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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Story of CEO

90년 역사 위에 쇼핑 혁명 일으킨 타임스퀘어 김담 대표의 무한도전

글 | 김명희 기자 사진 | 조영철 기자

입력 2011.11.16 16:56:00

이제 서울의 ‘영등포’ 하면 어수선한 변두리 대신 젊은이들로 넘쳐나는 역동적인 이미지가 떠오른다. 복합문화공간 타임스퀘어가 바꿔놓은 이미지다. 90년 이어진 공장 터에 쇼핑 공간을 만들어 사람들의 마음을 훔친 김담 대표에게 어떤 노하우가 있었던 걸까.
90년 역사 위에 쇼핑 혁명 일으킨 타임스퀘어 김담 대표의 무한도전


미국 그랜드 캐니언의 유리 다리는 관광객들에게 아찔한 쾌감을 선사한다. 사람들은 1200m 높이 협곡에 세워진 이 다리를 건너며 스릴과 함께 대자연이 주는 경외감을 고스란히 느끼게 된다. 이처럼 훌륭한 공간 연출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당기고 다시 찾고 싶은 생각이 들게 한다. 지난 9월 개점 2주년을 맞은 서울 영등포 타임스퀘어 역시 한번 들르면 두 번 세 번 자꾸 찾게 되는 매력이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쇼핑에서 공간은 중요하지 않았다. 동선이 불편해도, 1층에 화장실이 없어도, 창문을 내지 않아 시간을 가늠할 수 없어도 백화점이나 마트는 원래 그런 곳인 줄 알았다. 타임스퀘어의 성공 비결 중 하나는 그런 쇼핑 공간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꿨다는 것이다. 이곳에서는 통유리로 들어오는 햇살을 받을 수 있으며 돔형으로 지붕까지 트인 아트리움에서는 연중 이벤트가 끊이지 않는다. 이용자 중심으로 짜인 동선과 개방된 옥상 정원 등도 매력적이다.
이런 변화는 이용객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소비자원이 올 초 타임스퀘어, 코엑스몰, 아이파크몰, 센트럴시티 등 복합쇼핑몰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타임스퀘어는 친환경 운영, 서비스 만족도 등 여러 부문에서 고루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전체 평균으로도 1위를 차지했다. 타임스퀘어에는 신세계백화점, 이마트, 메리어트호텔, 교보문고, CGV 등과 함께 다양한 테넌트(입점업체)가 들어와 있는데 이들의 매출 실적도 상당히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타임스퀘어로 쇼핑 혁명을 일으키다
쇼핑 공간의 혁명이라고 할 수 있는 이런 변화를 불러온 이는 김담 대표(46). 그는 김용완 경방 창업주의 맏아들 김각중 경방 명예회장의 차남으로, 경방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차근차근 계단을 밟아 현재 위치까지 올랐다. “한창 바빴을 때는 퇴근 후 집에 가서 잠깐 눈만 붙였다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그대로 다시 출근한 적도 있다”는 워커홀릭이다. 10월 초 만난 그는 다부지고 빈틈없어 보였다. 하지만 강한 첫인상과 3세 경영인이라는 화려한 타이틀에 비해 소탈하고 유머러스했다. 스스로는 “콤플렉스도 많은 편”이라는 진단도 내렸다.

▼ 이곳에 올 때마다 궁금했습니다. 타임스퀘어의 하루 방문객 수는 얼마나 되나요?
“평일에는 20만, 주말에는 30만 명 정도 됩니다.”

▼ 서울 영등포에 대규모 쇼핑 공간을 세운다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무모한 도전’이라는 이야기도 있었죠?
“사업을 구상할 때부터 부동산 컨설팅 업체의 도움을 받긴 했습니다만, 전문가들이 아무리 과학적으로 상권을 분석한다고 해도 그 동네에서 오랫동안 장사한 사람들의 감각을 따라잡을 순 없어요. 저희는 경방 공장부터, 경방필백화점까지 이곳에 기반을 두고 90년 동안 장사를 해왔기 때문에 지역 특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성공한다는 확신 없이는 시작하지 않았겠죠? 분명 어느 정도 성공할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습니다만, 사업 계획이라는 게 보수적이지 않습니까. 예상했던 것보다는 조금 더 성적이 좋습니다(웃음).”

90년 역사 위에 쇼핑 혁명 일으킨 타임스퀘어 김담 대표의 무한도전

김담 대표는 타임스퀘어를 설계하면서 사람들이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하는데 가장 많은 신경을 썼다고.



