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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OPLE

빛나는 얼굴

U20 여자월드컵 3위 주역 지소연

“아홉 살에 축구 입문, ‘지메시’로 불리기까지…”

글 정혜연 기자 사진 조영철 기자

2010. 09. 15

160cm 조금 넘는 소녀가 자기 키보다 한 뼘은 큰 벽안의 선수들을 제치고 시원하게 골문을 가르자 국내외 언론은 일제히 그를 주목했다. 주인공은 한국의 지소연 선수. 지난 8월 초 막을 내린 FIFA 주최 U20 여자월드컵에서 그는 여자축구 불모지인 한국을 3위에 올려놓았다.

U20 여자월드컵 3위 주역 지소연


공을 잡자 상대편 세 명의 선수가 그를 향해 돌진했다.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날렵하게 공간을 파고들더니 골키퍼가 나오는 걸 피해 감각적으로 오른발 슛을 날려 골문을 갈랐다. 2010 FIFA U20 여자월드컵에서 한국의 3위를 결정짓는 천금 같은 결승골이었다.
지난 7월 독일에서 열린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에서 한국은 모두의 예상을 깨고 3위에 올랐다. 기적과 같은 결과를 이끌어낸 한국 대표팀 중 단연 돋보인 이는 지소연 선수(19). 스위스와의 첫 경기에서 3골을 터뜨린 것을 시작으로 마지막 콜롬비아와의 경기에서 결승골까지 추가해 총 8골을 기록했다. 월드컵이 끝난 뒤 그는 최우수선수 부문 2위인 실버볼과 득점 2위인 실버슈를 거머쥐었다.
떠날 때 그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던 U20 여자월드컵 대표팀은 지난 8월4일 인천국제공항에 들어서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국내 대부분의 언론이 그들을 취재하기 위해 열띤 경쟁을 벌였고, 감격에 휩싸인 가족과 국민들 또한 뜨겁게 반겼기 때문. 각자 소감을 밝히는 자리에서 지 선수는 국민의 성원과 관심에 감사를 표했고, 자신을 있게 한 어머니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하며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이틀 후 월드컵 최고의 이슈로 떠오른 지 선수를 충북 보은의 한 경기장에서 만났다. 그는 쉴 겨를도 없이 소속팀인 한양여대에 복귀, 8월 중순에 열릴 국내시합을 대비한 전지훈련을 떠난 터였다. 인기를 증명하듯 한 시간여 동안 몸을 푸는 그의 뒤편에서는 여러 신문·방송 매체가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 기자가 가장 먼저 소감을 묻자 주저 없이 “많은 관심에 감사드리고 있다”며 대답을 쏟아냈다.
“독일로 떠날 때는 단 한 매체도 알아주지 않아 쓸쓸히 갔는데 8강 진출하니까 그때부터 관심을 가져주셨어요. 독일에서 몇 번 인터뷰를 하기는 했는데 그래도 한국에서 이 정도로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는 줄은 정말 몰랐죠. 입국장을 들어서는데 플래시가 마구 터져서 깜짝 놀랐어요(웃음).”
국내 선수 중 유일하게 상을 두 개씩이나 받긴 했지만 원하던 금색은 아니었기에 아쉬움이 남을 법했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골 욕심이 났다”며 마지막 경기인 콜롬비아 전을 회상했다.
“그때 독일의 알렉산드라 포프 선수에게 두 골 뒤지고 있었어요. 콜롬비아 전에서 골을 더 넣어 골든볼을 받아야겠다 싶더라고요. 경기 시작과 동시에 골 욕심을 냈는데 그랬더니 팀에 오히려 역효과가 나더라고요. 저만 공을 잡으려고 하니까 경기가 잘 안풀렸죠. 그때부터 욕심을 버리고 팀이 승리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흐름을 타려고 노력했어요. 골든볼은 다음에 받아도 되니까 괜찮아요.”

