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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영원한 디바

프리마돈나 조수미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들

“음악의 바다를 항해하는 자유로운 집시, 고독도 절제도 두렵지 않다”

글·김명희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유니버설뮤직코리아 제공

입력 2011.10.18 10:18:00

1986년 작은 체구의 동양 소녀가 자신의 몸집보다 큰 트렁크를 들고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역에 발을 내디뎠다.
어떤 일이 펼쳐질지 짐작할 수 없었던 소녀는 ‘울지 말 것’ ‘외로워 말 것’이라고 되뇌며 음악 여행을 시작했다.
그리고 꼭 25년이 흘러, 중년이 된 소녀는 그동안의 여행이 너무나도 환상적이었노라고 고백한다.
프리마돈나 조수미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들


“안녕하세요?” 나이를 잊게 하는 흰색 튜브톱 드레스 차림의 조수미(49)가 먼저 다가와 씩씩하게 인사를 건넨다. 기분 좋게 울리는 맑은 목소리는 세계적인 소프라노와 마주하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인터뷰 내내 조수미는 상대의 눈을 응시했다. 각각의 질문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신선한 질문이다, 이해가 잘 안 되니 다시 한 번 설명해달라는 등의 코멘트를 달기도 했다. 목소리처럼 인터뷰 자세도 기품과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최근 자신의 음악 여정을 정리하며 ‘리베라’라는 새 음반을 냈다. 리베라(Libera)는 이탈리아어로 ‘자유’라는 뜻. 조수미는 자신을 음악이라는 바다를 항해하는 보헤미안에 비유했다. 음반에는 ‘달의 아들’ ‘나는 대리석 궁전에 사는 꿈을 꾸었네’ ‘어머니가 알려주신 노래’ ‘통일의 노래’ 등 13곡이 수록돼 있다.

#스타로 만들어준 아리아 OOOO, 지금도 그것 때문에 잠 못 이뤄

프리마돈나 조수미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들

실제 조수미는 오페라에 등장하는 여신이나 여왕처럼 당당하고 포스가 넘친다. 최근 발매된 음반 ‘리베라’에 수록된 사진.



올해는 그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극장에서 데뷔한 지 25년 되는 해다. 당시 베르디 오페라 ‘리골레토’의 여주인공 질다 역에 동양 여성이 캐스팅되자 음악계가 떠들썩했다. 새로운 프리마돈나의 탄생을 응원하는 사람보다 얼마나 잘하는지 두고 보자고 벼르는 사람이 더 많았다. 이날 조수미는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환상적인 가창력을 선보였고, 이후 이탈리아 라 스칼라, 영국 코벤트 가든,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 등 세계 정상급 오페라하우스 공연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 데뷔 25주년을 맞는 소감이 궁금합니다.
“믿어지지가 않아요. 세월이 너무 빠르죠? 저는 많이 변한 것 같지 않아요. 다만, 한국에서 온 작은 소녀에 불과하던 제가 음악하는 후배들에게 영감과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자랑스럽긴 해요(웃음). 지금 반쯤 온 것 같아요. 앞으로 다가올 25년도, 지금까지와 똑같은 열정과 호기심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 86년 데뷔 무대가 음악 인생에서 중요한 계기가 된 것 같습니다. 당시 무대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설명해주세요.
“동양 여성이 주인공을 맡았다고 해서 공연 전부터 이슈가 됐죠. 그런데 정작 저 자신은 마치 전생에 해봤던 일인 것처럼 전혀 떨리거나 낯설지 않았어요. 마치 늘 경험하는 익숙한 일 같았죠. 정작 놀라웠던 건 공연이 끝난 다음 카라얀 선생으로부터 직접 만나고 싶다는 메시지를 받은 거였어요. 대단한 행운이었죠. 물론 화려한 기교와 소녀 같은 감성이 바탕이 되긴 했지만 카라얀 선생님 덕분에 제 음악 인생이 이렇게 이어질 수 있었거든요. 그날 ‘밤의 여왕’ 아리아로 카라얀 선생님의 눈에 들었는데 이후로도 그 노래를 불러야 할 땐 잠을 설치곤 했어요. 기교와 감정 컨트롤, 배역이 갖는 긴장감과 무게 등 모든 면에서 실수나 여유가 용납되지 않는 곡이거든요.”
▼ 나이가 들면서 음색도 바뀌고 기량도 바뀔 텐데, 두려운 마음은 없나요.
“아직은. 지금이 최고 절정기예요. 고음은 화려하고 중저음은 풍성해졌어요. 요즘도 가끔 ‘밤의 여왕’을 연습하는데 아직도 잘 해요(웃음). 빠른 시일 내에 한국 팬들께도 라이브로 들려드리고 싶은데….”
▼ 25년간의 음악 여정을 평가한다면.
“데뷔 초 세계적인 소프라노로 자리매김하려면 다른 성악가들이 쉽게 하지 못하는 레퍼토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밤의 여왕’을 서로 다른 음반사와 세 번 녹음했죠.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로 화려하고 환상적인 소리를 내다가 어느 순간 피곤해지기 시작했어요. 그다음부터는 알려지지 않은 곡을 찾아 녹음하는 일에 흥미가 생겼죠. 그러다가 어느 날, 뉴욕 브로드웨이에서 뮤지컬을 보며 ‘엘리트들을 위한 음악도 좋지만 좀 더 많은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됐어요. 2000년 ‘온리 러브’를 시작으로, 최근 영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나인스 게이트’, 케이트 윈슬렛이 나오는 미국 드라마 ‘밀드레드 피어스’ 주제가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도 대중과 조금 더 친해지고 싶어서죠. 앞으로도 오페라 가수의 길을 걸어가면서 대중과 클래식 음악을 연결하는 다리 노릇을 계속 하고싶어요.”
>>> 답 - 밤의 여왕