▼ 타임스퀘어는 다른 쇼핑몰에 비해 오래 머물러도 피로감이 덜한 것 같습니다. 공간에 어떤 비밀이라도 숨겨져 있는 건가요?
“하하하. 첫째는 동선입니다. 건물을 지으면서 노이로제에 가까울 정도로 동선에 집착했죠. 보통 쇼핑몰들은 매출이 많이 나는 매장을 눈에 잘 띄는 곳에 두지만 저희는 그런 시설들을 구석에 배치하고, 사람들이 이 매장에서 저 매장으로 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동선을 짰어요. 또 한 가지는 조명 덕분이 아닐까 합니다. 대개 백화점을 창문 없는 건물이라고 하죠. 외부에서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고 상품 위주로 조명을 설치해서 피로감이 쌓이는데 저희는 자연 채광을 많이 했어요. 이용객들이 필요한 물건만 사서 빨리 나가는 공간이 아니라 오래 편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했죠.”

▼ 이윤보다 이용객의 편의를 먼저 생각했다는 말씀인가요?
“‘제가 대단한 철학이 있어서’라고 말씀드리면 멋있을 텐데, 그건 아니고…(웃음), 고객들이 오래 머물다 보면 아무래도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게 되고 그러면 쇼핑몰 전체가 살아나지 않겠습니까? 사실 우리나라는 소득 수준에 비해 쇼핑 공간에 대한 트렌드는 늦은 편이에요. 입점업체나 이용객들에게 이미 그런 공간에 대한 갈증이 쌓여 있었는데 저희가 그런 걸 해소해드리지 않았나 싶어요.”

▼ 최근 서울에 복합문화공간이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특히 얼마 전 신도림에 문을 연 디큐브시티는 타임스퀘어와 상권이 겹치는데 걱정되지 않나요?
“이 지역을 개발하면서 영등포가 발전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이 또 계시다니 다행스러운 일이죠. 그곳이 잘되면 이곳의 가치도 더 높아질 거고요. ‘내 것을 저 사람이 뺏어간다’고 생각하기보다 경쟁을 통해 서로 발전할 거라 믿고 있습니다.”



콤플렉스 덩어리에서 기울어가던 회사 일으켜 세우기까지

90년 역사 위에 쇼핑 혁명 일으킨 타임스퀘어 김담 대표의 무한도전

타임스퀘어 정문 앞에 전시된 서도호 작가의 설치 미술 작품 ‘카르마(업)’. 경방의 운명을 짊어진 김담 대표의 상황과 묘하게 일치한다.



타임스퀘어의 모체는 1919년 세워진 경성방직. 경성방직은 1956년 주식시장 개장 당시 상장된 12개의 기업 중 유일하게 남아 있는 회사다. 그런 만큼 1백 년 가까운 세월 동안 부침도 많이 겪었다. 98년 외환위기 때는 차임급 등으로 기업 전체가 휘청거리기도 했다. 김담 대표는 91년 경방에 입사해 94년 일본 지사로 옮겼다가 외환위기 때 아버지의 부름을 받고 한국에 돌아와 위기를 수습하면서 회사에서의 입지를 다졌다. 2005년에는 우리홈쇼핑으로 홈쇼핑 사업에 진출, 성공을 거둔 뒤 홈쇼핑 지분을 매각해 타임스퀘어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의 이름 담(潭)에는 ‘물결 따라 흐르는 모양’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사람들이 그가 설계한 동선을 따라 물 흐르듯 움직이는 걸 보면 타임스퀘어는 그에게 숙명인 것 같다. 경성방직 공장이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쇼핑몰을 세우면서 시간(time)과 공간(square)을 의미하는 타임스퀘어(timesquare)라는 이름을 지은 건 기업의 역사를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그리고 지금, 타임스퀘어의 성공에 힘입어 경방은 제2의 창업을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어린 시절은 어땠나요?
“어린이날 놀러 가자고 부모님께 졸랐다가 꾸중 듣고 하루 종일 방 안에만 틀어박혀 있었던 기억이 납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저희 부모님은 엄격하셔서 전 항상 ‘왜 난 이것밖에 안 될까’란 콤플렉스에 시달렸죠. 그런 것들이 제 청소년기를 우울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 의외네요.
“그렇죠? 하지만 그런 교육에도 장점은 있습니다. 늘 치열하게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거든요.”

