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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leb CEO와 인생

‘바른생활 소녀’에서 ‘아시아 기부영웅’으로 송경애 BT&I 대표

“청첩장 던지고 한국행, 26세에 창업한 여행사 업계 4위로 키워”

글·구희언 기자 사진·지호영 기자

입력 2011.08.17 11:13:00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가 ‘아시아 기부영웅 48인’의 명단을 공개했다.
한국인으로는 가수 김장훈과 홍명보 축구감독, 김주진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 회장, 그리고 BT&I(Business Travel & Incentive Tour)의 송경애 대표가 선정됐다.
‘바른생활 소녀’에서 ‘아시아 기부영웅’으로 송경애 BT&I 대표


“일본 출장을 간 사이 제 휴대전화에 ‘기부영웅이 된 걸 축하한다’는 문자메시지가 여러 건 와 있었어요. 처음엔 무슨 소린가 했죠. 다른 분이야 이름만 들으면 알 만한 기부영웅이지만 저는 액수도 적은데 당황했어요. ‘내 이름이 왜 여기에 있나’ 싶었죠.”
‘포브스’가 뽑은 ‘아시아 기부영웅’의 선정 기준은 기부의 진정성이다. 회사 돈으로 기부한 이들은 명단에서 제외하고 순수하게 개인 자격으로 돈을 기부한 이들 중에서 뽑았다. 송경애 BT·I 대표(50)는 한국의 기부영웅 4명 중 유일한 여성이다. 그는 여성 CEO로는 처음 1억원 이상 고액 기부자 모임인 ‘아너소사이어티’ 회원이 됐으며, 현재 사회통합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부를 조용하게 하기보다 많은 사람에게 알리자는 거죠. 보통 기부는 아주 돈을 많이 벌어서 하거나, 안 먹고 안 입고 아껴서 모아 하거나 두 가지 유형인데, 그렇지 않다는 걸 알리고 싶었어요. 사회지도층의 나눔과 봉사를 확산하려 노력하고 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외교관이던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건너가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부모가 기부하는 것을 보며 자연스럽게 따라 했다. 송 대표에게 기부란 특별한 일이 아닌 생활의 일부였다.
“이화여대 다닐 때 껌 파는 아이를 보고 오늘 여기 있는 걸 다 사주겠다고 한 게 첫 기부였어요. 길에서 몸이 불편한 분들에게 ‘추운 겨울만이라도 이것을 안 하시면 안 되겠냐’고 황당한 말을 해서 봉변을 당한 적도 있죠. 한번은 도움을 주려 어떤 분의 집에 찾아갔는데 여러 사람이 몰려와서 ‘우리도 어려우니 좀 도와줘라’는 식으로 위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당황하기도 했고요.”

생일 선물 대신 그 날짜만큼 돈 기부
송 대표는 색다른 방식으로 기부를 한다. 2007년 3월29일에는 회사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2천7만3백29원을 기부했고, 2008년 2월28일에는 강남에 있던 본사를 중구 무교동으로 옮기며 2천8만2백28원을 기부했다. 정작 본인은 영웅이 되기엔 부족하다며 손사랫짓을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영락없는 ‘기부 중독자’다.
“원래 생일 때 선물을 주고받는 대신 조금씩 기부를 했어요. 2010년은 결혼 20주년인데 남편이 50세, 큰아들이 18세 되는 해라 경사가 겹쳤죠. 그렇게 날짜에 맞춰 기부하다 보니 1억이 넘었더라고요.”
부모의 뜻대로였다면 그는 지금 미국에서 가정을 꾸리며 한 남자의 아내로 평범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부모가 정해준 결혼 상대자와의 결혼을 한 달 앞두고 영주권을 포기한 채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청첩장까지 나왔거든요. 당연히 그 사람과 결혼해야 하는 것처럼 돼 있었죠. 핸드백 하나 달랑 들고 도망 나온 때가 86년 9월이었어요. 그해 10월에 결혼식이 예정돼 있었고요. 한국 신라호텔에 취업해 VIP플로어에서 VIP코디네이터와 마케팅 매니저로 일했어요. 그때는 여행자율화 전이라 체계가 없더라고요. 서로 말귀도 못 알아듣고, 영어도 못 알아듣고. 그래서 외국인을 위한 여행 컨설팅을 시작해보기로 했어요. 그렇게 2백50만원을 가지고 25년 전 차린 게 이태원여행사였죠.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나이였고 헝그리 정신이 강했어요. 미국에서는 아버지가 ‘내 딸이 아니다’라며 쳐다보지도 않았고 다시 돌아갈 데도 없었으니까요.”
당시 그의 나이 26세, 직원 3명으로 시작한 회사는 3년 만인 1990년 1백만 달러의 매출 실적을 올렸다. 발품 팔고 뛰어다니며 맨손으로 일군 성과였다. 24년이 지난 지금 그의 회사는 투어익스프레스 등 4개 계열사를 거느린 코스닥 상장 여행사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항공권 매출액만 2천6백억원에 이르는 국내 4위 여행사, 그게 바로 지금의 BT·I다.
대학 시절 펜팔 하며 공감대를 이어가던 사람이 지금의 남편이다. 남편과는 펜팔 기간까지 포함하면 10년 가까이 연애를 했다. 아버지와의 냉전을 불사하고 만난 남편이 궁금했다. 치과의사인 그의 남편 유원희씨(50)는 하나원에서 탈북자 의료봉사를 하며 어르신들에게 틀니 2백 개를 해줬다. 송 대표는 남편이 ‘착한 사람’이라 결혼을 결심했다고 한다. 남편과는 나중에 재단을 만들기로 약속한 사이라며 웃었다. 결혼한 지 20년째지만 매일 아침저녁 ‘아이 러브 유’라는 인사를 빼먹지 않는다.
“치과대학을 나온 걸 제외하면 내세울 조건이 없는 남자였어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편지를 주고받다가 미국에 가서 만났는데 키도 안 크고, 두꺼운 안경에 대머리 기가 보이는 거예요. 편지에 보내준 사진만 보면 키가 클 것 같았는데…. 하여간 맘에 안 들었어요. 그런데 만나다 보니 ‘이 사람은 참 착한 사람이다. 나를 힘들게 하지 않을 거야. 좋은 아빠가 될 거 같아’라는 확신이 들더라고요. 만난 지 10년 만인 1990년 11월에 결혼했어요. 제가 이 나이에도 2년째 머리를 기르고 있는데요. 남편이 머리가 벗겨지고 있어서 제 머리카락으로 가발을 만들어 기념일에 선물하려고 해요.”