#자긍근종으로 불임, 대신 신은 그에게 OOO라는 아이를 선물했다
카라얀은 그를 두고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했고, 주빈 메타는 ‘백 년에 한두 명 나올까 말까한 목소리’라고 했다. 모두 데뷔 초 이야기다. 그런데 조수미는 지금이 자신의 최고 절정기라고 말한다. 그가 25년간 굴곡 없이 최고의 디바 자리를 지키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목소리로 음악을 표현한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다. 내 목소리를 잘 알고 현명하게 보호해 왔다”고 말한다. 이는 극한의 절제를 의미한다. 조수미는 종종 “목소리는 갓난아이처럼 변덕이 심해서 24시간 눈을 떼지 말고 돌봐줘야 한다”고 말하곤 한다. 먹고 마시고 놀고, 심지어 우는 일까지, 보통 사람들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조수미에게는 늘 도전이고 시험이었다. 그는 4년 전 자궁근종 수술 후 임신을 할 수 없게 됐다. 신은 어쩌면 그에게 인간이 아닌 목소리라는 아이를 선물 했는지도 모른다.
그의 집은 이탈리아 로마 시내에서 승용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밤이면 로마 야경이 보이고 노래를 맘껏 불러도 주위에서 시비 걸 사람이 없을 만큼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다. 조수미는 “음악 이외의 모든 것을 다 끊고 그저 잘 먹고 잘 자며 수녀처럼 금기 생활을 해왔다”고 말한다. 덕분에 그의 목소리는 시간이 흘러 녹이 스는 대신 경험과 연륜이 얹어져 감동이 더해졌다.