▼ 처음 입사했을 때는 어땠나요?
“요즘 드라마에는 2, 3세 경영인들이 실장님, 본부장님으로 많이 나오던데…. 드라마와는 많이 달랐어요(웃음). 일단 평사원이었고, 일을 배우고 싶었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신입사원이 들어오면 선배들이 약도 올리고 머리도 한번 쥐어박고, 술도 먹이고 그러면서 친해지는데 저한테는 말을 거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저와 가깝게 지냈다가 괜히 ‘회장 아들에게 잘 보여 출세하려고 한다’는 오해를 받기 싫었던 거죠.”

▼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아무도 일을 가르쳐주지 않으니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그나마 한 가지, 가장 먼저 출근해 가장 늦게 퇴근하는 건 하겠더라고요. 하루는 일찍 나와서 자리에 앉아 있는데 전날 숙직을 한 선배가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으려다 동전이 없었던가 봐요. 난감해하고 있기에 제가 대신 동전을 넣어주면서 이야기를 하게 됐어요. 얼마나 반갑던지…. 다음날부터는 주머니에 동전을 잔뜩 넣고 다니며 아침에 오는 선배마다 커피 서비스를 해드렸죠. 그러면서 사람들과 친해지고 일도 익히게 됐어요.”

▼ 그동안 경방에서 홈쇼핑 진출과 매각 등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경방필백화점은 단일 백화점인 데다 바잉 파워(buying power)가 약한 게 문제였어요. 바잉 파워를 가지려면 점포를 늘리는 것보다 명동이나 강남 같은 중심지에 매장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어려울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홈쇼핑 사업권 경쟁에 뛰어들었죠. 그땐 ‘사업계획서 만드는 데 투자한 돈이 아까워서라도 사업권을 꼭 따내야겠다’고 생각할 만큼 힘들고 절박했어요. 우여곡절 끝에 사업권을 따냈고, 홈쇼핑도 기대 이상 잘됐지만 적대적 M·A 시도가 들어오는 등 복잡한 문제가 많았어요. 그래서 매각을 하게 됐고, 그 자금으로 타임스퀘어를 개발했으니 결과가 나쁘지는 않았던 셈이죠.”

▼ 타임스퀘어라는 이름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 있나요?
“제가 직접 지은 건데 우선은 상업적으로 쓰임새가 괜찮은 이름이란 생각이 들더군요. 또 선대 어르신들이 일본 치하에서 민족 자본으로 이 땅에서 사업을 처음 시작하는 게 쉽지 않으셨듯이 저 역시 이 사업을 시작하는 게 쉽지 않은 결정이었습니다. 물론 선대가 겪었던 어려움에 견주지는 못하겠지만 저도 여기에 인생을 걸었죠. 타임스퀘어에는 90년 시차를 두고 같은 정신을 이어가는 공간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 경방에 대한 애착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 느끼는 건데, 그동안 에너지의 근본이 아니었나 싶어요. 부모님께 야단만 맞고 자랐지만 아주 어려서부터 저는 ‘경방집 아들’이었고, 그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던 것 같아요. 사람이 참 이중적이죠? 저도 이해 못할 일이에요(웃음). 어쨌든 사업을 하다 보면 편한 길로 가고 싶은 유혹이 생기는데 ‘경방집 아들’이라는 자부심은 그런 걸 막아주는 가치관의 근간이 되고 있어요.”

멈추는 게 두려운 폭주 기관차

90년 역사 위에 쇼핑 혁명 일으킨 타임스퀘어 김담 대표의 무한도전


그는 앞만 보고 달리는 성격이다. 스트레스를 받아도 그게 스트레스인 줄 모르고 ‘조금 더 집중해야 할 일이 생겼다’ 정도로 여긴다. 참 편리한 체질이다 싶은데 후유증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 일이 끝나면 몇 날 며칠이고 동면하듯이 잠을 잔다는 것. 몇 년 전에는 한창 몰두했던 프로젝트를 마치고 일본 여행을 갔다가 전통 여관 료칸에서 그렇게 잠든 적이 있었다. 얼마나 잤는지, 료칸 주인이 혹시 잘못된 건 아닌지 확인을 하러 오기도 했다고. 최근 몇년 간은 그렇게 동면에 든 적이 없었다니 그만큼 스트레스도 적었다는 의미. 하지만 계획했던 일들이 순조롭게 잘 풀리고 있음에도 김담 대표는 솔직히 초조하다고 한다. 기관차 같은 그에게 안주라는 단어는 역시 어울리지 않는가 보다.

