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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선 감격 순간 생중계! 정하영 촬영감독 비하인드 스토리

글 박혜림 기자 사진 지호영 기자, 정하영 제공

입력 2010.06.16 11:39:00

전문 등반가도 아니면서 오은선 대장의 안나푸르나 등정에 동행해 14좌 완등이라는 역사적 순간을 생중계한 정하영 KBS 촬영감독. 그는 체중이 6kg 줄고 죽음의 공포와 싸워야 했으면서도 정상 정복의 순간을 촬영했다는 사실에 감격하는 천생 카메라맨이었다.
오은선 감격 순간 생중계! 정하영 촬영감독 비하인드 스토리


“아빠, 아빠가 KBS 박대기 기자보다 더 유명해졌어.”
안나푸르나 등정을 마치고 지난 5월10일 귀국한 정하영 촬영감독(44)에게 큰딸은 이렇게 첫말을 꺼냈다. 그는 “지금까지 이렇게 큰 관심을 받은 것은 처음이다. 오은선 대장의 14좌 완등이 반향이 크긴 큰가 보다”며 웃었다. 안나푸르나의 거친 바람과 혹독한 추위 탓에 얼굴이 까무잡잡하고 푸석해진 정 감독은 “체중이 6kg이나 줄었고 소화 기능도 떨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오은선 대장이 세계 최초 여성 14좌 완등자라면 그는 히말라야 등정을 세계 최초로 HD카메라로 생중계한 촬영감독이다. 전문 산악인도 아닌 그가 카메라, 배터리, 산소통, 물통, 간식 등 총 7kg이나 되는 짐까지 지고 8000m급 정상에 올랐다. 하지만 죽을 수도 있는 길이었다.
“정상에 올랐을 때 ‘환희’라는 표현은 이럴 때 쓰는 거구나 했습니다. 캠프5나 캠프6까지 간 적은 있었는데, 정상에 오르니 울컥하고 가슴이 뜨거워지더군요. 사실 베이스캠프에서 출발한 순간부터 다 포기하고 돌아가고 싶었지만, 방송을 망칠 수 없다는 생각으로 끝까지 올랐습니다.”
정상을 10m 정도 남겨두고 힘겹게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오 대장을 보며 포기하면 어쩌나 싶기도 했다. 정 감독은 “사실 오 대장이 중간에 돌아가려고 한 적이 있다. 웬만하면 포기를 안 하는 오 대장이 ‘고 백(Go Back)’을 외쳤다”며 그때를 회상했다.
“아찔했습니다. 아, 지금 내려가면 다시는 못 올라오는데…. 망했구나 싶었어요. 그동안 촬영해온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될 것 같았죠. 겉으로는 아무 내색도 못하고 속으로 ‘제발 포기하지 말아주세요’ 하고 간절히 외쳤죠. 오 대장이 결정을 번복했을 때 촬영을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정말 기뻤습니다.”

9번 히말라야 오르면서 동료 잃기도
그가 처음 히말라야 등반 중계팀의 멤버로 산에 오른 것은 99년, 엄홍길 대장의 낭가파르바트 등정 때였다. 말 그대로 열정과 패기만으로 뛰어든 정 감독은 촬영은커녕 대원들에게 민폐만 끼치고 돌아왔다. 그는 “3일간 고산병으로 베이스캠프에서 몸져누워 있었다(웃음). 등반을 정식으로 해본 적도 없고 아이젠도 처음 신어봤을 정도였다”면서도 “그때,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정상에 올라 제대로 중계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 후로 정 감독은 꾸준히 자전거 타기, 수영, 걷기, 등산 등을 하며 체력을 다졌다. 산악 촬영을 위해 일부러 보양식, 고기 등을 챙겨 먹으며 몸보신도 했다.
그는 지금까지 엄홍길·오은선 대장의 8000m 이상 고봉 등정에 총 9번 동행했다. 등반 중계팀에 참여하는 만큼 아프고 힘든 기억도 늘어났다. 99년 엄 대장과 칸첸중가를 올랐다 하산하던 중 일어난 눈사태로 KBS 동료 2명을 잃었다. 그 역시 눈에 파묻혔는데, 그때 지금까지 살아왔던 모든 인생이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며 ‘아, 이렇게 죽는구나’싶었다고. 다행히 눈이 많이 얼지 않고 산사태 가장자리 부근에 묻힌 덕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2000년 엄 대장과 함께 칸첸중가 남면을 등정할 당시에는 셰르파가 낙빙에 맞아 숨지는 모습을 힘없이 지켜봐야 했다. 이를 회상하는 정 감독의 눈가가 어느덧 촉촉해졌다.

오은선 감격 순간 생중계! 정하영 촬영감독 비하인드 스토리


“캠프3에서 캠프2로 이송하는 도중에 셰르파가 결국 숨을 거뒀습니다. 엄 대장이 그의 손과 얼굴을 부여잡고 오열하는데…. 저는 그 장면을 카메라로 찍을 수밖에 없고…. 지금도 그때가 잊히지 않습니다.”
소중한 사람이 히말라야에서 생명을 잃어가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본지라 그는 눈사태가 베이스캠프를 약하게만 덮쳐도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두렵다고.
“죽음의 공포가 밀려오지만 제 스스로 최면을 걸어요. ‘이제 더 이상은 눈사태가 안 올 것이다. 조상님,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 나는 안 죽을 것이다’ 하고 애써 눈을 붙이는 거죠.”
팔순을 넘긴 노모는 정 감독이 히말라야로 향할 때마다 “안 가면 안 되냐” “제발 높은 곳까지는 가지 마라”며 걱정을 하지만 아들의 열정을 알기에 끝내 막지는 못하신다고. 그는 “어머니에게도, 두 딸에게도 내가 지원한 일이고 잘하고 싶기에 꼭 가야 한다, 응원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소중한 가족이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 없을지도 모르는 길, 무거운 카메라를 메고 죽음의 경계에 몇 번이고 자신을 내맡겨야 하는 그 길에 매번 오르는 이유는 뭘까.
“히말라야는 마력이 있는 것 같아요. 이상하게 3월만 되면 향수병처럼 아련하게 히말라야가 떠올라요. 누워 있으면 천장에 히말라야의 아름다움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밥을 먹으면 베이스캠프에 차려진 밥상이 아른거려요. 참 이상한 일이죠. 막상 등반을 할 때는 말로 표현하기 힘든 두려움이 엄습해오는데(웃음).”