동네 휩쓸던 ‘지똥이’가 축구공 하나로 ‘지느님’되다!

U20 여자월드컵 3위 주역 지소연


지소연 선수는 160cm가 조금 넘는 작은 키에도 뛰어난 볼 컨트롤과 패스 능력, 골 결정력까지 갖춰 네티즌 사이에서 ‘지느님(지소연과 하느님의 합성어)’이라 불린다. 하지만 어린 시절 그의 별명은 ‘지똥이’. 또래 아이들보다 체격이 작고 피부가 까만 탓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나고 자란 서울 동대문구 이문동에서 ‘지똥이’ 지소연을 모르면 간첩이다. 덩치는 학급에서 가장 작았지만 강단이 있어 정의의 사도를 자청하고 다녔기 때문. 힘 센 친구가 약한 친구를 때릴 때면 입에서 잘못했다는 말이 나올 때까지 혼쭐을 내줬다. 그는 “어릴 때부터 보통의 여자아이와는 달랐다”고 말했다. “여자 아이들이랑 소꿉놀이 하는 것보다 남자 아이들과 공놀이 하는 걸 더 좋아했어요. 머리카락도 항상 짧게 하고 다녔죠. 긴 머리는 뛰어다니면서 놀기도 힘들고 관리하기도 귀찮잖아요. 엄마의 권유로 피아노 학원에 잠깐 다니긴 했는데 적성에 맞질 않아서 바로 관뒀어요. 그러다 우연히 시작한 축구는 미친 듯이 좋았어요. 하루 종일 공차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을 정도니까요.”



U20 여자월드컵 3위 주역 지소연


98년 이문초등학교 2학년이던 시절, 운동장에서 남자 아이들과 공을 차고 있던 그에게 누군가 다가왔다. 공을 좇기만 하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공을 가지고 놀며 게임을 주도하던 그를 눈여겨 본 이문초 축구부의 김광열 감독이었다. 김 감독은 여러 아이들 중 가장 눈에 띄던 지 선수를 남자로 착각, 축구부에 가입할 것을 적극적으로 권했다.
지 선수는 뛸 듯이 기뻤지만 그의 부모는 반대했다. 특히 그의 아버지는 체구도 작은 딸이 남자 아이들과 뒹굴며 훈련하는 걸 내켜하지 않았고, 축구장 근처에 얼씬도 하지 못하게 했다. 지 선수는 “그럴수록 축구에 대한 애착이 커져만 갔다”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주 가는 분식집을 엄마와 같이 갔는데 주인아저씨가 ‘잘 할 것 같으니 한번 시켜보라’고 말씀해주셨어요. 아저씨가 계속 ‘여자가 축구하면 멋있다. 또 키가 클지도 모른다’며 설득하는 바람에 엄마가 생각을 바꾸게 됐죠(웃음).”
우여곡절 끝에 축구부에 들어간 날 그는 또 한 번 시련을 겪어야 했다. 또래 남학생들이 “저런 조그만 여자아이가 무슨 축구냐”며 무시했던 것. 하지만 비아냥은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감탄으로 바뀌었다. 스피드·체력·지능적 움직임 등 어느 것 하나 남학생들에 뒤지지 않았기 때문. 일찌감치 그의 재능을 알아본 김 감독은 여자축구부 명문인 송파구 오주중학교로 진학시켜 본격적으로 여자축구를 시작하도록 도움을 줬다.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탄탄대로였다. 재능이 있던 그가 나가는 경기마다 두각을 나타내며 각종 기록을 세운 것. 중학교 때는 3년 동안 열두번 우승컵을 거머쥐었고, 60연승을 이끌었다. 고등학생 때는 대회마다 최우수선수에 뽑혀 ‘괴물’로 불리기도 했다. 2006년 열다섯 살 나이에 도하 아시안게임 여자축구 국가대표로, 이듬해에는 베이징올림픽 여자축구 국가대표로 발탁되기도 했다. 그는 남녀축구대표팀을 통틀어 최연소 A매치 데뷔(15세 8개월), 최연소 A매치 골(15세 9개월)이라는 신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이름만 불러도 눈물나는 엄마 위해 앞으로 더 열심히 뛸 거예요”
축구를 이야기할 때면 누구보다 씩씩하고 빛나는 지 선수지만 그도 가족 앞에서는 한없이 여린 소녀가 된다. 입국 당시 인터뷰 현장에서 그가 흘린 눈물은 모든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그 이야기를 꺼내자 쑥스러운 듯 배시시 웃는다.
“자꾸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해요. 울지 않으려고 했는데 엄마를 생각하니까 울컥하더라고요. 지금 생각하면 좀 창피해서 웬만하면 그 장면은 빼달라고 하고 있어요(웃음).”
독일에서 그가 선전을 하고 있을 무렵 그의 가정환경은 꽤 화제가 됐다. 지 선수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시절 그의 어머니 김애리씨가 자궁경부암 수술을 받은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 이후 김씨는 큰 수술을 세 번이나 더 받아야 했는데 그 과정에서 남편과 이혼에 이르러 형편은 더 악화됐다.
홀로 두 아이를 키워야했던 김씨는 아픈 몸을 이끌고 공장에 나가 돈을 벌었다. 축구를 하는 딸을 뒷바라지 해야했기에 살림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현재 김씨 가족은 정부가 지원한 보증금 7천만원짜리 전세 임대방에서 살고 있다. 만약 지 선수가 축구를 포기했다면 형편은 더 나아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김씨는 한 인터뷰에서 “딸아이가 그토록 좋아하는 축구를 관두게 하고 싶지 않았다”며 자신의 선택에 후회가 없음을 밝혔다.
지 선수는 그런 어머니의 희생을 항상 가슴 속에 새기며 감사하고 있다. 그는 “돌아와서 엄마와 제대로 시간을 보내지 못해 아쉽다”며 앞으로의 희망사항을 말했다.