블로그 방문자 1만 명 넘을 때마다 휠체어 기부

‘바른생활 소녀’에서 ‘아시아 기부영웅’으로 송경애 BT&I 대표




재미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좋아하는 송 대표는 자신의 블로그 ‘저는 행복한 CEO입니다!(kaysong.com)’를 통해 이색 나눔의 장을 열고 있다. 블로그 방문자 수가 1만 명이 될 때마다 휠체어를 한 대씩 기부한다. 얼마 전 블로그 방문자가 4만 명을 돌파해 네 번째 휠체어 주문 제작에 들어갔다. 지체장애인의 몸에 맞춘 휠체어라 제작에 한 달이나 걸린다. 블로그에는 바자회에 참가한 송 대표부터 그의 점심식사 메뉴까지 소소한 일상과 가족과의 생활 등 다양한 내용이 사진과 함께 올려져 있다.
그는 소년소녀 가장도 후원하고 있다. 원래 8명을 후원했는데 3명이 대학에 들어가 지금은 5명이 됐다. 초등학교 때 만난 친구들이 대학교 졸업하는 것을 보면 말도 못할 뿌듯함을 느낀다고. 어떤 때는 자신의 두 아들보다 예뻐해서 시샘도 받는다. 기부영웅 밑에서 자란 아이들답게 두 아들도 기부에 적극적이다.
“한번은 아들이 비싼 디젤 청바지를 사고 싶어 하더라고요. 안 사줬죠. 그랬더니 자기가 벌어서 사겠다며 미국 친구들에게 컵라면을 웃돈 주고 팔아서 돈을 모았어요. 그렇게 4백 달러를 모았는데 정작 모으니까 쓰지를 못하다가 ‘엄마, 이거 기부해야 되겠지?’라고 묻더라고요. 그렇게 기부를 시작해서 4천8백 달러를 기부했어요. 학교에서는 두 아들이 ‘누들 보이즈’로 불렸다니까요.”
고급 청바지를 사려던 아이가 자진해서 기부하게 만드는 송 대표의 교육 방침이 궁금했다.
“항상 칭찬하고, 있는 그대로 아이를 인정해줘요. 스킨십을 많이 해주고 사랑한다는 얘기도 해주고요. 남과 비교하는 건 절대 삼가죠. 아이를 밝고 행복하게 키워야 해요. 저희 집 아이들 굉장히 밝아요. 스트레스를 안 받게끔 공부도 원하는 것을 하라고 했죠. 큰아들은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영어 공부를 시작했어요. 원래는 ‘영어를 왜 배우냐, 다른 사람들이 한국어를 배우라고 해’ 하더니 키즈클럽에서 아이들과 어울리다 보니 스스로 학원을 다니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여행이 교육이다’라는 말에 공감한다는 그는 “세상이 넓고 할 일이 많다는 걸 보여주고, 다른 사람이 존재하는 걸 알려주고 싶어 여행을 많이 보냈다”고 했다. 과연 여행사 대표다운 대답이었다.
송 대표의 첫인상은 화려했다. 푸시아 핑크 컬러의 재킷과 긴 웨이브 머리를 그는 굽 높은 구두와 함께 가뿐하게 소화했다. 아이보리색 정장을 입고도 부하게 보이지 않는 사람, 송 대표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화려한 외모만 보고 편견을 갖기 쉬운데 실상은 다르다고 했다.
“늘 아껴 쓰는 편이에요. 옷은 세일 때가 아니면 안 사고, 신발도 10만원 이상은 안 사요. 아이들에게 절대로 택시는 타지 못하게 하고 제가 여행사를 하지만 비행기 비즈니스 클래스를 태운 적도 없어요. 편의점이나 백화점은 안 가고 동네 슈퍼를 즐겨 찾죠. 슈트도 아웃렛에선 10만~20만원이면 살 수 있어요. 제겐 오늘을 어떻게 더 즐겁고 행복하게 사느냐가 중요하지 어떤 백이 유행인지, 어떤 명품 브랜드인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대학 때 옷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것도 많아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너 설마 그때 그 옷?’이라고 할 정도죠.”

