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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오은선 감동 인터뷰

글 김명희 기자 사진 조영철 기자, 동아일보 사진DB파트

입력 2010.06.16 11:15:00

그가 히말라야를 품기까지 17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여성 최초 8000m급 14좌 완등이라는, 산악사의 새로운 역사를 쓴 오은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꿈을 이루고 돌아온 그를 만났다.
오은선 대장(44·블랙야크)이 악수를 청했다. ‘철녀’라 불리는 그의 손은 의외로 작고 가벼웠다. 무거운 등산복과 장비를 벗어던진 그는 홀가분해 보였지만 사진촬영을 위해 화장을 한 모습이 스스로도 낯설다고 했다. 여성 산악인 최초로 히말라야 14좌를 완등하고 돌아온 그는 몸에 단 한 방울의 기름기도 남아 있지 않은 것처럼 담백했다. 신의 영역에 들어갔다 나온 이의 겸손함이었다. 완등 후 쏟아진 격려와 의혹에 희비가 교차했지만 그의 등반에 의문을 제기한 이에게도 “그들의 입장에선 그럴 수 있다”는 쿨한 태도를 보였다.

정상에 오른 기쁨은 잠깐, 살아 내려가는 게 더 큰 목표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오은선 감동 인터뷰


지난 4월27일, 많은 사람이 TV로 오은선 대장이 히말라야 14좌 가운데 마지막인 안나푸르나를 등반하는 과정을 지켜봤다. 안나푸르나는 ‘수확의 여신’이라는 이름과 달리 14좌 가운데 심술궂기로 유명하다. 그동안 등정에 나섰던 한국 등반대 가운데 십여 명이 살아 돌아오지 못했다. 험난한 지형에, 불발탄처럼 숨어 있는 천길 깊이의 크레바스, 변화무쌍한 기상 등 악조건 때문에 오은선 대장도 지난해 가을 한 차례 도전했다 정상을 눈앞에 두고 물러선 경험이 있다. 이번에도 영하 30℃의 날씨와 초속 12m의 강풍, 눈사태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결국 안나푸르나는 그를 허락했다. 1993년 에베레스트를 시작으로, 히말라야에 발을 들인지 17년 만에 14좌 완등에 성공한 것이다. 여성으로서는 세계 최초, 남녀를 통틀어서는 1986년 라인홀트 메스너 이후 스무 번째다.
▼ TV를 보면서 포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정상에 오르기 한두 시간 전쯤, 더 이상 오르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돌아서려는데 거북이처럼 느릿느릿 우리를 따라왔던 폴란드 대원이 제 곁을 지나 앞으로 가더군요. 저렇게 해서 과연 산에 오를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느린 대원이었는데. 그를 보는 순간 ‘맞아, 욕심내지 않고 저렇게 가는 거야!’ 란 생각에 다시 힘이 났어요. 후일담이지만 제가 무전으로 ‘더 이상 못 가겠다’고 하니 ‘망했구나’ 했던 방송팀이, 마음 고쳐먹고 ‘갑시다’ 하니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고 하더라고요.”
▼ 그토록 원했던 정상에 오른 소감은.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 들었지만 그건 아주 잠깐이고 사실 내려갈 걱정에 기쁨을 만끽하거나 주변을 감상할 마음의 여유가 없었어요. 내려오는 길에 생과 사가 갈리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이번은 방송팀과 함께 갔기에 좀 더 오래 머물렀지만 보통은 사진 몇 컷 찍고 서둘러 내려옵니다.”
▼ 정상에 오르는 게 대단한 희열을 주는 게 아니라면 산에는 왜 가나요.
“그런 질문을 많이 받는데, 정말 모르겠어요. 어찌할 수 없는 운명에 이끌리는 것 같기도 하고…”
▼ 일반인들은 해발 1500m 정도의 국내 산도 오르기 힘들어하는데, 체력이 남다른가 봐요.
“2년 동안 8개 봉을 오른 뒤 태릉선수촌에서 체력검사를 받았는데 다른 건 특별한 게 없지만 심폐 기능은 철인 3종 경기를 하는 남자와 비슷한 수준이라고 하더군요. 타고난 부분도 있을 거고, 그동안 꾸준히 산에 오르면서 단련된 부분도 있을 거예요. 등산 안 할 때는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일주일에 3회 정도 수영하고, 한식 위주로 좋은 음식 먹고, 몸에 나쁘다는 건 하지 않습니다.”

