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동업자를 구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마침 동생이 일본에서 제과제빵을 공부하고 있어서 저도 여러 가지 경험을 하고 재충전도 할 겸 일본으로 가 바리스타 일을 배웠어요.”
동생 이승림(30) 씨는 어릴 적부터 제과제빵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대학에 진학할 당시에는 제과제빵에 특화된 학과가 거의 없었다. 제품디자인과에 진학했지만 꿈을 버리지 못해 대학 졸업 후 1년여간 국내에서 제과제빵을 공부했다. 그러고는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 과자 전문학교에서 내공을 쌓았다.
디저트 카페가 발달한 일본은 형제가 공부하기에 최적의 장소였다. 주말이면 시간을 맞춰 ‘맛집’으로 손꼽히는 카페를 찾아다녔다. 형 이씨는 “생활비를 아끼려 밥은 집에서 챙겨 먹고 디저트를 먹으러 돌아다녔다”고 했다.
카페 이름 ‘이미’는 일본어로 ‘의미’라는 뜻이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의미’가 됐으면 하는 바람에서 형 이씨가 지었다. 그는 “‘의미’라는 단어 자체는 무겁지만 ‘이미’는 어감도 좋고 일본어로 뜻도 같아서 지었다”고 했다. 동생 이씨는 “이름에 또 다른 뜻이 있다”고 했다.
“‘이미’를 한자로 의미(意味)라고 쓸 수도 있지만 두 이(二)에 맛 미(味)를 쓰면 ‘두 가지 맛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뜻도 있어요. 형이랑 제가 분리된 공간에서 각자의 음식을 만들잖아요.”
아기자기한 카페를 둘러보면 이곳저곳 형제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내부 디자인부터 메뉴판까지 둘이 머리를 맞대고 꾸몄다. 일본 일러스트레이터 신지 가토의 단순하지만 따뜻한 그림 같은 공간.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일본풍이다”라고 한다고. 동생이 카페 내부를 꾸미고 남은 목재를 활용해 메뉴판을 만들었다. 형제가 일일이 나무판을 사포질하고 디자인한 속지를 끼우고 불도장을 제작해서 찍었다.
이곳의 시그니처 메뉴는 크렘 당주. 주력 메뉴는 계절 한정 몽블랑이다. ‘기간 한정 메뉴’가 자연스러운 문화인 일본 디저트 카페를 벤치마킹했다. 제철 재료를 활용한 디저트를 만드는 것이 동생 이씨의 철칙. 밤이 제철일 때는 직접 밤을 까고 쪄서 크림을 만든다. 몇 시간씩 걸리는 중노동이지만 임금님 수라상에 ‘제철 음식’ 올리는 마음으로 만든다고. 딸기가 제철일 때는 딸기크림이 올라간 몽블랑이 맛있다. 그는 “지금도 여름 딸기를 구할 수는 있지만, 기왕이면 제철 재료로 만들 때 맛도 보장할 수 있고 손님에게 자신 있게 권할 수 있어서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N극과 S극이 만나 시너지가 좋아요”

1 형제가 직접 만든 메뉴판. 로고 디자인을 동생이 했다. 2 오렌지 속을 파내 과육과 크림치즈를 섞어 오븐에 구운 케이크 오치퐁(O.Chi.Pong). 3 이승림 씨의 도쿄 과자 전문학교 졸업증.



방문자에게 ‘의미’를 선물하는 카페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극과 극인 형제. 형은 외향적이고 활달한 반면 동생은 내성적이고 낯을 가린다. 정리정돈을 잘하는 동생이 물품을 정리하면, 큰 그림을 그리고 계산하는 데 능한 형이 금전 문제를 담당한다. N극과 S극 같은 두 사람이 함께 일하면 어떤 장단점이 있을까. 동생 이씨는 “일단 뒤통수 맞을 일이 없더라”라며 웃었다.
“저희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자리 잡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이 굉장히 뿌듯해하세요. 가족끼리니까 서로 뭐든 믿고 진행할 수 있어서 편하죠. 사업 구상은 형이 하고 저는 들어와서 일하다 보니 여러모로 형의 의견을 따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승림)
“아마 두 사람의 분야가 겹쳤다면 트러블이 있었겠죠. 각자 분리된 공간에서 일하니까 더 시너지가 좋아요. 제가 음료를 만들 때 동생이 만들어주는 걸로 장식하는 등 메뉴에 응용도 하고요. 서로 예민한 부분이라도 직접 피드백을 할 수 있는 건 장점이에요. 가족끼리는 편하니까 막 대할 수도 있잖아요. 단점은 다른 사람과 동업했으면 공사 구분이 있을 텐데 형제라 그게 확실하지 않아요. 그래서 최대한 서로의 역할을 잘 나누려고 노력하고 있죠.” (이림)
형제는 앞으로 이곳을 한층 더 의미 있는 공간으로 발전시켜나갈 계획이다. 형은 독서 토론이나 특강 등의 행사를 카페에서 여는 방안을 계획 중이고, 동생은 ‘이미’에서만 맛볼 수 있는 겨울 특제 메뉴를 구상 중이다. 다른 듯 닮은 두 사람은 카페에 한층 더 큰 의미를 담을 생각에 즐거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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