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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아름다워 스페셜

시끌벅적 양씨네 3대가 살아가는 법

제주도 촬영 현장 스케치

글 박혜림 기자 사진 이기욱 기자

입력 2010.07.15 17:21:00

양병태 가족은 얼핏 보면 콩가루 집안이다. 전처와 사별한 양병태와 전남편과 이혼한 김민재가 재혼해 꾸린 가정. 시부는 다섯 살림이나 차리고 수십 년 만에 돌아와서 큰소리를 치고 반듯한 아들 양태섭은 동성애자라고 커밍아웃한다. 하지만 들여다볼수록 참 따뜻하다. 아름다운 이 가족을 보기 위해 제주도로 향했다.
시끌벅적 양씨네 3대가 살아가는 법

1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장미희와 그 뒤를 따르는 김상중. 2 우희진은 촬영장에서 배역에 완벽하게 몰입한다.



제주도로 향한 날 일기예보는 ‘흐리고 오후 늦게 비’. 비가 내릴 경우 촬영이 미뤄질 수 있다는 말에 변덕스럽기로 유명한 제주도 날씨가 오늘만은 그 이름값을 톡톡히 하기를 빌었다. 아라(장미희)와 병준(김상중)이 있는 금능해수욕장으로 향하는 길, 제작진과 기자의 마음을 헤아리기라도 한 듯 비가 그쳤다. 파도를 바라보며 우아하게 걷는 아라와 그 뒤를 말없이 따르는 병준이 보인다. 아라가 호감을 보여도 무관심 일변도였던 병준의 마음에 변화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오후 4시경, 제주도 불란지펜션은 쩌렁쩌렁 화가 난 여성의 목소리로 시끄럽다. 현관문이 열리고 동건(이켠)이 뛰어나오고 초롱(남규리)이 쫓아 나온다. 손에 빗자루를 꼭 잡고 씩씩거리는 품이 화가 단단히 난 모양이다. “잠깐!” 정을영 감독은 이켠에게 “네가 억지로 초롱이한테 떠밀려가는 건데 왜 먼저 도망가” 하고 나무란다. 빗지 않은 곱슬머리, 목에 두른 하얀 면 수건과 삼선 고무 슬리퍼. 정 감독의 외양에서 범상치 않은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바짝 긴장한 표정으로 정 감독의 이야기를 듣는 두 사람은 여러 차례 쫓아내고 버티기를 반복한다.

까칠이 지혜와 아부쟁이 수일 부부에게 무슨 일이?!
지혜(우희진)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 원래 예민하고 따박따박 따지길 좋아하는 여자지만 무슨 일이 있는 듯 우희진은 카메라가 돌지 않는 순간에도 감정을 유지하려 애쓴다. 삼촌 병걸(윤다훈)에게 화를 내며 계단을 내려오는 지혜. 단 한 번에 “오케이” 하고 사인이 떨어졌다. 이번엔 딸 지나(정다빈)가 울며 지혜에게 매달린다. “엄마 이혼하려는 거잖아.” 오호라, 앞으로 이들 부부 사이가 심상치 않겠군. 어깨를 들썩이며 우는 정다빈을 스태프들은 기특하고 사랑스럽다는 표정으로 바라본다.
다음 날, 서귀포의 영화관에서 수일(이민우)을 만나고서야 지혜가 화난 이유를 파악할 수 있었다. 면세점 여직원과 함께 영화를 보다 지혜에게 딱 걸리고 만 것. 수다스럽긴 해도 착해서 밉지 않았던 수일이 바람을 피우다니. 적지 않은 충격이었다. 영화관 안으로 들어온 지혜는 생수병과 가방으로 수일의 머리를 내려치고 들고 있던 팝콘마저 머리에 몽땅 부어버린다. 정 감독은 “이렇게 내려치고, 이렇게 여자를 엎어치고…”라며 직접 액션까지 선보이자 연기자와 스태프들은 소리 내어 웃는다. “관객 수가 부족한데 저기 뒷자리 좀 채워주겠어요?” 얼떨결에 보조 출연자가 되고 멀뚱히 앉아 있자 제작진의 지시가 떨어진다. “지혜가 수일의 머리를 내려칠 때는 다들 놀라서 쳐다보고 낄낄 웃기도 하세요.”

