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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제로’ 전교 1등 유승빈의 화끈한 공부법

“어려운 문제집은 사절, 교과서와 수능 기출문제만 파고들어요”

글 오진영 사진 지호영 기자

입력 2010.03.08 17:41:00

서울 경희고에는 ‘공부하는 화석’이 있다. 동 트기 전부터 자정까지 자습실 의자에 제 몸을 밧줄로 묶고 공부하는 유승빈군이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사교육을 끊고 오로지 학교에서만 공부하는 유승빈군의 과격하지만 똑 소리 나는 공부법을 소개한다.
‘사교육 제로’ 전교 1등 유승빈의 화끈한 공부법


경희고 3학년 유승빈군(18)은 새벽 6시 반에 등교해 자정을 넘어서야 교문을 나선다. 이 학교 자습실인 청운재는 밤 11시까지만 개방하도록 되어 있는데, 유군은 늘 마지막까지 남아 경비아저씨가 그만 집에 가라고 재촉해야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래서 이 학교 학생들은 그를 ‘공부하는 화석’이라고 부른다.
학교에 가장 먼저 도착해 가장 늦게까지 남아 공부하는 유군은 1학년 학기말에 공동으로 전교 1등을 했고, 2학년 학기말엔 전교 1등을 차지했다. 중학교 때도 성적이 상위권이긴 했지만 지금처럼 쉴 틈 없이 공부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때는 “시험기간에 PC방 안 가고 선생님들이 문제 찍어주실 때 졸지만 않으면” 성적을 잘 받을 수 있어서 긴장감 없이 학교를 다녔다고.
공부에 ‘올인’하기로 결심한 건 중3 겨울방학 때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소아마비 장애까지 있었지만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에 들어갔다는 어느 학생의 수기를 읽은 것이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됐다.
“수기 내용 중에 시장에서 장사하는 엄마한테 책 살 돈 타러 갔다가 찬 도시락을 잡숫고 계시는 모습을 보고 그냥 돌아서왔다는 대목이 있었어요. 그걸 읽는데 저희 엄마 모습이 떠오르더라고요. 어머니도 힘들게 일해서 형(서강대 화공생명공학과 2년)과 저를 키우시거든요.”
아버지와 이혼 후 공장에서 일하며 혼자서 두 아들을 키우느라 어머니의 고생이 이만저만 아닌데 지금껏 아무 생각 없이 살아왔다는 게 후회되고, 이제는 달라져야겠다는 각오가 생겼다. 당장 한 달에 20여 만원을 내고 다니던 학원 종합반을 그만뒀다.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기도 했고, 학원에 의지하지 않고 혼자 공부하는 법을 익히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때부터 매일 새벽 5시 반에 일어나 집 근처 독서실에 갔다가 밤 12시에 집에 와 잠드는 생활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계속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서서도 졸고 밥 먹으면서 졸기도 해” 지금은 6시 기상을 지키고 있다. 이런 빠듯한 생활이 처음부터 수월했던 건 아니다. 갑자기 수면시간을 줄이려니 무척 힘들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와의 약속을 지켜낸 결과 지금은 습관이 돼 하루 5시간 반에서 6시간만 자도 거뜬하다고 한다.

매일 학습계획표 작성, 밀린 공부는 일요일에 해치워

‘사교육 제로’ 전교 1등 유승빈의 화끈한 공부법

어머니의 부담을 덜어드리고 싶어 혼자 공부하는 법을 익혔다는 유승빈군.



오전 6시 반에 학교 자습실에 도착하면 우선 전날 수업시간에 배운 내용을 복습한다. 그다음엔 주로 수학문제를 풀고, 하루 공부 계획표를 작성한다. 그날 공부할 분량을 수첩에 적어놓았다가 자습시간, 쉬는 시간, 점심시간을 활용해 공부한 분량을 체크한다. 하루가 끝날 무렵이면 그날의 계획과 실제 공부한 양의 차이, 걸린 시간, 그리고 어영부영 날려버린 시간까지 한눈에 확인된다.
“이렇게 매일 계획표를 짜서 몇 시간 공부하고, 얼마나 놀았는지 기록하면 시간을 아껴 써야겠다는 생각에 저절로 밥도 빨리 먹게 되고 걸음도 빨라져요. 계획을 세웠다가 다 채우지 못한 분량은 반드시 일요일에 한꺼번에 공부해서 절대로 다음 주로 넘기지 않아요.”
서울대 수학교육과에 진학해 수학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유군은 수학 공부를 할 때 어려운 학습서나 문제집에 매달리지 않고 교과서를 집중적으로 파고든다.
“유명한 수학 참고서들엔 쓸데없이 난해한 문제가 많은데, 실제 수능에서는 이런 문제가 절대 안 나와요. 괜히 어려운 문제 붙잡고 늘어지면 스트레스만 쌓이고 수학이 싫어지기 십상이죠.”
유군은 수능 수리영역에 대비하는 데는 교과서와 수능 기출문제, 그리고 수능을 출제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모의고사 문제를 반복해서 풀어보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한다.
“교과서는 양이 많지 않아 진도 나가기에 부담이 없어요. 또 교과서에 없는 개념은 수능에 안 나와요. 문제를 많이 푸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답을 구하는 과정이 빨라지는 게 중요해요. 교과서 문제를 반복해서 풀다 보면 처음 풀 때 몰랐던 개념이 보이고 답을 추적해가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많은 학생이 한 단원을 붙들고 기초·중간·심화 단계 문제를 한 번에 소화하려고 하는데, 유군은 다른 방법을 제시한다. 첫 단원부터 마지막 단원까지 기초 문제만 풀면서 전체적으로 한 번 훑고, 다시 첫 단원으로 돌아와 기초를 복습하고 중간 단계 문제를 푸는 식으로 해보라는 것이다. 첫 단원 심화 문제에 발목 잡혀 끙끙대는 것보다 일단 진도를 나간 다음 다시 돌아와 반복해 보는 편이 낫다고.