▼ 타임스퀘어에는 서도호·윤동구·이불·이수경·지니서 등 설치미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돼 있습니다. 평소 미술에 관심이 많고 전체 미술 기획을 맡은 김선정 한예종 교수와도 친분이 있으시죠?
“미술에 조예가 있는 건 아니고, 이 일을 하면서 몰아치기로 공부를 했죠. 필요에 의해서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상당히 재미있더군요. 김선정 교수와는 초등학교 동창인데 학교 다닐 땐 잘 모르다가 이번에 일을 함께 하면서 친하게 지내게 됐죠. 에너지가 많고 일을 대하는 자세가 겸손하시고…, 덕분에 함께 작업하는 게 즐거웠죠.”

▼ 설치 작품에 대해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생각하다 보면 끝이 없죠. 옥상 정원에 곤잘레스 토레스의 시계 두 개가 나란히 있는 ‘퍼펙트 러브’라는 작품을 설치하려고 했어요. 38세에 에이즈로 요절한 토레스는 생전 저작권에 연연하지 않고 자신의 작품 카피를 허용했던 사람입니다. 그의 작품 카피를 설치하려고 했는데 사후에는 저작권이 발생하기 때문에 카피가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물론 오리지널을 사서 전시하는 방법도 있습니다만, 그건 토레스의 정신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서 포기했어요.”

▼ 멘토가 있으시다면?
“특정한 분을 멘토로 삼기보다는 순수함을 잃지 않고 늘 성장하는 분들을 좋아합니다. 좀 전에 말씀드린 김선정 교수님도 대가들이 그렇듯 성장판이 열려 있는 분이에요. 그런 분들을 뵈면 닮고 싶더라고요.”

▼ 경영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를 많이 받을 텐데, 어떻게 해소하나요?
“잠을 자거나 등산을 해요. 집이 평창동에 있어서 밤 9시 전에 퇴근하면 북한산에 한번 올라갔다 오죠. 처음에는 랜턴을 들고 다녔는데 하도 자주 가다 보니 지금은 눈 감고도 가요.”

▼ 이젠 타임스퀘어가 성공 궤도에 올랐으니 스트레스 받을 일도 없겠습니다.
“그걸 것 같지만 사실은 조금 불편해요. 그동안 끊임없이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있었고, 거기에 매달려 살았는데 타임스퀘어가 이렇게 (잘) 되고 보니 오히려 초조해서 못 견디겠어요. 작가나 배우들에게 ‘작품을 끝내면 어떤 기분이 드느냐’고 물었더니 그들도 허전하고, 불안하고, 초조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나도 정상이구나’라고 생각했죠.”

▼ 그동안 너무 바쁘게 사셨군요. 개인적인 시간을 많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나요.
“예전에 아버지께서 제게 ‘그렇게 (일만 하고) 살다간 언젠가 후회한다’고 하셨는데, 아버지 말씀처럼 조금 아쉬운 점이 있어요. 돌아보면 저는 성취욕이나 야망이 있었던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뒤에서 기차가 쫓아오니까 치여 죽지 않으려고 죽어라 하고 열심히 뛴 것뿐이죠. 그런데 갑자기 기차가 서니까 기분이 굉장히 이상하더라고요. ‘별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까지 했을까’ ‘쓸데없이 일을 너무 많이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저 스스로는 그러면서 성장을 했으니 괜찮지만 아내나 부모님처럼 주변에서 희생한 분들께는 미안하죠.”

▼ 부동산 개발자의 관점에서 제2의 타임스퀘어를 오픈한다면 어디에 하고 싶은지, 어떻게 만들고 싶은지 궁금합니다.
“저는 다운타운 개발에 관심이 많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잘 만들어놨으니 한 바퀴 돌면 얼마나 뿌듯하오?’라고 하시는데 사실 아쉬운 부분도 많이 있어요. 하나 더 만들면 정말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하하하. 사람마다 얼굴 다르고 성격 다르듯 부동산도 입지에 따라 거기에 맞는 건물을 짓는 것이 중요합니다. 제2의 타임스퀘어라고 해서 이곳 복제판이 돼서는 안 되겠죠.”

▼ 경영자로서의 포부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회사원은 그 회사에 기여해야 하고 기업은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고, 사회에 도움이 될 수 있을지 고민해야죠. 그리고 또 한 가지, 경방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의미 있는 기업이 아닌가란 생각을 합니다. 경방의 가치를 잘 지켜 나가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여성동아 2011년 11월 5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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