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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과 하나 된 산사나이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박영석·신동민·강기석 영결식

글 | 김유림 기자 사진 | 문형일 이기욱 기자

입력 2011.12.15 17:32:00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남벽에 코리안 루트를 개척하러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산악인 박영석 대장과 신동민·강기석 대원의 합동 영결식이 11월3일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 에서 거행됐다.
사상 처음 산악인장으로 치러진 이번 영결식은 대원들의 가족·지인을 비롯해 많은 산악인들이 모인 엄숙한 자리였다.
“산과 하나 된 산사나이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오전 10시 진혼곡을 시작으로 박영석 대장(48)과 신동민(37)·강기석(33) 대원의 약력 보고와 추모 영상이 상영됐다. 애잔한 음악과 함께 3명의 산사나이들이 환하게 웃는 모습이 슬로 화면으로 펼쳐지자 마침내 가족들은 참고 있던 눈물을 쏟으며 오열했다. 생전 녹화된 영상에서 박영석 대장은 “산을 가야 산악인이고,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계속 도전해야 하는 것이 탐험가의 숙명이다. 죽는 날까지 멈추지 않겠다”며 강한 의지를 불태웠다.
이어 이들의 흔적을 찾기 위해 현지 사고대책반을 이끌었던 대한산악연맹 이인정 회장을 비롯해 박 대장의 소속사인 영원무역 대표이자 박영석탐험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성기학 회장, 한국산악회 전병구 회장의 애도사가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각 대원들 가족의 대표인 박 대장의 자형 이계천씨, 신동민 대원의 형 동조씨, 강기석 대원의 동생 민석씨가 차례로 나와 조문객들에게 인사를 전했다.

“산과 하나 된 산사나이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박영석 대장은 지난 12년 동안 가족들과 떨어져 지냈기에 안타까움이 더욱 크다. 지인에 따르면 박 대장은 지난 1999년 아내와 두 아들을 누나가 살고 있는 뉴질랜드로 보내며 많이 힘들어했다고 한다. 등반과 탐험에 더 집중하기 위해 가족들과의 이별을 자처한 그였기에 술을 마시면 주변 산악인들에게 “이제 좀 그만 말려달라”며 괴로움을 토로했다고 한다. 1년에 채 한 달도 가족과 함께하지 못했을 정도로 탐험 스케줄이 꽉 차 있던 박영석 대장. 하지만 그는 언제나 두 아들 성우·성민군(22, 17)에게 ‘세상에서 가장 자랑스런 아버지’로 남아 있다. 박 대장은 지난 7월 마지막 탐험을 떠나기 전 ‘헬스조선’과의 인터뷰에서 두 아들에 대한 애틋한 마음을 전한 바 있다. 인터뷰에서 그는 “아이들과 킬리만자로, K2, 북극점에도 올랐어요. 아이들이 머물렀던 뉴질랜드는 화폐에 생존하는 산악인의 얼굴을 새길 만큼 산악인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갖고 있는 나라입니다. 그곳에서 생활하며 아이들은 제 작은 명함 하나가 ‘자랑스러운 산악인의 아들’이라는 수식어를 달게 해준다는 사실에 무척 기뻤던 모양이에요. 전 아들뿐 아니라 이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 진취적인 개척정신을 보여줄 수 있는 탐험가이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또한 만약 아들이 자신처럼 산악인이 되겠다고 한다면 기꺼이 찬성하겠다는 얘기도 했다. 그는 “무슨 일이든 아이들의 꿈과 희망은 존중받아 마땅하고, 그것이 설령 힘겨운 산악인의 길일지라도 무조건 지지할 겁니다. 저 역시 꿈을 좇는 산악인이니까요”라고 말했다.

“산과 하나 된 산사나이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1 강기석 대원의 누나와 조카. 2 열 살 연상인 신동민 대원의 부인과 아들. 3 10년 넘게 뉴질랜드에서 남편과 떨어져 지낸 박영석 대장 부인.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아버지, 남편, 아들
신동민 대원 역시 한 아내의 남편이자 아버지다. 신 대원과 그의 아내 조순희씨는 산에서 인연을 맺었다. 2001년 신 대원이 히말라야 푸모리 원정을 갔을 때 산악회에서 활동하던 조순희씨가 응원을 왔다. 당시 동료 한 명이 고산증으로 숨졌고, 신 대원과 조씨는 동료를 잃은 슬픔을 나누다 사랑을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두 사람은 열 살이라는 나이 차를 극복하고 부부의 연을 맺었으며 두 사람 사이에는 초등학교 2학년인 아들 호준군이 있다. 신동민 대원은 산에서는 ‘괴물’로 불렸지만 집에서는 더없이 따뜻한 가장이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음식 만드는 걸 좋아했던 신 대원은 가족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며 즐거워했고 2000년 에베레스트 북릉 등반 이후 원정 활동이 여의치 않자 제빵 자격증을 따 3년간 서울 강남의 유명 제과점에서 일했다. 하지만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산사나이의 운명을 타고났기에 결국 신 대원은 그가 그토록 좋아하던 산으로 돌아갔다.
막내 강기석 대원 역시 어머니에게 둘도 없이 소중한 아들이었다. 이날 영결식에 참석한 강 대원의 이모는 “착하고 성실한 아이였는데, 이렇게 안타깝게 떠날 줄 몰랐다”며 애통해했다. 어머니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식음을 전폐하고 앓아누웠다. 강 대원의 동생 민석씨는 “이한구·김동영 대원이 자신들만 살아 돌아왔다는 죄책감에 슬퍼하지 않기를 바란다. 형을 비롯해 다른 대원들도 죽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원히 우리들 가슴속에 살아 있다”며 눈물을 흘렸다. 대한산악연맹은 눈이 적어지는 내년 5월부터 수색을 재개할 예정이다.
박영석 어록

“산과 하나 된 산사나이들, 영원히 기억하겠습니다”
·“세상의 주인은 따로 없다. 도전하는 자가 세상의 주인이다.”
·“1%의 가능성만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산과 대면하는 순간, 에너지가 솟구치고 자신감이 생긴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길을 떠난다”
·“어차피 목숨은 하나뿐이고 죽고 사는 건 팔자라고 생각한다. 떨어져 죽을 팔자라면 히말라야에서가 아니라 자기 방 침대에서 자다가도 떨어져 죽는다.”
·“가장 무서운 건 나 자신이다. 나를 이기는 게 가장 힘들다.”
·“나는 지능지수보다는 역경지수가 조금 높은 것 같다.”
·“(가슴을 텅텅 치며) 이렇게 살아 있잖아요? 산에 가야 산악인 아닙니까? 탐험가에겐 정년이 없습니다.”
·“선배는 무조건 주는 존재다. 대장이 영혼까지 다 줘버리는데 어느 대원이 안 따라오겠는가.”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지요. 나랑 같이 등반하다가 다른 곳으로 멀리 간 사람들도 얼마나 많은데. 그렇지만 산악인은 산으로 가야 산악인이라고 생각해요. 탐험가는 탐험을 해야 탐험가이고요. 도시에 있는 산악인은 산악인이 아니라고 봐요. 야성을 잃은 호랑이. 들판에서 뛰며 사냥을 해야 호랑이가 호랑이지요. 나는 죽는 그날까지 탐험을 할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면서요.” -서울에서 안나푸르나 원정 떠나기 전 촬영한 동영상에서


여성동아 2011년 12월 57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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