‘사교육 제로’ 전교 1등 유승빈의 화끈한 공부법


언어 영역도 마찬가지다. “유명 학원에서 만든 사설 모의고사를 보면 어렵게 만드느라 비비 꼰 문제가 많은데 수능에는 그렇게 배배 꼬인 문제가 나올 리 없다”고 확신하는 유군은 언어영역도 한국교육과정평가원 모의고사와 수능 기출문제에 집중한다.
영어는 문법책에 얽매이지 않고, 독해교재를 이용해 문장 해석 능력을 길렀다.
“우리말 문법을 잘 몰라도 우리말을 잘하는 것처럼 어법은 감으로 습득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영어 문장과 친해지면 문법이 틀린 문장은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옵니다.”
외국어 영역에 대비해 유군은 주로 인터넷 강의 교재를 활용한다. 실력 있는 강사들이 반드시 알아둬야 할 핵심 내용을 모아 만든 교재가 시중에 많이 나와 있으니 그중 자기 수준에 잘 맞는 걸 선택하면 된다고. 영어 단어는 무작정 외우기보다 단어가 문장 안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파악하며 의미를 추론하는 훈련을 했다.
“실제 수능에서 모르는 단어를 만날 수밖에 없어요. 평소 모르는 단어와 맞닥뜨렸을 때 맥락 안에서 의미를 유추하는 훈련을 하면 실전에 많은 도움이 될 거예요. 단어는 뜻만 외워서는 안다고 말할 수 없고, 문장에서 어떻게 쓰이는지를 알아야 하고요.”
영어 듣기 연습은 구문 해석과 단어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해 영어 문장을 술술 읽으며 빠르게 해석하는 수준이 된 다음에 시작하는 게 좋다고 말하는 유군. 그렇지 않으면 영어 듣기가 한낱 의미 없는 소음을 듣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영어 듣기가 어려운 건 우리 머릿속에 있는 발음과 실제 영어 발음이 달라서인데 매일 정해진 시간 동안 꾸준히 듣기 연습을 하고, 전날 들은 것을 반복하면 단 기간에 듣기 실력이 향상된다고 봐요.”

수리·과학 탐구는 문제 응용 훈련이 중요
이과인 유군은 과학탐구 영역 문제를 접하면 심층 분석한다. 수리와 과학 탐구의 경우 하나의 문제 유형으로 여러 가지 답을 이끌어내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만약 마찰이 없을 때 A의 속력을 구하라는 문제가 있으면, 마찰이 있을 때는 어떨지, 마찰의 크기에 따라 속력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등 이 문제 유형 안에 들어 있지만 물어보지 않은 문제들을 제가 직접 찾아서 답을 구해보는 거죠.”
이렇게 하나의 문제에 여러 경우의 수를 대입해 문제를 응용하다 보면 그 문제가 담고 있는 개념의 원리가 더 잘 이해된다고.
“수능 문제도 전에 나왔던 문제 유형에 경우의 수만 다르게 대입한 게 많아요. 문제를 응용하는 훈련을 계속하다 보면 전에 풀었던 문제인데 이 부분만 바뀐 것이라는 게 보입니다.”
수리와 과학 탐구에 강한 유군에게 어려운 문제를 물어보는 친구가 많은데, 유군은 친구들에게 설명해주는 과정 자체가 좋은 공부라고 생각한다.
“분명히 알고 넘어갔다고 생각했는데 남에게 가르쳐주려고 하면 막히는 문제가 있어요. 그러면 ‘아, 이건 내가 잘 모르는 문제구나’ 깨닫고 다시 공부해 정확히 이해하고 넘어가죠.”
유군은 학교 자습실에서 공부할 때 밧줄로 자신의 허리를 의자에 고정시킨다. 그러면 자세가 바로 잡히고, 일어나 돌아다니고 싶거나 친구들과 시시덕거리고 싶을 때 “밧줄을 푸는 게 귀찮아서라도 그냥 앉아 있게 되기 때문”이다.
유군이 공부할 때 필요한 소품이 또 있다. 고무줄이다. 그는 늘 손목에 고무줄 두 개를 걸고 다니는데 졸릴 때 고무줄 두 개를 한꺼번에 늘였다가 놓으면 ‘진짜’ 아프다고. 고무줄을 튀길 생각만 해도 졸음이 싹 달아날 정도라고. 얼핏 보니 그의 손목시계가 범상치 않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금 이 순간을 치열하게 살자’라고 적힌 낡은 종이가 시곗줄에 붙어 있다. 유군이라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하기 전까지 절대 저 낡은 종이를 떼어내지 않고 매 순간을 치열하게 보낼 게 분명하다.

여성동아 2010년 3월 55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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