경쟁자들의 의혹 제기,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오은선 감동 인터뷰

1 정상에 오르기 며칠 전 안나푸르나를 배경으로. 2 14좌 등반 마지막인 안나푸르나 정상에서.



어린 시절 그는 집과 학교밖에 모르는 모범생이었다. 대학에 입학하자, 시계추처럼 사는 딸이 안쓰러웠던 아버지가 동아리 활동을 권했다. 처음엔 워킹만 하겠다는 소극적인 자세로 산악부에 들었지만, 산에 올랐다 오는 사람들은 항상 생기가 넘쳐 보였다. ‘무엇이 저 사람들을 저렇게 행복하게 할까, 나도 한번 해보자’ 한 것이 오늘의 오은선을 만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다. 산에 가는 게 즐거우니 회사 생활도 콧노래가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에베레스트 원정대 선발 소식을 듣고는 왠지 모를 흥분에 가슴이 뛰었다. 원정대에 선발돼 떠나기 4개월 전부터 합숙을 하며 낮에는 회사에 다니고 밤에는 체력훈련과 회의를 했다. 에베레스트로 떠나기 며칠 전, 만년설을 밟을 생각을 하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일생에서 다시 얻지 못할지도 모르는 기회. 먹고사는 것은 어떻게든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과감하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 처음부터 14좌 완등을 목표로 한 건 아니었을 텐데
“2005~2006년 시샤팡마와 초오유를 무산소 등정하고, 2007년 K2까지 등정하자 자신감이 확 생기더라고요. 조금만 더 노력하면 14좌 완등이 가능하겠단 생각이 들었어요. 계획서를 쓰면서 2010년까지로 스케줄을 밝혔는데 그게 ‘족쇄’가 된 거죠(웃음).”
▼ 14좌 등정의 경쟁자였던 칼텐브루너(오스트리아)나 파사반(스페인)보다는 훨씬 시작이 늦었는데 조급한 마음은 없었나요.
“제가 K2에 도전하기 전 칼텐브루너는 9개, 파사반은 8개 봉우리에 오른 상태였어요. 등반은 기후, 운 등 모든 여건이 따라줘야 하는 것이기에 따라잡기 쉬울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단 생각을 했어요. 성공하면 좋고, 그렇지 않아도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마음가짐으로 시작했죠. 다행히 저는 운도 좋았고, 국민들이 많이 응원해주셔서 빨리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어요.”
▼ 이탈리아 등반가 카머란더는 오은선 대장의 14좌 완등을 산소통과 헬기의 도움을 받은 물량주의 등반이라고 평가절하했는데.
“메스너도 산소 사용은 등반가 개인의 선택이지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짚어줬고 저 역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산소는 에베레스트와 K2, 딱 두 번만 사용했고 헬기를 사용해 베이스캠프로 간 것은 시간에 쫓겨 찾은 다울라기리 한 번뿐입니다. 등반을 마치고 네팔에서 메스너를 만났을 때 그는 ‘15개월 동안 8개 봉우리를 오른 기록을 세운 사람은 남녀 산악인을 통틀어 오은선 대장이 처음’이라고 축하를 해 줬어요.” (영국 일간 ‘더 타임스’ 보도에 의하면 최근 메스너는 “오은선 대장이 여성 최초 14좌 완등자다. 왜 사람들이 그녀를 의심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 경쟁자인 파사반도 칸첸중가 정상에서 자신이 찍은 사진과 오은선 대장이 찍은 사진이 차이가 있다며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메스너에게 해발 8450m 지점에서 보이는 손톱바위 영상자료를 증거로 갖고 있다고 했더니 더 이상 들을 것도 없다는 듯 ‘당신은 간 것이 맞다’고 인정했어요.”
▼ 같은 산악인으로서 의혹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섭섭한 마음이 있을 법한데.
“파사반에게 섭섭하긴 하지만 개인적인 감정은 없어요. 공항에서 전해들은 파사반의 시샤팡마 등정 성공에 축하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 그러고 보면 산악이 그 어떤 분야 못지않게 경쟁이 치열한 분야 같습니다.
“대단한 열정가들만 모여 있는 곳이라 그래요. 남을 폭넓게 받아들이는 게 쉬울 수도 있고, 어려울 수도 있죠. 특히 고산 등반을 하면 극도로 예민해지죠. 그 사람들이 무슨 말을 하든, 극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감정이 통제되지 않는 극도로 예민한 상황에 처해봤기 때문에 그들을 이해할 수 있어요. 또 칼텐브루너나 파사반 같은 좋은 경쟁자가 없었더라면 이렇게 빨리 14좌 완등에 성공하지 못했을 거예요. 그들의 존재에 감사하기도 하죠.”