뜨거운 삼계탕이 식을 때까지 대가족의 식사는 계속된다
태섭이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용납할 수 없는 병걸은 이날도 병태(김영철)의 속을 뒤집는다. “형님, 경수(이상우)도 태섭이과인 거 모르죠?” 병태는 못 들은 척 물걸레질만 한다. 역정이 난 병걸은 “내 자식도 아닌데. 아, 알았어요. 알았어”라고 한다. 정 감독이 큰 소리로 “‘내 자식도’에서 ‘도’는 빼야지. ‘아닌데’가 아니라 ‘아니니까’지”라고 틀린 대사를 지적한다. 옆에 있던 스태프가 대본을 재빠르게 훑어본다. 김수현 작가의 작품을 연기할 때는 대본에 적힌 대사를 정확하게 소화해야 한다. 이번에는 ‘아’를 길게 발음해서 다시 간다. 목을 가다듬은 병걸은 토씨 하나, 호흡 한번 틀리지 않고 제대로 연기를 펼치지만 초가집 뒷마당에 있던 닭이 ‘꼬끼오’하고 울어버린다. “병걸 삼촌, 다시 한 번 더”.
야외 레스토랑에 병태 가족이 저녁 식사를 하려고 모여 앉았다. 일명, ‘떼신’이다. 민재(김해숙)가 커다란 냄비에서 삼계탕을 덜어 그릇에 담으면 초롱이와 호섭(이상윤)이가 재빠르게 그릇을 식탁으로 나른다. “초롱아, 호섭아.” NG가 계속되고 정 감독은 남매에게 언제 누구 앞에 그릇을 놓아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배우들은 핑퐁 게임을 하듯 대사를 말하고 그릇을 받아 들고 시선을 맞춘다. 아슬아슬하면서도 톱니바퀴가 굴러가듯 호흡이 척척 맞는 연기를 보며 감탄하던 찰나, “초롱이 대사 안 하냐” 하는 정 감독의 호통이 날아온다. 다시 민재는 삼계탕을 담고, 남매는 그릇을 나르고, 가족은 이야기를 나눈다. 같은 장면의 촬영이 계속 반복되자 병걸이 “나 그냥 라면 끓여 먹을 거야”라고 농담을 던지고 배우와 스태프들의 웃음보가 터진다.
역시 태섭에 대한 가족의 사랑은 극진했다. 서로 자기 닭다리를 주겠다고 나선다. 투덜이 병걸이가 가만있을 리가 없다. “내 다리 먹어라. 내 다리 먹어라. 너무 웃기네.” 죽이 잘 맞는 수일이가 소리 내며 웃자 지혜가 핀잔을 준다. “웃음소리를 더 길게.” 정 감독의 지시에 수일이가 깔깔 길게 소리를 빼고 카메라에 잡히지 않은 배우들은 행여 소리를 낼까 웃음을 참는다. 어느덧 어둠이 내려앉았다. 제주의 찬 바람이 매섭게 몰려오고 스태프들은 하나둘 겨울 점퍼를 걸친다. 담요를 덮은 배우들은 덜덜 떨면서도 저녁 식탁 앞을 지킨다.
매회 주인공 중 한 명이 어이없게 넘어지는 ‘꽈당 신’을 직접 볼 수 있을까. 스태프에게 슬쩍 물어보니 의미심장한 미소만 지을 뿐이다. 자정이 다 넘어가는 시간까지 자리를 지키길 잘했다. 가족과 차를 마시던 중 지혜가 자리를 박차고 나가고 그 뒤를 따라나서던 수일이가 ‘꽈당’하고 넘어진다.

시끌벅적 양씨네 3대가 살아가는 법

3 리허설도 실전처럼! 투덜이 동생 윤다훈과 마음 좋은 형 김영철. 4 제주도 칼바람 속에서 진행된 저녁 식사 촬영. 5 온가족의 사랑을 받은 송창의. 6 자유로운 헤어스타일이 범상치 않은 정을영 감독.



여성동아 2010년 7월 5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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