프리마돈나 조수미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들


▼ 이번 음반 콘셉트가 집시입니다. 평소 집시처럼 자유로운 삶을 동경했나요.
“25년 전 국제무대라는 큰 바다에 떨어졌을 때 그런 기회가 제게 왔다는 것 자체가 마냥 신기했어요. 여정이 얼마나 길지, 내 일생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도 못했지만 일단 시작하고 나서는 너무나 환상적인 여행을 했어요. 만나는 민족마다, 언어마다, 해당 국가의 음악마다 배울 게 많았죠. 음악적으로도 제가 하고 싶은 것, 표현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았고요. 이번 앨범에서는 그 모든 경험과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운 음악 세계를 표현하고 싶었어요. 재킷에 로맨틱한 여성의 모습을 담았는데, 이는 무대에서 표현하고자 했던 많은 오페라 주인공들의 모습이기도 하죠. 저와는 180도 다른 모습이지만(웃음).”
▼ 그렇다면 인간 조수미는 무대 위 모습과 전혀 다르다는 이야기인가요. 실제로는 어떤 모습인가요.
“저처럼 철저하게 무대 안팎의 모습이 다른 사람도 흔치 않을 거예요(웃음). 무대는 보통 사람이 상상할 수 없는 연습과 훈련으로 빚어진 완벽한 프로덕트예요. 제게도 항상 무섭고 떨리는 공간이죠. 그곳에서 저는 음악적으로나 시각적으로 강하고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보여야 하고요. 무대 위에서는 그런 걸 철저하게 잘 지키는 편이지만, 일을 떠나서는 평범한 보통 여자예요. 아니, 파렴치할 정도로 나이보다 순수하게 살려고 노력하죠. 잘 울고 감동받고 속상해하고 사람을 그리워하고…. 평소에는 화장도 짙게 안 하고, 시장 갈 때 앙드레 김 선생님 드레스 입고 나가는 일은 더더욱 없어요(웃음). 그냥 반바지에 모자 푹 눌러쓰고 나가죠. 길에서 저를 보시면 아마 수수한 모습에 당황해서 ‘어머, 이런 모습 처음이에요’라고 하실걸요.”
▼ 얼마 전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한국인이 남녀 1위를 휩쓸었죠. 최근 국제무대에서 한국인들의 약진이 두드러진데,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나라 사람들에 비해 음악가로서 혹독한 훈련을 잘 견딘다고 생각하나요.
“굉장히 신선한 질문이에요(웃음). 제가 보기에 한국인은 예술적인 민족 같아요. ‘오페라의 나라’라는 이탈리아 사람들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노래를 더 좋아하고 잘해요. 또 한편으로는 이탈리아에 가든, 독일에 가든 한국 학생들은 어떤 일을 시작하면 목숨 걸고 하는 경향이 있어요. 자신이 원하는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의지나 열정만큼은 세계 최고죠. 예술뿐 아니라 거의 모든 분야에서 힘든 과정을 참고 견디면서 실력과 애환이 쌓이고, 그러면서 눈물이 나면 서로 껴안아주고 위로하며 정을 쌓고…, 이런 게 우리 민족의 정서가 아닐까 싶어요. 저라고 뭐 음악 하는 동안 쉬고 싶고 술 마시며 놀고 싶은 적이 없었겠어요? 하지만 그러면 안 되는 직업을 가진 사람인지라 참고 절제하며 오로지 연습에 매달려 사는 거죠.”
▼ 음악가들은 악기를 소중하게 다룬다고 합니다. 사람의 목소리는 악기보다 더 민감할 텐데, 목소리 컨디션을 최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하는 일이 있다면.
“감기에 안 걸리게 조심해야 하기 때문에 세계 어디를 가든 호텔 안에 머무는 시간이 많죠. 날씨가 춥거나 더우면 관광 같은 건 꿈도 못 꾸고. 다른 사람한테는 아무것도 아닌 일, 예를 들어 울고 싶어도 맘껏 울지 못한다든가, 그런 일이 제게는 심각할 때가 있어요. 모르는 분이 보시면 몸을 참 많이 사리는구나 싶으실 거예요. 하지만 어릴 때부터 하도 연습에 찌들어 살아서 저는 별로 불편하다거나 힘들지 않아요. 보통 사람들이 매일 시장 가고 밥 하고 하는 것처럼 저도 매일 연습할 뿐이죠. 대신 휴가 때 스트레스 풀고 여행도 다니고 봉사도 하면서 여유를 가져요. 음악이라는 울타리가 너무 높고 단단해서 때로 갇혀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하기 때문에 요만한 작은 구멍이라도 내서 (평범한 일상으로) 자주 왔다 갔다 해야 해요.”
▼ 그동안 낭만적인 아리아를 선호했는데 현대 음악이나 실험적인 레퍼토리를 개발할 계획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음악 찾아내고 공부하고 연주하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죠. 지금까지 열심히 그 작업을 해왔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내일 아침 일어났을 때 이런 거 한번 꼭 해보고 싶다는 악보를 받게 될지도 모르지만 아직까지 현대 음악은 크게 와 닿지 않아요. 그보다 한국의 전통 음악을 편곡해 외국에 알리거나, 바흐 같은 작곡가를 제가 갖고 있는 느낌과 감성으로 재해석해보고 싶어요. 개인적으로는 바흐가 어려운 작곡가이긴 한데 새로운 색깔을 입혀 대중에게 소개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 답 - 목소리