“지금 제일 하고 싶은 건 엄마와 수다 떠는 거예요. 일요일마다 엄마 동생과 동네 찜질방에 가서 스트레스를 풀곤 했거든요. 지금은 훈련 때문에 그러질 못하고 있죠. 앞으로 남은 시합 끝내고 마음 편하게 휴가를 즐기고 싶어요(웃음).”
효심이 깊은 지 선수는 아버지와의 끈도 놓지 않고 있다. 독일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을 때는 아버지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 기쁜 소식을 전했다.
“한국 돌아와서는 정신이 없어서 아직까지 아버지께 연락을 못했어요. 그래도 평소 연락을 자주 드리는 편이에요. 독일에서 전화 드렸더니 뉴스를 통해 제 소식을 듣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아버지께서 몸 다치지 말고 경기 잘 하라고 말해주셔서 힘이 났죠. 시합 끝나고 짬이 나면 아버지와도 좋은 시간을 갖고 싶어요.”
지 선수의 꿈은 현재진행형이다. 축구 선수의 수명은 짧기 때문에 은퇴하기 전까지 성공해서 어머니에게 찜질방을 선물하는 꿈을 이룰 생각이라고. 또 하나의 꿈은 20세 이하 여자월드컵이 아닌 성인 여자월드컵에 나가 우승 트로피를 받는 것이다.
“내년에 열릴 여자월드컵에는 출전기회를 얻지 못했어요. 예선전에서 열심히 뛰었는데 티켓을 따내지 못했거든요. 앞으로 더 준비를 많이 해서 꼭 2015년 월드컵 국가대표 선수로 뛰는 게 목표예요. 가까이는 내년 2월 대학졸업 후 꿈꿔왔던 미국 무대로 건너가 프로선수로 뛰는 것이고요. 앞으로 어디서 축구를 하든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거예요.”