고산지대 사람들의 일상, 다큐멘터리로 찍고 싶어
정하영 감독은 원래 신문사 사진기자가 되고 싶었다. 대학 시절, 한 신문사 사진부장이 강의하는 2학점짜리 ‘사진실습 수업’을 듣고 사진의 매력에 푹 빠졌다. 정 감독은 “기자들이 찍은 사진을 보여주고 어떤 의도로 촬영했는지, 장단점은 무엇인지 설명을 해주는데 너무 재미있었다”며 “직접 실습을 하면서 이 일을 업으로 삼아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고. 하지만 그는 신문사 시험에 줄줄이 낙방하고 뜻하지 않게(?) 93년 KBS 촬영감독 시험에 덜컥 합격했다.
입사 후 선배들은 그를 ‘꿈돌이’라고 불렀다. 매사 의욕이 넘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며 하나라도 더 배우려고 했기 때문. 보통 촬영감독이 되면 의무적으로 교양·다큐·예능·드라마국을 돌아가며 촬영을 하는데 2년 차가 되던 해 의무가 아니었던 ‘수중촬영팀’에도 지원했다.
“물속에서 촬영하는 방법을 배우면 좋을 것 같지 않나요? 바닷속을 잠수하는 법과 아이스 다이빙 등 수중 촬영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부터 훈련받고 촬영 기술까지 차근차근 배워나갔는데,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적도 있었지만 제가 모르는 촬영 기법을 배운다는 사실에 즐거웠습니다.”
산악 촬영에 첫발을 내딛게 된 것도 무엇이든 ‘일단 해보자’는 마인드를 가진 그를 보고 산악 촬영 담당이었던 부장이 지원해보지 않겠냐고 권유한 덕분이었다.

오은선 감격 순간 생중계! 정하영 촬영감독 비하인드 스토리


정 감독은 “예기치 않은 변화들이 있다는 점에서 수중 촬영과 산악 촬영은 비슷하다. 산악 촬영이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고 바람과 눈사태를 예측하기 어려운 것처럼 수중 촬영도 물의 흐름을 예측하기 어렵고 시야가 흐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가 있다”고 했다. 그는 “성수대교가 붕괴됐을 때 선배와 카메라를 들고 한강 속에 들어가 촬영을 했다. 예상보다 시야가 너무 흐려 철근과 콘크리트에 머리를 찧는 등 위험한 순간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98년 방영된 자연 다큐멘터리 ‘동강’은 그가 가장 좋아하고 기억에 남는 작품이다. “천연기념물 얼음치의 산란 과정을 최초로 영상에 담았는데 얼음치의 산란 과정을 직접 보거나 사진으로 찍은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어서 정보를 제대로 얻을 수 없었다”며 “10여 일 동안 동강에 텐트를 치고 꼬박 밤을 새워가면서 기다리며 지켜봤고 마침내 촬영에 성공했다”고 흐뭇하게 웃었다.
그가 촬영한 작품에는 의외의 것이 또 있다. 바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 다큐멘터리를 주로 찍어온 그이지만 드라마를 통해 배울 게 있을 것 같아 일부러 드라마국에 지원해 완성한 작품이라고.
“드라마는 풍광과 인물을 조화롭게 찍어야 하고, 색감이나 구도, 조명 등이 굉장히 중요해요. 이렇게 훈련한 것이 나중에 다큐멘터리를 드라마틱하게 담아내는 데 큰 도움이 됐어요. 반대로 배우 김명민과 한고은이 수중에서 키스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수중 촬영팀에서 쌓은 촬영 노하우가 큰 도움이 됐습니다.”
그는 “디지털이 발전하면서 특수 촬영 기법도 다양해졌다. 드라마 ‘추노’에 사용된 레드원 카메라, 3D 촬영, 스틸사진의 동영상화 등 아직도 공부해야 할 것이 많아 틈틈이 공부 중”이라며 멈출지 모르는 의욕을 드러냈다.
이렇게 치열하게 촬영감독으로서의 가능성을 넓혀가는 그는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길 바라는 걸까. “찡그리지 않고 욕만 먹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아주 겸손한 대답이 돌아왔다. 너무 겸손한 것 아니냐고 묻자 “칭찬을 해주시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사람들이 편안하게 보고 삶에 작은 도움이 된다면 더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정 감독은 “고산지대에 사는 안데스 사람들의 일상과 문화를 다큐멘터리로 찍어보고 싶다”는 소망도 밝혔다.
인터뷰 초반 산의 매력에 대해 그는 “산은 높이 오를수록 더 많은 것을, 더 아름다운 것을 보여준다. 히말라야를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더 좋은 영상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 말은 카메라맨 정 감독의 삶에 대한 태도를 드러내는 것 같았다. 훌륭한 촬영감독이 되기 위해 더 높이 오르려고 늘 도전하는 그의 모습에 가슴이 꿈틀거렸다.

여성동아 2010년 6월 5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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