#어머니의 꿈은 성악가, 아버지의 꿈은 OOO, 둘 다 이룬 효녀

프리마돈나 조수미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들


무대 위에선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영혼의 목소리로 감동을 주지만 조수미는 사실 스스로를 선이 굵고 추진력이 있는 남성적인 스타일이라고 말한다. 사람들이 왜 결혼을 안 하느냐고 묻는데 이에 대한 대답도 명확하다. 결혼이나 사랑도 중요하지만, 자신에게는 꿈을 이뤄가는 과정이 더 행복하고 즐겁다는 것이다. 그 길을 가다 보면 사랑도 만나고 함께 인생을 꿈꿀 남자도 만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 길을 가는 동안 때로는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줘야 하고, 때로는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도 배웠다. 대한적십자사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자선 공연을 열고, 저소득층 어린아이들을 위해 공연료를 기부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에 부지런을 떠는 것도 그 때문이다.

▼ 음악 활동만큼이나 봉사 활동도 열심히 하는데.
“음악하는 사람들은 연습에만 빠져 살다 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는데 그게 음악을 오히려 폭 좁게 만드는 경향이 있죠. 저는 세계 곳곳을 다니면서 서러운 사람들, 안타까운 환경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그들을 보면서 내 음악이 왜 더 힘이 있어야 하는지, 중요하게 받아들여져야 하는지를 알게 됐죠. 어떻게 보면 음악과 음악 외적인 부분들, 이쪽저쪽을 보면서 더 넓은 길을 가게 됐다고 볼 수 있죠.”
▼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계기나 영감을 준 사람이 있다면.
“제 어머니의 꿈은 성악가였어요. 성악은 원래 제가 원했던 일은 아니었지만 어머니의 꿈을 이뤄드리기 위해 시작했죠. 그런데 얼마 전 돌아가신 아버지의 일기를 보다가 아버지의 꿈이 외교관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곰곰이 생각해보니, 지금 제가 문화 외교관으로서 아버지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아버지 임종을 지켜드리지 못해 늘 죄송했는데, 생전 아버지가 하고 싶었던 일을 제가 대신 한다고 생각하니까 기분이 막 좋아지더라고요. 그런 면에서 제가 참 효녀예요(웃음).”
▼ 지난 8월 중순 세계적인 지휘자 바렌보임(69)이 예술의전당에서 오케스트라 지휘를 하다가 무대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중간에 퇴장했는데, 2006년 아버지 부고를 듣고도 공연을 계속했던 조수미씨로서는 많은 생각이 들었을 것 같습니다.
“두 가지 관점에서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첫째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그분은 거장이시고 연세가 많으세요. 지나치게 덥거나 춥거나 하는 환경에서는 불편하실 수 있었을 거고, 이해해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둘째 예술가적 관점에서 말씀드리자면, 제 노래를 들으러 오시는 분들은 제게는 신적인 존재예요. 개인적인 사정이나 감정이 무대에 반영돼서도 안 되고 변명의 여지도 없다고 생각해요. 마에스트로 바렌보임을 비판할 생각도 없고, 그럴 만한 위치에 있지도 않지만 그날 퇴장 장면은 제게 굉장히 인상적으로 남아 있어요.”
▼ 특별히 한국 공연에 공을 들이는 걸로 알려져 있는데 고국 팬들 앞에 서면 더 긴장된다든가 하는 이유가 있나요.
“긴장된다든가 어렵다기보다 정성을 많이 들이죠. 외국에서는 다 갖춰진 무대에 올라가 노래만 하면 되는데 한국에서는 공연 순서는 물론이고 음향, 조명까지 꼼꼼히 체크하게 돼요. 야외 공연은 객석 의자에 먼지가 앉지는 않았는지 직접 닦아본다니까요(웃음). 외국 공연은 예쁘게 단장하고 손님으로 가는 기분이고 한국 공연은 우리 집에서 여는 잔치에 앞치마 두르고 나가 손님을 맞는 기분이랄까. 오시는 분들에게 좀 더 기억에 남는 멋진 공연을 선사하고 싶은 마음이 커요.”
>>> 답 - 외교관