물건 살 때 세일만 찾는 짠순이
이 기부영웅은 남에게는 늘 넉넉하게 베풀면서 “내가 쓰는 건 아깝다”는 말을 수시로 한다.
“남한테 쓰는 건 기쁨을 주잖아요. 전혀 아깝지 않죠. 저는 지하상가에서 아무거나 사 입고 길거리 가다가 옥수수나 풀빵, 떡볶이 먹고, 걸어다니며 아이스크림도 빨아요. 특히 ‘메로나’랑 ‘비비빅’을 좋아하죠.”
그의 별명은 ‘바른생활 소녀’. 음주가무를 전혀 하지 않아 주변에서 붙여준 별명이다. 술, 담배, 골프는 그가 안 하는 세 가지. 대학에 강의를 나가서도 “바르게 살자, 착한 사람이 성공한다”는 철학을 설파한다. 8월에는 나눔과 긍정의 미덕을 다룬 책을 낼 예정이다. 책의 제목은 ‘나는 99번 긍정한다’. 뭐가 그렇게 매사 긍정적이고 행복할까.
“그냥 모든 게 행복하고 감사해요. 사랑할 때도 이유가 있나요. 그 사람의 모든 걸 좋아하니까 이유가 없죠. 행복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이 자리에서 건강하게 인터뷰하는 것도 감사하고, 아이들과 직원, 남편이 있는 것도 감사하고. 세상 모든 게 감사하고 저는 오늘이 제일 행복해요. why를 why not으로만 바꾸면 행복해져요. 어쩌다 보니 행복 전도사가 됐어요. ‘오늘은 내 남은 생애의 첫날이고 어제 죽어간 어떤 사람이 그토록 살고 싶어 하던 내일’이라는 말을 참 좋아해요. 오늘은 선물(present)이라는데 그걸 기부로 표현하는 거죠.”
송 대표의 인생 멘토가 누군지 묻자 ‘동네 목욕탕 아줌마’라는 의외의 대답을 내놓았다.
“자주 가는 목욕탕에 때 밀어주는 아주머니가 있어요. 그분이 ‘나는 지친 송 사장의 몸에 에너지를 불어넣는 사람이야. 내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데’라며 매일매일 행복해하더라고요. 때수건도 7개나 걸어놓고 맞춤 서비스를 하고, 새벽 5시반에 출근해 저녁까지 일하는 열정. 그 이상의 멘토는 없다고 생각했어요. ‘난 소중하니까’라는 화장품 광고도 있잖아요. 가정주부라고 해서 연예인이나 사업하는 사람을 동경할 필요가 없죠. 나는 나니까요. 무슨 일이든 최선을 다하면 그 안에서 다 성공할 수 있어요. 남과 비교하면 불행해져요.”
그는 어린이재단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꿈을 묻자 ‘행복과 사랑을 타인과 나누는 것’이라며 바른생활 같은 대답을 했다.
“돈을 벌어 죽기 전에 전액 기부하는 분도 있지만 그때는 맨 마지막 순간만 기쁘겠죠. 살면서 꾸준히 기부하며 기쁨을 누리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여유가 있을 때 기부하자고 생각하면 절대 못해요. 얼마가 있어야 여유가 있는 걸까요? 1억? 10억? 액수가 중요한 건 아니죠. 오늘이 7월8일이니까 7백80원을 기부할 수 있어요. 저는 날마다 기부하는 여자예요. 백원이든 천원이든 ‘Do it now’. 적은 돈이라도 ‘Do it now’ 하세요.”

여성동아 2011년 8월 57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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