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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사

with Specialist | 박훈희의 섹스 코치

착각하는 남자, 침묵하는 여자

사진제공·Rex

2010. 11. 08

착각하는 남자, 침묵하는 여자


섹스킹과 하룻밤을 보낸 후배의 고백. “그 남자, 테크닉은 정말 죽이더라. 분명히 엇각 체위를 하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영화 ‘색, 계’의 고난위도 체위를 하고 있더라니까. 근데 신기한 게, 그렇게 좋지가 않더라는 거야. 섹스 스킬이 화려한 건 알겠는데 만족도는 높지 않았다고 할까? 그가 체위를 바꿀 때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으니까. 다음엔 뭘 보여 줄까, 궁금하긴 했지만, 섹스에 몰입이 되진 않았어. 그러니 절정에 이를 수가 있나.”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다. 화려한 체위와 애무의 스킬을 선보이던 그와 섹스를 하면서 나는 내가 섹스를 하는 건지, 아크로바틱을 하는 건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리고 섹스 스킬과 만족도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에게는 “별로였어” 라고 말하지 않았다. 나를 위해 그렇게 열심히 땀 흘려준 그를 좌절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빠, 스킬이 정말 굉장하다!”라고만 말했다. 그러니 그는 여전히 자신이 섹스킹이라고 자부하고 있을 것이다. 모든 남자들이 스스로 ‘나 정도면 잘하지’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대부분의 남자가 스스로의 섹스 실력에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은 여자친구를 만족시키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여자친구와 섹스가 반복되면서 섹스 패턴이 익숙해지는데, 이것을 남자들은 ‘나는 내 여자를 잘 알아’라고 착각한다. 익숙한 것과 아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인데도 말이다. 사실 남자들이 오해할 만도 하다. 유두를 좀 더 오래 애무해주었으면 좋겠는데 짧게 애무한 뒤 곧바로 클리토리스를 자극하는 남자친구에게 대부분의 여자들은 “내 성감대는 유두”라고 말하지 않으니까. 그러면서도 섹스가 끝난 후 “좋았어?”라고 묻는 남자친구에게 “응”이라고 답하니, 남자로서는 여자의 불만을 도저히 알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나도 마찬가지다. “나는 화려한 스킬보다는 좀 더 로맨틱한 섹스가 좋아”라고 말하지 못했으니까. 그의 자존심이 최대한 다치지 않게 배려하려다 보니,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내숭을 떠는 부부도 있다. 결혼 5년차 친구 하나는 “난 아직도 먼저 ‘하자’는 말을 못하겠어” 라는 말로 나를 놀라게 했다. ‘하자’는 말도 못하는 그녀가 섹스 트러블에 대해 어찌 말할 수 있겠는가. 모르긴 몰라도 그녀는 침대에서 목석같은 여자일 것이다. “여성상위, 오랄 섹스조차도 먼저 시작한 적이 없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으면서 그녀의 남편이 불쌍해질 정도였다. 연애할 때 내숭은 남자를 안달나게 하지만, 섹스 때 내숭은 남자를 지루하게 하니까. 섹스할 때만큼은 내 여자가 섹시하게, 자극적으로, 발칙하게 변신해주었으면 하는 게 솔직한 남자 마음이니까.

센스 있는 말 한마디가 남편을 섹스킹으로 만든다?!

착각하는 남자, 침묵하는 여자


사실 남자가 스스로 ‘난 잘해’라고 착각하는 것도 우습지만, 여자가 침묵하는 것도 이기적이다. 여자는 노력하지 않고, 남자가 다 알아서 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니까. 지난해 여성영화제인 핑크 영화제에 사회자로 참석했을 때, 관객 중 한 남자가 이렇게 성토했다. “여자들은 남자에게 왜 성감대를 모르냐고 하는데, 그냥 말로 알려주면 안 되나요?”라고 말이다. 이에 대부분의 남자 관객들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성감대를 말로 알려달라고? 물론 섹스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솔직한 사이가 되는 것은 건강한 섹스의 첫 걸음이다. 이런 커플 치고 섹스 트러블을 겪는 커플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나는 성감대를 얘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성감대를 말로 얘기할 수는 있지만, 섹스에서 느끼는 성감대는 그날그날 조금씩 달라지는데, 어찌 말로 다 표현할 수 있겠나. 하지만 꼭 말이 아니더라도 여자 역시 남자에게 성욕과 성감을 제대로 표현해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가 배꼽을 애무할 때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 듯한 신음소리를 낸다면? 그가 유두를 살짝 깨물 때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이 몸을 꼬는 제스처를 한다면? 그가 삽입을 부드럽게 할 때 손가락으로 어깨를 평소보다 꽉 잡는다면? 뭔가 평소와는 다른 몸의 언어로 ‘지금 거기’라는 말을 해주는 것이 좋다는 것.
섹스할 때만 성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섹스하지 않을 때 섹스담을 나눌수록 남자는 주의 깊게 듣는 경향이 있다. 페니스를 삽입할 때 여자가 어떤 얘기를 해도 삽입에만 신경 쓰는 게 남자니까. 하지만 평소 대화를 할 때만큼은 여자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줄 수 있지 않겠나. 그렇다고 “난 한 번도 오르가슴을 느껴본 적이 없어!”라고 폭탄선언을 한다면? 하하. 이런 실수를 저지르는 분은 안계시리라 믿는다. 대한민국 남자들은 섹스에 관한 한 자존심이 특히 강하니까. 칭찬은 페니스도 춤추게 한다는 것을 알지 않나. ‘난 후배위는 별로야’라는 말로 그에게 상처 주는 말 대신, ‘난 정상위에서 당신이 내 다리를 들어 올려줄 때가 진짜 좋더라!’라고 감탄하는 말이어야 효과적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매체 정보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오늘 신문에서 보니까 우리나라 부부들의 전희 시간이 가장 짧대. 오늘 전희는 무조건 20분으로 채워보자” “내 친구가 이 포르노 체위가 정말 자극적이라던데, 한 번 따라해 볼까?”라고 유도해볼 수도 있는 것. 불만을 얘기할 때에도 타인의 섹스에 대해서 얘기할 때는 좀 더 객관적으로, 덜 민감하게 얘기할 수 있다. “사실 여자들은 체위를 너무 자주 바꾸는 건 별로 안 좋아하는데, 포르노를 보면 남자들이 너무 자주 체위를 바꾸잖아”라면서 슬쩍 불만을 토로할 수도 있는 것.
섹스 트러블은 매우 작은 오해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나는 옆구리가 간지러운데 그가 등을 긁어준다면? 그것만큼 짜증나는 일이 어디 있겠나? 그런데 말을 하지 않고 짜증만 낸다면 남자는 더더욱 짜증이 날 것이다. ‘잘하는 남자와 섹스해보고 싶다’는 소망을 갖는 대신, 그를 섹스킹으로 만들어보면 어떤가?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괜히 나올까? 그를 킹으로 만드는 것은 여자의 적극적인 표현이 큰 몫을 할 테니.



박훈희씨는…
‘유행통신’ ‘앙앙’ 등 패션매거진에서 10년 넘게 일했고 최근에는 극장 CGV 웹진 ‘무비앤’을 편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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