지소연 선수를 있게 한 어머니 김애리씨 인터뷰
“축구공 껴안고 자던 딸, 이제야 주목 받아 행복”


U20 여자월드컵 3위 주역 지소연
18년 전, 돌을 막 지난 딸을 보며 어머니는 근심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작고 약한 딸이 험난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 걱정부터 앞선 터였다. 그때 문 밖에서 스님이 목탁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밖으로 나온 어머니에게 스님은 “여기에 별이 하나 떠 있다”고 말하며 아기가 잠들어 있는 방 쪽을 향해 미소 지었다.
지난 7월 독일에서 지 선수가 맹활약을 펼치고 있을 무렵 그의 어머니 김애리씨를 자택에서 만났다. 열 평 남짓한 방 안 한편에는 온통 지 선수의 사진들로 가득 차 있었다. 딸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던 김씨는 18년 전 일을 회상하며 “스님의 말이 틀리지 않은 것 같다”며 웃음 지었다.
“딸아이가 어릴 때부터 강단이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 하루는 아파트 앞에 불법 복제 책을 파는 잡상인이 왔어요. 그걸 본 아이가 졸졸 따라다니며 주변 사람들에게 ‘이건 가짜다. 절대 사지 마라’고 말했나 봐요. 잡상인이 무섭게 겁을 줬는데 그래도 고집을 꺾지 않으니까 화가 나 발길질을 했대요. 동네 주민들이 잡상인을 끌고 경찰서로 갔는데 거기서도 아이가 자기 생각을 조목조목 말하더라고요. 다들 ‘쟤는 나중에 뭐라도 하겠다’며 한마디씩 했죠.”
평소 엄마 말이라면 한 번도 어기지 않던 착한 딸이었지만 축구 앞에서 만큼은 달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지 선수는 처음으로 부모의 말을 거역하고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김씨는 “못이기는 척 허락했지만 이후에도 숱하게 말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며 아픈 속내를 드러냈다.
“다치고 돌아오면 가슴이 철렁했거든요. 딸아이가 어려서부터 속이 깊어 다치면 가족들이 걱정하니까 집에서는 아픈 내색조차 하지 않았죠. 한번은 축구부에서 유일한 여자아이니 신경을 좀 써주십사해서 감독님을 찾아가겠다고 했더니 아이가 펄쩍 뛰며 말리더라고요. 특별대우 받는다는 인상을 주기 싫다는 게 이유였어요.”
그러던 중 2002년 집안에 불행이 닥쳤다. 김씨가 자궁경부암에 걸린 것. 수술은 여러 차례에 걸쳐 진행됐고 그 즈음 남편과 싸움이 잦아져 결국 이혼을 했다. 그런 아픔을 겪으면서도 딸은 도리어 엄마를 위로했다고 한다.
“우리 아이가 지금껏 가장 많이 한 말이 있어요. 바로 ‘내가 아빠 몫까지 다 할게. 조금만 참아’라는 거예요. 힘든 소리 한번 하지 않고 이렇게 훌륭한 선수로 자란 딸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몰라요. 한국에 오면 남자친구도 사귀어 보고 일찍 결혼하라고 했더니 ‘결혼은 엄마 병 다 치료하고, 동생 대학 졸업시킨 뒤 서른 살 넘어서 할게’라고 하더라고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김씨는 내색도 못한 채 가슴으로 운다. 해준 것도 없는데 항상 가족부터 생각하는 딸이 하늘에서 내려준 천사처럼 느껴져서다. 지 선수는 벌써부터 내년 실업팀 입단을 고대하고 있다고 한다.
“실업팀에 들어가면 월급이 나오니까 그때가 되면 저더러 공장일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자기가 다 한다고…. 그런 말 들을 때마다 딸아이에게 얼마나 미안하고 또 고마운지 몰라요. 전 그런 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저 소연이가 다치지 않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잘 살면 좋겠어요.”

신진우<동아일보 스포츠레저부 기자> 사진 동아일보 사진DB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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