조수미의 특별한 인연들

프리마돈나 조수미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들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1986년 조수미가 이탈리아 트리에스테 극장에서 데뷔할 때 객석에는 세계적인 지휘자 카라얀의 비서도 앉아 있었다. 공연이 끝난 후 카라얀에게서 당장 만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카라얀 앞에 선 그는 고난도의 테크닉이 필요한 오페라 ‘마술피리’에 나오는 아리아 ‘밤의 여왕’을 불렀고, 콜로라투라를 완벽하게 소화하는 조수미를 보고 카라얀은 신이 내린 목소리라는 찬사를 보냈다. 이후 조수미는 88년 세계적인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와 함께 카라얀의 오페라 가면무도회 주연으로 발탁됐다. 하지만 공연을 앞두고 카라얀이 심장마비로 급사하는 바람에 게오르그 솔티 경이 카라얀을 대신해 지휘봉을 잡았다. 어쨌든 이 공연을 계기로 조수미는 세계적인 지휘자들로부터 러브콜을 받게 된다.
프리마돈나 조수미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들
앙드레 김
조수미는 공연 때마다 외국 명품 브랜드 대신 앙드레 김의 드레스를 고집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8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조수미는 유럽 무대에서는 꽤 실력을 인정받았지만 국내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던 터라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해 동대문에서 원단을 끊어다 드레스를 맞춰 입곤 했다. 클래식 마니아인 앙드레 김은 조수미 공연을 찾았다가 이런 사실을 알고 공연 때마다 자신이 드레스를 만들어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앙드레 김은 지난해 세상을 뜨기 전까지 한 번도 그 약속을 어긴 적이 없으며 조수미는 늘 자신의 무대 중앙 앞자리를 앙드레 김 지정석으로 하고, 커튼콜 때는 꼭 앙드레 김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것으로 보답했다. 스포트라이트를 즐기는 앙드레 김은 이 순간을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고 한다. 두 사람은 예술적인 부분뿐 아니라 세계에 우리나라를 알리고, 기부와 나눔 활동에 열심히 참여한다는 점에서도 닮았다. 조수미는 지난 8월 임진각에서 열린 평화콘서트 때도 앙드레 김 의상실에서 디자인한 드레스를 입었다.
프리마돈나 조수미에 대해 꼭 알아야 할 것들
김성록
요즘 KBS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에서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꿀포츠’라는 별명을 얻은 김성록은 조수미와 서울대 음대 동기. 두 사람 모두 학창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냈으나, 공교롭게 학교를 끝까지 다니지 못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서울대 음대에 성악과가 생긴 이래 사상 최고의 실기 점수로 입학한 조수미는 2학년을 마치고 이탈리아 산타체칠리아 음악원으로 유학을 떠났고, 김성록도 학교를 중퇴했다. 김성록에 대해 묻자 조수미는 “동기들보다 나이가 좀 많았고, 노래를 굉장히 잘했던 분으로 기억한다”고 말했다. 또 “그분이 어떤 사연으로 TV 프로그램에 나오느냐,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하다”고도 덧붙였다.


여성동아 2011년 10월 57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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