“산에 오르는 젊은이들 보면 흐뭇해요”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 오은선 감동 인터뷰


산악인들은 목숨을 담보로 산에 오른다. 오은선 대장 역시 등반 과정에서 여러 번 동료의 시신을 목격했고, 안나푸르나를 함께 오르자고 약속했던 절친한 후배 고미영도 산에서 잃었다. 그 자신도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겼다. K2를 오르다 50m 정도 절벽 아래로 추락했지만 기적처럼 목숨을 건지기도 했다. 오은선 대장 역시 죽음이 두렵다. 그의 목표는 살아서 계속 산에 오르는 것이다.

▼ 징크스 같은 것이 있나요.
“집 안 정리를 잘 안 해요. 산으로 떠나기 전 맘먹고 정리하려고 생각했다가도 ‘내가 왜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곤 해요. 사고를 당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돌아오지 못하더라도 모든 것이 깔끔하게 처리될 수 있도록 주변 정리를 잘 하고 간다는 거예요. 그게 싫어서 일부러 그냥 내버려두고 어질러진 채로 가곤 하죠.”
▼ 산악인은 산에서 죽는 걸 명예롭게 생각한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저도 죽는 건 두려워요. 그런데 산사태가 나든, 크레바스에 빠지든 비슷한 상황에서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는 걸 보면 인명재천(人命在天)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늘 죽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합니다. 안전사고에 철저히 대비하고 나머지는 하늘의 뜻에 맡깁니다.”
▼ 인명재천이라니, 도박이 아닌가요.
“도박은 남에게 피해를 입히고 자신도 정신적으로 황폐해지는데 등반은 누구에게 물질적으로 손해 입히는 건 아니니까. 가족에게 맘고생시키는 거 제외하면 정신적으로도 나쁘지 않잖아요. 이걸로 대단한 돈을 벌고자 하는 것도 아니에요. 지금의 저는 이전보다 명예는 좀 있을 수 있겠지만 순수하게 산에 오르는 게 좋아서 하는 거예요.”
▼ 안나푸르나에 오를 때 고미영씨 사진을 품에 넣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친구는 할 일이 많았는데…. 정상에 묻어주고 오려고 했는데, 너무 추워서 그럴 수 없었어요.”
▼ 앞으로 목표는.
“보기엔 멀쩡해도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 있어요. 일단은 에너지를 좀 비축해야 할 것 같고, 많은 분들이 응원해주신 만큼 모범적으로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이번 등반을 편견 버리고 생각의 폭을 넓혀 큰사람으로 거듭나는 계기로 삼고 싶어요.”
▼ 요즘 등산하는 사람이 많아요. 우리나라가 등산 강국이 됐죠.
“예전엔 산에서 젊은 사람 보기 쉽지 않았는데 요즘 북한산에 올라 보면 젊은 사람들이 많아 흐뭇해요. 자연을 훼손시키지만 않는다면 개인이나 국가적으로도 이보더 더 좋은 운동이 없죠.”

여성동아 2010년 6월 55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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